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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심심해.’

       

       한동안 드라마 촬영이다 뭐다 하며 워낙 바빴기 때문일까.

       나는 유치원에 다녀온 이후의 시간을 대부분 늘어져서 지냈다.

       

       연기도 당분간 금지.

       정확히는 이 부분에 대해선 엄마와 여러모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필 손을 다쳐서…….”

       

       연기 하느라 이래저래 상처를 입었고, 본 촬영 시에는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을 정도다.

       아무래도 엄마는 그런 내 모습이 무척 속상했던 거겠지.

       

       그러니 엄마는 내게 이런 당부를 했다.

       

       “당분간 짙은 감정 연기는 금지. 연습도 하면 안 돼.”

       

       서연이 조금 더 크고 하자, 라는 의미였다.

       아역이니 애초에 거기까지 요구하지도 않을뿐더러, 여태 했던 연기만 해도 충분히 대단한 수준이었으니까.

       

       “흐므으으…….”

       

       흐물흐물 늘어져 이번에 산 거대 삐니핑 인형에 몸을 기댄다.

       아이의 몸의 장점을 말하자면, 거대한 인형에 올라타서 부둥부둥 몸을 흔들어도 나름 어울린다는 것.

       

       전생의 내 모습이었다면 끔찍하고 기괴한 광경이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괜찮다.

       7살의 주서연은, 매우 귀여우니까!

       그러니 한점 부끄러움도 없었다.

       

       아무튼.

       

       ‘연기, 좀 더 제대로 배워볼까.’

       

       사실 나는 여러모로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이번 드라마 촬영으로 느낀 건, 내가 아직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거다.

       

       다들 대단하다고 박수쳐주어 잊고 있었지만, 기술적으로 부족하다는 건 매번 지적 받았다.

       그게 티나지 않았던 건, 애초에 이혜월의 신분이 공주였기에 그다지 다채로운 연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는 것.

       

       다양한 상황을 맞닥뜨려야 하는 일일드라마와 같은 연속극이면, 내 흠결이 바로 티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발성…….”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문득 이지연이 떠올랐다.

       이지연이 속한 은하 엔터.

       

       나도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여러모로 논란이 있던 곳이다.

       말은 연예 기획사라고 하지만, 사실 은하 엔터는 에이전시다.

       

       물론 에이전시라고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편한 부분도 많았다.

       주로 다양한 드라마나 광고 등에 배우를 연결해주며 케어해주는 게 에이전시의 주업무였으니까.

       

       ‘일반적으로 배우나, 아역들은 전문 소속사에 속한 게 보통…….’

       

       하지만, 아역들의 경우엔 전문 소속사가 아닌, 에이전시를 찾는 경우도 있다.

       아직 어리기에, 성장하며 진로가 변경되어 활동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도 소속사와는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

       

       그렇게 편리한 에이전시이지만, 반드시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어디에나 나쁜 놈들은 있는 법이니까.

       

       ‘아마, 횡령이었지.’

       

       은하 엔터가 문제가 된 건 이 때문이다.

       광고나 CF를 촬영한 배우들의 촬영료를 배우들에게 지급하지 않고, 그대로 튀었다……는 걸로 기억한다.

       

       물론 정확하진 않다.

       중요한 건 은하 엔터는 지금은 정상적이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배우들의 수입을 횡령하여 잠적한다는 것.

       

       내가 왜 이걸 ‘발성’에서 떠올렸냐면, 이 문제가 불거진 게 아역들의 모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성우로 참여했던 일 때문이다.

       

       전문 성우도 아닌, 아역을 애니메이션의 성우로 기용하여 논란.

       거기에 정작 그렇게 받은 촬영료를 아역에게 지급하지 않았으니, 아주 인터넷이 시끌시끌했다.

       

       성우 비하 논란.

       아역 혹사 논란, 촬영료 미지급.

       그런 논란의 폭풍 속에 은하 엔터는 홀라당 자취를 감췄다.

       

       “으으음…….”

       

       근데 아역을 성우로?

       은하 엔터에 이지연 말고 아역이 몇이나 되지?

       

       아마 얼마 많지는 않을 거다.

       거기에 일을 닥치는 대로 다 받을 아이는 더더욱 없을 테고.

       

       “설마.”

       

       이지연, 네가 그 논란의 당사자였니?

       

       ***

       

       “예쁜 우리딸! 하 PD님에게 연락 왔…….”

       

       방금 전화로 온 소식을 들은 수아는, 지금쯤 한창 쉬고 있을 서연의 방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삐니핑 인형의 위에 올라타, 마치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있는 서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이것저것 해오던 딸아이가 드물게 내보이는 게으른 모습이다.

       아니, 아직 일곱 살이니 게으르다고 할 정도는 아닌가?

       

       “왜요, 엄마.”

       “아, 응. 그게 하 PD님에게 연락이 왔지 뭐니.”

       

       아무튼 이번 일은 연기와 관련된 것도 아니었기에, 수아는 흔쾌히 서연에게 오늘 전달받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건 바로.

       

       “드라마 홍보…… 말씀이신가요?”

       「네네, 그렇습니다. 알다시피 메이킹 영상이 크게 화제를 모았잖아요?」

       

       그냥 모은 정도가 아니라 연예생중계의 시청률을 두 배 가까이 올렸을 정도다.

       덕분에 서연은 아역 중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올라온 편이었다.

       

       물론, 조서희나 이런 아역들에 비해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그것도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다시피 2화와 3화의 하이라이트가 워낙 잘 뽑혔잖아요?」

       “네, 연기에 대해 잘 모르는 제가 봐도 그랬습니다.”

       「그렇죠? 거기다 서연 양의 외모도 워낙 눈에 띄니 홍보에는 딱 좋을 것 같다 싶었습니다.」

       

       그러니 전에 미리 눈도장을 조금 찍어둘 생각이었다.

       드라마 자체는 절반쯤 촬영한 시점.

       즉 앞으로 석 달 후에 방영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전에 미리미리 홍보 스케쥴을 잡아둬야 했다.

       그 내용을, 하태오 PD는 수아에게 공유했다.

       

       「저는 꼭 서연 양이 참석했으면 좋겠습니다.」

       “꼭, 인가요?”

       「네. 이번 드라마에서 서연 양의 존재감이 상당할 것 같거든요. 단 3화로 말이죠.」

       

       하태오는 며칠 전 보았던 영상을 떠올렸다.

       두 개의 씬.

       서연이 찍은 정반대 감성의 두 가지 연기.

       

       그 강렬함이, 지금까지 눈에 선했다.

       

       ‘그 아이는 재능만 있는 게 아니야.’

       

       후에 정은선 배우가 말하길.

       단순히 재능으로 한 연기가 아니라고 했다.

       

       손의 상처를 보면, 이미 그 장면을 나타내기 위해 무척 많은 연습을 한 게 분명하다고 말했지.

       

       ‘이거 참, 천재가 노력까지 하면 어떻게 하나.’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하태오의 입가에는 그저 싱그러운 미소 뿐이다.

       그야 저 천재가 우리 천재인데 얼마나 든든한가.

       

       「아, 그리고 홍보라고 해야 막 대단한 건 아닙니다. 대중 앞에서 선보이는 드라마의 사전 티저 이벤트와 비슷한 거죠.」

       

       물론 강요할 생각은 아니었다.

       서연이 원한다는 전제하에, 진행할 생각이었으니까.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태오는 수아에게 서연의 참가를 부탁드린다고 살살 졸랐다.

       그리고 그 결과.

       

       수아는 지금처럼 서연에게 하태오의 말을 전달해온 것이다.

       

       “사전 티저 이벤트……인가요?”

       “응응, 들어보니 ‘성장한 이혜월’의 역을 맡은 하예서 배우님도 오시는 모양이야!”

       

       하예서. 성장한 이혜월 역을 맡은 명실공히 주연이다.

       얼굴을 말할 것도 없이 예쁘며, 청순한 외모가 자랑인 여배우였다.

       

       ‘하예서 배우에, 성장한 윤서일 역의 강성찬.’

       

       그리고 조연 배우 둘에, 서연까지 끼워 함께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한다.

       장소는 고엑스의 베가박스 앞.

       

       ‘거기에, 왜 나를?’

       

       아역으로 홍보할 거면 서연 자신보단 박정우 쪽이 낫지 않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뭔가 생각이 있는 거겠지.

       

       그리고 솔직히.

       

       ‘3화까진 내 연기가 낫지.’

       

       서연은 팔짱을 끼고, 흠,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이건 담백한 펙트다.

       태숨달의 2화와 3화 연기는 서연이 압도한 게 맞다.

       음음, 그렇고말고. 

       

       “근데, 그 이벤트에 참여하면 출연료 같은 것도 있는 거예요?”

       “응? 아, 그래. 섭섭지 않게 챙겨주신다고 하던데?”

       “그럼 할래요.”

       

       돈을 준다는 말에 쿨하게 승낙하는 딸의 모습에, 수아는 참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시 딸이 돈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궁색하게 지냈다 싶기도 하고.

       아니면 어울리는 사람들이 다들 번쩍번쩍하니, 그걸 따라 가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모로 복잡한 초보 엄마의 마음이었다.

       

       “참, 엄마.”

       “응?”

       “그으,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런데, 서연은 그런 말을 꺼내며 몸을 비비 꼬았다.

       말해도 괜찮을지 망설이는 태도.

       

       이건 수아가 처음 보는 딸의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스러웠던 딸아이는, 여태 수아에게 부탁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심지어 그것도 대부분 대수롭지 않은 일.

       이번 연기와 관련해서 몇 가지 말은 했지만, 딱히 부탁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때 수아가 한 일은 대부분 방관 뿐이었으니까.

       

       “응, 서연아. 엄마가 도와줄게!”

       “정말요?”

       “응!”

       

       그러니 수아는 의욕에 불타며 흔쾌히 대답했다.

       이어 자신의 딸이 어떤 부탁을 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

       

       “어휴, 사람 좀 봐요.”

       “그야, 강성찬과 하예서가 이벤트로 온다는데 이정도는 보통 아닙니까?”

       

       연예 기자인 이병훈은 그런 말을 내뱉으며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사람들이 워낙 많은 터라 자칫 잘못 부딪쳐 망가질까 싶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관심이 많긴 해. 저 봐요, 사람들만 바글한 게 아니라, 기자들도 아주 바글바글해.”

       “이거 강성찬 배우 인터뷰는 따기 영 어렵겠는데요.”

       

       아마 이곳에 모인 기자들은 드라마의 주연인 강성찬, 혹은 하예서와 인터뷰를 위해 모였을 것이다. 

       메이킹 영상으로 화려하게 공개한 것치곤, 이후 배우들이 나서서 따로 홍보한 경우가 없었으니까.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주연의 인터뷰를 따내는 게 무엇보다 기자들에게 중요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자, 사람들의 새된 비명 소리가 들리며 사람 몇 명이 지나갈만한 틈새가 만들어졌다. 

       

       “아, 저기 오네요. 이야~. 역시 옷빨이 잘 받으니 한복도 아주 그냥…….”

       

       윤서일 역의 강성찬.

       그 화사한 마스크와, 싱그러운 미소.

       거기에 지적인 눈매는 작중 윤서일에 딱 부합하는 외모였다.

       

       거기에 이혜월 역의 하예서는 또 어떤가?

       청순한 외모가 딱 천상공주다.

       

       사실상 태숨달의 주인공인 만큼, 이번 드라마는 그녀의 연기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어디 보자…….’

       

       또 누가 왔나, 그리 생각하며 이병운은 오늘 이벤트에 참여한 배우들의 목록을 살폈다.

       주연 인터뷰에 실패하면 조연 쪽도 노려볼 만한 배우들이다.

       

       ‘하지만, 이건 약간 맛이 안 사는데.’

       

       뭔가 괜찮은 게 없나.

       그렇게 생각할 때, 작중 이혜월의 보모역의 배우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작은 소녀가 보였다.

       

       메이킹 필름에서 화제를 만든 당사자.

       어린 이혜월의 아역인 주서연이었다.

       

       ‘쟤도 왔네?’

       

       이병훈은 카메라를 들어, 걸어오는 주서연의 모습을 찰칵 찍었다.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응?’

       

       그러다 문득, 이병훈은 방금 서연의 모습을 찍은 게 자신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른 기자들이 죄다 강성찬과 하예서를 찍던 찰나였으니까.

       

       워낙 화제를 모았던 탓에, 뒤늦게 기자들이 서연을 연신 찍었지만.

       강성찬이나 하예서에 비하면 부족했다.

       

       당연한 일이다.

       서연은 애초에 유명한 아역도 아니었을 뿐더러, 단 3화만 등장할 예정이었으니까.

       지금 서연은 조금 화제성이 있는 평범한 아역.

       

       아직은, 그렇게 알려졌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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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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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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