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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21화. 차원문이 열리면
     
     
     
     
     
     
     
     
     
     
   강호 일행과 생존자들은 백두산 소재지인 양강도에서 출발해 평양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아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오늘은 다음 마을에서 밤을 보내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안전하다면 말이죠.”
     
   직접 대형 장갑차량을 운전하고 있던 레이나가 의견을 말했다.
     
   “지금 위치는 함경남도로 막 넘어섰어요. 평양까지는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고요.”
   “그렇게 하지.”
     
   강호의 동의로 날이 어둑해지기 직전에 도착한 마을에 차량을 정차했다.
   출발한 이후 한 번의 정차 없이 직행한 탓에 모두 피곤했지만, 지하에서의 사투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락했던 여정이고 하루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전부 같았어요. 도심지건 주거지건 건물 상태나 공동화된 상태나.”
   “그러게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일절 보이지 않아요.”
     
   이동 중에 보고 겪은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안한 눈동자만 굴리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조금은 적응한 것 같았다.
     
   지하에서 겪었던 믿기지 않는 죽을 고비들.
   그걸 뚫고 지상으로 올라와 마주한 죽어버린 세상.
     
   꿈만 같을 것이다.
   애초에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삶을 살아온 강호 자신도 그런데, 평생 연구만 하던 이들이 오죽하겠나 싶었다.
     
   “밤이 되기 전에 주변 순찰부터 다녀오는 게 좋겠군.”
     
   강호가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제가 가죠.”
     
   리사와 레이나가 나란히 따라 일어섰다.
   강호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같이 가지. 사토시.”
   “저도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차량에서 인데르가 모습을 보이며 동행을 희망했다.
     
   “나도 같이 가지. 이것저것 살펴볼 게 많을 것 같은데.”
     
   강호는 잠시 멈춰서서 그를 바라봤다.
   같이 가면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아직 몸이 성치 않아 보여 걱정이 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직 회복이 덜 된 것 같은데.”
   “괜찮네. 쇼크에 의한 기절이었을 뿐이야.”
     
   강호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데르 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방호 슈트는 입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마을은 평범한 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규모 신도시 느낌인데, 지금까지 봐 온 마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파괴된 흔적은 없는 멀쩡한 건물들.
   그리고 비교적 깨끗한 도로.
   하지만 오래 방치된 것처럼 낡고 건조하고 푸석한, 먼지 쌓인 가구 같은 느낌의 마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의 기척이나 흔적이 없었다.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차원문 때문일까요?”
     
   앞뒤 잘린 말이었지만, 인데르는 강호의 질문을 알아들었다.
     
   “글쎄. 이런 상황에 관해서는 보고 들은 바가 없으니 확답하기가 어렵군.”
     
   그러면서 강호를 바라봤다.
     
   “혹시, 자네 재난 매뉴얼은 어떤가?”
     
   마치 알고 묻는 것 같아 강호는 곧바로 자신이 겪은 현상을 설명했다.
     
   “재난 매뉴얼이 업데이트됐습니다. 내용이 방대해졌어요.”
   “그랬을 거로 생각했네. 어찌 보면 새로운 세상 아닌가. 새로 담을 내용이 많아졌겠지.”
     
   강호는 그의 말에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세상.’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 자체가 강호에게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그런 강호의 심정과 상관없이 인데르는 조금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차원문이 어디에 생겼던가?”
   “제 1차원문은 이집트 카이로, 2 차원문은 페루 마추픽추, 3 차원문은 인도 아그라, 4 차원문은 멕시코 칸쿤, 5 차원문은 서울, 6 차원문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7 차원문은 일본 히로시마, 여기까집니다.”
     
   인데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아는 바가 있었던지, 아니면 예측가능한 곳이었는지, 생길만한 데 생겼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서울에 생긴 차원문은 좌표에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
     
   인데르의 설명에 의하면, 일곱 개의 차원문은 평행 세계와 유사한 에너지가 고여있는 장소에 생긴다고 했다.
   그것이 흔히 인류에게는 불가사의, 혹은 고대 유적이라 불리는 장소마다 차원문이 생긴 이유라는 것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히로시마는 예외적이었다.
     
   “히로시마는 그나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폭지라는 의미라도 있네만, 서울은….”
     
   그래서 그의 추측으로는 중국의 고대 문명지에 생겼어야 할 차원문이 서울에 열린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리 있네.’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강호도 수긍이 되는 얘기였다.
     
   “중요한 건, 그 차원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니겠습니까.”
     
   강호다운 직설적인 질문에 인데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그게 우려스러워.”
     
   그는 말끝에 긴 한숨을 남겼다.
   뭔가 아는 게 있기는 한 모양인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강호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대신 리사가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 차원문 너머의 존재들에 대항하기 위해 뮤턴트 실험을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네. 사실이야.”
   “그렇다면, 혹시 지하 10층의 발전시설 폭발도 의도된 실험이었나요?”
     
   일행 모두는 리사의 질문 의도를 이해했다.
     
   ‘아, 자기장 피폭?!’
     
   그런 리사의 추측이 맞았다.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것 같네. 사실 전 층이 다 개별적으로 실험을 진행한 모양이야.”
     
   인데르의 말에 레이나가 탄식을 뱉었다.
     
   “저도 그걸 감찰하기 위해 9층에 머무르면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른 층 감찰 상황 공유를 요청했는데, 묵살당했어요.”
     
   전에도 인데르가 자세히 언급했던 내용이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모두가 생각이 깊어졌다.
   그들의 고민이 깊어질까 인데르가 설명을 덧붙였다.
     
   “나도 의석 회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아 직접 의결권을 행사한 적은 없었네. 다만,”
     
   그는 고위층에서 공유했던 프로젝트의 중간보고 몇 가지를 소개했다.
     
   가장 먼저, 성공률이 비교적 높고 결과도 만족스러운 실험은 특수 혈청 실험이라고 했다.
     
   “여기 한강호 소령, 그리고 레이나 대위가 그 좋은 예지.”
     
   그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강호의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공개했기에 알고 있었지만, 레이나 얘기에 놀란 것이다.
     
   레이나는 조금은 민망한 듯 웃으며 자신의 얘기를 직접 꺼냈다.
     
   “맞아요. 난 혼혈 엘프로 분류돼 있어요.”
   “… 네?”
   “에, 엘프 말입니까?!”
     
   모두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레이나의 귀를 살폈다.
   그 시선을 느낀 레이나가 픽 웃었다.
     
   “역시 귀부터 보는 군요.”
     
   레이나의 웃음이 잠깐 쓸쓸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설명을 풀었다.
     
   “혼혈 엘프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만들어진 엘프라고 보면 돼요.”
   “……?!”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레이나의 설명은 계속됐다.
     
   “인데르 박사님 말대로죠. 강호씨가 특수 혈청 주사를 맞은 것처럼, 나도 그래요. 그리고 절반의 성공인 거죠. 그래서 하프 엘프.”
   “아아.”
     
   리사와 사토시가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세상에,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리사는 같은 과학자로서 분노가 치미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강호씨도 그 혈청 주사를 맞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잖아요. 나 또한 오히려 감사하고 있거든요.”
     
   레이나는 자세한 사연을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놀라운 정보를 공유했다.
     
   “강호씨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던데, 혹시 어떤 특수 혈청을 맞은 건지 알고 있나요?”
     
   강호를 보며 물었고, 강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레이나는 그런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마저 설명했다.
     
   “강호씨에게 투약된 특수 혈청도 이종족의 유전자일 거예요.”
     
   당사자인 강호를 비롯한 모두가 적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들어보니, 그럴 것 같군.”
     
   레이나는 설명을 계속했다.
     
   “강호씨 신체 능력 보세요. 그게 어디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만한 힘, 방어력, 스피드던가요?”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사토시가 강력히 동의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 뛰는 거 봤죠? 적 공격 피하는 것도.”
   “무, 물론이죠!”
     
   리사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쯤 되자 인데르가 다시 나섰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게. 이들에게 제공된 특수 혈청은 어떻게 만들어졌겠나? 믿기지 않는 존재의 유전자 말일세.”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 듯, 리사의 턱이 툭 떨어졌다.
     
   “차원문, 이미 그들과 교류가 있었군요.”
     
   인데르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청 실험이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높을 뿐, 극악의 확률임에는 변함이 없네. 당장 종 보관소에서 살아나온 이들 중, 이 둘밖에 없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해가 됐는지, 리사가 자신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기장 피폭 실험도 꽤 나쁘지 않은 거네요. 이쪽도 둘 이니까.”
   “아, 저도….”
     
   사토시가 뒤늦게 이해했다.
     
   ‘혈청과 피폭, 두 가지로 강화된 나, 혈청으로만 이능력을 갖춘 레이나, 그리고 자기장 피폭 실험체인 리사와 사토시.’
     
   강호는 속으로 분류를 해봤다.
   지금은 없지만, 울프도 강호 자신과 같은 부류였다.
     
   “우리가 전부는 아니겠죠?”
     
   레이나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인데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된 걸까?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갑자기 시큰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
     
   강호가 아파트 단지 중앙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다른 일행들도 그랬다.
     
   “이건…?!”
   “으으, 뭔가 지독하게 썩은 냄새가 납니다!”
   “말도 안 돼.”
     
   오감과 육감을 넘어선 초감각이었다.
   이 역시 변이체가 갖는 이능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느끼는 감각은, 태어나 처음 접하는 공포였다.
     
   강호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 강하다. 격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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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차원문이 열리면

강호 일행과 생존자들은 백두산 소재지인 양강도에서 출발해 평양으로 방향을 잡았다.

다행히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아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오늘은 다음 마을에서 밤을 보내고 가야 할 것 같아요. 안전하다면 말이죠.”

직접 대형 장갑차량을 운전하고 있던 레이나가 의견을 말했다.

“지금 위치는 함경남도로 막 넘어섰어요. 평양까지는 내일이면 도착할 것 같고요.”

“그렇게 하지.”

강호의 동의로 날이 어둑해지기 직전에 도착한 마을에 차량을 정차했다.

출발한 이후 한 번의 정차 없이 직행한 탓에 모두 피곤했지만, 지하에서의 사투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락했던 여정이고 하루였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전부 같았어요. 도심지건 주거지건 건물 상태나 공동화된 상태나.”

“그러게요. 사람뿐 아니라 동물도 일절 보이지 않아요.”

이동 중에 보고 겪은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안한 눈동자만 굴리며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조금은 적응한 것 같았다.

지하에서 겪었던 믿기지 않는 죽을 고비들.

그걸 뚫고 지상으로 올라와 마주한 죽어버린 세상.

꿈만 같을 것이다.

애초에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삶을 살아온 강호 자신도 그런데, 평생 연구만 하던 이들이 오죽하겠나 싶었다.

“밤이 되기 전에 주변 순찰부터 다녀오는 게 좋겠군.”

강호가 일어서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요.”

“제가 가죠.”

리사와 레이나가 나란히 따라 일어섰다.

강호는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 같이 가지. 사토시.”

“저도요?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차량에서 인데르가 모습을 보이며 동행을 희망했다.

“나도 같이 가지. 이것저것 살펴볼 게 많을 것 같은데.”

강호는 잠시 멈춰서서 그를 바라봤다.

같이 가면 많은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아직 몸이 성치 않아 보여 걱정이 됐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직 회복이 덜 된 것 같은데.”

“괜찮네. 쇼크에 의한 기절이었을 뿐이야.”

강호는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데르 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방호 슈트는 입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마을은 평범한 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규모 신도시 느낌인데, 지금까지 봐 온 마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파괴된 흔적은 없는 멀쩡한 건물들.

그리고 비교적 깨끗한 도로.

하지만 오래 방치된 것처럼 낡고 건조하고 푸석한, 먼지 쌓인 가구 같은 느낌의 마을이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의 기척이나 흔적이 없었다.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차원문 때문일까요?”

앞뒤 잘린 말이었지만, 인데르는 강호의 질문을 알아들었다.

“글쎄. 이런 상황에 관해서는 보고 들은 바가 없으니 확답하기가 어렵군.”

그러면서 강호를 바라봤다.

“혹시, 자네 재난 매뉴얼은 어떤가?”

마치 알고 묻는 것 같아 강호는 곧바로 자신이 겪은 현상을 설명했다.

“재난 매뉴얼이 업데이트됐습니다. 내용이 방대해졌어요.”

“그랬을 거로 생각했네. 어찌 보면 새로운 세상 아닌가. 새로 담을 내용이 많아졌겠지.”

강호는 그의 말에 괜히 마음이 두근거렸다.

‘새로운 세상.’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 자체가 강호에게는 짙은 여운을 남겼다.

그런 강호의 심정과 상관없이 인데르는 조금은 심각해진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차원문이 어디에 생겼던가?”

“제 1차원문은 이집트 카이로, 2 차원문은 페루 마추픽추, 3 차원문은 인도 아그라, 4 차원문은 멕시코 칸쿤, 5 차원문은 서울, 6 차원문은 이스라엘 예루살렘, 7 차원문은 일본 히로시마, 여기까집니다.”

인데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미 아는 바가 있었던지, 아니면 예측가능한 곳이었는지, 생길만한 데 생겼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서울에 생긴 차원문은 좌표에 오류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네.”

인데르의 설명에 의하면, 일곱 개의 차원문은 평행 세계와 유사한 에너지가 고여있는 장소에 생긴다고 했다.

그것이 흔히 인류에게는 불가사의, 혹은 고대 유적이라 불리는 장소마다 차원문이 생긴 이유라는 것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한국의 서울과 일본의 히로시마는 예외적이었다.

“히로시마는 그나마 인류 역사상 최초의 원폭지라는 의미라도 있네만, 서울은….”

그래서 그의 추측으로는 중국의 고대 문명지에 생겼어야 할 차원문이 서울에 열린 게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일리 있네.’

굳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강호도 수긍이 되는 얘기였다.

“중요한 건, 그 차원문이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아니겠습니까.”

강호다운 직설적인 질문에 인데르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도 그게 우려스러워.”

그는 말끝에 긴 한숨을 남겼다.

뭔가 아는 게 있기는 한 모양인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강호는 굳이 더 캐묻지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대신 리사가 궁금했던 걸 물었다.

“그 차원문 너머의 존재들에 대항하기 위해 뮤턴트 실험을 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랬네. 사실이야.”

“그렇다면, 혹시 지하 10층의 발전시설 폭발도 의도된 실험이었나요?”

일행 모두는 리사의 질문 의도를 이해했다.

‘아, 자기장 피폭?!’

그런 리사의 추측이 맞았다.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것 같네. 사실 전 층이 다 개별적으로 실험을 진행한 모양이야.”

인데르의 말에 레이나가 탄식을 뱉었다.

“저도 그걸 감찰하기 위해 9층에 머무르면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른 층 감찰 상황 공유를 요청했는데, 묵살당했어요.”

전에도 인데르가 자세히 언급했던 내용이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모두가 생각이 깊어졌다.

그들의 고민이 깊어질까 인데르가 설명을 덧붙였다.

“나도 의석 회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아 직접 의결권을 행사한 적은 없었네. 다만,”

그는 고위층에서 공유했던 프로젝트의 중간보고 몇 가지를 소개했다.

가장 먼저, 성공률이 비교적 높고 결과도 만족스러운 실험은 특수 혈청 실험이라고 했다.

“여기 한강호 소령, 그리고 레이나 대위가 그 좋은 예지.”

그 말에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강호의 상태에 대해서는 이미 공개했기에 알고 있었지만, 레이나 얘기에 놀란 것이다.

레이나는 조금은 민망한 듯 웃으며 자신의 얘기를 직접 꺼냈다.

“맞아요. 난 혼혈 엘프로 분류돼 있어요.”

“… 네?”

“에, 엘프 말입니까?!”

모두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레이나의 귀를 살폈다.

그 시선을 느낀 레이나가 픽 웃었다.

“역시 귀부터 보는 군요.”

레이나의 웃음이 잠깐 쓸쓸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내 밝은 표정으로 설명을 풀었다.

“혼혈 엘프라고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만들어진 엘프라고 보면 돼요.”

“……?!”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

레이나의 설명은 계속됐다.

“인데르 박사님 말대로죠. 강호씨가 특수 혈청 주사를 맞은 것처럼, 나도 그래요. 그리고 절반의 성공인 거죠. 그래서 하프 엘프.”

“아아.”

리사와 사토시가 동시에 탄성을 흘렸다.

‘세상에,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리사는 같은 과학자로서 분노가 치미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레이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강호씨도 그 혈청 주사를 맞지 않았으면 죽었을 거잖아요. 나 또한 오히려 감사하고 있거든요.”

레이나는 자세한 사연을 말하지는 않았다.

대신 다른 놀라운 정보를 공유했다.

“강호씨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던데, 혹시 어떤 특수 혈청을 맞은 건지 알고 있나요?”

강호를 보며 물었고, 강호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레이나는 그런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마저 설명했다.

“강호씨에게 투약된 특수 혈청도 이종족의 유전자일 거예요.”

당사자인 강호를 비롯한 모두가 적지 않게 놀랐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들어보니, 그럴 것 같군.”

레이나는 설명을 계속했다.

“강호씨 신체 능력 보세요. 그게 어디 인간의 육체가 감당할 만한 힘, 방어력, 스피드던가요?”

“아니죠! 절대 아닙니다!”

사토시가 강력히 동의했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 뛰는 거 봤죠? 적 공격 피하는 것도.”

“무, 물론이죠!”

리사도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쯤 되자 인데르가 다시 나섰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게. 이들에게 제공된 특수 혈청은 어떻게 만들어졌겠나? 믿기지 않는 존재의 유전자 말일세.”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진 듯, 리사의 턱이 툭 떨어졌다.

“차원문, 이미 그들과 교류가 있었군요.”

인데르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청 실험이 상대적으로 성공률이 높을 뿐, 극악의 확률임에는 변함이 없네. 당장 종 보관소에서 살아나온 이들 중, 이 둘밖에 없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이해가 됐는지, 리사가 자신의 몸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기장 피폭 실험도 꽤 나쁘지 않은 거네요. 이쪽도 둘 이니까.”

“아, 저도….”

사토시가 뒤늦게 이해했다.

‘혈청과 피폭, 두 가지로 강화된 나, 혈청으로만 이능력을 갖춘 레이나, 그리고 자기장 피폭 실험체인 리사와 사토시.’

강호는 속으로 분류를 해봤다.

지금은 없지만, 울프도 강호 자신과 같은 부류였다.

“우리가 전부는 아니겠죠?”

레이나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인데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된 걸까?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갑자기 시큰한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

강호가 아파트 단지 중앙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다른 일행들도 그랬다.

“이건…?!”

“으으, 뭔가 지독하게 썩은 냄새가 납니다!”

“말도 안 돼.”

오감과 육감을 넘어선 초감각이었다.

이 역시 변이체가 갖는 이능력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느끼는 감각은, 태어나 처음 접하는 공포였다.

강호는 이를 악물었다.

‘너무 강하다. 격이 달라.’


           


I Memorized the Disaster Man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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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When a disaster strikes, I know what to do. Only I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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