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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브란베르크의 동부군 사령부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이 종결된 지도 어언 한 달이 지나간 이후였다.

       

       베르너 그라임이 혁명전선을 철저하게 짓밟기로 결심한 직후, 안보전략국은 꽤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밋밋하기 그지없던 기지의 형태가 보다 신식으로 개조되었다.

       

       위성 통신탑도 세워졌고, 적극적인 정보 수집 활동 지원을 위한 무인기 격납고도 새롭게 건설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냥 방치되었던 방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진 방으로 재구성되었다.

       

       비단 전투나 업무 관련된 시설을 제외하고도, 헬스장이나 휴게실, 영화관 등의 편의시설 역시 들어섰다.

       

       이제는 정말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장족의 발전.

       

       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진 변화가 나타난 쪽은 안전국 소속 인원이었다.

       

       국장을 포함하여 고작 6명밖에 되지 않았던 안보전략국의 인원은 40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대부분이 군수나 정비, 정보처리, 행정과 같은 사무직이었으나, 베르너가 직접 아서 필리아스 최고 사령관에게 요청하여 엄선한 현장에 투입될 인원들도 있었다.

       

       엄연히 정보기관인데 사무직으로만 100% 구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모집한 인원들은 부본부대장이라는 애매한 직책에서 경비소대장이라는 직책을 새롭게 맡게 된 카린 메이븐의 산하로 들어갔다.

       

       처음엔 중요한 직책을 맡을 수 없다며 거의 도망치듯 국장을 피해 다니던 카린은 결국 베르너의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어차피 항명할 수도 없으니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는 했다.

       

       그러나 산더미 같던 카린의 걱정과는 달리 경비소대원들은 생각보다도 그녀에 대해 별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사신? 그게 뭐 어쨌단 말입니까? 저는 딱히 신경 안 씁니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 전 오히려 좋은데요. 소위 계급에 별명 달기 쉽지 않거든요.”

       

       “반대로 생각하면 소대장님이 떠나있어서 다들 뒤진 거 아닙니까? 같이 붙어있으면 안 뒤지겠네요.”

       

       뭐라고 할까.

       

       긍정이라기보단 한없이 부정에 가까운 태도였지만, 그렇기에 카린과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처음에는 부담 일색이던 그녀도 생각보다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물론 일부러 베르너 그라임이 그런 이들만 골라서 뽑아온 덕분이기도 했다.

       

       전쟁이 끝났으니 군의 축소는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은 곧, 순수한 실력이나 전공이 아닌, 입으로 올라가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뜻했고.

       

       제일 먼저 도태되는 이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군에서 겉돌게 된 사람들임은 당연하다.

       

       그들이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건, 얼마나 많은 전공을 세웠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로든 눈 밖에 나면 그대로 전역 신청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때때로 강제로 제출당하기도 했다.

       

       전쟁 중에는 단 한번도 이루어진 적 없던 현역부적격 심사를 다시 시작했다면 말 다했지.

       

       그들이 전역당한 이유는 명령 불복종일 수도 있었고. 

       

       상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일 수도 있었고.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도 있었고.

       

       평소에도 주변인들과 별다른 교류관계가 없어서일 수도 있었다. 

       

       과정은 다를 지언정 결과는 다 똑같았다.

       

       손에 쥔 것은 하나도 없이 평생을 바쳤던 조직에서 쫓겨나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군이라는 조직에 대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지.

       

       과연 안전국의 새로운 사냥개가 되어 상대를 처참하게 물어뜯기엔 제격이지 않은가.

       

       “국장님, 안전국의 모든 인원이 모였습니다.”

       

       “안 그래도 지금 나갈 생각이었어.”

       

       그리고 그런 사냥개들의 알파, 베르너 그라임은 자신을 데리러 온 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

       

       

       

       “…이상으로 작전 브리핑을 마치겠습니다.”

       

       정보관리과장 단테 베이가 중위가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자, 강당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가득 채운 영상이 사라졌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브리핑이었다.

       

       혁명전선에 잠입해있는 다이엔의 내부 정보와 다른 곳에서 입수한 정보들을 취합해본 결과, 그들은 또 한 번의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번 테러 실패로 인해 동부군 사령부를 테러하거나 사령관인 하인리히 렌달을 직접 저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

       

       그들이 설정한 다음 목표는 동부에 위치한 보급허브와 장원 저택들이었다.

       

       군수공장을 파괴함으로써 동부군 내의 보급역량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장원 저택을 파괴하여 기존 귀족 세력에 대한 무력시위를 이어간다.

       

       베르너는 썩 나쁘지 않은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그들은 이미 총통을 비롯한 중앙 집권 세력들이 황도파가 주축이 된 동부군을 탐탁지 않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통께선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군. 오히려 동부군을 더 들쑤셔주길 바라는 듯했네.

       

       헌병대 본부에 구금되어있는 테러 주동자들의 재판 일자도 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헌법상으로 국가내란죄는 사형.

       

       당장 판결을 내려 목을 매달아도 모자랄 판국에 질질 끌고 있다면, 그게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공멸을 원하는군.’

       

       총통다운 생각이다.

       

       손 하나 안 대고 코 풀 기회를 놓칠 리가 있을까.

       

       동부군관구와 혁명전선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적당히 간을 보다가 승리한 쪽을 먹어치운다.

       

       흔한 전략이면서도 효율적이다.

       

       그러나 그건 총통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살아있는 폭탄.

       

       거슬리는 이들이 있다면 가차 없이 땅바닥에 처박아버린다.

       

       다른 이들이 희생당하든 말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야 장땡이다.

       

       총통은 그런 사람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를 권력도 있었으니, 멀쩡한 황제를 밀어내고 일인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하지만 베르너는 총통의 바람대로 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초에 본인도 총통보다 독한 놈이면 독한 놈이었지, 절대 유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병기의 준비는?”

       

       “완벽합니다.”

       

       베르너가 안전국 전용으로 가장 많이 발주를 넣은 무기가 바로 소음기 사양이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총기류였다.

       

       신속하게 타격하여, 은밀하게 빠져나온다.

       

       그런 작전에서 소음의 발생 유무는 작전의 성패를 가르는 필수요소였다.

       

       거기에 최첨단 스텔스 및 사일런트 엔진 기능이 적용된 무인 헬기도 잊지 않았다.

       

       안보전략국의 최우선 목표는 혁명전선의 서기장을 포함한 고위급 인사의 제거.

       

       순식간의 수뇌부를 잃어버린 혁명전선이 혼란에 빠진 사이, 주춧돌의 전력을 활용하여 혁명전선을 완전히 안전국의 수족으로 부리는 것이었다.

       

       다이엔 슈미트를 살려둔 이유.

       

       혁명전선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는 것만으로도 동부군관구의 힘은 약화시킬 수 있다.

       

       아니, 이미 이전 테러를 성공적으로 막아낸 공적 덕분에 사령관인 하인리히 렌달의 호감을 두텁게 쌓아둔 상태.

       

       총통은 상대방이 모두 공멸하기를 원했지만, 베르너는 상대방을 모두 통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마흔 번의 회귀를 통해 얻어온 것은 생각보다도 많았다.

       

       전투 기술, 지휘 방식, 그리고 군 내의 정치와 유착에 이르기까지.

       

       모든 불온의 새싹을 짓밟겠다고 천명한 이상, 베르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각 세력의 구도가 그려져 있었다.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혁명전선의 이빨을 모조리 뽑아놓는다면, 동부군관구와 혁명전선은 서로 향해 으르렁거릴 뿐 실제로 충돌을 일으키진 않을 테니까.

       

       “국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호수 일대에서 수중 침투 및 헬기를 통한 공중 강습, 은밀 침투 훈련까지 마쳤습니다. 현 경비소대에 소속되어있는 전 인원, 낙오자 없이 훈련과정을 모두 수료했습니다.”

       

       훈련교육과장 오토 비찬이 각을 맞춰 보고했다.

       

       과연 전쟁 당시 최정예로 꼽히던 기동타격대 출신다운 패기다.

       

       한쪽이 의족인 외다리임에도 베르너가 훈련과장이라는 중책을 부여한 보람이 있었다.

       

       “그럼 모든 준비는 끝마쳤군. 작전 시작 시간은 모레 00시. 각자 이틀간 휴식 및 정비시간을 가졌다가 내일 21시까지 모일 수 있도록.”

       

       모든 준비는 끝났다.

       

       사냥하기 딱 좋은 시기였다.

       

       

       

       ***

       

       

       

       안보전략국이 혁명전선의 정밀 수술을 계획하고 있을 즈음.

       

       마찬가지로 혁명전선에 대해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언니, 안 자?”

       

       “응, 조금만 더 하고 자려고. 좀 석연찮은 면이 없잖아 있어서.”

       

       아르헨 오르카는 아직까지도 감찰실로 복귀하지 않은 상태였다.

       

       기존에 담당하던 업무들은 모조리 부실장과 과장들에게 넘겨버리고, 그녀는 이번 동부군관구 테러 사건의 조사를 도맡기로 했다.

       

       당장 아끼는 동생이자 전우였던 레아 길리아드가 직접적으로 사건에 엮여있기도 할뿐더러.

       

       몇몇 의심되는 정황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혁명전선의 전신이 과거 탄압받았던 혁명파라면 그들이 동부군관구에 갖는 적대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안보전략국이라는 단체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레아는 현장에 대비하고 있었던 안보전략국 소속의 장교를 보호하려다가 다쳤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는 범주였다.

       

       총통 각하가 최고 사령부 내에 안보전략국이라는 부서를 신설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최고 사령부 예하 기관이나, 총통 직속이기도 한 기형기관.

       

       헌병단, 군 검찰단, 감찰실, 정보사령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자체 수사권과 정보수집 권한을 보유하고 있는 정식 수사기관이기도 했다.

       

       심지어 군법상으로 헌병단과 군 검찰, 정보사령부에 대한 감찰을 진행할 수 있는 아르헨조차 유일하게 감찰할 수 없다는 점도 수상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브란베르크 동부군 사령부에서 발견되었던 그 시체들.

       

       모든 정황증거를 종합해본 결과, 아르헨 오르카는 안보전략국이 ‘테러가 발생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방조했다는’ 사실에 도달할 수 있었다.

       

       대체 왜?

       

       테러가 발생한다면 무수히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가장 최선의 선택은, 동부군 사령부에 해당 사실을 전파하여 파티를 취소하고 테러범들을 검거하는 것이었다.

       

       지극히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엔 그랬다.

       

       굳이 일일이 흩어져있는 테러범을 추적해 죽여버릴 필요는 없었단 말이다.

       

       ‘뭔가 더 있어. 안보전략국이 동부군관구를 방문한 또 다른 목적이.’

       

       아르헨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렇게 천천히 밑바닥에서 훑고 올라간다면 어느 순간, 진실에 도달할 수 있을 터.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당연히 안보전략국 소속의 인원을 만나는 것이었다.

       

       병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카린 메이븐이라는 장교.

       

       반드시 그녀를 먼저 찾아야만 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레아가 보호했던 문제의 대위만이라도.

       

       집중하고 있던 아르헨의 모습을 바라보던 레아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언니, 나 부탁이 하나 있는데.”

       

       “응?”

       

       “내가 구해줬었던 그 대위, 한번 찾아 봐줄 수 있어?”

       

       감히 예상하지 못했던 부탁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연참입니다. 본래 연재 시간인 8시에 한편 더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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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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