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

   

    문주를 두들겨 패긴 했지만 청하문이 손님을 박대하진 않았다.

   

    자고 갈 생각도 없는데 일단 방부터 내주더니 식사까지 대접해줬으면 할 거 다 한 거지.

   

    “아니, 근데 뭐 풀떼기만 한가득이냐.”

   

    그렇다고 그걸로 뭐라 하긴 애매한 게 누가 봐도 손이 많이 가는 반찬들이다. 원래 나물이 은근히 만들기 귀찮지 않은가. 

   

    심지어 의외로 또 맛이 괜찮다. 숙수가 요리를 잘 하네.

   

    “딱 보면 모르냐? 여기 도가 계열 문파잖아.”

    “도가? 무당파 같은 거냐?”

   

    무림이라면 당연히 있어야만 하는 무당파. 서준이 그에 대해 묻자 춘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이야.”

   

    춘봉의 젓가락이 유일한 고기 반찬을 가리켰다.

   

    “고기도 있긴 있겠다, 쌀밥도 있잖아. 아예 화기를 금한다고 생쌀 씹어먹는 놈들도 있어.”

    “그건 진짜 정신병 아니냐?”

   

    헛웃음을 흘리는 서준. 춘봉이 양볼 빵빵하게 고기를 우겨넣으며 말했다.

   

    “우믐…. 원래 무림인 태반은 병신들이야.”

   

    처녀 피로 목욕하는 놈, 인신공양하는 놈, 시체에 박는 놈, 뜨거운 모래로 손을 자해하는 놈.

   

    무림인들은 기본적으로 무공을 위해서 못 할 짓이 없는 놈들이다.

   

    그중 정파는 그나마 선을 아는 척이라도 하는 놈들이고, 마교는 다 좆까고 무공에 박는 놈들이라 할 수 있었다.

   

    “뭣.”

    “일단 당장 너만 해도 봐. 그냥 병신이잖아.”

    “어허 금춘봉! 하늘 같은 오라비에게 그게 무슨 말이야!”

    “지랄.”

    “뜌따…?”

    “이거 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춘봉이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너, 그 혼원신공.”

    “오 그래! 너도 봤지? 개쩔지? 막 오빠가 멋있어 보이고 그러진 않던?”

    “너 그거 잘못하면 좆된다.”

    “또또. 맨날 좆된대.”

   

    서준이 투덜대며 남은 밥을 한 입에 쑤셔넣었다. 고기 반찬이 다 떨어져서 맨밥이었다.

   

    나물? 미안하지만 밥 한 공기에 두 젓가락 이상은 안 먹는다.

   

    “왜 같은 문파에서도 계열이 나뉘는지 몰라? 무공에 맞는 내공이라는 게 있는 거야. 막말로 황운신공으로 쌓은 내기로 무당파 무공을 펼칠 수 있겠냐?”

    “왜 안 됨?”

    “흠….”

   

    춘봉이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왠지 저 새끼라면 할 것도 같아서.

   

    “아니, 아무튼. 조심하라고. 되는 것도 신기한데, 안 되는 일을 되게끔 하다 보면 사고도 많이 터지니까.”

    “그니까 결국 오빠 걱정해주는 거지? 캬! 우리 춘봉이 다 컸다! 아주 철이 들었어!”

    “…난 모르겠다 그냥. 좆대로 해라.”

   

    새끼. 부끄러우니까 튕기기는.

   

   

    *

   

   

    밥을 다 먹고 난 뒤에는 기왕 손님 대접받는 거 문파 구경에 나섰다.

   

    “음…. 문주께서 오늘 할 단체 훈련 정도는 참관해도 상관없다 하셨소.”

   

    옳지. 문주가 버릇이 아주 잘 들었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히히 웃었다.

   

    “가자, 금춘봉!”

    “이건 좀 재밌겠네.”

   

    결론만 말하자면 썩 괜찮았다. 개개인의 수준이 높지 않아도 여럿이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니 왜 사람이 단체 생활을 하는지 알겠더라.

   

    보통 그런 걸 합격진이라 부르는데, 청하문만 해도 이 정돈데 소림의 백팔나한진 같은 건 어떨지 궁금해졌다.

   

    애초에 여기 있긴 한가?

   

    “백팔나한진? 유명하지. 내가 알기로는 초절정 고수까지도 상대할 수 있다던데?”

    “화경은?”

    “되겠냐? 시간 끌기 정도는 될 수도 있겠네.”

   

    유감이다. 화경쯤 되면 합격진이고 뭐고 단신으로 다 부수고 다니는 모양이다.

   

    그렇게 문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청하문 투어를 끝마쳤다.

   

    당연히 깊숙한 곳은 못 들어갔고, 외부인에게 개방된 곳만을 구경했는데도 구경을 끝내니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슬슬 가볼까?”

    “응. 피곤하다.”

   

    하암…. 춘봉이가 작게 하품했다.

   

    그런 그녀를 보는 서준의 눈이 미세하게 가라앉았다.

   

    일류쯤 되는 고수가 피곤할 만한 일정은 아니었는데, 역시 아직 몸상태가 완전히 나아지지 않은 게 분명했다.

   

    괜히 춘봉이의 볼을 몇 번 잡아당긴 서준이 청하문을 떠나기 전 문주전에 들렀다.

   

    “그래, 잘 쉬었는가?”

    “네, 뭐. 그나저나 부탁 하나만 합시다.”

    “들어나보지.”

   

    이어지는 서준의 부탁을 들은 문주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네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아재, 대련 졌잖아요.”

    “…들어줄 생각이었네.”

   

    한숨을 내쉰 문주가 청운에게 손짓했다. 대충 배웅을 나가라는 뜻이었는데, 저 형씨도 참 고생하는구나 싶었다.

   

    뭔 일 있으면 다 저 사람한테 시키네.

   

    “그럼 잘 가시오.”

    “다시 오지는 말고?”

    “…딱히 그런 말은 안 했소만.”

    “표정이 딱 그런데.”

   

    서준이 낄낄 웃다가 지나가듯 말했다.

   

    “어깨가 너무 딱딱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오?”

    “기가 너무 억눌려있다고. 어깨 힘 풀고 기가 흐르는 대로 두면 성취가 좀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청운이 눈을 크게 떴다.

   

    잠시 미심쩍은 듯 묘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무언가 생각이 바뀌었는지 가볍게 고개를 털었다.

   

    “…고맙소. 새겨듣겠소.”

   

    포권하는 그에게 서준이 손을 흔들었다.

   

    청하문의 대문이 멀어져 더 이상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쯤, 서준이 씩 웃었다.

   

    “미쳤다. 방금 완전 무림고수였는데?”

    “그 말만 안 했으면 말이지.”

    “뭣.”

   

    아무튼 무림고수 같았다는 말이지?

   

    성공했다 이서준.

   

    “이제 꽃길만 걷자!”

    “겠냐?”

    “나쁜년.”

   

   

    *

   

   

    서준은 집에 도착해 일단 춘봉이를 눕혔다.

   

    “뭔데…?”

    “코 자자.”

    “뭐, 뭔데 진짜.”

    “어허. 착하지. 코코낸내~.”

    “미친 새끼….”

   

    춘봉이가 당황한 듯 딱딱하게 굳었지만, 배를 몇 번 토닥여주자 스르륵 잠들었다.

   

    아무래도 언제까지고 여기 머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춘봉이 상태로 봐서는 영약 몇 개를 더 주워먹여야 될 것 같은데, 이 근처에서는 영약을 구할 건덕지가 안 보인다.

   

    ‘청하문에 한 번 물어보긴 해야겠네.’

   

    아마 뭐가 있긴 있겠지. 좆밥 흑호문에도 있었는데 그만한 문파에 영약 한두 개 없겠는가.

   

    영약의 대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된다.

   

    춘봉이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서준은 집을 나섰다. 그런 그의 발걸음이 홍등가로 향했다.

   

    언제 와도 기분이 찝찝한 거리에 들어선 서준은 저번에 들렀던 기루로 향했다.

   

    ‘이름이 홍월루였네.’

   

    이제 봤는데 이름 참 대충 지었다.

   

    몸을 파는 기녀들이 있는 홍루. 거기에 대충 기루에 흔히 붙이는 월月 자 하나 붙인 거 아닌가.

   

    “쯧.”

   

    혀를 찬 서준이 홍월루 주변을 둘러보았다.

   

    흑도 놈들을 한 번 박살낸 게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아직 설치는 놈은 없었다.

   

    “실례합니다.”

   

    홍월루에 들어서자 은은한 불빛과 함께 달짝지근한 향이 훅 들이닥친다.

   

    “오셨습니까.”

   

    매월이 그를 반겼다. 눈을 초승달처럼 휘어 웃는 그녀의 곁에는 덩치 큰 사내 둘이 붙어있었다.

   

    홍월루는 분명 흑호문 소속이었을 텐데, 호위는 어디서 구한 거지?

   

    의문이 들었지만 굳이 신경 쓰지는 않았다. 대신 매월에게 말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라니요. 소협께서는 당당히 흑호문을 쳐부수고 기루의 주인이 되지 않으셨습니까. 시키실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말씀하시지요.”

    “이 거리의 기녀들을 전부 모으려면 시간이 얼마쯤 걸리지?”

   

    매월의 오른쪽 눈썹이 가볍게 치솟았다. 잠시 턱을 짚고 고민하던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루…, 길어도 이틀이면 충분할 듯합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흑호문 소속이 아니었던 기루들까지 다 포함해도?”

    “으음…. 그건….”

   

    이번 고민은 조금 길었다. 서준은 그 사이 홍월루를 대충 둘러보았다.

   

    이런 뒷골목에 있는 기루치고는 확실히 건물이 괜찮다. 어떻게 벌었는지 잘은 몰라도 흑호문이 돈이 많긴 했던 모양이지.

   

    그리고 그때, 우연인지 필연인지 예의 그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무림 첫날 만났던 그 여인이다. 

   

    이제 보니 얼굴의 붓기가 조금 빠졌다. 대접이 조금 나아졌나? 흑호문이 사라졌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쯧-

   

    여인은 혀를 차더니 눈을 흘기며 사라졌다.

   

    거참. 싸가지 없기는.

   

    픽 웃은 서준이 여전히 고민 중인 매월에게 말했다.

   

    “일 주 후에 부탁하지. 다른 기루에는 내가 말해둘 테니 그리 알고.”

    “아…, 그런 수고를 들이실 필요까지는….”

    “됐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서준이 등을 돌렸다. 대충 손을 흔들며 홍월루를 나가려는데 매월이 그를 붙잡았다.

   

    “오늘은 동행분도 계시지 않은 듯한데…, 하룻밤 묵고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매월의 목소리에 끈적한 교태가 어렸다. 서준이 병신도 아니고 그녀의 말뜻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준은 검 손잡이로 그녀를 밀어냈다.

   

    “아니.”

   

    그리 힘을 주지 않아도 매월이 알아서 물러났다.

   

    그녀는 아쉬운 듯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겠나이다.”

   

    잠시 그녀를 훑어본 서준이 기루에서 나가려던 찰나, 우뚝 걸음을 멈췄다. 매월이 옅게 웃었다.

   

    “마음이 바뀌셨는지요?”

    “무공은 어디서 배운 거지?”

   

    서준의 질문에 매월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하지만 그녀는 빠르게 표정을 가다듬으며 티나게 꾸민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뭐, 됐다.”

   

    그대로 홍월루를 나온 서준이 흙길에 발을 끌었다.

   

    “에휴.”

   

    밤하늘의 달이 밝다. 느닷없이 솟구치는 좆같음에 걷는 속도를 올렸다.

   

    황룡도하의 묘리까지 섞어가며 집으로 돌아온 서준은 냅다 춘봉이의 위로 뛰어들었다.

   

    “오빠 왔다, 춘봉아!”

    “갸악…!”

   

    춘봉이가 비몽사몽 잘 뜨지도 못 하는 눈으로 서준의 얼굴을 마구 밀었다.

   

    “아, 뭐 하는데…! 왜 깨우고 난리야!”

    “히히 죄송.”

    “하여간 미친노…, 뭐야.”

   

    졸음기 가득하던 춘봉이의 눈이 번뜩 떠졌다. 뭐 거의 안광까지 번뜩이는데 솔직히 좀 무섭다.

   

    “왜, 왜 그래?”

    “너 이리 와봐.”

    “…와 있는데요?”

    “너 씨발 이거 무슨 냄새야.”

    “넹…?”

   

    서준이 오들오들 떨었다. 춘봉이 미간을 구겼다.

   

    “지랄하지 말고.”

    “응.”

   

    서준이 떠는 걸 멈췄다. 그런 서준을 빤히 바라보던 춘봉이 입을 열었다.

   

    “…너 이 새끼, 기루 갔다 왔지.”

   

    어라 씨발. 어떻게 알았지?

   

    그래도 돈 한 폰 안 썼다. 난 당당해.

   

    

    

    

   

    

   

    

   

   

   

   

   

   

   

   

   

   

   

   

   

   

다음화 보기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