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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마물 토벌에서 귀환한 시녀장은 주치의 시험에 감독역에 대해 상급치유사들과 의견을 나누고서야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아침에 아셀라가 쓰러졌던 일도 있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황녀님께서 공자님께 향하셨다고요?”

     

    다른 시녀의 보고를 듣고 다시금 걸음을 옮긴다.

     

    주군 없이 시녀 혼자 남의 저택을 이리저리 쏘다니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지만, 체면치레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아셀라의 호위기사들과 합류했으나 그녀가 고트베르크 공자의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대답만을 받을 수 있었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해가 지도록 나오지 않는 주군 때문에 초조해진다.

     

    온갖 안 좋은 소문은 다 달고 다니는 고트베르크 공자였다.

     

    학업은 등한시하고 주정에 폭력 사건을 항상 일으켜서 고트베르크 후작가에 반쯤 유폐되어 있다는 소문이 제도까지 들려올 정도였다.

     

    후작가의 독남이면 유아기 때부터 이미 혼담이 수도 없이 들어올 법도 한데, 아셀라가 그 첫 상대인 점은 누가 봐도 명백히 이상했다.

     

    아무리 정치력을 위해서라도 자기 아내를 하룻밤 만에 살해할지도 모르는 짐승에게 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가주도 없었겠지.

     

    그런 점에서 카밀라 제3 황비도 어지간히 권력욕이 강한 사람이 분명했다.

     

    ‘행여나 그 망나니가 황녀님에게 악독한 마음을 품고 손이라도 댔다면.’

     

    시녀장이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다고 한낱 시녀인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호위기사들과 시녀들은 모두 아셀라에게 대기를 명받았다.

     

    주군의 명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자면….’

     

    오늘 실기시험에서 고트베르크 공자는 생각했던 것만큼은 엉망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주 우수했다.

     

    기사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고, 훌륭한 실력으로 다른 치유사들의 질투를 샀다.

     

    그 과정에서 일련의 부정행위나 밀어주기는 없었다.

     

    그렇기는커녕, 가주인 고트베르크 경이나 육성소의 상급치유사들은 오히려 라스가 특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최대한 공정하게 진행하는 모습이었다.

     

    ‘소문이 잘못된 것이었을지?’

     

    시녀장이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 어느새 아셀라가 별관에서 나왔다.

     

    “황녀님.”

     

    시녀장이 기사들과 함께 예를 표했다. 아셀라가 손을 들어 그들을 쉬게 했다.

     

    “밤에는 쌀쌀합니다.”

     

    시녀장이 아셀라에게 겉옷을 준비해주었다.

    아셀라는 말없이 그것을 걸치고는 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모실까요?”

     

    “식사하러 가자.”

     

    “식사… 요?”

     

    아셀라가 먼저 식사를 하고 싶다고 의사표현을 한 것을 시녀장은 처음 보았다.

     

    언제 복통이 찾아올지 모르는 아셀라는 산해진미를 앞에 두고도 항상 식욕이 없는 편이었다.

     

    “그래. 공자가 챙겨먹으라고 했어. 그래야 건강해진다나.”

     

    “공자님과는 어떤 이야기를 하셨나요?”

     

    아셀라가 시녀장을 재릿 노려봤다.

    시녀장도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고 깨달았다. 그림자처럼 존재해야 하는 것이 시녀의 역할이거늘.

     

    평소라면 시녀장의 실수에 한 마디 쏘아붙였을 아셀라였겠지만 오늘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악독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여유롭게 코웃음을 치고는 대답했다.

     

    “라스, 똑똑한 앤지 멍청한 앤지. 어쩜 그렇게 내 예상 밖의 행동만 하는지 모르겠어.”

     

    시녀장은 의아했다.

    어쩐지 아셀라가 명백히 즐거워 보인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주치의로 임명하고 싶으신 걸 보면 공자에게 관심을 가지신 건 분명한데.’

     

    함께 외출도 나갔고, 그가 위험한 마물 토벌에서 돌아오자마자 버선발로 뛰어나가 맞으러 갔다.

     

    그리고 그의 방에서 함께 몇 시간이나 시간을 보내다가 즐거워하며 돌아왔다.

     

    ‘…설마, 아니겠지.’

     

    아셀라의 성격을 잘 아는 시녀장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막스가 마음에 든다고 기르는 것처럼 공자도 기르고 싶은 생각인 게 아닐까.

     

    “아, 이거 챙겨서 보관함에 넣어둬.”

     

    그리 말하며 아셀라가 시녀장에게 무언가를 넘겨주었다.

     

    공손히 받아든 시녀장은 그 물건을 살펴보았다.

     

    ‘…막대사탕?’

     

    심지어 먹다 남긴 것이었다.

     

     

     

    ***

     

     

     

    고트베르크 가 저택 앞에는 워프게이트가 있다.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 알기 쉬운 게이트는 아니었다.

     

    애초에 누군가를 이동시키는 마법, 하이텔레포트는 무려 6위계에 해당하는 고위계 마법이다.

     

    워프게이트는 하이텔레포트를 시전할 수 있는 고위계 마법사들이 기억해놓는 일종의 체크포인트다.

     

    실질적인 이동은 사실상 마법사들에 의한 수동으로 이루어진다.

     

    때문에 중요한 고위직 인물의 이동이 아니면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이 실정이다.

     

    “게이트가 열립니다, 도착하십니다.”

     

    그 귀한 워프게이트가 작동하며 푸른 포털이 열리고 있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재단 앞에서 대기 중인 고트베르크의 가주, 발두어.

     

    포털에서 호위기사들이 먼저 나타난 후,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한 명의 노인이 기품있게 걸어 나왔다.

     

    흰 제복, 치유사의 표시다.

     

    가슴팍과 어깨의 휘장은 황실 주치의라는 의미였다.

     

    “고트베르크 후작가에 방문을 환영합니다, 팔켄하인 경.”

     

    “아, 고트베르크 경. 치유사의 대가를 이제야 만나 뵙는군. 환영에 감사하오.”

     

    두 치유사가 악수를 나누었다.

     

    후작가의 가주와 내의원의 황실 주치의.

    사회적인 계급은 엇비슷하다.

     

    전문분야가 같은 그들이었기에 발두어가 나이가 많은 팔켄하인에게 예의를 지켜주는 쪽으로 존대어를 사용했다.

     

    귀족사회에서 명칭과 용어는 중요하다.

     

    이 경우에는 같은 치유사인 둘이었기에 발두어가 존대를 사용해도 그보다 아랫사람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발두어는 이어 팔켄하인을 저택가 안으로 안내했다.

     

    “공기가 신선한 땅이군. 제도는 하늘이 탁해 빠졌소. 항상 마법이니 기계장치니 온갖 부산물들이 공중을 떠다니지.”

     

    “시간이 나면 말을 타고 여유롭게 돌아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하하, 내의원 주치의에겐 그럴 여유가 없소. 고트베르크에서도 드디어 주치의가 탄생하는구먼. 내의원에도 여기 육성소 출신이 많소.”

     

    “그렇습니다.”

     

    “신인에서 뽑는 건 황비님 의지셨다고?”

     

    “예.”

     

    “좋은 생각이야. 사실 주치의는 담당 환자와 비슷한 나이대인 게 가장 좋거든.”

     

    “팔켄하인 경은 제2 황자님의 주치의시죠.”

     

    “그렇소이다. 혈기왕성한 분이라 신경 쓸 일이 많아 걱정이지. 슬슬 후계를 찾고 싶은데 말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팔켄하인은 주치의 직을 금방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자의로 그만두기 힘든 것은 둘째 치더라도 권력의 달콤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슥, 팔켄하인이 발두어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경도 황실에 이번 기회에 귀를 심게 되네만, 주의하시오. 두 명의 황자와 세 명의 황녀, 그리고 늙고 병든 황제. 황실은 지금 화약고나 마찬가지오. 누가 승계하냐에 따라 파리를 잡다가도 목이 날아갈거요.”

     

    “귀를 심는다?”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발두어의 태도를 보고 팔켄하인은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이놈은 제3 황비의 호구로군.

    실력은 좋았다고 들었는데 정치력이 없어서야 든든한 남자는 못 되지.

     

    툭툭, 팔켄하인이 발두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 새 젊은 주치의 친구나 맞으러 가지. 선발방식은 미리 전한대로요.”

     

    “에메랄드 드래곤의 해츨링에게 시전한 치유주문을 토대로 평가한다고 하셨지요.”

     

    “그렇소. 에메랄드 드래곤은 치유주문을 먹는 특징이 있거든. 공정성을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할 거요.”

     

    바깥에 내놓은 명목은 그랬다.

    하지만 팔켄하인에겐 다른 목적이 있었다.

     

    ‘현재 내의원의 주치의는 황가구성원과 같은 숫자인 21명. 그중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지는 건 황제와 승계권자의 주치의들이다.’

     

    승계권자의 주치의가 자신을 포함해 넷, 황제의 주치의가 하나.

     

    황실이 승계권자끼리 파벌이 나뉜 대로, 내의원 역시 주치의들을 따라 갈라져 있다.

     

    ‘이번에 한 명이 추가되면 총 여섯이 된다. 원하는 자를 뽑아 부하로 만들면 여섯 중 둘의 파벌. 이건 절대 무시 못 해.’

     

    팔켄하인은 이번에 자신의 손으로 뽑은 젊은 주치의와 합치해 내의원에서 세력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었다.

     

    ‘써먹기 좋은 녀석은 책상에서 공부만 한 젊은이다. 신앙심이 가장 높은 녀석을 뽑으면 돼. 마침 내게는 신앙심을 확인할 수 있는 눈이 있지.’

     

    자신의 왼눈에 새겨진 성흔. 신앙심을 보는 눈이 그에게 주어진 재능이었다.

     

    ‘발두어 고트베르크, 이 남자의 신앙심도 상당하군. 무지막지한 아우라가 보여. 정치도 모르는 것 같고, 치유사로서 실력은 진짜인 모양이야.’

     

    왼눈을 슥 손등으로 훔치며 팔켄하인은 시험장으로 들어섰다.

     

    팟, 조명이 켜진다.

     

    반투명한 천막 뒤로 세 명의 치유사의 실루엣이 드리운다.

     

    ‘어디 보자, 신앙심이 가장 높은 후보가….’

     

    세 사람을 번갈아 보던 팔켄하인은 별안간 쿠당탕! 앉아있던 의자에서 넘어지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팔켄하인 경? 무슨 일이십니까?”

     

    “아, 아니… 괜찮소.”

     

    팔켄하인은 식은땀을 훔치며 눈을 몇 번이고 꿈뻑거렸다.

     

    …아무리 다시 봐도 한 명의 후보.

     

    시선을 그에게 향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왼눈을 온통 빛으로 가려버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이 신앙심은 대체… 성녀라도 강림했단 말인가?!’

     

    팔켄하임이 침을 꿀꺽 삼키고는 발두어에게 물었다.

     

    “호, 혹시 후보에 여성이 있소?”

     

    “전원 남성입니다.”

     

    ‘성녀가 아니라 성자인가! 맙소사.’

     

    그 아우라를 목도한 순간 팔켄하임의 머릿속에서 정치는 뒷전으로 밀려난 후였다.

     

    이미 그에게는 경건한 마음가짐만이 남아 번뇌가 씻겨나가고 있었다.

     

    ‘이런 분을 내의원에서 놓칠 순 없다. 내 편이 안 되더라도 반드시 뽑아야만 해.’

     

    이런 신앙심이면 볼 것도 없다, 에메랄드 해츨링 치유 과제도 훌륭히 해내리라.

     

     

    시험이 진행된다.

     

    마지막으로 그 후보의 순서가 됐다.

     

    ‘과연 어떤 치유주문을 보여주실 것인지!’

     

    그가 머리를 벅벅 긁고는 한숨을 쉬었다.

     

    ―끼에엑! 끼에에엑!!

     

    해츨링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후보가 해츨링의 입을 억지로 벌려 무언가를 강제로 먹이고 있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감독중이던 상급치유사들이 난입해 그를 저지하는 모습이 보였다.

     

    실루엣이 이리저리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니 판토마임 같기도 하다.

     

    실랑이 끝에, 천막 뒤에서 버럭 화로 가득 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치유술 말고 다른 과제로 합시다 좀! 내가 사람 고치려고 나왔지 도마뱀이나 보고 있어야 해?!”

     

    팔켄하인이 입을 쩍 벌린 채 얼어붙었다.

     

    천천히 발두어를 돌아본다.

    그 역시 예상 못 한 사태였는지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후보는 힘들 것 같군요. 시험 전부터 치유술이 아니라 다른 방식을 쓰겠다고 전달받긴 했습니다만, 에메랄드 드래곤이 과제 내용이어서야….”

     

    “치, 치유술이 아닌 방식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나 쟤 합격시켜야 하는데.

     

    팔켄하인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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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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