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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210화. 귀환 ( 6 )

       

       

       

       

       

       세공이라.

       내가 대장 기술에 대해 조예가 깊은 것은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잡지식 정도는 있다.

       

       현대인의 지식은 나무 위키와 유튜브 아니겠는가. 

       흔히 게임에서 무기를 강화한다고 하면 보석 세공 같은 이름으로 자주 나오기도 하고.

       

       ‘아마 보석이나 금속을 깎거나 해서, 되게 작고 섬세한 작업을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대표적인 예로는 아마 시계가 있을 거다.

       

       밤의 일족은 아마 무기 세공이나 보석 세공 등에 특화된 일족인 모양.

       나쁘지 않은 소식이다. 오히려 좋다.

       

       뭘 하더라도 지금처럼 놀기만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 뚝딱뚝딱!

       

       건물이 쑥쑥 올라간다. 잊을 만하면 존재감을 발하는 ‘건물 완공 패키지’가 맹활약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패키지를 초반에 산 건 진짜 잘한 일이다.

       

       띠링ㅡ!

       

       《’어두컴컴한 세공소’가 완공되었습니다! 축축하고 습하고 어두운 작업실입니다. 밤의 일족이 아니라면 들어가지 않을 것 같네요.》

       

       메시지를 안내판처럼 들고 나타난 케넬름이 세공소를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표정이 딱 그거다.

       나이 먹고 방구석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는 몹쓸 어른을 바라보는… 누나? 혹은 어머니?

       

       ‘…일이나 시켜야지.’

       

       낡은 저택에서 무작위로 한 놈을 잡아다가 세공소에 집어넣었다.

       어디 보자, 이름이…

       

       ‘바토리? 너는 이제부터 춘식이여.’

       

       열심히 보석이나 깎으라고.

       

       춘식이가 세공소에 들어서자, 새로 들어온 일꾼을 반기듯 케넬름이 곧장 다른 메시지 창을 꺼내 들었다.

       

       띠링ㅡ!

       

       《’세공소’에서는 다양한 금속 종류를 세공할 수 있습니다. 세공된 금속은 ‘장신구’를 제작하는 전용 재료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세공을 거친 금속은 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장신구’라는 새로운 이름이 등장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나올 때가 되기는 했지. 마법이나 저주에 대한 저항 아이템.

       

       ‘장신구’ 아이템은 여러 부가 옵션으로 승부 보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 여기서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일단 한번 만들어 보면 알겠지.

       

       – “어이, 이■봐! 여기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네?”

       – “삑, 삐이익. 삐, 삐삑!”

       – “아, 정말■이네요. 반가@워요, 낯선 분¿들.”

       

       새로운 건물을 발견한 드워프와 엘프, 온천욕을 즐기던 이베르가 세공소를 향해 우르르 몰려들었다.

       

       졸지에 포위당한 춘식이의 표정이 아주 볼만하다.

       눈동자가 사방으로 진동하고, 원래도 창백했던 얼굴은 일본 전통회화에 나오는 얼굴마냥 순백에 가까워졌다.

       

       – “아, 으, 에¤에? 흐이…! 아아£안녕? 하세, 요!”

       – “으하■하! 이거 새로운 얼굴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구만! 아주 그냥 시체야, 시체♤! 밥 좀 잘 먹고 다녀£야지.”

       – “제가 몇 년 동안 안 먹■어봐서 아는데요, 그¿럴 때는 이런 풀을 먹으면 좀 괜찮●아지더라구요. 아니€면, 저랑 같이 쭉쭉 체조하실래요?”

       – “어허! 쭉쭉 체조는 우$리 드워프 형제&들이랑 하기@로 했잖아!”

       – “이게 전부 술☆을 안 먹어서 그래! 일단 맥주¤를 마시면 전부 나아진다고! …많이 먹으▪︎면 안 되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는 대화 수준.

       메시지 중간중간 거슬리는 특수부호가 껴있지만, 대화를 읽는 데 방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엘프랑 드워프가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기는 한데, 뭔 체조? 몇 년 동안 굶어 봤다고?

       맥주를 무슨 만능 포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이대로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하겠네.”

       

       결국 내가 춘식이를 직접 꺼내주고 나서야 사태가 좀 진정됐다.

       

       툭.

       

       – “히, 히이익… 가가가가감사, 합니… 다…?”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를 반영한 것인지, 텍스트가 뒤로 갈수록 작아진다.

       시선은 계속 땅을 향하고 우물쭈물하는 것이 진짜배기 아싸라는 것이 보였다.

       

       《’날카로운 흑요석’을 세공하시겠습니까? 사용한 금속은 ‘장신구’의 전용 재료가 됩니다.》

       

       바로 수락을 눌렀다.

       

       누르면서 불현듯 엘프 때의 노가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엘프가 처음 활을 만들 때는 어째서인지 자동으로 활을 못 만들어서 계속 노가다를 했었는데, 설마 밤의 일족도 그런 식은 아니겠지?

       

       생각해 보면 밤의 일족이 제일 불안하다.

       제대로 말도 못 하는 녀석들인데, 일을 제대로 하기는 할까?

       

       – 사가가각! 사가각!

       

       – “이, 이이이렇게 하면… 조, 좀 더 우아하게… 보일, 것 같은데…”

       

       “오.”

       

       걱정이 무색하게 춘식이는 아주 능숙하게 ‘날카로운 흑요석’을 세공하고 있었다.

       

       바닥에서 솟아난 그림자를 전기톱처럼 회전시켜 흑요석을 가공하고 있는데, 한 번 스칠 때마다 흑요석이 두부처럼 깎여 나간다.

       

       원래도 광택이 돌아 제법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흑요석이었는데, 세공을 통해 모습이 잡혀가니 진짜 보석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전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는 녀석.

       한 치의 손 떨림도 없고, 낮고 진지하게 가라앉은 눈은 수십 년 동안 보석을 다뤄온 노련한 장인의 눈빛이다.

       

       아싸찐따 밤의 일족이지만, 꼴에 밤의 귀족이라고 보석은 제법 많이 접했던 걸까?

       

       ‘이게 그 찐따 같던 밤의 일족이 맞냐…?’

       

       《…!》

       

       얼마나 의외였는지, 조마조마하게 쳐다보던 SD 케넬름도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 사가가가각! 사각!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흑요석을 세공한 밤의 일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공된 흑요석을 들어 올리더니,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외쳤다.

       

       – “하그으윽! 다, 다 했다…! 우우, 우아하고 완벽, 해! 음…! 귀, 귀족의 품위에 걸, 걸맞는 보석이야…!”

       

       과연, 녀석이 자랑스럽게 말할 가치가 있는 결과물이다.

       규칙적인 패턴으로 조각된 정다면체의 흑요석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품이 깃들어 있었다.

       

       예술에는 무지한 나라도 알 수 있는 고급품이다.

       저걸 앉은 자리에서 곧장 깎아낸 춘식이의 노고와 재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니까ㅡ

       

       춘식이를 그대로 들어서 신전으로 떨어뜨렸다. 

       

       – “히에엑…!”

       

       춘식이가 도토리를 품에 안은 다람쥐처럼 흑요석을 끌어안고 구석에 웅크렸다. 

       

       ‘세공된 흑요석, 내놔.’

       

       이제 내 거야.

       

       

       

       

       

       *****

       

       

       

       

       

       고향이 오크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한스와 데이지는 곧장 만신전으로 달려갔다. 와중에 데이지가 지쳐서 한스가 업고 뛰어야 했다.

       

       “죄, 죄송해요… 제가 짐이 되어 버려서.”

       “아냐. 별로 무겁지도 않네.”

       “헤, 헤헤. 안 무겁구나… 스읍ㅡ… 스으읍ㅡ…”

       “…”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는 애써 무시했다.

       어깨가 조금 축축해져 가는 것은 땀이라고 믿고 싶었다.

       

       타탁!

       

       “한스 님, 오셨군요.”

       

       만신전 입구에는 안토니오 대사제가 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토니오의 옆에는 제국의 전령이 서 있었는데, 먼지와 땀자국으로 온몸이 꼬질꼬질했다.

       

       “대, 대사제 님! 저희, 저희 마을이 오크에게!”

       “진정하시죠. 저도 한스 님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허나 진정하세요.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ㅡ!”

       

       거의 달려들다시피 하는 한스를 안토니오가 침착하게 다독였다.

       

       “옆에 계신 전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카이사르 황제 폐하께서 오크들에게 식량을 전달하겠다고 하시더군요. 행여나 오크들이 난동을 부리지 않도록 말이죠.”

       “아…”

       

       그제야 너무 흥분했다는 걸 자각한 한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무례를…”

       “허허허. 열정은 젊은 사람들의 권리입니다. 하물며 고향에 대한 소식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허허 웃으며 털어버린 안토니오가 제국의 전령을 바라봤다. 어찌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눈 밑이 퀭하다.

       전령의 험난한 여정이 온몸에서 보였다. 며칠 밤을 꼬박 달려왔으리라.

       

       “그대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를 표합니다. 더불어 제국에게도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입니다.”

       “아닙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성도에 마땅히 알려야 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대의 고생은 당연한 것이 아니지요. 숙소를 하나 내어 드릴 테니 충분히 쉬다 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폐하께서는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허허. 폐하의 은덕이 하늘처럼 넓어 은혜를 입었군요. 알겠습니다. 성도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럼 이만… 여섯 신의 은총을.”

       “그대에게 축복을.”

       

       전령을 숙소로 보낸 안토니오가 한스를 돌아봤다.

       어째서인지 데이지가 계속 한스의 등에 매달린 채였지만, 안토니오는 굳이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재밌는 모습이구먼.’

       

       정작 한스의 표정은 한없이 심각했지만.

       

       “대사제 님, 저희 마을은 어떻게 되는거죠?”

       “흐음. 그것이 참 애매한 문제입니다.”

       

       오크는 참으로 성가시기 짝이 없는 족속들이다. 그들이 지닌 개개인의 무력도 어지간한 기사에 가까웠고, 전우애도 굉장히 두터웠다.

       

       “섣불리 무력으로 탄압하기에도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그냥 식량을 주고 보내면 성도의 체면이 말이 아니고…”

       

       골치 아픈 상황이다.

       다른 이도 아닌 사도의 고향이 오크에게 점령당한 것이니 본보기를 보여주기는 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그 오크다.

       

       “…오크는 제 동료를 죽인 이를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복수한다고 하지요. 설령 한 국가라 해도 말입니다.”

       

       어린 오크를 죽인 사낭꾼을 무려 17년 동안 추적하는 과정에서, 작은 왕국을 쑥대밭으로 만든 일화는 유명했다.

       

       섣불리 무력을 행사했다가는 자칫 전쟁이 터질 수도 있다.

       

       제국의 입장에서도, 성도의 입장에서도 전쟁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종류의 것이다.

       

       악마와 엮였다면 또 다르겠지만, 오크들은 그런 것도 아니었고.

       

       “병력은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병할 것입니다. 유혈사태는 최대한 피해야겠지만… 참 골치 아픈 상황입니다.”

       “그런…”

       “허허… 일단 병력을 준비하면서, 대서고를 좀 찾아봐야겠습니다. 저번에 오크와 관련된 고문서가 나왔다고 하니, 뭔가 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

       

       한스가 주먹을 꽉 쥐었다.

       

       병력이 움직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이틀 걸려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동안 고향은? 공포에 떠는 마을 사람들은?

       

       “그러면, 저와 유니콘은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이대로는 마음이 편치 않아요.”

       “이미 마음을 굳히셨군요.”

       “…네.”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제가 어찌 그대를 말리겠습니까? 부디 무운을 빌겠습니다.”

       “…안 말리시나요?”

       “저는 이제 그 쓰임새를 다한 노인에 불과한 즉, 무슨 자격으로 사도님의 발을 붙잡겠습니까?”

       

       안토니오가 슬쩍 손등을 보였다. 세 개의 문양이 새겨져 있던 자리에는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케니스의 위험에서 한 번.

       신의 축제에서 또 한 번.

       밤의 일족을 해주 하며 마지막으로 한 번.

       

       자신은 마침내 그 쓰임새를 다 하였다. 가만히 손등을 어루만지는 안토니오의 얼굴에는 후련함이 가득했다.

       

       사명을 다하였으니, 죽어서도 신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으리라.

       

       “그런…”

       “괜찮습니다. 애당초 다 늙은 노인에게는 과분한 사명이었던 것을.”

       

       한껏 가라앉은 공기. 안토니오가 박수를 짝-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그보다 한스 님께서는 서둘러 출발하시지요. 필요한 짐을 준비하시고 유니콘과 함께 성문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제가 미리 말을 전해 두지요.”

       “…감사합니다.”

       

       고개를 푹 숙인 한스가 유니콘을 찾아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한껏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스의 뒷모습을 보는 데이지와 허허 웃음을 흘리는 안토니오.

       

       한동안 한스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데이지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술을 꽉 깨물다니 고개를 쳐들었다.

       

       흠칫.

       

       안토니오가 저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의 기백!

       

       골치 아픈 일이 일어나려 한다는 걸 직감한 안토니오가 데이지에게 말했다.

       

       “흠, 크흠. 데이지?”

       “…”

       “데이지, 행여나 위험한 행동은 하면 안 됩니다. 알고 있죠?”

       “저도 알고 있어요, 대사제 님.”

       

       대답은 멀쩡하게 했는데,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뭔가 사고 칠 것 같아서 그럽니다. 데이지, 불안한 마음은 알겠지만 한스 님을 믿고 기다리며 무운을 비는 것이 도움이 되는ㅡ… 데이지?”

       

       뒤를 돌아보면 언제 갔는지 데이지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려서 그런가 몸이 참 날래다.

       

       ‘과연 괜찮을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하겠다는 눈빛이 아니었는데.

       

       

       

       *****

       

       

       

       히히히힝ㅡ!

       

       《주인이여, 또 나에게 짐을 싣다니! 벌써 두 번째 아닌가! 이 몸은 고귀한 요정마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진짜 급해서 그래! 나도 챙겨 들었잖아, 이번에는!”

       

       또 자신에게 짐을 실었다며 투덜거리는 유니콘을 뒤로하고, 한스는 등에 멘 짐가방을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힘차게 뛰기 시작했다.

       

       타타탓! 탁, 타탁!

       

       이 순간에도 고향 마을은 오크에게 고통받고 있을 터.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얼른 와!”

       《푸르륵ㅡ 알겠네… 음? 킁킁. 히힝? 으음?》

       

       불만 가득한 얼굴로 따라오던 유니콘이 한스의 등을 보며 몇 번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향기는…? 이게 왜 주인의 가방에서?》

       

       물론 한참 앞서있던 한스가 이를 알 리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밤의 일족은 그래도 명색이 귀족인데… 어쩌다가 이런 아싸찐따히키코모리사회부적응자대인기피증환자 이미지가 생긴 것인지…!!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힘내라, 밤의 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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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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