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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

        

       [ 초월자마다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우리 초월자들은 인간을 매우 좋아한다. ]

         

       초월자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종은 딱 그런 위치였다.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초월자보다는 한없이 약한, 그런데도 생김새와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즐거운 존재.

       인간으로 따지자면 귀여운 동물을 보는 듯한 시선이다.

         

       그렇기에 인간에게 접촉해서 그들을 귀여워했다.

         

       어떤 초월자는 어린 천재에게 접근해 자신의 취향으로 바꾸어간다.

       어떤 초월자는 자신 취향인 인간에게 접근해 후원이란 이름의 먹이를 뿌린다.

       어떤 초월자는 취향에 맞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하기를 즐긴다.

         

       인간 중 몇몇은 그것을 초월자가 자신들을 길들이는 것이라고, 인간이란 종이 초월자의 애완동물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며 초월종들을 경계하자는 주장을 하곤 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초월자는 인간이 귀여웠고, 인간은 초월자의 도움을 받아 행복했는데.

         

       그리고 이 관계는 인간 출신 첫 번째 초월자가 나타나도 바뀌지 않았다. 아니, 어찌 보면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초월자가 인간을 귀여워하며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인간 중에서 첫 초월자가 출현했다.

         

       자신을 길가메시(𒄑𒉈𒂵𒈩)라 말한 영웅은 온갖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점차 성장하며 마침내 종을 초월하고 초월자의 위치에 올랐고, 승천과 함께 초월자들이 거주하는 상위차원에 도달했다.

         

       그리고 길가메시를 본 초월자들은….

       환호했다.

         

       광분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자신들이 귀여워하던 종족에서 첫 초월자가 나왔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을 테고, 초월자라는 존재가 쉽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니만큼 그것에 대해 환호한 것도 있었을 테고….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외모였다.

         

       [ 인간은 초월 전에는 귀엽고, 초월 후에도 귀엽다. 이러한데 어찌 인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

         

       초월이라는 것은 존재를 뒤바꾸는 것이다.

       3차원에 머무는 존재가 4차원으로, 5차원으로 승격되는 것.

       당연히 그와 맞게 모든 것이 격변한다.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탈바꿈되듯, 종을 뛰어넘어 하나의 개체로서 완성이 되는 것이다.

         

       인간종 역시 초월과 함께 하나의 개체로서 완성이 되었고, 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렇기에 초월자들은 인간 출신 첫 번째 초월자가 등장한다고 해도 자신들과 비슷한 모습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너무나 기쁘게도 그 기대는 배반당했다.

         

       인간이란 종이 가지는 특이성 때문인지, 아니면 초월을 하게 된 계기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원형을 유지한 채 초월을 한 것이다.

         

       그 이후에도 깨달음을 매개로 초월한 인간, 영혼을 매개로 초월한 인간 등 심심찮게 초월을 하게 되는 인간들이 나타났고, 그들 역시 인간일 때의 원형을 최소한이나마 유지한다는 점에서 다른 초월자들의 사랑과 귀여움을 듬뿍 받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초월자들이 인간에게 우호적인 이유였다.

       만약 초월자들의 시선에 인간이 바퀴벌레같이 끔찍할 정도로 혐오스러운 외모로 보였다면 지금처럼 ‘계약자’라는 존재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니.

         

       인간은 자신의 귀여움에 감사해야만 했다.

         

       “맨날 귀엽다 귀엽다…. 한 게…. 진짜…?”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들은 이세린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실망해야 할지….

       그녀는 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미묘한 얼굴로 악마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불편한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자 주제를 바꾸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오, 오빠가 이상하다는 게 무슨 말…?”

         

       악마는 이세린의 귀여운 모습을 흐뭇하게 감상하다가 진성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다시 얼굴에 혐오감이 떠올랐다. 악마는 이걸 뭐라고 말해야 고민하는 듯 머뭇거렸다.

         

       [ 우리 초월자는 업(業)을 볼 수 있다. ]

       “으, 응. 학교에서 배웠어…. 카르마와 다르마로 나뉜다고….”

       [ 그렇다면 그것이 정확히 어떠한 것인지도 알고 있느냐? ]

       “아니…. 그거는…. 대학원 가면 배울 수 있다고…. 생각 있냐고 하던데….”

       [ 아직 대학교도 가지 않은 사람에게 대학원이라니. 끔찍하도다. 그 악귀 같은 존재와는 친해지지 않는 것이 좋겠다. ]

         

       악마는 이세린에 그리 충고하고는 말을 이었다.

         

       [ 이 업을 보는 방식은 초월자마다 다르다. 이는 각 생물의 감각이 다른 것과 같다. 같은 물체를 본다 한들 곤충의 눈과 사람의 눈이 같을 수 없고, 같은 것을 듣는다 한들 토끼의 귀와 박쥐의 귀가 같을 수는 없는 것과 같으니. ]

       “응…. 그렇겠지…?”

       [ 마찬가지로 초월자들이 업을 보는 방식 역시 이와 같다. 그러니 같은 것을 보더라도 이해하는 것이 다르고, 목격하는 것이 다르나 그 본질만큼은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감각에 관한 것이니 남에게 구전하기는 어려운 바, 하여 인간에게 업(業)의 존재가 미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

         

       감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박쥐의 초음파를 아무리 묘사한들 그것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으며, 하늘을 나는 매가 보는 시야와 색감을 설명한다 한들 그것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업을 보고 느끼는 것 역시 그것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그리고 말한다 한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악마는 계약자에게 비유를 사용해 설명하는 것을 즐겼다.

       그것이 가장 이해가 쉽기도 하고, 말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으니까.

       다만 비유이기 때문에 잘못 전달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을 뿐.

         

       [ 비유하자면 업은 너의 외형(外形)과 내형(內形)이다. 영혼과 육신은 너를 이루는 태이며 네가 가진 시작이자 틀. 정신은 고정해주는 기둥이자 못. 그리고 업은 그 외의 외형과 내형을 이루는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

       “어려워….”

       [ 그럴 것이다. 결여된 것을 듣고 이해한다는 것은 천재조차 어려워하는 것. ]

         

       악마는 이세린이 이해하는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는 듯 말했다. 모자란 아이를 보는 듯한 시선에 이세린은 살짝 화가 나려고 했으나, 악마가 이어서 말한 말에 다시 묘한 얼굴로 악마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아까 말했던 새끼 고양이로 비유하자면…. 그래. 계약자야, 이해력은 약간 부족하지만, 상상력은 좋은 나의 계약자야. 상상해보아라. 눈을 감고 떠올려 보도록 하여라. 너는 호기심이 많고 눈이 똘망똘망한 검은 고양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가슴팍에는 나의 문장이 새겨져 있고, 등에는 외과 도구를 가득 메고 있도다. 거기에 온몸에 보석 액세서리를 차고 있어 반짝이는 모습이니. ]

       “귀엽겠네…?”

       [ 그러하노라. ]

         

       이세린은 악마의 말대로 모습을 떠올리곤 지금까지의 악마의 설명을 이해하고 말았다.

       당장 자신의 눈앞에 그런 새끼 고양이가 있다면 힘껏 귀여워해 줄 자신이 있었으니까.

         

       [ 여기서 고양이의 종(種)과 유전자가 육체와 영혼이고, 그 성격이 정신이로다. 그리고 그 외의 모든 것. 고양이를 이루는 살, 지방, 내장, 근육, 뇌, 눈, 체모. 가슴팍에 새겨진 문장, 몸에 걸친 액세서리와 도구들이 바로 업이니라. 다만 이는 정확한 설명이 아니니 대략 이러하다고 이해만 하면 될 것이다. ]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초월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느니라.

         

       악마는 그리 말하곤 이세린을 쳐다보았다.

         

       [ 그리고 이것이 바로 초월자들이 주술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로다. ]

       “아, 그러고 보니…. 주술사는 계약자가 역사상 딱 세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는데…?”

       [ 그것도 특이한 취향을 가진 초월자 덕에 나타난 것이니라. ]

       “학교에서는 그냥 그렇게만 말하고 끝났는데….”

       [ 그리하겠지. ]

         

       악마는 바닥을 은 발굽으로 툭툭 치더니 말했다.

         

       [ 인간은 그 어떤 능력을 익힌다 한들 그 본질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무인이면 고양이가 칼을 들고, 마법사면 고양이가 마법을 쓸 뿐이니라. 소환수와 상호작용을 하는 소환사조차 고양이의 냄새와 버릇이 바뀌는 정도이니, 그 귀여움은 그대로 유지 되노라. ]

       “고양이….”

       [ 그런데 주술이라는 것은 참으로 기묘해서…. 어떤 주술들은 업 외의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 ]

         

       업이란 궤적이자 흔적.

       하지만 궤적이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부술 수 없으며 흔적이 그 주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업이 쌓이고 모습을 바꾼다 한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주술은 본질마저 뒤바꿔버리니.

         

       그 모습은 초월자들이 보기엔 흉측하거나 기괴하게 보이는 일이 많았다.

         

       [ 내가 아까 새끼 고양이에 비유했으니, 이 역시 새끼 고양이에 비유하겠다. ]

         

       날개가 달린 새끼 고양이.

       머리에 뿔이 달린 새끼 고양이.

       등에 거북이 등딱지를 메고 다니는 새끼 고양이.

       다리가 없고 뱀처럼 기어 다니는 새끼 고양이.

         

       [ 그나마 새끼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다행이지. 심할 때는 호랑이나 사자, 표범으로 변해버리거나 아예 골렘 고양이가 되는 예도 있다. 이러니 어찌 주술사를 좋아할 수 있겠느냐. ]

       “그래도 계약자랑 초월종들이…. 주술사 배척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 당연하다. 다르게 생긴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지 않으냐. 모습이 변했다 한들 나름의 귀여움은 있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한들 배척할 이유는 되지 않느니. ]

         

       악마는 잠깐 쉬고 말을 이었다.

         

       [ 그런데…. 네 오빠는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에 가깝구나. ]

         

       틀리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리다?

         

       세린은 악마의 말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앞서 악마가 설명했던 말에 따르면 주술사는 본질의 모습을 바꾼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본질의 모습을 보고 ‘틀리다’라고 표현할 정도라면 진성의 몸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 이야기를 하나 하겠노라. ]

       “으, 으응….”

       [ 네가 평범한 사람이라 가정을 해보자. 길을 걷는데 네 옆을 스쳐 지나가는 어떤 평범한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의 옷차림은 평범했으며 얼굴 역시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얼굴이었다. 키나 덩치 역시 특출난 데 없이 왜소하지도, 크지도 않았다. 잘 살펴보아도 모든 것이 평범하다. 그렇다면 계악자야. 너는 그 남자에게서 이상함을 느끼겠느냐? ]

       “아, 아니. 그럴 리가….”

       [ 그 후에 너는 한밤중에 기다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 남자를 또 보았다. 처음 보았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한 그 남자는 다시 한번 잘 살펴봐도 평범하다. 키도 처음과 같고, 덩치도 처음과 같다. 처음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자, 이상함을 느꼈느냐? ]

       “아니.”

       [ 그 후에 너는 다시 한번 그 남자를 보았다. 저 멀리 수평선 끝자락에 서 있는 그 남자는 네가 보았던 모습 그대로. 길거리에서 비슷한 사람을 두세 번은 족히 마주쳤을 평범한 모습을 한 채 서 있도다. 찬찬히 잘 살펴보아도 이상한 점은 없다. ]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은데…?”

         

       악마는 웃었다.

         

       [ 그렇다면 묻노라. 계약자야, 나의 계약자야. ]

         

       언제 보더라도 모습이 변하지 않으며.

       거리에 상관없이 그 모습을 뚜렷하게 볼 수 있으며.

       어둠을 무시하고 대낮처럼 그 모습을 인지할 수 있으며.

       원근감을 무시하고.

       수평선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을.

         

       [ 인간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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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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