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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꿀꺽.

       모두가 잠시 그 자리에 굳은 채 침을 삼켰다. 

       

       하무트는 거대한 반인반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팔다리나 몸통은 인간의 것과 유사한 형태였지만, 흡사 독수리와도 같은 날카로운 대가리가 달려 있었고, 등에는 거대한 검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저게…. 말로만 듣던 마왕….”

       

       지부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짙은 마기.

       

       누가 대신 나서서 설명하지 않아도 하무트의 모습을 보고 있는, 여기 있는 모두가 그가 진짜 ‘마왕’임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타났군. 이렇게 요란한 등장이라니, 네 등장을 만천하에 알릴 생각이기라도 한 건가?”

       

       레키온이 검을 고쳐 쥐며 말했다. 

       

       ‘헤카르테에 비하면 확실히 요란한 등장이긴 하지.’

       

       지하에서 나름 조용히 부활 의식을 거행하고 장렬하게 산화했던 헤카르테에 비하면, 이번 하무트는 시작부터 구름을 뚫을 듯한 검은 기둥을 세워 올리고 시작했으니까.

       

       아마 이 정도면 근처의 큰 도시에서도, 혹은 어쩌면 수도 아스란에서 근무하고 있는 관측사들에게도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사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많아지는 건 우리한텐 좋은 일이야.’

       

       하무트의 모습까지는 못 봐도, 이런 불길한 검은 기둥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면 마왕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가 훨씬 쉬워질 테니까. 

       

       ‘그럼 용사랑 우리가 하무트를 쓰러뜨렸다는 소식도 더더욱 빨리 퍼져 나가겠지.’

       

       이런 임팩트 있는 사건 없이 그냥 ‘마왕을 쓰러뜨렸다더라’ 하는 말만 퍼져 봤자 사람들 중에는 ‘뭐야, 그딴 뜬구름 잡는 소문은?’같이 별로 시덥잖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우리가 오는 길에 마기에 조종 당한 마물들이 일반인들 사는 마을에 습격을 오기도 했었고, 우리가 그걸 막아내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많지.’

       

       나중에 그 마물들이 ‘마왕’의 명령을 받고 사람들을 해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금세 제국민들 사이에서 용사, 그리고 특히 우리 아르에 대한 좋은 소문들이 삽시간에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럼 드래곤인 아르에 대한 제국민들의 여론을 좋게 만든다는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터.

       

       ‘물론, 그러려면 먼저 이 하무트를 쓰러뜨려야겠지만.’

       

       나는 마왕의 등장에 주먹을 꽉 쥔 아르를 어깨 위에 올려 주었다. 

       

       “쀼웃!”

       

       내 어깨를 당당히 딛고 선 아르가 힘찬 쀼웃 소리를 내자, 레키온과 황실 기사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 

       

       “아르가 저렇게 당당히 맞서는데, 우리가 이렇게 쫄아 있을 순 없지.”

       “가자고!”

       

       사기가 오른 황실 기사단, 그리고 레키온과 데보라는 곧바로 마왕을 향해 달려 나갔다. 

       

       【크하하하! 좋다! 용사여, 네놈의 원대로 놀아 주마. 다만 황실의 조무래기들. 네놈들은 이거나 상대하고 있거라!】

       

       하무트가 날개를 펼치자, 커다란 깃털 수십 개가 공중에 휘날렸다.

       그리고 그 깃털은 곧 검은 독수리로 변해 황실 기사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비켜!”

       

       -캬아아아악!

       

       독수리들은 황실 기사단의 앞을 막아섰고, 레키온만이 독수리를 신성력으로 신속하게 베고 하무트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하무트의 팔이 형태가 변하더니 갈고리 같은 발톱으로 레키온의 검을 막아내고 반격에 나섰다.

       

       “크읍!”

       

       레키온의 두 배는 되는 거대한 덩치, 그리고 레키온이 가진 신성력의 양보다도 더 많은 마기가 육중한 둔기처럼 레키온의 검을 두들겼다.

       

       이곳까지 오면서 마물들을 처치하고 신성력 스탯을 올려 놓지 않았다면 이보다도 훨씬 밀렸을 터.

       그렇게 생각하면 마왕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으아아아!”

       

       하지만 레키온은 자신이 가진 신성력을 의지로 계속 끌어내 하무트에게 대항했고.

       

       【하하하하하! 그래, 그렇게 발악해 보아라! 그래야 포기했을 때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테니!】

       

       “젠장, 이렇게 강할 줄은….”

       

       레키온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곧 이상한 사실을 하나 눈치챘다. 

       

       “잠깐, 그러고 보니…. 네놈의 부하들은 다 어디로 갔지?”

       

       【부하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거냐?】

       

       “지부장 말고도 네놈을 따르던 수많은 추종자들이 있었을 거 아니냐! 놈들은 어디 숨어 있지? 혹시라도 마을로 보낸 거라면….”

       

       【푸하핫! 그걸 걱정하는 거냐? 역시 용사답군. 걱정하지 마라. 그 조무래기 벌레들은 다 이몸의 뱃속에 있으니까.】

       

       “…뭐?”

       

       레키온이 살짝 충격 받은 얼굴을 했다. 

       

       그러자 하무트는 재미있다는 듯 잠시 뒤로 물러나며 날개를 펄럭여 공중에 떴다. 

       

       【푸하하핫! 뭐냐, 그 표정은? 좋다. 더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주지. 네놈들이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이곳 말고도 지부가 하나 더 있었을 거다.】

       

       “그래. 콘테트에 지부가 하나 더 있더군.”

       

       【이곳 마글라론 지부는 물론, 그 콘테트 지부의 녀석들까지 전부 지금은 내 뱃속에 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이 정도 힘을 가지고 부활할 수 있었지.】

       

       다시 말해 놈은 완전한 부활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리고 찾아올 용사를 이기기 위해 대형 지부 두 곳에 있던 추종자들과, 기타 모든 자원을 끌어모아 이렇게 레키온조차 몰아붙일 정도의 힘을 되찾아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미친놈…! 그들은 네놈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사람들이다! 비록 나쁜 사람들이지만, 네놈만큼은 그들을 버리고 이용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정말 끝까지 용사다운 생각이군. 하지만 너에게 묻지. 너는 지금까지 네가 밟아 죽인 개미들을 전부 기억하고 그것들에게 사죄하는가?】

       

       “그건….”

       

       레키온이 주춤하자 하무트가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거다! 달콤한 꿀 한 방울을 위해 내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개미들을 가지고 놀다가 밟아버린들, 내가 어떤 죄책감을 가져야 하지?】

       

       “네노오옴!!”

       

       그 역겨운 모습에 레키온이 기함했다.

       

       물론 레키온도 하무트교의 추종자들 자체를 불쌍하게 여기는 건 아닐 것이다.

       

       하무트를 추종하던 자들은 전부 하무트가 약속한 ‘힘’을 받고 강해지기 위해서, 더 큰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하무트를 따랐을 뿐이고.

       

       일반인으로서 평생 누리지 못할 힘을 조금이라도 더 누릴 수 있다면 어떤 나쁜 짓이든 서슴지 않는 악마의 추종자들은, 인간 중에서도 누구보다 악마에 가까운 놈들이었다. 

       

       하지만 레키온이 화난 건 그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하고 마지막에는 버려 버린 하무트의 행위 그 자체의 악랄함 때문이었다. 

       

       목적이 어떠했든,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자신을 따랐던 이들의 목을 망설임 없이 쳐 버릴 수 있는 그 악함에 경멸과 분노를 느낀 것이었다.

       

       【크하하핫! 그게 그렇게 아니꼬우냐? 그렇다면 진즉 너와 저기 있는 용을 깨울 자, 그리고 최후의 은룡을 제물로 바쳐 주지 그랬나. 그럼 내가 조금이라도 더 온전한 힘을 가지고 부활하기 위해 조무래기 놈들을 먹어치우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야.】

       

       하무트는 그런 걸 가지고 화를 내는 용사가 너무나도 재미있다는 듯이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네노오오옴!”

       

       분노에 찬 레키온이 하무트를 향해 뛰어올랐다.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뒤, 신성력을 폭발시키며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하무트가 날갯짓을 해서 옆으로 슥 비켜 버리자, 레키온의 검은 허공을 가를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핫! 날개 없는 미물이 발악하는 모습을 보니 즐겁구나!】

       

       하지만 그때.

       

       “쀼우우웃(에어 리프, Air leap)!”

       

       아르의 영창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졌고.

       

       파앗!

       

       마나가 모여들더니, 레키온의 발치에 작은 날개 모양의 마크가 생겼다.

       

       “공중 도약 마법입니다! 그대로 뛰세요!”

       

       내가 외치자, 허공을 가르고 반대편으로 추락하던 레키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고마워, 아르야!”

       

       레키온은 그대로 허공을 밟고 힘차게 도약했고. 

       

       채애애앵!

       

       【이런, 방해꾼이!】

       

       특기가 아닌 공중전임에도 레키온은 마치 타고난 것처럼 공중 도약을 활용해 현란한 검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힘들어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심기일전한 듯 신성력을 폭발시키며 하무트를 몰아붙였다.

       

       “아르가 걸어 준 마법! 하아아압!”

       

       아하. 아르가 걸어 준 마법이라 더 힘이 난 모양이었다.

       

       아무튼.

       

       【이…. 건방진 놈! 놀아주는 건 여기까지다!】

       

       추종자들을 개미처럼 가지고 놀다가 흡수해 버린 것처럼, 하무트는 우리를 대충 상대해 주다가 죽이고 그 힘을 가질 생각이었던 모양.

       

       하지만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자, 하무트는 거대한 날개를 펄럭여 순식간에 레키온이 따라잡기도 힘들 정도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화아아아악!

       

       일순, 마치 일식처럼 하무트의 거대한 몸과 활짝 펼친 날개가 태양을 가렸고.

       

       공중에 검은 마기가 퍼지면서 하늘에는 어둠이 드리워졌다. 

       

       【모두 내 마기에 범벅이 되어 죽어라!】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듯한 대사를 읊자, 펼쳐진 마기의 장막에서 수천 개의 날카로운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

       “저걸 피하라고?”

       “소대장님! 이걸 어떻게….”

       

       검은 독수리를 전부 처치하는 데에 성공한 황실 기사단도 이번만큼은 그 압도적인 마기에 질려 주춤했다.

       

       【하하하하하! 죽어라!】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

       

       “쿠와아아아아아앙!!!”

       

       아래쪽에서 공기를 뒤흔들 정도로 우렁찬 포효 소리가 들렸다. 

       

       [사역마 ‘아르젠테’가 「천 년의 힘」을 해방합니다!]

       

       그건 바로 천 년의 힘을 해방하고 거대한 성체 드래곤의 모습으로 내지른 아르의 포효였다. 

       

       “뭐, 뭐야?”

       “무슨 일이지?”

       “이 모습은 설마….”

       “드래…곤?”

       

       아무리 실물로 처음 봤다지만, 눈앞에 있는 게 드래곤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황실 기사단은 멍청하지 않았다. 

       

       그때 공중에 떠 있던 레키온이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아르야! 기다렸다!”

       

       그 말에 황실 기사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르…?”

       “아르라고? 저 드래곤이?”

       “그러고 보니 특징은 비슷해…!”

       

       은빛 비늘, 그리고 붉은 눈동자. 

       그리고.

       

       “쿠와아앙! 삼쵼! 오래 기다려찌!”

       

       뭔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르다운 말투까지.

       

       “삼촌이라면…. 용사님이 아르에게 말할 때 자주 하던 말인데….”

       “그럼 아까 하무트가 최후의 은룡이라고 한 게….”

       

       그동안 용을 깨울 자, 최후의 은룡 등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들었지만 일단 눈앞의 일이 먼저였기에 따로 질문은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들의 의문은 와이번이 아니라 드래곤인 아르를 본 순간 모두 풀렸다.

       

       【뭐, 뭣…! 설마 그 힘을 벌써 쓸 수 있다고?】

       

       하무트조차 예상하지 못한 상황.

       하지만 하무트는 여전히 공격을 거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차라리 잘 되었다! 최후의 은룡이여, 네놈만 죽이면 나도 천 년 전의 완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쿠구구구구구!!

       

       검은 장막에서 나온 수천 개의 창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쿠와아아아앙!”

       

       포효하는 아르의 입에서 브레스가 쏟아져 나왔다.

       

       은룡의 브레스.

       

       닿는 모든 힘을 무無로 돌려 버리는 은빛 섬광.

       

       하무트가 처음 등장하면서 하늘로 뻗어 나갔던 검은 기둥보다도 더 크고 아름다운 은빛 기둥이 하무트를 향해.

       그리고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브레스는 마기로 이루어진 창을 수천 개의 창을 쿡구다스처럼 간단히 부수며 나아갔고.

       

       뒤늦게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하무트가 온 힘을 다해 마기를 내뿜었지만, 은빛 섬광의 전진 속도를 잠시 늦추는 게 전부였다. 

       

       【끄아아아아악!】

       

       ‘아르의 브레스는 본체 자체를 이드밀라 님처럼 강한 힘으로 녹여 없애거나 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마기를 전부 무無로 되돌려 버릴 수는 있었다. 

       

       콰아아아아아—

       

       거대한 은빛 기둥이 하무트를 덮쳤고.

       하늘을 갈랐고.

       마침내 잦아들었을 때.

       

       하무트는 모든 힘을 잃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검은 날개는 바래고 닳은 회색빛이 되었고.

       이제 하무트가 가진 건 그의 존재 자체를 보존하고 있는, 심장 속에 든 최소한의 마기뿐.

       

       타앗.

       

       레키온은 공중 도약으로 하무트를 향해 뛰어올랐고.

       

       신성력을 담은 검이 하무트의 심장을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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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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