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

       로테 살리에르.

         

       살리에르 백작가의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는 말을 밥 먹듯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게 뭔 뜻인지 몰랐었으나, 어려서부터 들은 말은 어린 로테의 가치관을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소녀는 귀족의 핏줄을 잇고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대하는 데 차별을 두지 않았다.

         

       또한 로테는 자신의 오빠와는 달리 화계마도에 재능을 타고났다.

         

       오빠 또한 살리에르 백작가의 핏줄답게 마법을 잘 다루는 편에 속했지만, 제 오빠 수준 정도의 재능을 가진 학생은 틸레트에 널리고 널린 편이었다. 반면 로테는 어려서부터 화계마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자랐다.

         

       로테는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더욱 열심히 마도를 닦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마법을 수련하고 이론을 공부했다.

         

       로테의 틸레트 아카데미 합격은 어찌 보면 기정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자만하지 않았으며, 자신과 제 오빠를 비교해 깎아내린 적도 없었다.

         

       단순히 출세나 인맥 관리가 아닌, 마수를 물리치고 사람들을 구할 마도사가 목표였기에.

         

       합격하고 난 뒤에도 필기문제를 두고 자기 피드백을 끊임없이 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로테는 시험장에서 몰래 복기해 둔 문제를 보며 벌써 며칠씩이나 수심에 잠겨 있는 상태였다.

         

       ‘다른 문제는 왜 틀렸는지 이해하겠는데…….’

         

       기초마도이론 50번 문제.

         

       마지막 킬러 문제는 화계마도 쪽에서 출제되었는데, ‘트랜지스터’라고 불리는 마석을 활용해 보기에 적힌 회로의 증폭 범위를 조정하는 법을 묻는 고난도 문항이었다.

         

       화계마도에 관한 입시문제라면 웬만큼 풀어보았고, 실제로 로테는 화계마도 쪽 문제는 전부 맞혔다.

         

       이거 하나만 제외하면 말이다.

         

       트랜지스터라는 마석 자체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었다. 처음 들어본다. 저 멀리 수소문으로 확인해 보니 이제 막 쓰임새가 알려지기 시작한 최상급 마석이라고 한다.

         

       그런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트랜지스터가 대략적으로 어떤 쓰임새를 지닌 마석인지는 문제 지문에서 줬으니까.

         

       진짜 문제는 보기에 적힌 내용만으로 어떻게 정답을 내릴 수 있을지였다.

         

       ‘혹시 내가 모르는 기초적인 지식이 필요한 걸까…?’

         

       안타깝게도 합격자 발표가 날 때까지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못했다.

         

       “로테 님, 합격까지 하셨는데 아직도 시험문제를 붙들고 계신 건가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 왜 이게 이렇게 되는 건지.”

         

       시험 결과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학구열. 로테 곁을 예전부터 따라다니던 영애들은 예전부터 그런 로테의 모습에 번번이 감화되곤 했다.

         

       “너무 빨리 알려고 하실 필요 없어요. 나중에 문제를 낸 선생님을 찾아가서 풀이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래도 되지만 가능하면 나 혼자 해결하고 싶어서.”

         

       적어도 트랜지스터의 기반 이론이 무엇인지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혼자서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립 도서관을 둘러보아도 트랜지스터라는 이름을 지닌 마석의 구체적인 쓰임새나 이론이 적힌 책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가상의 마석인가?’

         

       한때 그런 생각까지 했지만, 합격하자마자 찾아갔던 친오빠에게서 실제로 존재하는 마석이라고 답변받는 바람에 그 가설을 폐기하게 되었다.

         

       로테는 합격 기념으로 다른 가문의 영애들과 주점에 들렸다. 마침 한 사람이 자리를 비운 탓에 카운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카운터 앞엔 금안족 소녀가 앉아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로테는 그 소녀가 곧 입학시험에서 자신과 함께 전투마도 실기를 치렀던 여학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고유마도를 사용하는 금안족이었지. 과연 틸레트 아카데미 입시에 지원할 만 해.’

         

       식당에 자리를 잡고 나서도 로테의 학구열은 멈출 줄 몰랐다. 소녀는 가방에서 수식을 끄적여놓은 종이 몇 장을 꺼내 자신의 풀이과정을 점검했다.

         

       “그러고 보니 그 얘기 들으셨어요?”

       “무슨 얘기?”

         

       같이 온 두 소녀의 대화에 로테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천 년 만에 필기시험 만점자가 나왔다는 소식이요. 듣자하니 입학석차가 차석이라는 모양이에요.”

       “필기 만점자가 겨우 차석이라고? 로테 님이 3등인데?”

         

       로테 자신도 열심히 노력했다고는 생각했는데, 정작 입시 결과를 확인할 땐 자신보다 더 뛰어난 실력으로 합격한 사람이 둘이나 더 존재했다. 그런 천재들을 보면 괜스레 겸손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사람은 필기 만점에 실기는 과락을 겨우 면할 수준이라 440점 정도 나왔다고 하더라.”

         

       친구로부터 정보를 입력받은 로테의 머릿속에서 일련의 계산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필기 만점은 400점. 실기 만점은 100점이니까…. 그럼 실기를 딱 40점 맞은 건가? 필기를 잘 봤으면서 실기를 그렇게나 망칠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아무리 재능 없는 사람이라도 몸에 최소한의 마력은 품고 태어난다. 인간이건 엘프건, 심지어 수인이나 기타 어느 종족이라도 정령의 축복을 받기 때문이다.

         

       초기 마력은 태어날 때 결정되지만 학업과 수련을 통해 어느 정도 늘릴 수 있다. 틸레트 아카데미의 실기평가는 사실상 절대평가라는 말이 있는지라 아무리 마력 조절에 자신이 없는 학생이라도 죽을 듯이 노력하면 50점까진 올리는 것이 가능했다.

         

       근데 그 어렵다는 필기는 만점이라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실기를 40점 언저리로 받다니, 모순이었다.

         

       순간 로테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처음부터 마법을 홀몸으로 쓸 수 없는 종족이라면….’

         

       금안족.

         

       세상 어느 종족을 뒤져보더라도 자체적으로 마력을 순환시키지 못하는 종족은 딱 그 종족 하나뿐이었다.

         

       무엇 때문에 금안족만 여신의 저주를 받았는지는 모른다. 자세한 경위는 천 년 전 사람들이나 알 것이다.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다고 했나. 금안족은 혼자서는 마법을 부리지 못하는 대신 종족 전체가 월등한 연산력과 기억력을 타고난다. 그 수준은 현대에 개발되어있는 기계식 계산기를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였다.

         

       지옥과도 같은 틸레트 필기에서 만점을 받았다면 그 종족은 분명 금안족이리라.

         

       심지어 금안족은 북부 엘랑카야 대산맥이나 서부 수인국에서만 가끔 발견되는 희귀한 종족이다. 적어도 카운터를 보고 있는 저 소녀를 제외한다면 수도에서는 금안족을 찾아보기 어려울 터였다.

         

       ‘저 애가 아니면 가능성이 없어.’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확인해보려면 당사자를 직접 호출하는 수밖에 없었다.

         

       “추가 주문이요.”

         

       로테는 손을 들어 금안족 소녀를 불러세웠다. 은은한 미소를 띠며 다가온 소녀가 손에 든 맥주잔을 내려놓고는 메뉴판을 들었다.

         

       “무얼 원하시나요?”

       “당신의 시간을 사고 싶어요.”

         

       로테가 팁을 내밀었다.

         

       은화 두 장. 팁으로 내주기에는 만만찮은 금액이었다.

         

       금안족 소녀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른 테이블 요청이 뜸한 걸 확인하고는 은화를 걷어갔다.

         

       “주문 받겠습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혹시 이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소녀가 로테의 종이를 눈으로 쓱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기초마도이론 마지막 문제네요. 이번에 어려웠죠.”

       “네. 이번에 틸레트에 합격하신 분인가요?”

       “운이 좋았어요.”

       “혹시 이 문제를 푸셨나요?”

       “제시간 내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소녀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어영부영 넘어가려 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풀어내긴 풀어냈을 것이다. 다만 감이 견고하지 않아 저리 대답하는 것일 뿐. 로테는 단번에 소녀의 심리를 꿰뚫어보았다.

         

       사람은 자신과 동류인 사람을 알아보고, 또 그에 끌리려는 특성이 있다.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머무르고, 아름다운 사람 주변에는 아름다운 사람이 함께한다. 그 부류에 속한 사람이 자신과 같은 성정을 지닌 이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기 때문이리라.

         

       마찬가지였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로테는 자신의 묻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질문을 바꾸기로 했다.

         

       “트랜지스터라는 마석이 무엇인지 여쭙고 싶어요.”

         

       그 정의를 알게 된다면 이 문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실웃음을 지으며 은화를 깔짝거리던 소녀가 그 값어치만큼의 답변을 내놓았다.

         

       “…트랜지스터는 댐과 같은 마석입니다.”

       “댐이요? 하천에 짓는 그 댐 말씀이신가요?”

         

       소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었다.

         

       “트랜지스터는 물 대신 마소를 저장하고 흘리는 댐입니다. 댐의 수문을 잘 조절해서 하천으로 방류되는 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듯이, 마석의 중앙부를 잘 조절해주면 마력의 흐름이 봇물 터지듯이 증폭됩니다.”

       “투입부에 일정 수준 이상의 마력을 흘려넣지 않았을 때 회로가 작동하지 않는 건 그 때문인가요?”

         

       꼭 수위가 어느 정도 필요한 저수지처럼 말이다.

         

       “맞습니다. 처음 방정식을 계산하실 때 회로가 0시버트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트랜지스터는 그 특성상 일정 수준 이상의 바이어스를 걸어주지 않으면 마류(魔流)가 흐르지 않거든요.”

       “마치 문턱이 있는 것 같네요.”

       “그래서 마류를 조절하는 중앙부를 게이트(Gate)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수문 역할을 하는 것이죠.”

         

       소녀가 지닌 지식은 어쩌면 금안족 사이에서는 오래되고 만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로테는 그 점에 대해서도 물어봤지만 이 이상은 답해주기 어렵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어쨌든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문제 보기에는 나오지 않았던 제반 이론 설명을 들으니 은화 두 닢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테는 충만감을 느꼈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

         

       로테는 상상 이상으로 똑똑한 친구였다.

         

       척 보아도 좋은 귀족 가문에서 나고 자란 것 같은데, 평민을 차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직 판단하기에는 살짝 이르지만 지금까지 본 바로는 인덕이 있는 친구다.

         

       그 증거로 로테 곁에 있는 여학생들의 표정을 들 수 있다. 로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보아 계층에 격차가 있는 건 분명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로테를 친구처럼 대하는 듯했다.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다. 어감이 별로 좋진 않은 구절이지만, 동시에 설득력이 있는 말이기도 하다.

         

       로테는 실기에서 나와 전투마도 시험을 같이 봤던 학생이었다. 당장 그 몇 분의 시간만으로도 로테가 지닌 마력의 총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림할 수 있었다.

         

       심지어 무영창으로 마법을 쌓아두는 기술에, 멀티 캐스팅까지. 상당한 재능이었다.

         

       나는 그 재능이 노력 없인 쉬이 발현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로테가 그 정도의 마력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연마했을지 눈에 훤했다.

         

       보자. 당장 지금도 이미 다 끝난 입시문제를 들고 왜 안 풀리는지 고민하고 있지 않나. 대학 입시로 치면 수능에서 하나 틀린 애가 왜 그 문제를 틀렸는지 분석하고 있는 꼴이었다. 다른 애들은 배치표를 보고 있을 마당에 말이다.

         

       이것저것 주고받는 사이, 우리는 어느새 말을 튼 사이까지 발전했다. 헤어지기 전 나와 로테는 눈웃음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좋은 만남이었어. 개강하고 보자.”

       “너도 조심해서 들어가.”

         

       이런 인사는 오글거리지만 뭐 어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났는데.

         

       잘만 하면 귀환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극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은 급무가 있어서 연재가 늦어지거나 휴재할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