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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아침이 밝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곧장 개인 병실의 화장실을 이용해 간단히 씻었다.

       

        내가 가진 게으름을 아주 잘 알기에 버릇처럼 들인 습관이었다.

       

        “나 더 잘래…….”

        “나두! 오빠 옆에서 잘래.”

        “그래. 하늘이가 소미를 잘 지켜줘. 잘 할 수 있지?”

        “응!”

       

        하늘이와 소미는 아직 잠이 덜 깬 건지, 비몽사몽한 눈을 비비더니 다시 침대로 쏙 들어갔고.

       

        “배가 고픕니다. 어서 먹을 것을 주십시오.”

        “네가 애냐? 아니면 애완동물?”

        “비슷합니다.”

        “비슷하긴 뭐가!”

       

        드르륵!

       

        칭얼대는 <성녀>를 꾹 밀어내며 병실 문을 열었다. 사실 나도 배가 고프다. 그냥 녀석이 왠지 모르게 괘씸해서 그런 말을 한 거지.

       

        그런데.

       

        “……?”

       

        병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니, 곧장 강렬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고요한 실내, 기괴할 정도로 침묵만이 감도는 병원 복도.

       

        분명, 어제만 하더라도 입원한 환자들과 의료진의 희망찬 말소리가 들렸다. 헌데 지금 이곳엔…… 기묘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고개를 빼꼼 내민 한유리가 중얼거렸다.

       

        사실 나도 모르겠다. 

       

        그저 ‘꿈을 걷는자’가 무언가 손을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한명도 없습니다. 다른 입원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함을 감지한 <성녀>가 다른 병실을 둘러보더니, 황급이 내게 다가와 말했다.

       

        “……고작 하룻밤 사이, 모든 사람들에게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 건가?”

       

        예상치 못한 급진적인 전개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병원 내의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주민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일단, 병원을 나가보자.”

        “……알겠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악의 상황에선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습니다.”

       

        긴장된 듯, 마른침을 삼키는 한유리와 성녀가 천천히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입원동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띵-! 

       

        ‘1층입니다.’

       

        그리고 그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1층으로 내려온 우리는.

       

        “……!”

       

        그곳에서 볼 수 있었다.

       

        무슨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병원 로비에 빼곡 들어찬 회색빛 도시의 주민들.

       

        그들 모두가 빛을 잃은 텅 빈 눈빛으로 오직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소름끼치는 일이 벌어진 건 바로 그때다.

       

        끼긱!

       

        뻣뻣하게 서 있던 그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우리.

       

        마치 하나의 군체의식처럼, 일순간 절도감마저 느껴지는 행동은 절로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여, 여보! 이게 도대체……!”

       

        눈앞에 펼쳐진 공포스러운 풍경에 한유리가 말을 더듬었다.

       

        분위기에 압도되는 상황.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에겐 <성녀>가 있다. 불합리하고 이기적인 신성의 힘, ‘신성력’으로 무장한 그녀가 있다면 이 갑작스러운 위기도 쉽게 떨칠 수……!

       

        “전능하신빛의주인이시여부디어린양을가엾게여기시어그어떤고난과역경이내게드리워도담대히나아갈수있게해주시옵고…….”

       

        절로 입이 벌어졌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최악의 상황엔 우리를 지켜주겠다, 호언장담한 <성녀>께서.

       

        “죄없는양이짊어질무게를조금이라도덜어주소서두려움이라는어둠에빠지지않게따듯히보듬어주소서.”

        “……하.”

       

        두려움 가득한, 울먹이는 얼굴로 ‘신성교단’의 주기도문을 외고 계셨다.

       

        “정신차려!”

       

        퍽!

       

        손날을 들어 <성녀>안젤리카의 머리를 내리쳤다.

       

        “읏!”

       

        그제야 공포에서 해방된 걸까? 물기 가득한 눈의 성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상황이 나쁜 건 안젤리카만이 아니었다.

       

        “치, 침착해요! 일단 침착하고요! 침착하게 병실로 돌아가죠! 침착히 움직여요!”

        “……너도 제발 진정해라.”

        “저, 저저,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정면을 응시했다.

       

        저 로비를 가득 채운 수많은 인형들을 움직인 원흉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뻔했다.

       

        ‘꿈속을 걷는자’. 그 빌어먹을 빌런께서 힘을 사용한 거겠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저들이 우리를 해할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가만히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을 뿐,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았고.

       

        “이, 이상해요! 하늘이와 소미는 왜……!”

        “……!”

       

        가만히 한유리의 말을 듣고 있자니, 불현듯 병실에서 자고 있을 아이들이 떠올랐다.

       

        웃기지 않는가?

       

        우리와 함께 잠을 청하던 두 아이. 두 아이도 이 회색빛 도시의 주민이건만, 저들과 달리 ‘꿈속을 걷는자’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캐붕.”

        “……뭐라고요?”

        “캐릭터 붕괴. 빌런이 만든 이 세계의 ‘캐릭터가 틀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빌런이 택할 일은?

       

        ‘꿈속을 걷는자’가 원하는 것은 이 회색빛 도시의 주민이 늘어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것.

       

        “이 상황은…… ‘동화’를 강제하려는 속셈이겠지.”

       

        상황이 뻔해 모를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놈은 조급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우리에게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다시 올라가자.”

        “네, 네!”

        “빨리 움직이십시오! 저 미친 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뭐?”

       

        고개를 돌려 로비를 확인하니 절로 입이 벌어졌다.

       

        척! 척! 척!

       

        고된 훈련을 받은 군인처럼. 그들이 다가오고 있다. 초점이 사라진 공허한 눈빛을 한 채로!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다가가 버튼을 눌렀다.

       

        놈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 여기서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띵-!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나는 층을 누르고, 황급히 ‘닫힘’ 버튼을 눌렀다. 

       

        쿵! 쿵! 쿵!

       

        어느덧 엘리베이터 너머까지 접근한 놈들이 몸을 부딪히던 걸까?

       

        굳게 닫힌 엘리베이터의 철문이 요동친다.

       

        “서, 설마……!”

       

        센서에 충격이 감지되어, 다시 문이 열릴 수도 있는 상황. 그 공포감이 뚝뚝 묻어나는 상황에 한유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우웅!

       

        하지만 다행히, 그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곧장 무거운 기계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8, 8층까지 갈 수 있겠죠?”

        “그래야만 합니다.”

        “…….”

       

        우리가 어젯밤 잠들었던 병실이 있던 곳은 8층. 자연히 아직 병실에 남은 두 아이도 8층에 있다.

       

        천천히 엘리베이터의 ‘층’이 표시된 LED 화면의 숫자가 바뀐다.

       

        1… 2… 3… 4.

       

        그런데.

       

        5.

       

        띵-!

       

        [ 5층 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

       

        시원하게 층을 오르던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췄다.

       

        덜컹.

       

        그리고 열린 문 앞에는…….

       

        “……!”

       

        공허한 눈빛을 한, 회색빛 도시의 주민들이 우리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 * *

       

        쿵-!

       

        “에?”

        “머, 머야?”

       

        따스한 아침햇살이 드리운 병실.

       

        그 안에서 새근새근 자던 두 꼬마아이가 눈을 떴다.

       

        두 아이의 아침 단잠을 깨운 것은 ‘진동’이다. 건물 전체를 울리는 진동은 아래부터 시작되어, 두 아이가 있던 8층까지 울리고 있었다.

       

        “오, 오빠아!”

        “소미야! 오빠한테 와!”

       

        소년, 임하늘이 겁에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쿵! 쿠구궁-!

       

        평화를 깨뜨리는 굉음과 진동의 원인이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지진? 유치원 선생님이 그런 자연현상이 있다고 했던 걸 배운적은 있었으나…….

       

        “어, 엄마랑, 아빠가 조금 있다가 돌아온다고 했는데…….”

       

        문제는 두 아이가 사랑하는 부모님이다. 그 부모님이 병실을 나섰다.

       

        저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임하늘은 부모님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 소미야!”

        “웅?”

        “오빠, 잠깐 나갔다 올게! 여기서 기다리구 있어!”

       

        임하늘은 동생이 놀라지 않게, 또 걱정하지 않게 최대한 씩씩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지만.

       

        임하늘의 동생, 임소미는 부모님에 이어 오빠도 사라진다는 사실이 그리 싫었던 모양이다.

       

        “시, 시러. 나도 오빠랑 같이 갈거야.”

        “이 바보가! 위험할 수도 있어!”

       

        딱!

       

        애가 탄 임하늘은 동생의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이어질 상황이 눈에 선하다. 이마를 부여잡은 동생이 후에엥- 울음을 터뜨리고, 오빠 미워! 라는 말과 함께 토라지겠지.

       

        하지만.

       

        “시러! 나도 갈거야!”

        “에, 엥?”

       

        임하늘은 평소와 확연히 다른 동생의 반응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오빠바라기 울보가, 이마를 맞은 주제에 땡글한 눈을 뜨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아, 알았어. 같이 가자 그럼.”

       

        임하늘은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어린 동생의 묘한 박력에 꼬리를 내렸다는 건……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이었다.

       

        .

        .

        .

       

        꼬깃꼬깃 신발을 신은 두 아이는 비상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었으나, 어째서인지 ‘점검’이라는 글자가 떠있어 택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몇 계단이나 짧막한 다리를 옮겼을까?

       

        두 아이의 시선에 활짝 열린 비상계단 출입구가 보인다.

       

        임하늘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계단의 중간층에 ‘5’라는 숫자가 눈에 밟혔다.

       

        유일하게 비상구가 열려있다. 확신할 수 없었으나, 임하늘은 이 안에서 무언가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짐작했다.

       

        그렇게 조심스레. 두 아이는 아주 천천히 5층에 진입했다.

       

        “오빠. 이거 머야?”

        “어, 어라.”

       

        그런데 비상계단 출입구를 지나자마자 이상한 것이 보인다.

       

        붉고, 검으며, 찐득한 느낌이 날 것만 같은 액체가 입원실 복도에 비산한 모습.

       

        “피……? 흡!”

       

        임하늘은 서둘러 자신의 입을 가렸다.

       

        동생인 임소미, 그 녀석이 놀라지 않도록 한 ‘오빠’로서의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감! 누가 실수로 물감을 터뜨렸나봐!”

       

        임하늘은 애써 웃으며 소리쳤다.

       

        “우웅, 그래?”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생인 소미가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는 점이다.

       

        “…….”

       

        손을 맞잡은 두 아이는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복도 바닥 전체가 피에 잠겨있다. 그 괴기스러운 장면을 외면하며, 엄마와 아빠를 찾기 위해 움직인다.

       

        그리고.

       

        “어……?”

       

        임하늘의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털썩!

       

        “큭!”

       

        저 멀리, 보여서는 안될 사람이 보인 까닭이다.

       

        바닥에 쓰러진 아빠, 그런 아빠를 향해서 손을 뻗는…… 정신이 나간 듯한 사람들.

       

        휙!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그러던 중, 무언가에 뜯겨나간 듯한 쇠막대기가 눈에 들어왔다.

       

        임하늘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덥썩 막대기를 주웠다. 

       

        그리고는.

       

        팍!

       

        “오, 오빠?!”

       

        여동생을 그들이 지나온 비상계단 출입구 저편으로 밀어버렸다.

       

        쿵!

       

        이어서 출입구를 닫는다. 다행히 잠금 장치가 있어, 문을 잠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히야앗!”

       

        임하늘은 곧장 자신이 쥐고있던 쇠막대기를 사람들에게 던졌다. 사랑해 마지 않는 아버지를 해하려드는, 그 못된 사람들에게!

       

        텅!

       

        둔탁한 소음과 함께 날아간 쇠막대기가 못된 사람 중 한 명에게 적중했다.

       

        그리고.

       

        끼기기긱.

       

        기괴한 소음과 함께 사람들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의 임하늘이 있었다.

       

        “하늘아!”

       

        아빠의 경악에 찬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임하늘은 직감했다. 그 뒤에 말이 붙지 않았어도, 아빠가 자신에게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홱!

       

        몸을 돌린 임하늘은 서둘러 다리를 옮겼다. 

       

        이유는 간단하다. 쇠막대기를 던짐과 동시에, 못된 사람들이 임하늘을 붙잡기 위해 걸음을 떼었기 때문이다.

       

        “아빠랑 엄마, 소미는…… 내가 지킬거야! 꼭!”

       

        물기 가득한 임하늘의 목소리가 5층 복도에 처연히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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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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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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