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

       “나는 유능해요~.”

         

       파스텔은 뛰듯이 걸었다.

         

       폴짝폴짝.

         

       한 손에는 아카데미 주변 모든 상가의 협조 사인이 담긴 서류가 팔랑였다.

         

       “파스텔은 유능해~.”

         

       반대 손으로 마검을 흔들었다.

         

       악마님! 악마님!

         

       어서어서 파스텔을 칭찬하세요!

         

       골치 아플 주변 상가 연합의 협조를 단번에 얻어낸 저를!

         

       부학생회장 겸 총무부장 겸 기획부장 겸 홍보부장 겸 봉사부장 겸 선도부장에 어울리는 저를!

         

       악마가 머뭇거리다가 장단에 맞춰줬다.

         

       『어린 크래프트, 넌 유능하다.』

       “우와우와!”

         

       뿌드읏.

         

       마검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저 이제야 알 거 같아요! 멜리사가 제게 음흉하다고 했는데 맞아요! 전 완전 유능하고 음흉해요!”

         

       파스텔은 가는 눈을 만들었다.

         

       “상가 대표님을 향해 이렇게이렇게 눈빛을 보내니.”

         

       음흉한 눈빛~.

         

       “상가 대표님이 막막!”

         

       허억.

         

       부학생회장 겸 총무부장 겸 이하생략의 음흉한 눈빛!

         

       협력을 안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제가제가!”

         

       파스텔은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팔씨름으로 끝내시죠.”

         

       이하생략의 압도적 제안.

         

       “막 이러니까! 대표님이 흐어억 압도적 카리스마에 이길 수가 없어! 그러시고! 그리고그리고!”

       『그래, 알겠다. 넌 유능해.』

         

       파스텔은 볼을 상기시키며 말을 쏟다가 멈췄다. 입꼬리가 풀렸다.

         

       뿌드읏.

         

       마검을 꼭 끌어안고 빙빙 돌았다.

         

       “아이참, 그리 칭찬하시니 인정 안 할 수가 없네요!”

         

       헤헤.

         

       파스텔 유능!

         

       학생회실로 돌아갔다.

         

       문을 벌컥 열자 초췌한 얼굴의 실무진 두 명이 보였다.

         

       엘리와 더스틴!

         

       “친구들! 친구들! 좋은 소식!”

         

       파스텔은 혼자만 멀쩡한 얼굴로 협조 서류를 팔랑였다.

         

       “주변 상가의 완전한 협조를 얻어왔어! 나 완전 유능!”

         

       어서 칭찬하라!

         

       양손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어서어서!

         

       재촉하듯이 양손을 파닥였다.

         

       엘리가 서류를 받아 갔다. 찬찬히 훑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다크서클이 조금 옅어진 듯한 느낌이다.

         

       “잘했어, 파스텔. 주변 상가 연합의 공식 협조를 얻었으니 상가마다 개별로 처리하느라 늘어나던 업무량이 확연히 줄어들 거야.”

       “정말이야? 정말 일이 줄어들어?”

         

       더스틴이 초췌한 얼굴로 다가왔다.

         

       오잉.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너희 어디 아파? 누가 괴롭혀?”

         

       시선이 쏠렸다. 많은 의미와 할 말이 담긴 시선이었다.

         

       어라.

         

       어라라.

         

       이 혼자만 노는 상관을 보는 시선은 뭘까?

         

       못된 사람이네! 내가 혼내줘야지.

         

       파스텔은 이 시선의 대상을 찾듯이 손을 눈썹에 대고 주변을 날카롭게 훑었다.

         

       어라라.

         

       아무도 안 보여.

         

       착각이었나 봐.

         

       헤헤.

         

       시선이 더 강렬해졌다.

         

       파스텔은 어색하게 휘파람을 불었다.

         

       잘 모르겠네에. 업무 매뉴얼을 완성하고 인수인계한 다음 결재와 반려만 깔끔히 해주면 상관으로서 할 일은 다 한 거 아닐까?

         

       허억.

         

       생각하고 보니 나 완전 유능!

         

       백치 생활의 여파로 이 세상의 지식과 문화를 전혀 모르겠어서 필기는 악마님의 도움을 쪼끔 받긴 했지만 학생회 업무는 엄연히 스스로의 힘이란 말씀.

         

       나 정말 유능!

         

       파스텔은 휘파람 불기를 멈췄다. 자신감이 솟구쳤다.

         

       눈을 가늘게 뜨고 엘리를 직시했다.

         

       “음흉한 눈빛~.”

         

       압도적 카리스마 앞에 엘리가 움찔했다. 머뭇거리다 시선을 피하더니 새 서류를 가져왔다.

         

       업무량 증가표였다.

         

       축제를 거치며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번에 상가 단속을 준비하며 업무량이 천장을 뚫고 있었다.

         

       우왕.

         

       이걸 다 통계 내다니, 엘리 꼼꼼해!

         

       “우리 이대로는 안 돼. 일이 너무 많아. 현장에서 상가 단속까지 하려면 인원 확충이 필수적이야.”

         

       엘리가 조심스럽게 말해왔다.

         

       매우 찔린 파스텔은 쾌히 긍정했다.

         

       “맞아! 맞아!”

         

       당연히 늘려야지.

         

       인원 확충은 필요하다.

         

       하지만 아주 쪼끔의 문제가 있다.

         

       부학생회장이 학생회 예산을 횡령해 밀무역품으로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횡령? 다시 채워 넣으면 돼!

         

       헉.

         

       총무부장으로서 부학생회장의 범죄는 용서할 수 없어!

         

       하지만 기획부장으로선 불가피한 사정이 이해된다. 배고프다잖아. 홍보부장으로서 한 번쯤 봐줘도 되지 않을까? 봉사부장과 선도부장도 수긍하는 바이다.

         

       학생회 윗선은 협의를 거쳤지만 그래도 학생회를 확충해 감시의 눈길을 늘리는 건 부담스럽다.

         

       누가 일러바치면 어떡해.

         

       덜덜덜.

         

       목을 조여오는 법률의 칼날.

         

       탈세는 이렇게 끝날 것인가.

         

       하지만 유능한 파스텔에겐 해답이 있었다!

         

       파스텔은 해맑게 외쳤다.

         

       “인력 하청을 주자!”

         

       교수회의가 학생회에 상가 단속의 하청을 줬으니 학생회도 다른 곳에 하청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오예.

         

         

         

       #

         

         

         

       기숙사 뒤편의 음습한 골목.

         

       1학년들이 분홍 소녀를 둘러쌌다.

         

       “그래서 나다?”

         

       레너드가 사나운 눈빛을 보냈다.

         

       두 번 이긴 상대는 전혀 안 무서운 파스텔은 고개를 끄덕였다.

         

       “각성제 다 압수해 가 놓고 단속을 우리에게 시켜? 와 씨, 우리가 만만하냐?!”

         

       레너드가 앞머리를 털다가 노려봤다.

         

       파스텔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헤헤.

         

       레너드가 벙쪘다.

         

       부하들이 맹하게 보스를 바라봤다.

         

       “보스, 그렇다는데요.”

       “나도 들었어!”

         

       보스? 아, 맞아.

         

       “너희 호칭을 바꾸는 게 어때? 보스 말고 대장으로! 보스라고 하니 내가 헷갈려!”

         

       마계에 사시는 우리의 조력자 프레스턴 보스님과 말이야.

         

       “그걸 왜 네가 간섭하냐?”

         

       레너드가 어이없어했다.

         

       부하들이 맹하게 보스를 바라봤다.

         

       “대장, 그렇다는데요.”

         

       레너드의 입이 벌어졌다.

         

       “이것들아! 바로 바꾸지 말라고!”

         

       사이가 좋네.

         

       좋아, 잘됐어!

         

       파스텔은 한 손을 번쩍 들었다.

         

       “파스텔과 함께 할 친구들! 여기여기 모여라!”

         

       모여라! 모여라!

         

       “야! 야! 손들지 마라! 들지 마!”

         

       레너드가 황급히 부하들을 노려봤다. 부하들이 손을 들다가 머뭇거렸다.

         

       이런.

         

       하지만 내가 더 인기 좋을걸?

         

       “선착순! 선착순!”

         

       파스텔은 양팔을 흔들었다.

         

       “파스텔의 친구친구 타이틀을 거머쥘 기회는 지금뿐이야! 친구 타이틀이 아니라 친구친구를 말하는 거야!”

         

       발랄한 목소리가 비밀을 속삭이듯이 울렸다.

         

       “너희 그거 알고 있어? 친구친구는 무려 친구보다 글자가 두 배 많아! 두 배!”

         

       헉.

         

       글자가 두 배 많다니!

         

       대박 기회.

         

       소녀의 기대하는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너희 친구친구 타이틀이 얻고 싶지 않아?

         

       마주치는 얼굴마다 볼이 붉어졌다.

         

       손들이 우수수 올라왔다.

         

       “그아아!”

         

       레너드가 혼자 괴성을 질렀다.

         

       역시 난 친구가 많아!

         

         

         

       #

         

         

         

       햇볕이 쨍쨍.

         

       친구친구는 위풍당당.

         

       파스텔은 마피아 보스처럼 상가 거리를 거닐었다. 친구친구들이 뒤따랐다.

         

       “더스틴! 계획대로 팀 나눠서 훑어봐! 혹시 수상쩍은 게 보이면 바로 빠지고 나한테 말해! 너희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어! 가자!”

         

       서류 업무에서 해방된 더스틴이 밝은 얼굴로 달렸다. 친구친구들이 뒤따랐다.

         

       오, 더스틴 통솔력이 괜찮은데?

         

       역시 남 수발드는데 적성이 맞구나!

         

       돌아오면 칭찬해 줘야지.

         

       일부러 혼자남은 파스텔은 기지개를 켰다.

         

       “으아!”

         

       바쁘다, 바빠.

         

       어서 끝내고 종이비행기나 날려야지. 그동안 학생회실에서 무수히 단련한 비행 실력을 엘리에게 선보여 주고 말겠어.

         

       룰루랄라.

         

       사람 없는 골목길로 슬쩍 들어갔다.

         

       마검을 들었다.

         

       “악마님! 악마님! 인간폼! 인간폼!”

       『갑자기 왜.』

       “그냥요! 그냥!”

       『아니.』

         

       마검이 흩어지고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왜 인간폼을-』

         

       좋았어!

         

       파스텔은 악마의 팔을 잡아채고 달렸다.

         

       “상가 단속 시작~!”

         

       야호.

         

       그냥 햇살이 따듯해서 들뜬 기분과 다르게 업무는 업무기 때문에 먼저 상가 대표를 찾아갔다.

         

       주변 상가 연합에서 자체 조사하고 보고서로 전달해 줬던 실태를 직접 설명받았다.

         

       “수상한 검은 로브가 수상한 밤 시간에 수상한 골목에서 수상한 거래를 했다는 거죠? 매번?”

       “예.”

         

       완전 수상.

         

       누가 봐도 수상하지만 고학년 일부가 위험을 감수하고 각성제를 대량 구입했다. 그게 학생끼리 거래되며 퍼진 게 현재다.

         

       건물을 나왔다.

         

       “이젠 검은 로브가 나타나지 않는다니, 거래를 포기한 걸까요? 그건 아니겠죠?”

         

       악마가 파스텔의 사용인인 양 같이 거닐며 말했다.

         

       『이미 충분한 구매자를 확보했다. 판매자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진 거다. 구매자가 의뢰 등의 명분으로 나오면 외부에서 거래하는 방식으로 변한 거겠지.』

         

       오우.

         

       “상가 단속으로 될 일이 아니네요. 아카데미 내부의 음성적 거래를 단속하는 게 맞겠어요. 학생회 혼자 될 일은 아니고, 과대표 선배님들을 모아야겠네요.”

         

       1학년에게 져주기 위해 팔씨름 단합을 하는 착한 사람들이니 잘 협조해 주겠지.

         

       문득 저 너머 하늘에서 얇은 물줄기가 솟구쳤다. 그리고 사라졌다가 다시 솟구쳤다.

         

       친구친구의 호출 신호?

         

       “악마님! 악마님! 뭔가 발견했나 봐요!”

         

       파스텔은 후다닥 뒷골목에 들어가 악마를 마검으로 바꾸곤 달렸다.

         

       『그러게 왜 인간폼을.』

       “기분이 다르잖아요! 기분이!”

         

       그렇게 따지시니 칙칙한 정장을 입고 사시는 거예요!

         

       신호 위치에 도착했다.

         

       웬 추격전을 볼 수 있었다.

         

       고학년이 거리 한복판에서 도망쳤다. 가판대가 부서지고 과일이 우르르 쏟아졌다. 1학년들이 그 뒤를 쫓았다. 과일이 밟히며 잔해가 튀었다.

         

       오잉.

         

       로브를 걸친 1학년이 허둥지둥 주문을 외웠다. 막대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오니! 대기를 적시는 방울아, 세찬 경계에 닿아라! 2계 3획, 방울 쇄도!”

         

       별안간 가판대의 화분이 깨졌다. 물줄기가 튀고 물방울이 흩날렸다.

         

       세 개의 물방울이 허공에서 정지했다.

         

       지팡이가 거칠게 고학년을 겨눴다.

         

       물 탄환이 쇄도했다.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우와악, 혼자만 총 쏜다!

         

       마법 사기!

         

       고학년이 달리다 한순간 도약했다. 몸이 회전하며 자연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물 탄환이 쇄도했다. 허리춤의 단검이 뽑히고 검로를 그렸다. 탄환이 빨려들 듯 들어와 터졌다. 물 잔해가 튀었다.

         

       도약이 끝나고 고학년이 가판대 위에 착지했다. 직후 도약음이 연달아 울렸다. 고학년이 근처 건물 장식을 잡고 밟으며 순식간에 2층으로 올라갔다.

         

       파스텔은 입이 더 벌어졌다.

         

       으에에?

         

       고학년 사기!

         

       이것이 나이가 만드는 연륜?!

         

       이것이 초엘리트 아카데미생?!

         

       고학년이 2층에서 내려봤다.

         

       “주문 다 들린다, 신입생! 쓸데없는 단속 말고 공부나 해!”

       “어어. 죄, 죄송합니다!”

         

       뒤쫓던 1학년이 얼결에 사과했다.

         

       으아아.

         

       고학년 살벌해.

         

       1학년에게 가차 없어.

         

       말만으로 추격자를 제압한 고학년이 몸을 돌렸다.

         

       『도망친다.』

         

       헛.

         

       “파스텔, 갑니다!”

         

       지면을 박찼다. 발이 연쇄적으로 땅을 때렸다. 거리가 폭발적으로 좁혀졌다.

         

       파스텔은 방금의 장면을 상기하며 가판대를 밟았다. 도약음이 연달아 울렸다. 분홍 형상이 솟구쳤다.

         

       시야가 트이고 건물 옥상이 펼쳐졌다. 도망치는 등이 보였다.

         

       기척에 고학년이 흠칫 놀라며 돌아봤다.

         

       “어떤 자식이야! 3학년이면 안 봐주……!”

         

       거칠게 장검과 단검이 뽑혔다. 살기 넘치게 자세를 취하던 고학년이 멈칫했다.

         

       분홍 머리가 휘날렸다.

         

       “선배니임, 죄송해요!”

         

       고학년의 눈이 커졌다.

         

       “1학년?!”

         

       파스텔은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

         

       “후배, 하극상을 범하겠습니다!”

       “자, 잠시만!”

         

       고학년이 당황했다. 날붙이를 황급히 집어넣으려 했다.

         

       “으랴앗!”

         

       파스텔은 거침없이 도약했다. 전신을 날려 양다리를 쭉 뻗었다.

         

       하극상 킥-!

         

       드롭킥이 복부를 가격했다. 충격이 일었다. 고학년의 허리가 접혔다.

         

       “커흑!”

         

       고학년이 그대로 날아가 옥상을 굴렀다. 무기들이 나뒹굴었다.

         

       덩달아 구른 파스텔은 서둘러 일어났다. 쓰러진 범죄자를 힘차게 삿대질했다.

         

       “가랏, 친구친구들!”

         

       옥상을 기어 올라온 1학년들이 고학년에게 달려들었다. 고학년이 일어나려다 당황했다.

         

       “1학년들, 잠시 협상을……!”

       “못 일어나게 덮쳐!”

         

       1학년 하나가 고학년 등에 올라탔다. 뒤이어 여러 명이 덮치자 고학년이 그대로 깔렸다.

         

       “아악!”

         

       사람이 차곡차곡 쌓였다.

         

       파스텔은 그 광경을 팔짱 끼고 지켜봤다.

         

       위풍당당.

         

       그러다 한 팔을 번쩍 들었다.

         

       “낙승!”

         

       두둥.

         

       1학년이 승리했다!

         

       오예.

         

       근데 왜 잡은 거지?

         

       모르겠네.

         

       하여튼 범죄자 아닐까?

         

       헤헤.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