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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EP.21

     

   칼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가 있다.

   요리를 위해 만든 식칼이라거나. 과일을 깎는 용도로 만든 과도라거나.

     

   심지어 빵을 썰겠다고 만든 빵칼이나 버터를 예쁘게 바르겠다고 만든 버터칼도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위협적인 칼을 고르라면 십중팔구는 도검류를 고를 것이다. 애초에 살상을 위해 만든 ‘무기’였으니 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자네 정말 괜찮겠나?”

     

   내가 목검을 집어 들자 기사 폰 그레고리가 나를 보며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을 건넸다.

     

   “지금이라도 사과하면 병사들은 잘 타일러서 없던 일로 하겠네. 탑에 온 손님을 다치게 만들면 내가 무슨 낯으로 자네 동료들을 보겠나?”

     

   하지만 용도가 용도이니 만큼 ‘무기’로 만들어진 검은 그만큼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그 말인 즉, 검술에 대해서는 일자무식한 내가 감히 객기를 부린다고 숙련된 검사를 이기기는 어렵다는 말이었다.

     

   “뭐,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제 말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다 나오시죠.’ 라는 한마디에 십수 명의 병사가 개떼처럼 나온 것도 불만은 없었고 그 병사들의 눈빛에 분노가 이글이글 하다는 것도 괘념치 않았다.

     

   애초에 실력 차이라는 건 인간 대 인간의 싸움에서나 성립이 되는 것.

   사람이 아무리 운동을 하고 벌크업을 해 봐야 결국 장성한 청년 고릴라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니까.

     

   ‘상태창.’

     

   띠링.

     

   —

   이름 : 김시인

   성좌 : 없음

   능력치 : [근력 Lv.16], [민첩 Lv.15], [체력 Lv.16], [마력 Lv.6]

   스킬 : [빠른 납득(C-)], [전심전력(C+)]

   특성 : [잠재 고유 스킬]

     

   잔여 코인 : 13,000 C

   —

     

   뭔가 가늠이 안 되는 능력치였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진짜 고릴라를 눈앞에 데려다놔도 안다리 걸기로 넘어뜨린 뒤, 암바를 걸어 5초 안에 탭을 받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신중한 게 나쁜 건 아니니까.’

     

   탑에 들어오기 직전. 토끼가 우리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러분은 탑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코인으로 능력치를 강화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코인으로 능력치를 올리는 능력.

     

   물론 코인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기에 능력이라고 말하기는 애매했지만 코인만 많으면 장땡이니 나에게는 능력이 맞지 않나 싶다.

     

   ‘민첩에 3,000 코인을 투자한다.’

     

   [능력치 ‘민첩 Lv.15’에 ‘3,000 코인’을 사용합니다.]

     

   [‘민첩 Lv.15′ -> ‘민첩 Lv.19’]

     

   [남은 코인 10,000 C]

     

   “오오?”

     

   하지만 나의 변화를 알 턱이 없는 병사들은 내가 감탄하자 쓸데없는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어이, 신참! 이제야 갓 탑에 들어온 모양인데 이번 일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군!”

   “힘이 생기니까 지가 아주 뭐라도 되는 줄 아나 본데. 이참에 그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지!”

     

   병사들의 살기등등한 말투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대꾸했다.

     

   “뭐, 좋으실 대로 하시죠.”

     

   나의 말에 기사 폰 그레고리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났다.

   그 즉시 나를 우르르 둘러싸는 1층의 병사들이 보였다.

     

   ‘궁금하긴 했어.’

     

   사실 이곳 병사들의 수준이 어떤지, 진짜 검술이란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앞으로 내가 올라야 할 탑에 대한 기본적인 기준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수준이 어느 정도로 먹힐까 하는 의문도 덤이었고.

     

   물론 박조철이 1층에 오자마자 기사의 안내를 거절하고 대판 싸웠다던 이야기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의 경험이 아닌 스스로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작!”

     

   폰이 시작을 알리자 가장 앞에 선 병사 하나가 느긋하게 검을 들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렇게 우르르 몰려나오긴 했지만 치사하게 단체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

     

   병사들의 웃음소리에 힘입어 선발로 나온 병사가 검을 들어올렸다.

     

   “하앗!”

     

   그리고 이어진 내려치기. 하지만 나름 긴장하며 상대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나는 김이 샐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공격이 너무 훤했다. 애초에 검을 번쩍 들어 올리고 달려든다는 것 자체가 ‘내가 지금부터 내려치기를 할 거야! 꼭 피해줬으면 좋겠어!’ 라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리고 당연하게도 나는 그 공격을 맞지 않았다.

     

   부웅.

     

   하지만 다른 병사들의 시선에서 선발병사의 내려치기는 꽤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오, 저걸 피하네.”

   “신참 좀 치는 걸?”

     

   양옆으로 터져 나오는 감탄과 ‘나름 쓸 만해진 것 같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기사까지.

   너무 훤한 공격에 어이가 없어진 나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칫. 공격 한 번 피했다고 기고만장하기는…!”

     

   어, 아닌데. 기고만장 안 했는데.

     

   떨어졌던 검이 사선으로 그어지며 나의 턱을 노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부웅!

     

   “오오오! 흥미진진한데?!”

   “아주 허세는 아니었나보군!”

     

   같잖지도 않았다.

     

   턱을 슬쩍 당기자 날아오는 검이 아슬아슬하게 코앞을 스친다.

   물론 옆에서 보기에나 아슬아슬했다는 말이지 대수롭지 않게 거리를 계산하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회피한 상황.

     

   부웅! 부웅! 부웅!

     

   검이 날아든다.

   아니, 솔직히 말해 날아든다는 말도 아까웠다. ‘지금 봐주는 건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뻔한 공격들만 연속됐다.

     

   그리고 그것이 한참을 이어지자 나는 픽하고 식어 버린 투지에 실망하며 처음으로 공격을 가했다.

     

   ‘적당하게 옆구리를…’

     

   쐐애액! 콰앙!

     

   “끄얽!”

     

   한 손으로 가볍게 잡고 그저 가로로 휘두른 검.

   아무런 생각 없이 휘둘렀기에 상대가 당연히 막아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나의 검에 맞은 병사가 옆으로 저만치 튕겨져 옆구리를 움켜잡고 바닥을 긴다.

     

   “어어…?”

   “응?”

     

   첫 타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자 옆에 있던 다른 병사들이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대련이 너무 빨리 끝날 것을 우려한 나는 헐레벌떡 입을 열었다.

     

   “뭐야, 이게 탑 1층 수준이야?”

     

   이대로 대련이 끝나면 조각상을 부술 틈이 없을 것 같았기에 나온 국지적인 도발이었다.

     

   “그냥 다 한꺼번에 덤비시죠. 시간 아깝네.”

     

   하지만 인간은 충격적인 장면을 보면 몸이 굳는 법. 나의 광역 어그로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필살기를 썼다.

     

   “쫄?”

     

   “으어어어!”

   “넌 뒤졌어!”

   “데릭의 원수우우!”

     

   남자라면 넘어오지 않을 수 없는 전설의 언어.

     

   그렇게 시작된 추잡한 복수전은 중앙에 있던 어린아이의 조각상이 파괴됨과 동시에 막을 내렸다.

     

   ***

     

   “으으으…”

   “무… 물 좀……”

   “아욱!”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던 병사들의 신음소리를 뒤로 폰 그레고리가 나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레고리 경, 죄송합니다. 여기 조각상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나는 폰 그레고리에게 사과를 하며 속으로는 나름 성공적인 계획에 자축을 했다.

     

   ‘역시 이 사람도 몰랐어.’

     

   환상에 걸리고 세뇌에 절여진 사람들은 조각상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의 추측이 맞아떨어졌다.

     

   내가 조각상을 보지 못했다 말하니 폰 그레고리의 입이 다물어진 것이 그 증거.

   본인도 조각상이 이곳에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표정인데 나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아니 괜찮네. 뭐 연무장에 이런 조각상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일단… 상부에 보고는 올려야겠군.”

     

   그의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입을 열었다.

     

   “이걸 보고하신다고요?”

   “……?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나랏돈으로 만든 조각상일 텐데 예산 처리를 하려면…”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반문하는 그에게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아뇨. 굳이 조각상이 부서진 걸 보고할 필요가 있겠냐 이 말입니다.”“응?”

   “여기에 조각상이 있는 줄도 몰랐다면서요.”

   “……그렇긴 하네만.”

     

   나는 의문으로 가득한 그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당연한 걸 왜 모르냐는 듯 이빨을 깠다. 구라는 기세 싸움이니까.

     

   “그런데 왜 굳이 보고를 하십니까.”

   “뭐?”

   “그렇지 않습니까. 공사다망하신 전하께 굳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조각상이 훼손됐다고 일일이 보고를 올린다? 어떤 의미로는 불충 아니겠습니까?”

   “그, 그런가?”

     

   폰 그레고리의 눈이 가라앉으며 귀가 쫑긋 세워진다. 아, 당신도 책임지는 건 부담스러웠구나?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저 일은 없던 걸로 가시죠. 굳이 연무장에 조각상이 왜 필요하겠습니까. 저게 있다고 국방력이 느는 것도 아니고.”

   “드,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나는 옆에서 나에게 맞은 상처를 비비고 있던 병사들을 돌아봤다.

     

   사실 내가 앞서 떠들어댄 건 다 개소리였다.

     

   지금 중요한 건 저 조각상에 대한 책임 그 자체. 얼마 되지도 않는 녹봉으로 왕궁에 세워져 있던 사치품을 훼손시킨다는 건 일반 병사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리라.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저… 저도 동감입니다!”

   “마, 맞습니다! 거추장스럽기만 하지…!”

     

   물론 조각상을 박살 낸 건 나였지만 나와 대련을 가장한 패싸움을 했던 십수 명의 병사들은 나의 말에 격한 동의를 표했다.

     

   그렇게 연무장이 시끌벅적해질 찰나. 조각상이 파괴된 이후, 상태이상에서 벗어난 한가민이 조용히 속삭였다.

     

   “대기업 인사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요.”

   “칭찬이지?”

   “물론이죠.”

     

   나는 한가민의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에 어깨를 으쓱하며 주머니에 슬쩍 손을 집어넣었다.

     

   연무장의 조각상에서 나온 ‘메모리얼 피스’가 손끝에 걸렸다.

   내 방 조각상에서 나왔던 것과는 비교가 불가한 크기의 구슬.

     

   앞선 두 메모리얼 피스와 같이 저주는 사라진 상태였기에 하나를 더 얻을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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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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