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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22. 위기를 기회로(1)

       

       

       본 앤 블러드의 개발사는 변태적이기로 유명했다. 음란하다기보는 고어적인 쪽으로.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 

       거기에 폭넓은 자유도라는 게이머라면 환장할 만한 요소를 갖추고도 마이너 취급을 받은 건, 아마 그런 고어함 때문이 컸으리라.

       

       수상할 정도로 고아를 갈아버리는 걸 좋아하는 개발사로 유명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암시장이었다.

       그 어둡디 어두운 세계관에서도 심연만 모아놓은 곳.

       

       “……우욱.”

       

       구역질이 올라오지만 억지로 참았다.

       

       지금 나는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VIP용 입장권을 이용해 들어온 이들에게 주어진 가면. 웬만한 투시마법으로도 절대 꿰뚫을 수 없는 상등품이다.

       

       이런 곳에서 얼굴을 보여서 좋을 건 하나도 없으니 이 늑대 가면을 계속 쓰고 있어야 하는데. 더럽히기엔 좀 찜찜하다.

       

       나는 그렇게 한참 그 역겨운 광경들에서 눈을 떼고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다른 애들은 괜찮나? 나보다 어릴 텐데.’

       

       그런 생각과 함께 시엘을 바라보았지만. 

       

       …멀쩡하다.

       하긴, 얘가 이런 걸로 기겁하면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울 것 같긴 하다.

       

       “눈은 왜 가리는 거야?”

       

       그래도 혹시 몰라서 보기 껄끄러운 것들이 지나갈 때마다 눈을 가려 줬는데. 그런 물음이 돌아온다.

       

       “……아니, 엘프가 보여서.”

       

       엘프는 원래 동족의식이 꽤 깊은 편이니까. 사지절단 엘프노예는 딱히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상관없어. 별로 신경 안 쓰거든.”

       

       아무래도 시엘은 그런 동족의식이 얕은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싫어하는 것 같기까지 하다.

       

       “게다가, 저건 엘프가 아니야.”

       

       시엘의 뜬금없는 말.

       나는 다시금 내가 본 노예를 바라보다가…, 이내 깨달았다.

       

       엘프가 저 가격이라니.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좀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엘프 정도나 되는 종족이 저렇게 처참하게 당해서 노예로 끌려오는 것도 이상하다.

       

       만약에 그랬다고 해도, 절단된 부위가 아물 정도의 시간을 세계수와 떨어져 지낸다면 그 전에 죽는 게 자연스럽다.

       

       세계수와 엘프는 절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니까.

       

       하프 엘프라라서 세계수와 떨어져도 살아있다기엔 너무 귀가 길고.

       

       그럼 저건 가짜 귀만 붙여놓은 건가.

       

       사기도 아주 정성껏 친다.

       

       어쨌든, 시엘 쪽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기에. 나는 시엘보다 마음이 여린 편인 리엔을 바라보았다.

       

       강아지 가면 너머로 안광이 비친다.

       광기가 깃든 눈이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위험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정신차려 임마.”

       

       가볍게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서 소녀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이쪽은 오히려 너무 좋아해서 문제였나.

       정신을 잃지 않게 계속 예의주시해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알아차렸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 나 혼자만 쫄아있는 건가?

       

       뭔가 조금 자괴감이 든다.

       이런 애들도 멀쩡한데. 내가 지금 이러고 있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내장이라던지, 온갖 기괴한 물건들에서 최대한 눈을 떼며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가… 동지를 발견했다.

       

       루비아 씨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여우 가면에 가려져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대충 그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묘한 친숙감과 동질감이 밀려와서, 나는 루비아 씨에게 다가갔다. 두려움도 쫄보 둘이서 나누면 좀 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리고… 떨림이 더 심해진다.

       이 사람은 대체 얼마나 겁이 많은 걸까.

       

       어떻게 된 게 항상 볼 때마다 저렇게 떨고 있는 거 같네.

       

       *****

       

       암시장.

       블랙마켓은 6개월을 주기로 개최된다.

       

       허나 건물의 위치라던지, 지형지물은 모두 비슷하다.

       

       아니, 비슷한 걸 넘어서 완전히 똑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모든 건물들이, 전부 마법으로 구축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대마법사가 만들어낸 작품.

       괜히 제국이 블랙마켓을 건드리지 못하는 게 아니다.

       

       ‘……뭐, 사실 그 대마법사는 이미 진작에 죽었지만.’

       

       그저 그 제자가 스승이 남긴 유품을 이용해 마법을 재현하고 있을 뿐. 허나, 제국은 그 사실을 모른다.

       

       대마법사에게 손을 대고 싶지도 않고, 어차피 아무리 금지하려고 해도 이런 불법 거래는 또 어디선가 행해지기 마련이니까.

       

       감시 하에 암묵적으로 묵인하는 것이다.

       

       아마 여기 어딘가에 제국의 병사가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제국 평균을 생각해 보면, 굳이 감시 목적이 아니라 진짜 더럽게 놀러 온 병사도 꽤 있을 테고.

       

       여기, 온갖 끔찍한 유흥시설이 다 있으니까.

       

       살아있는 인간을 해부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곳이라던지. 혹은 그것보다 더 끔찍한 장소까지.

       

       생각하니 다시금 구역질이 올라와서 나는 머리속에 떠오른 장면을 필사적으로 지워버렸다.

       

       어쨌든, 그건 지금의 우리 알 바가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거리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목적지를 찾아 헤맸다. 

       

       또 대체 저기가 뭐 하는 곳인지 도저히 알고 싶지 않은 가게들을 지나서… 우리는 제일 커다란 건물로 들어섰다.

       

       “저희 경매장을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중한 인사.

       멋들어진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공손히 우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곳에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경매장.

       

       당연하게도 사람들은 붐빈다.

       커다란 건물이 완전히 꽉 차있을 정도.

       

       허나, 그런 건 상관없었다.

       VIP가 괜히 VIP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 터져나갈 듯 한 통로가 아닌, 한산하다 못해 텅텅 빈 전용 통로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나아갔다.

       

       커다란 유리창.

       높디 높은 위치.

       

       전용석에서는 경매장의 모든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입찰하고 싶은 물건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눈앞의 버튼을 눌러주시길.”

       

       친절한 응대와 함께 남자가 술을 가져온다.

       ……미성년자라 어차피 마시진 못하지만.

       

       어쨌든, 남자는 친절한 말과 함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달라며 자리를 떠났다.

       

       나는 보면 볼수록 놀라워져서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대체 어떻게 구하신 거에요?”

       

       VIP 입장권은 진짜 구하기 힘든 건데.

       원작에서도 그거 얻으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아는 나로서는 경이롭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

       

       돌아오는 시선이 매섭다.

       

       루비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조차 보이지 않지만. 가면 뒤로 ‘네가 구해 달라며’ 라는 원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니, 기왕이면 VIP용 입장권이 좋긴 하다고 했긴 한데. 그걸 실제로 얻을 수 있을진 몰랐지.

       

       나도 양심이란 게 있다.

       

       3일도 안 남았는데. 그 귀한 걸 진짜로 손에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예상도 못하고 한 말이라고.

       

       뭔가, 심장이 쿡쿡 찔리는 느낌.

       

       “이따 경매 끝나고 나갈 때 잠깐 뭐 좀 사갑시다.”

       

       나도 사람인지라, 결국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껴뒀던 레시피지만 이렇게 신세를 졌는데 안 갚는 건 진짜 인간이 아니라 금수지.

       

       이번 기회에 루비아 씨랑 같이 포션 제조사업이라도 해보자.

       

       “…….”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인데. 돌아오는 시선이 아까보다 더 매섭다.

       

       나한테 얼마나 더 가져가야 속이 시원하냐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눈빛.

       

       나는 빠르게 해명하려다가…….

       

       “첫 번째 물품은, 300년을 산 엘프의 눈알입니다!”

       

       그런 목소리에 다시금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경매가 시작된 것이다.

       나한테는 그다지 쓸모없는 물건이였지만 말이다.

       

       “시엘?”

       

       내가 다음 물품은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던 사이, 시엘이 갑자기 유리창에 이마까지 대가며 뚫어져라 물건을 확인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우리 엄마인가 해서.”

       

       ……이런 말에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 정 신경쓰이면 사 줄까?”

       

       허나, 시엘은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 아닌 거 같으니까.”

       

       “그래… 다행이네.”

       

       ……아니, 이걸 다행이라고 하는 게 맞나.

       머리가 갑자기 어질어질해진다.

       

       ‘왜 이렇게 괜히 왔다는 느낌이 들지?’

       

       분명 아티팩트도 수급하고, 동료도 모을 생각이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까, 제대로 된 수확이 없다.

       

       두 번째 물품도 세 번째 물품도.

       귀한 거냐 하면 또 귀하긴 하지만.

       

       굳이 나한테는 필요없는 물건들이었으니까.

       

       차라리 노예를 전문적으로 파는 경매장을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그런 답답한 마음에 한숨을 푹 쉬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이번 상품은 조금 특별합니다.”

       

       남자가 무게를 잡으며 그리 말했다.

       뭐,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어야 하는 입장에서 무슨 미사어구를 못 붙이겠냐만은.

       

       아까와는 뭔가가 달랐다.

       물건을 소개하던 남자가 온갖 보호장구로 무장한 채로 무언가를 옮긴다.

       

       시엘이 갑자기 날 감싼다.

       루비아는 다리가 벌벌 떨리는 걸 넘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 이상현상은 경매장에 있는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허나, 나만큼은 아무렇지도 않다.

       

       이게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무언가가 지금 이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는 거다.

       

       갑비싼 보호장구로 온몸을 무장한 직원이 상품을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그리고, 순간 내 말문이 막혔다.

       

       당연한 일이다.

       저 디자인.

       저 검날.

       

       저건 내가 전작을 플레이하면서 주구장창 보았던 물건이었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불길한 저주를 뿜어대는 마검입니다!”

       

       성검이다.

       전작의 주인공이 쓰던 성검.

       

       ……부러진 데다가 검은 빛을 뿜어대는 성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고민 끝에 연재시간을 ‘오후 10시’로 고정하기로 했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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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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