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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그 안식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너덜너덜해진 몸과 새빨갛게 변해버린 몸과는 별개로 그 얼굴에는 고통 한 점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편안하게 잠들어버린 아이처럼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그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너덜너덜해진 몸과 고통에 사무쳐 바르르 떨고 있는 몸과는 다르게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 얼굴이.

         

       미치시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괴리감으로 다가왔다.

         

       괴리에서 오는 위화감.

       위화감에서 오는 꺼림칙함.

       꺼림칙한 것에서 오는.

         

       공포.

         

       미치시게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주름이 가득 차 있었으며, 입술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그 모양새를 바꾸어갔다. 그리고 눈꼬리는 아래로 축 처지고 자극받은 눈에는 광택이 맴돌기 시작했다.

         

       그 모양새는 마치 울면서 웃는, 혹은 울고 싶은데 그 울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그런 모습과도 같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평화에 젖으면 위기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고 했던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무력과 재능이 뛰어나 제대로 된 위협을 겪지 못했던 미치시게는 정작 그 무력을 휘둘러야 할 상황이 오자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수가 없었다. 뇌가 마비된 듯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으며, 하얗게 변해버린 생각은 올바른 판단 대신에 본능에 몸을 맡겨 행동하게 했다.

         

       “빌어먹을! 검! 검만 있었어도!”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핑계를 대고 회피하는 일뿐.

       공포에 젖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음에도, 그 영향에서는 벗어나지 못해 추하게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여줄 뿐.

         

       그렇게 미치시게는 공포에 젖어 소리쳤고,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그리고 그 소리침의 마지막에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으니.

         

       “그렇지! 칼!”

         

       그것은 바로 죽은 료스케의 시신이 꼭 붙잡고 있는 돌로 만든 칼이었다.

       박물관에나 전시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이기는 했지만, 충분히 쓸 수 있는 칼이었다.

         

       송아지를 무리 없이 도축할 수 있을 정도로 날이 잘 갈려있는 것은 물론이고, 료스케가 그것을 들고 자기 몸을 난도질해서 죽였을 정도로 ‘실전성’이 증명된 무기였다.

         

       그는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물건을 발견하자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칼을 들면 그는 수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비효율적으로 마나를 뽑아내서 검의 형상으로 만드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검을 들고 마나를 뿜어내서 검기보다도 강력한 원거리 공격을 가할 수도 있으며, 검에 힘을 끌어모아서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다. 마나를 끈끈하고 날카롭게 만들어서 채찍처럼 휘둘러 지하 공간의 모든 벽면을 한 번에 베어버릴 수도 있으며, 검기를 고리 형태로 만들어 회전시켜 원하는 것을 갈아버릴 수도 있다.

         

       검만 있으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것이 설령 돌로 어설프게 만든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검만 있으면 이깟 주술 따위!”

         

       주술은 사술(邪術)에 불과한 것.

       그 기기괴괴하고 요악하기 짝이 없는 힘만큼은 인정할 수 있으나, 안정성만큼은 무공을 따라올 수가 없다.

       제 몸을 연료로 사용해서 피워내는 힘인 만큼 상대하기는 어려울 수는 있으나, 잘 단련된 정신과 육체라면 그 모든 것을 갈라버릴 수 있는 법!

         

       미치시게는 자신했다.

         

       칼만 있으면 이 사악한 의식에서 벗어나고, 주술을 행하고 있는 요괴 같은 작자를 토막 낼 수 있을 거라고!

       검을 잡으며 보내온 세월, 그리고 그 세월 동안 겹겹이 쌓인 무공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는 성큼성큼 죽은 료스케를 향해 다가갔다.

         

       『 이르기를, 시체 입자란 사람이 죽었을 때 생기는 것이며. 』

       『 내장을 파먹고 불어나 뱃가죽을 터뜨리고 사람에게 병을 옮긴다. 』

         

       그렇게 그가 다가가기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 료스케의 시체에 이변이 일어났다.

         

       피가 빠져나가 홀쭉해진 료스케의 몸이 풍선처럼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몸이 부풀면서 생기는 압력에 료스케의 눈이 툭 튀어나오고, 꺽-꺽 거리는 신음 같은 소리가 료스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새하얗게 질렸던 료스케의 몸은 순식간에 색이 변하기 시작하며 부패하기 시작하였으며, 몸을 감싸고 있던 가죽은 한껏 늘어나 얇아졌다.

         

       그 모습을 본 미치시게는 이변을 깨닫고 기겁하며 몸을 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있는 곳은 밀실.

         

       그것도 몸을 제대로 숨길 엄폐물도 제대로 없는 밀실이다.

         

       미치시게는 그것을 깨닫곤 마나를 끌어올리곤 몸을 바닥에 웅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풀어 오르는 료스케의 몸이 한계를 맞이하였고.

         

       퍼—-엉!

         

       강령술사들이 ‘시체폭발 주술’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주술이 료스케의 몸을 매개로 터졌다.

         

       료스케의 시신은 조각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으며, 조각조각 쪼개진 육신은 둔기나 다름없는 육중한 흉기가 되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섞여 있는 뼛조각들은 날카롭고 단단한 재질로 수류탄의 파편과 비슷한 위력을 내었으며, 몇몇 뼛조각들은 돌로 만든 벽에 박히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놀라운 폭발력은 지하 공간 전체에 골고루 피와 육신을 퍼뜨릴 정도였으니.

         

       그야말로 끔찍한 위력이었다.

         

         

         

        * * *

         

         

         

       삐이이이이-

         

       “끄, 끄으으윽.”

         

       미치시게는 거대한 소리 때문에 울리는 이명과 몸에 들러붙은 육편(肉片)이 주는 끔찍한 감촉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웅크린 몸을 풀고 마나를 거두곤 몸에 묻은 오물을 탁탁 털었고, 이명에 괴로워하면서도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나 꼿꼿이 섰다.

         

       “후우. 폭발이라니.”

         

       그는 한쪽 귀를 손으로 막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위력이 강하지 않아서 다행이군.”

         

       그는 몸에 어떠한 상처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거대한 굉음과는 달리 시체가 폭발하는 주술의 위력은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제대로 몸을 단련하거나 방어 수단이 없는 능력자라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탄탄한 몸을 가진데다가 마나로 몸을 둘러서 보호까지 한 그의 몸에는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가 없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와 망치로 두들기듯 몸을 때려야 했던 육편은 토마토 축제 때 던지는 토마토만큼이나 의미가 없는 충격을 주었고, 날카로운 뼛조각 역시 마나를 이기지 못해서 그대로 박살이 나버리거나 저지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후우.”

         

       삐이이이-

         

       다만 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소리라는 것은 마음먹고 마나로 막지 않는 이상은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료스케 때문에 한껏 오감을 끌어올린 상태였기에 더더욱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마나 때문에 강화된 청력은 거대한 소리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소리는 거대한 망치이자 괴물의 포효가 되어 그의 뇌를 뒤흔들어놓았다.

         

       아마 그가 무인이 아니었다면 이명이 들리는 정도로 끝나지 않았으리라.

         

       아마 기절하지 않았을까?

         

       웅크린 그 자세 그대로, 기절을.

         

       삐이이이이-

         

       “크윽.”

       

       미치시게는 예고 없이 다시 찾아온 이명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귀를 찢어버리고 뇌를 흔들어버릴 기세로 거대한 이명이 들렸고, 그와 함께 시야가 왜곡되며 이리저리 흔들림과 함께 몸이 살짝 휘청이기까지 했다.

         

       ‘귀에 이상이 생겼군.’

         

       거대한 소리.

       료스케의 몸이 터질 때 난 그 소리가 문제였다.

         

       미치시게는 그렇게 생각하며 료스케가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끔찍하군.’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보인 것은 이제는 제 흔적을 찾아보기도 힘든 핏자국.

         

       폭탄이 터진 곳에서 발견되는 흔적처럼 핏자국이 바닥에 나 있었으며, 송아지의 것인지 료스케의 것인지 모르는 파편들만이 어지러이 널브러져 있었다. 게다가 폭발에 수레 역시 휘말리기라도 한 것인지 귀금속으로 만들었던 쟁반과 대야, 잔이 죄다 박살이 나서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이는 칼 역시 마찬가지.

         

       돌로 만든 칼 역시 폭발에 휘말려 저 멀리에 날아가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파손 정도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

         

       곳곳에 이가 나가고 손잡이가 떨어질 듯 덜렁거리고 있기는 했지만, 간신히 칼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 정도라도 감지덕지다.’

         

       미치시게는 저 수준이라도 쓸 수 있다고, 완전히 부서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칼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삐이-

         

       귀에서 들리는 이명과 어지러운 시야 때문에 주위를 둘러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오직 바닥에 놓인 칼 하나만을 눈에 담은 채 목표로 천천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그가 절반 정도 걸어갔을 때.

         

       스윽.

         

       저 멀리서 누군가가 칼을 주웠다.

         

       “어?”

         

       남성의 것으로 추정되는 하얀 손.

       발목까지 오는 치마 같은 옷.

       거기다가 끔찍한 지하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너무나도 깨끗한 맨발까지.

         

       삐이이이-

         

       미치시게는 쓰러질 것 같이 휘청이는 몸을 움직여 고개를 들어 칼을 주운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젊다 못해 어려 보이는 남성의 모습.

         

       그는 고대 서양에서나 입었을 법한 치마가 있는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어깨에는 전신을 덮을 것 같은 직사각형 모양의 두꺼운 천을 걸치고 있었다. 그것은 바닥에 닿을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으며, 하얀 손에 들린 돌칼을 교묘하게 숨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성은 머리에는 이상한 천을 휘감고 있었는데, 역사 다큐멘터리에서 가끔 나오는 고대의 터번이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었다.

         

       “너, 는.”

         

       미치시게는 이를 악물며 흔들리는 시야와 휘청거리는 몸을 유지한 채 물었다.

         

       “너는 누구, 냐?”

         

       그러자 왜곡되는 시선 속에서 남성은 웃었다.

         

       아지랑이가 피어나듯 흐늘거리는 공간 속에서 남자의 웃음은 광기가 어린 웃음처럼 보이기도 하였고, 땅에 내려온 아기 천사가 짓는 순진무구한 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가네스시여. 조가네스 히라모토 미치시게시여.”

         

       남자는 말했다.

         

       “다섯 번째 태양이 떠오르고 졌으며, 다섯의 달이 떠오르고 사라졌습니다. 마침내 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땅히 자신의 의무를 행한다는 듯 담담하게 그렇게 말했고.

         

       “너, 너!”

         

       미치시게는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젊은 놈이 지금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들어낸 원흉이라는 것을!

       이 사악하기 짝이 없는 주술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주술사라는 사실을!

         

       “너어어어어!”

         

       미치시게는 그 사실에 노성을 터뜨리며 그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하지만 속이 진탕이라도 된 것처럼 울렁였으며, 속에서 무언가 올라오려는 듯 명치를 두드리고 목구멍을 타고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게다가 흔들리는 시야는 더더욱 심해져서 태풍 속에라도 들어온 것 같았으며, 평소라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여야 할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은 채 덜덜 떨리고만 있었다.

         

       휘청.

       쿵!

       촤악!

         

       게다가 다리는 힘을 잃고 주저앉았고, 그 충격에 입을 열자 한 바가지는 되어 보이는 피가 입 밖으로 쏟아졌다.

         

       “조가네스 히라모토 미치시게여. 사크에아의 끝에 마땅히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왕, 박진성이 왔나이다. 마땅히 법과 규칙에 따라 끝을 맞이하십시오.”

         

       진성은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은 미치시게를 보며 웃었다.

         

       축제의 끝에 올 즐거움을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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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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