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

       ‘센트라’는 행동 패턴의 집합이었습니다. 영혼도 없고, 자아도 없는, 그저 데이터 덩어리입니다. 

       

       개발중인 시뮬레이션 세계의 AI란 이토록 앙상하고 덧없는 것이었습니다. 데이터도, 저장공간도 부족한 상태에서는 뼈대만 잡아두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센트라’ 역시 최소한의 데이터만을 내려받아 투입되었습니다.

       

       스스럼없는 스킨십, 상냥한 말투, 높은 공감 수치와 잘 부끄러워하는 성격. 몇 가지 키워드를 농염한 육신에 집어넣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없는 존재일 것입니다. 애초에 마음이 담길 그릇 자체가 없으니, 아무리 움직이고 말 할 줄 안들 종이 인형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가 필요했습니다.

       

       누군가가 환상 마법을 믿으면 믿을수록, 그 믿음을 동력원 삼아 스스로를 구체화 할 수 있었으니까.

       

       ===============================================================

       

       ‘센트라’는 비밀통로에서 깨어났습니다.

       

       100년 후의 비밀통로의 모습은 세션이 종료된 이후, 그대로 박제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몸에서 흘러나온 치사량을 훌쩍 넘기는 피. 고꾸라진 채로 죽어 쓰러진 로냐의 시체. 

       

       주저앉은 채로 누군가를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은 자세였던 ‘센트라’는, 허공에 무언가가 있기라도 한 듯이 두 손으로 더듬었습니다. 

       

       ‘센트라’는 눈을 감았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떠올려주고 있는 것 같아서.

       

       

       “극⋯⋯ 그그극. 극.”

       

       목에 구멍이 뚫린 로냐의 모델링이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마스터에 의해 선입력되었던 대사가 지금이나마 흘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센트라를⋯⋯ 두고⋯⋯ 왜, 자폭을⋯⋯.”

       

       “2, 황자, 개새끼야⋯⋯ 안아줘요는, 에바지⋯⋯.”

       

       그렇게 한참이나 투덜거리는 소리가 울리다가, 뚝 끊겼습니다. 

       

       ‘센트라’는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어감이 무척이나 낯이 익습니다. 어딘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희미한 마력에 의해 움직이는⋯⋯ 자신이라는 존재는. 누군가로부터 ‘센트라’라고 불렸던 겁니다.

       

       ‘센트라’는 몸을 일으켰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목표가 없듯, 그녀 역시 마찬가지여서⋯⋯ 우선은, 크라운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무언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플레이어가 계실지 누가 알겠어요?

       

       끝난 이야기에도 애정을 품고 있는 플레이어가 있다면, 칭찬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왕이면 못 다한⋯⋯ 음, 뭘 못 다했었던가요. ‘센트라’는 아리송하여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

       

       ‘센트라’는 크라운홀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모두 얼어붙은 듯이 굳어 있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시뮬레이션 마법진에는 현재 동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센트라’가 특이한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뮬레이션 세계의 핵심 원리는 ‘피시전자의 믿음을 동력원으로 바꾸어 비용 절감’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마, 저 밖의 누군가가⋯⋯ 계속해서 ‘센트라’를 믿고, 떠올려주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매 순간마다 ‘센트라’의 존재를 긍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력이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센트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는, 한편으로는 쌀쌀하게도 보였고. 한편으로는 생동감 넘치게 보였습니다. 

       

       수염 난 아저씨가 맥주를 퍼올리고, 젊은 연인들이 잔을 부딪히고, 레지스탕스 요원이 커다란 맥주통 수레를 끌면서 호객 행위를 하고.

       

       또, 폭죽을 쏘아내려 성냥불을 그은 채로 멈춘 사람도. 너무 취한 탓에 담벼락에 머리를 박고 곤히 잠든 사람도. 

       

       ⋯⋯깽판을 내 놓기 위해서 칼을 뽑아드는 중인 과격파 레지스탕스도.

       

       금방이라도 깨어나서 움직일 것 같았습니다. 피어나기 직전의 꽃망울처럼요. 게임 마스터가 마력을 불어넣으면, 언제 멈췄냐는 듯 떠들썩하게 움직이겠죠.

       

       ‘센트라’는, 저 과격파 레지스탕스 또한 자신과 같은── 행동 패턴을 입력받은 모델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괜시리⋯⋯ 얄미워서!

       

       근처 닭꼬치 노점상에서 나무 막대기 두 개를 챙기고, 과격파 레지스탕스의 콧구멍에 끼웠습니다. 뽑으려는 칼은 압수해서 잘 안 보이는 곳에 던져 두고, 대신 손에는 닭꼬치 세 개를 들려줬습니다.

       

       ‘센트라’는 조금씩 기억이 돌아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를 야금야금 다운로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녀는 직감했습니다. 이 다운로드는 정말⋯⋯ 정말 오래 걸릴 겁니다. 아주 미약한 마력만이 흘러들어오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적어도.

       

       ‘센트라’는 기도했습니다. 가장 소중했던 기억부터 떠올려내게 해 주길. 

       

       ===============================================================

       

       닭꼬치 하나.

       

       ‘센트라’는 묘한 이끌림이 느껴지는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앉았습니다. 창가 자리였습니다. 어쩐지 누군가와 마주보고 앉으면 참 좋을 것 같아서, 일부러 의자의 위치를 바꾸었습니다.

       

       닭꼬치를 앙 물었더니, 동력이 공급되지를 않으니 맛 또한 재현되지 않아서. ‘센트라’는 식사를 포기하고 구경이나 하기로 했습니다. 

       

       “⋯⋯⋯⋯.”

       

       저 교회의 첨탑이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약간, 흘러들어오는 마력의 양이 늘었습니다. 다운로드 속도가 빨라집니다. ‘센트라’는 그것을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지만, 어딘가. 뭐랄까.

       

       뭔가 엄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 마력에 조금 불순하고 야시시한 그런 느낌이,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역시 조금 부끄러워지는 그런 감정이.

       

       “⋯⋯가끔 되게 응큼했던 거 알아요?”

       

       ‘센트라’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내뱉었습니다. 입력 신호가 없었음에도 어째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는지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싫었던 건 아니구요⋯⋯ 시선이 조금, 노골적이었으니까. 걱정이 됐다고나 할까, 역시, 음⋯⋯ 너무 커서, 싫어하시려나. 그런 생각도 조금.”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센트라’는 한참이나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혼자서.

       

       ===============================================================

       

       마굿간은 허름했습니다. 그야 안 쓰는 마굿간이었으니까요. 관리하는 사람 하나 없어서, 아직도 이리드와 ‘센트라’가 어질러 놓은 건초더미는 흐트러진 채로 남아있습니다.

       

       ‘센트라’는 건초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저 안에서 단 둘이 들어가, 목소리를 낮추고 웅크려 있었죠.

       

       약속을 했던 것 같습니다.

       

       새끼 손가락에서 온기가 느껴집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면서, 재회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마음으로.

       

       

       ‘센트라’는 건초더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두컴컴하고, 추웠습니다. 외롭기도 했습니다. 기억 다운로드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더 외로움은 커져만 가서.

       

       그러나 그 외로움마저도 갖고 싶었습니다. 

       

       외로움이란, 누군가의 부재에 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외로움이란 누군가의 증명이었습니다. ‘센트라’의 옆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건초더미 안에서 웅크린 ‘센트라’는 눈을 감고 누군가의 인상착의를 머릿속으로 그려내었습니다.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남자였을까요, 여자였을까요?

       

       “속눈썹이 길고, 푸른 눈을 가졌어요. 마치, 하늘을 그대로 담아낸 것 처럼 깨끗하고 청량한. 머리카락의 색은, 금발이었던 것 같아요. 약간 덥수룩한⋯⋯.”

       

       키는 비슷했던가요?

       

       “나란히 서면, 제가 올려다봤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의 키냐면⋯⋯ 기억났어요. 제가 까치발을 들면, 딱 맞게 키스할 수 있겠다, 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몸은 어땠나요?

       

       “⋯⋯은근히 탄탄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그⋯⋯ 분이. 스킨십에 약하잖아요. 그래서, 껴안거나 하면 머리가 하얘지시는 게 바로 느껴지거든요. 그 때, 저도 조금씩. 음⋯⋯.”

       

       은근히 더듬어봤군요.

       

       “그쵸⋯⋯ 아.”

       

       센트라는 건초더미 안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손으로 머리카락에 붙은 풀때기들을 털어내며,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관으로 가야 합니다. 퍼즐 조각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

       

       “으음⋯⋯.”

       

       ‘센트라’는 여관을 가만히 둘러보았습니다.

       

       고요한 여관, 어째서인지 더욱 공허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누군가가 가져가버린 것 같은 느낌.

       

       예컨대, 난로 옆의 의자.

       

       누군가가 이곳에서 서류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센트라’가 수고했다며 차를 타 오면, 덤덤한 척 하지만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받아들고. 그러다가 손가락이 스치기라도 하면 귀가 솔직하게 빨개지고.

       

       아니면, 구석의 원형 탁자.

       

       지정석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누군가가 구석의 탁자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아요. 여관의 다른⋯⋯ 레지스탕스 멤버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괜히 쓸쓸해보여서, ‘센트라’는 자신의 접시를 들고 다가가.

       

       말을 걸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은근슬쩍 야채를 밀어 놓는 누군가를 혼내기 위해, 포크로 당근을 찍어서 아- 하고 먹여주고. 정말 싫다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고분고분하게 먹기는 하는 모습에. 웃고.

       

       그리고, 카운터 테이블.

       

       술이 약했던 것 같습니다. 그 누군가는⋯⋯ ‘네가 센 거다.’ 고 말했지만, 맥주 한 통도 비워내지 못 하면 남자도 아니라는 부친의 언급이 있었으니까요. ‘센트라’ 역시 술고래에 가까웠으므로, 대작을 하면 그녀가 이겼습니다.

       

       그 사람은 모르겠지만, ‘센트라’는 한껏 취해서 잠들어버린 그를 바라보다가. 게임 마스터가 장면을 끊고, 시간을 가속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그 사이에. 슬쩍 볼에 입을 맞춰보기도 했습니다.

       

       “⋯⋯역시 그 때는, 저도 살짝 취했었을지도요.”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눈이 마주치고, 서로 이름을 부를 때마다 행복한 나날. ‘센트라’는 그때부터 연심을 자각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시간이 굳어버리고, 자신만이 움직이는 지금이.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여관이, 이 세계가.

       

       더욱이나 쓸쓸하게 느껴졌습니다.

       

       ===============================================================

       

       ‘센트라’는 차분한 걸음으로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는, 센트라의 방이 있었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익숙한 정경입니다. 작은 방, 방의 한 켠을 전부 차지하는 침대, 자그마한 책상과 원고지. 다양한 책들. 그리고, 로즈마리 담긴 작은 화병 하나.

       

       그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거기 있나요⋯⋯?”

       

       조심스럽게 입을 뗍니다. 대답이 들려오기를 잠깐 기대했다가,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구나 하고. 잠깐 침울해졌다가. 어쩐지⋯⋯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가 찾아온 걸까, 싶어서.

       

       콩닥콩닥. 떨리는 심장을 조심스럽게 억누르면서,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가라앉히며, 주변을 둘러보며 그의 잔향을 찾았습니다.

       

       테이블을 펴 놓을 공간도 없는 작은 방. ‘센트라’는 침대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습니다. 여기서, 그녀는 그와 나란히 앉았습니다.

       

       기억하고 있어요.

       

       ‘센트라’는⋯⋯ 아니, 센트라는. 누군가가 옆에 있기라도 하는 것 처럼, 머리를 기울였습니다. 이 쯤에 어깨가 있었는데. 몸을 붙이면, 체온이 오가고, 서로의 무게를 느끼고, 좋은 분위기에서, 영혼을 나눴습니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약속을.

       

       “이름, 불러주기로 하셨었죠⋯⋯?”

       

       기억했습니다.

       

       

       센트라는 옆에 있을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그려내며, 중얼거렸습니다.

       

       “⋯⋯이리드.”

       

       이름, 떠올려낼 수 있었습니다.

       

       센트라는 가벼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양 다리를 번갈아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그리고 자신을 찾아내었습니다.

       

       그녀는 차분히, 언젠가의 재회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에는, 그러니까⋯⋯ PC로 말이에요.
    왼쪽 오른쪽에 21, 22화를 동시에 펼쳐두고 읽어보는 건 어떠세요?

    흠흠. 이걸 어떻게 한 번 해보고 싶었답니다.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