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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슬라그보르트 제과 공장 안에는 언뜻 봐서는 그 용도를 알기 힘든 작은 3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었다. 물론 작다고는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장의 규모에 비해 작다는 것이지 어지간한 주택 몇 개 합친 것보다는 컸다.

       

       그 건물은 홀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건축 양식도 상당히 구식이었으며, 보수를 한 지도 꽤 오래되어 겉모습이 상당히 낡아 있었다.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공장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그런지 건물은 본래 나이보다 더 늙어 보였다.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수식어는 그 외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용도나 위치 선정도 문제였다. 아무런 기능도 없는 주제에 떡하니 공장의 한중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장 직원 누구도 그 건물이 왜 그곳에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은 이 회사의 모든 것이 시작된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작이 일개 제과사였던 시절, 그의 가게였던 건물이었다. 원래 다른 거리에 있던 그것을 공작이 통째로 사들여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건물은 비록 낡고 오래되긴 했지만, 그 내부는 깨끗했다.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관리한 덕분이었다.

       

       <다섯 곡예사>의 연습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도 바로 이곳이었다.

       공작에게 의뢰받은 11명의 곡예사는 그날부터 이곳에서 숙식하며 공연 준비에 전념했다.

       

       공작의 사병들이 24시간 이곳을 경비하며 출입을 통제했다.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공작은 초연을 감상하기 전까지는 외부에 작은 정보라도 알리기 싫어했다.

       

       실제로 안에 침입하려는 시도도 몇 번 있었다.

       대부분은 시도만으로 그쳤지만, 한 번은 성공할 뻔도 했다. 기자 몇 명이 공장 작업복을 훔쳐 입고 직원인 척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연습실에 방치되어 있던 대본 한 부를 훔쳐 달아났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거동을 수상하게 여긴 병사들이 그들을 붙잡은 덕에 그것이 밖으로 유출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환상의 13번’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신문에서는 매일 한 면을 할애해 해당 소식을 전할 정도였다.

       

       새로 밝혀진 사실이 없어서 그런지 대부분 비슷한 내용의 반복이었다.

       극의 내용을 추측하거나, 공작이 입수했다는 극본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표하거나, 전 인류의 문화 자산이 되어야 할 물건을 독점하는 공작의 행태를 규탄하거나.

       

       다행히 공작이 초청한 곡예사들에 대한 비판은 별로 나오지 않았다. 안에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 찔러볼 거리가 없는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오롯이 공연을 준비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감독을 선발했다. 아무리 대본이 좋고 배우들의 실력이 뛰어나도 무대 전체를 조율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공연은 난항을 겪기 마련이었다.

       

       “내가 맡지. 불만 있는 사람 있나?”

       

       로드 판타스틱이 뻔뻔스럽게도 자신을 추천하고 나섰다.

       아무도 그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성이야 어떻든 여기에 그만큼 다양한 곡예사들을 이끌어본 경험자가 없었다.

       

       <다섯 곡예사>는 크리스티앙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실험적인 요소가 몇 가지 가미되어 있었다.

       

       우선 무대 위에 오르는 배우는 주인공과 곡예사들을 포함해 여섯 명뿐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은 인형이나 패널, 그림자 따위로 표현되었다. 그들은 형체도 모호하거나 과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사 역시 없었다.

       

       “아, 그러시군요.”

       “궁정 광대라니. 저런 꼬마가 맡기에 너무 과분한 직책 아닌가요?”

       “내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겁니까?”

       

       그들과 주연들 간의 대화는 오직 주연의 대사로만 진행되었다. 관객들은 그가 반응하는 것을 통해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관객들의 혼란을 유발할 것 같았지만, 크리스티앙이 대화를 어찌나 재치 있게 구성했는지 상대가 어떤 말을 했는지 보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연습을 구경하다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몇몇 부분에서는 일부러 대화를 중의적으로 깔아서 관객들의 착각을 유발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본이 동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다섯 곡예사가 맡은 캐릭터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각 곡예사는 왕위계승권자일 수도, 암살자일 수도, 야심가일 수도, 궁정 광대의 제자일 수도, 빈민가의 가장일 수도 있었다.

       

       대본은 어떤 곡예사가 어떤 캐릭터를 맡냐에 따라서 그려지는 그림이 달라졌다.

       

       예를 들어 주인공에게 ‘야심가’가 잔인한 궁정의 현실을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지시문에는 [17번 곡예로 주인공이 예쁘다고 감탄한 인형들을 부순다]라고만 적혀 있었다.

       

       야심가가 차력사라면 그것들을 악력으로 으스러뜨렸다. 단검 곡예사라면 단검을 날려 인형의 목을 모두 떨어트렸고, 조련사라면 길들인 늑대를 통해 그것들을 모두 삼켜버렸다. 땅재주꾼이라면 그것들을 발로 짓밟아 모두 납작하게 만들었으며, 줄타기 곡예사라면 난간 위에 세운 뒤 모두 절벽으로 떨어트려 버렸다.

       

       그렇게 행하는 곡예는 달랐지만, 모두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너도 저렇게 될 거야, 불쌍한 광대. 내 미소는 웃음이 아니라 비웃음이라고.

       

       각 곡예사에게는 수십 개의 기술이 배정되어 있었다. 아주 쉬운 기초 곡예도 있었고, 어려운 응용 곡예도 있었으며, 크리스티앙이 직접 고안한 창작 곡예도 있었다.

       

       배우들은 그것들을 모두 암기한 상태로 지시문에 따르는 것이었다.

       

       원더스타인은 그것이 마치 액션 게임 같다고 여겼다. 커맨드를 입력하면 캐릭터마다 배정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 것이다.

       

       엘라는 지금까지 크리스티앙이 쓴 대본 중에 곡예사로서의 기량을 가장 많이 요구한다고 평했다.

       

       “우으으, 이거 쉽지 않은데? 제대로 오디션 봐서 뽑았으면, 나 절대 합격 못 했을 거야.”

         

       카렌이 우는소리를 했다.

       평소의 당당하고 넉살 좋은 태도 때문에 알아차리기 어려웠지만, 그녀는 의외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많이 쓰는 편이었다.어쩌다 한 번 실수라도 하면 괜히 주변 눈치를 보며 주눅이 들곤 했다.

       

       그럴 때는 마야를 불러 그녀를 다독여 줘야 했다.

       

       “멍청이.”

       “고, 고마워, 마야. 위로해줘서……. 나 열심히 할게!”

       

       그러면 신기하게도 카렌이 기운을 되찾았다. 저게 어떻게 위로하는 건지는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나이가 어려서 이런 훈련을 감당할 수 있겠나 싶었던 루엘로는 의외로 상당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한 번도 불평하지 않았고, 실수해도 묵묵히 시킨 동작을 반복했다.

       

       “은하수를 맞았던 때보다는 덜 힘들어요.”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는 한 번은 불치병에 걸렸던 몸이었다. 그래서 고통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힘든 것에는 무덤덤하던 그녀가 발랄하거나 활기찬 연기를 해야 할 때는 부끄러움을 심하게 탔다.

       

       “저, 저도 오디션을 봐서 뽑았으면 떨어졌을 거예요…….”

       “무슨 소리! 우리 딸이었으면 미모로 바로 합격이지!”

       “그, 그만 해요, 아빠……”

       

       물론 가장 부끄러워할 때는 미노바가 팔불출 짓거리를 할 때였다.

       

       같은 불치병 출신(?)이라 해도 클라라는 고통 앞에서는 오만가지 호들갑을 다 떨었다. 여섯 명의 배우 중에서 그녀가 최연장자인데도 불구하고 나잇값을 전혀 하지 못했다. 조금 힘든 연습을 할라치면 대번 앓는 소리를 냈다.

       

       “나는 곡예 안 하는 조건으로 들어온 거란 말이야!”

       

       신기한 것은 그녀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요구하는 것은 척척 해냈다.

       곡예를 전혀 모르는 주인공이 어설프게 동료들의 재주를 따라 하는 장면은 로드 판타스틱이 감탄할 정도로 실감 났다. 거기다 대사도 원작에서 요구하는 그대로 완벽하게 해냈다.

       

       “과연 레카체프 수석 출신답군!”

       “‘초보자 흉내’가 원래 제일 어려운 법인데……. 후반부에 미묘하게 실력이 상승하는 디테일이 놀라워.”

       “클라라 선배도 그런 타입이었나 보네. 무대 위에 올라서야 스위치가 켜지는.”

       

       사람들은 그녀의 실력에 탄복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숨겨진 사정이 있었다.

       

       우선 그녀는 어설픈 실력을 지닌 주인공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실력이 어설픈 것이었다. 초반부에는 눈으로 상대가 재주를 펼치는 것을 보면서 그 자리에서 따라 하려다 보니 정말로 못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고, 후반부에서는 그래도 외운 재주를 혼자 펼치는 장면이다 보니 그나마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거기다 대사는 그녀가 틀리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지금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대본은 그녀가 엄청난 양의 주술 재료를 써가며 마신의 권능을 최대한 발휘해 몇 달에 걸쳐 복구한 것이었다.

       그녀가 십수 년 전의 대화를 발굴해 그대로 읊으면, 그것을 파이렌이 받아 적은 것이다.

       

       즉, 그녀는 원작자 본인에게 연기 지도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각자의 장단을 드러낸 3명과 달리 엘라와 레이나는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의 연기력은 연습하던 다른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뛰어났다.

       엘라는 검은색 종이를 대충 잘라놓은 것에 불과한 것을 정말 자신이 애정을 담아 키운 늑대인 것처럼 대했고, 레이나는 외나무다리에서 자신을 죽이려 드는 왕실 기사 그림자와 정말 목숨을 건 대전을 하는 것 같은 1인극을 펼쳤다.

       

       그러나 그들 6명 중에도 구멍이 있었다.

       나머지 5명과 달리 무대 위에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는 사람, 바로 마야였다.

       

       그녀는 마법 아카데미의 수석 출신답게 어려운 기술도 척척 해냈고, 대사나 지시문도 한 번 본 것으로 완벽하게 암기해버렸다.

       

       문제는 연기력이었다.

       그녀는 5명 중 가장 감정 표현이 적은 ‘암살자’ 역할을 맡았는데도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동작은 목석처럼 뻣뻣했고,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싸늘하고 무뚝뚝하기만 했다.

       

       듣던 관객은 물론이요, 함께 연기하는 사람의 몰입까지 깨버릴 지경이었다.

       결국 보다 못한 로드 판타스틱이 비장의 수를 가지고 나왔다.

       

       “내 인스피라 중 하나를 쓰지.”

       

       [거울 속의 마임]

       그가 가진 4개의 인스피라 중 하나로 바로 상대의 모든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혹은 상대가 자신의 모든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 하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는 마야가 무대 위에 오를 때, 거울 속의 마임을 그녀에게 적용해 본인이 직접 연기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르노가 ‘환상 성대’를 구현해서 그녀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하기로 했다.

       

       “정확히 말해 우리 부단장의 기술이지.”

       

       그는 묻지도 않은 것을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우와, ‘천의 목소리’의 비법이 이거였어요? 마야, 너도 할 수 있겠어?”

       “연구해보면.”

       

       그렇게 동작과 목소리는 두 사람에게 맡기고 그녀는 곡예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다섯 곡예사>의 많은 장면이 말 없는 대상을 상대로 1인극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서로 시간을 쪼개서 연습하기 좋았다.

       

       그 상대역인 그림자, 인형, 패널은 홉스가 전담해서 맡았다.

       땅재주를 익히는 과정에는 인형 탈을 쓰고 연습하는 게 있어서 그런지 그는 그 역할을 무척 잘 해냈다.

       합판의 그림에서 표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그것으로 가끔 의사전달이 되기도 했다.

       

       “…….”

       “물 좀 갖다 달라고요?”

       

       판자에 그려진 그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미노바가 노래 부르는 것을 지도하는 것으로 역할 배분이 마무리되었다.

       

       “저는 무슨 일을 하죠?”

       

       지몬은 원더스타인이 질문하는 것을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하나 있지. 무대와 상관없지만, 중요한 일이야. 모두를 뒤에서 돕는 일이지.”

       

       감독은 그에게 잡일 담당을 맡겼다.

       그건 의도적인 괴롭히기로 봐야 했다. 단장쯤이나 되는 사람에게 그런 하찮은 일을 시켜서 모욕감을 주는 것이다.

       

       “잡일꾼, 가서 바닥 좀 닦아놓게.”

       “이봐, 이 짐을 아침 식사 전까지 옮겨두라고 했지 않나?”

       

       이런 식이었다.

         

       엘라가 크게 반발하긴 했지만, 원더스타인은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어차피 다른 인원의 출입도 금지된 마당에 누군가는 꼭 맡아야 하는 일이긴 했다.

       

       우습게도 처음에는 그렇게 불만을 표했던 엘라가 나중에 가서는 그를 제일 많이 부려 먹고 있었다.

       

       “단장, 어깨 좀 주물러 줘!”

       “네, 갑니다.”

       “단장, 나랑 옥상에서 바람 좀 쐬자!”

       “네네, 알았어요.”

       

       그렇게 기분 나쁘진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그녀를 부려 먹은 게 더 많았으니까.

         

       무엇보다 이 정도는 우리 서커스단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임을 어필함으로써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그녀의 의도가 느껴졌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렇게 10일째 되는 날, 그들은 공작에게 무대를 보일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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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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