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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레몬이 오들오들 떨며 자신의 레모네이드를 치우는 사이.

       

       나와 리디아는 약탈자의 시체를 파밍하고 있었다.

       

       …물론, 몬스터처럼 어느 한 군데를 잘라서 부산물이랍시고 내다 파는 건 아니다.

       

       그건 좀 미친놈 같지 않은가.

       

       평범하게 쓸만한 장비를 따로 빼두거나, 주머니를 턴다거나, 혹시 모르니 누구였는지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물건도 챙기는 것뿐이다.

       

       그렇게 추리고 추렸음에도 꽉꽉 찬 배낭 3개가 늘어나더라. 나는 기존의 하나도 감당하기 버거워, 전부 리디아가 대신 들어주었지만.

       

       “세상에. 왜 약탈자 짓을 하는지 좀 알 것 같네요. 저희가 지금껏 번 돈에 몇 배에요 이게?”

       

       “…요나.”

       

       “에헤이. 그냥 알것 같다는 거지, 제가 약탈자가 되겠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근데 이건 분배 어떻게 해요? 몬스터는 제가 잡았으니 저한테 주신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잖아요.”

       

       “똑같아. 내가 쓰러뜨린 약탈자는 내 수익. 요나가 쓰러뜨린 약탈자는 요나의 수익.”

       

       “아하?”

       

       게일의 장비는 1층에서 활동하는 것 치고 상당히 튼실했다. 몬스터가 아닌, 모험가를 사냥하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내가 게일의 장비를 직접 사용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려나.

       

       전체적으로 사이즈가 너무 안 맞는다. 갑옷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쓸만한 장검은 너무 무거워서 속도라는 내 장점을 버려야 하더라.

       

       심지어 게일 이 녀석은 치장에 왜 그리 집착하는지, 보조 무기 대신 화장품과 장신구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더라.

       

       아티팩트 같은 게 아니다. 그냥 장신구다. 목걸이, 팔찌, 반지, 귀걸이 등등. 그냥 예쁘기만 한 그 장신구 말이다.

       

       “아…이거 팔면 얼마나 나오려나요.”

       

       “요나는 이런 거에 관심 없어?”

       

       “전 워낙 본판이 잘생겨서 화장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장신구는…저한테 어울리려면 꽤 비싼 녀석이어야 할 걸요?”

       

       이건 자만이 아니라 진심이다. 이 몸뚱이는 내가 생각해도 감탄스러울 정도로 매력적인 외모를 타고났으니까.

       

       이런 중세가 아니라 현대였다면 바로 인방 틀어서 육수 끓였을 텐데…아니면 전생에 하던 대로 글을 계속 쓰는 것도 괜찮겠지.

       

       미소녀 야설 작가…이 얼마나 개 꼴리는 단어란 말인가.

       

       뭐, 남역이니 미소년이겠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현대는 외모를 무기로 잘 활용할 수 있는 시대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판 대륙에서 내 얼굴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겠는가.

       

       창관 에이스, 꽃뱀, 좋게 쳐줘 봐야 귀족의 정부 정도겠지.

       

       …아니다. 하나 더 있구나.

       

       종종걸음으로 리디아의 앞을 가로질렀다. 그리고는 몸을 빙글 돌려, 눈을 마주 본 채 활짝 웃어 보였다.

       

       그렇다. 외모를 이용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용하는 것. 그게 지금의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였다.

       

       “어때요?”

       

       “? 뭐가.”

       

       “저 말이에요. 아직 어려서 귀엽다는 느낌이 더 강하지만 엄청 잘 생기지 않았나요?”

       

       큰맘 먹고 검지로 볼을 콕 찍은 자세로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무리 나라도 이건 좀 각오가 필요한 동작이란 말이지.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걸까. 리디아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들이대면 인정하기 싫지만 맞는 말.”

       

       “근데 왜 엘리는 안 넘어오는 걸까요? 제대로 흥분하는 것 같긴 한데….”

       

       “그걸 정말 몰라서 그래?”

       

       어이없어하는 리디아가 손가락을 꼽아가며 이유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우선 어리다는 게 문제. 엘리 선배에게 요나는 지켜야 할 보호 대상이지, 연애 대상이 아냐.”

       

       “그건 좀 뼈 아프네요. 제가 뭘 어찌할 수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요.”

       

       “두 번째로는 항상 하는 말이 문제. 몸과 재산이 목적이라 하면 여자는 누구나 경계해. 특히 가진 게 많은 전 고위 모험가라면 말할 것도 없어.”

       

       “쓰으읍…최대한 솔직하게 말한 건데 말이죠. 혹시 저런 느낌으로 오해받고 있나요?”

       

       레몬과 애플이 번갈아 가면서 업고 다니는 게일을 가리켰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회복시켰기에 어쩔 수 없이 맡겼는데….

       

       “…지금 쟤네 뭐하는 거야.”

       

       “은근슬쩍 더듬는 것 같은데요. 엉덩이라던가 허벅지 위주로.”

       

       “역시 그렇지?”

       

       “곤란하네요. 남의 물건을 공짜로 만지는 건. 이러니까 양아치란!”

       

       “물…건?”

       

       리디아가 흠칫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약탈자는 살아있어도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이 이 세계의 룰. 즉, 지금은 내 전리품이라는 소리다. 이용료를 받아도 이상할 건 없다.

       

       무상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깐프들에게 알려줘야지!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혹시 제가 엘리에게 저런 느낌으로 취급받는 건 아니겠죠?”

       

       “그건 아냐. 엘리 선배는 요나가 배신하진 않을 거라 믿으니까. 다만…처녀를 오래 간직할수록 환상이 깊어지는 건 어쩔 수 없어.”

       

       “아. 뭔지 알것 같네요. 첫 경험은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거 말이죠?”

       

       “응.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그러면 꼴불견이지?”

       

       “에이. 전 좋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녀 상관없이 누구나 처음에는 환상을 가지는 법이잖아요?”

       

       “…그래?”

       

       어쩐지 기분 좋아 보이는 리디아. 평소보다 아주 살짝 붉어진 볼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리디아 님도 첫 경험에 대한 환상 같은 거 있나요?”

       

       “없진 않아. 엘리 선배만큼 집착하지는 않지만.”

       

       “헤에. 나중을 위해 물어보겠는데, 어떤 느낌의 환상인가요?”

       

       “그냥……아.”

       

       무언가 말하려다 말고 멈칫한 리디아. 그녀가 미간을 좁히고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아무한테나 물어보면 안 돼.”

       

       “에이. 리디아 님이 아무나는 아니죠. 엘리 다음으로 좋아하는걸요?”

       

       순간 리디아가 흠칫하긴 했지만, 이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안 돼.”

       

       “참고로 엘리는 남자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전신에 이빨 자국 같은 걸 남기는 게 좋은가 봐요.”

       

       “그걸 요나가 어떻게 알아…?”

       

       여차하면 오늘 엘리와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굴길래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엘리의 방에 그런 내용의 책이 가장 많았거든요.”

       

       “하아…엘리 선배….”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푸욱 내쉬는 리디아. 여러모로 할 말이 많지만, 내 앞이라 참는다는 느낌이 좀 좋네.

       

       그래도 너무 곤란하게 하는 건 미안하니 슬슬 주제를 돌려야지.

       

       “리디아 님이 싫어하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죠. 다음 이유는 뭔가요?”

       

       “다음? 아, 세 번째 이유 말이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꾹 다무는 리디아.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저번에 같이 데이트(강매)한 이후로 자주 짓는 자애로운 표정이 되었다.

       

       “그건 요나도 잘 알고 있어.”

       

       “제가요?”

       

       “응. 저번에 직접 말했잖아. 아직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엘리 정도면 좋아하는 거 맞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문제. 엘리 선배는 요나의 호의를 순수한 사랑이 아닐 수 있다며 걱정하는 거야. 뒤늦게 깨닫고 후회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요나가 평범한 행복을 누리길 원하니까.”

       

       “대충 뉘앙스는 알겠지만…걱정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어쩔 수 없어. 엘리 선배는 요나를 아끼니까.”

       

       “…….”

       

       그런 소리를 들으면 좀 부끄러워진단 말이지.

       

       괜시리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에 헛기침을 하며 들은 이야기를 정리했다.

       

       “흠흠. 요약하자면 엘리가 쫄보라 그렇다는 소리죠?”

       

       “…응?”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 리디아에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보호 대상이라고 해서 연애 대상이 될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자기 욕망을 마주할 용기가 부족한 거죠.”

       

       “…잘못 건드리면 잡혀가는데? 몸과 재산이 목적이라는 것도 문제잖아.”

       

       “저 같은 미소년을 얻는데 자기 인생을 거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이것도 용기가 부족해서 그런 거예요. 응응.”

       

       반대로 내가 엘리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든 가진 전부를 내걸었으리라. 얼마 없긴 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기가 찬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는 리디아.

       

       “하아…그럼 마지막은?”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그럼 제대로 반하게 만들면 그만이라며, 반드시 행복하게 해줄게! 같은 말을 했어야죠.”

       

       내 말에 리디아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픽 웃어버렸다.

       

       “요나다운 대답이네.”

       

       “그렇죠? 나중에 리디아도 써먹어도 괜찮으니 잘 기억해 두세요.”

       

       “내가 이걸 기억해서 뭐 해.”

       

       “제 공략법이니 분명 어딘가에 쓸모가 있지 않을까요?”

       

       판 대륙에 남은 유일한 신이 사랑의 여신이기 때문일까. 이 세계는 연애나 성적인 일에 꽤 관대하다.

       

       창관이 불법이 아닌 것도 그래서고, 지난 1,000년 사이에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그래서다.

       

       당연히 결혼이나 연애도 꼭 한 명이랑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기혼자가 다른 사람이랑 야스를 해도 문제 되지 않을 정도니 말 다 했지.

       

       단, 이 모든 것은 관계자 전원의 허락을 전제로 한다.

       

       만약 내가 엘리랑 사귀면서 리디아랑도 사귀고 싶다면, 둘 모두로부터 양다리 걸쳐도 괜찮다는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

       

       그런 의미에서 재산은 얼마 없지만, 그 외에는 여러모로 훌륭한 리디아에게 내 공략법을 알려주는 건 꽤 유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나의 공략법. 엘리 선배가 얼마에 사주려나…요즘 엘븐메탈제 세검이 하나 필요했던 참인데.”

       

       “……판매금의 절반은 저 주셔야 해요?”

       

       아무래도 새 무기보다 못한 정보였나 보네.

       

       머쓱함에 괜히 팔을 빙빙 돌리며 어깨를 푸는 것도 잠시.

       

       “맞다. 리디아 님. 길드에서 정산 끝나고 나면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조금 전의 치명적인 척하는 내 모습을 본 걸까. 이쪽을 힐끔거리며 수군대는 레몬과 애플. 둘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사정을 설명했다.

       

       이러쿵저러쿵 구리구리오리너구리.

       

       “잘만 하면 리디아 님에게 진 빚을 전부 갚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에.”

       

       리디아의 눈이 짜게 식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에 진쟈 큰 맘먹고 비싼 헤드폰을 질렀습니다.

    근데 좋은 헤드폰은 좋은 dac나 앰프가 필요하다네요…?

    글…열심히 써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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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acha – Civilization’s Ultimate Game. Spin now for a shot at fortune. Spending that doesn’t disrupt your lifestyle? That’s virtually free-to-play. Keep spinning until you strike gold – success is guaranteed. … … Today, yet again, I’m at the gacha wheel. “Did I get a 5-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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