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10

       작은 사무실에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 가득 울려퍼지기를 한참. 살짝 충혈된 눈으로 커피를 사온 후배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이예리를 향했다.

         

        로펌에서 버텨내는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워커홀릭인 거야 익히 알고 있었으나……지금은, 그 기준으로도 과했으니.

         

        “……이예리 변호사님, 괜찮으세요? 이런 거 읽으면 그냥 팬인 저도 화나는데……자료는, 제가 다 정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처음이 아니어서요. 변호사로서는 처음인데……아무튼,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아, 커피.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넌지시 건네어 본 제안은 단칼에 거절당했다. 놀라울 건 없었다. 비단 이런 개인적인 일이 아니더라도, 후배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그녀였으니. 그럼에도, 괜히 조금 서운한 건 왜인지.

         

        하여간, 가까이하기 어려운 선배였다. 그래서 좋아했지만.

         

        “신상 식별 안 되는 익명글은 마커만 달아 놓았는데, 괜찮을까요?”

         

        “네. 좋아요. 나중에 경찰 통해서 신상 따면 되고……동일인 판별 시 합산할 수 있게 수식 준비해뒀어요. 나중에 확인해보세요.”

         

        고개를 가벼이 숙이며 받아 든 커피를 잠시 홀짝거리기에, 쉬는 시간인가 싶어 말을 걸어본 거였는데. 어느새, 이예리는 다시 온전한 무표정으로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작게 스트레칭을 마친 후배, 유지아 역시,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오래 쉴 생각은 없었다.

         

        좋아하는 선배의 동생이자, 가장 좋아하는 스트리머를 위한 일이니.

         

        ‘변호사 일도, 좆같지 않을 때도 있구나.’

         

        “네! 아, 저도 유형별 범용 고소장 양식 업로드 해 뒀어요! 검토 부탁드립니다.”

         

        “네, 지금 볼게요. 고생 많으셨어요.”

         

        어쩐지, 언제나 뒤통수에 들러 붙어있는 듯하던 피로감이 조금은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

        .

        .

         

       그렇게, 다음 날.

         

        “……아니, 이거 너무 잘 썼는데. 설마 밤 샜어요?”

         

        “아……헤헤.”

         

        “유변호사님 평소 하시던 거보다 퀄이 너무 높아서……칭찬을 해야할지, 혼을 내야할지. 조금 헷갈리네요.”

         

        “저, 저 휴가 중이니까! 혼낼 건 없지 않을까요!”

         

        “농담이에요. 도와주시는 게 정말 얼마나 고마운데. 타임 차지로 생각하면 대체 얼마를 드려야 할지 계산도 안 되네요. 감사해요, 진짜로.”

       

        칭찬에 인색한 편은 아니라지만, 이렇게까지 강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어쩌면, 정말로 이번 고소장만큼은 역작을 만들어낸 건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아따먹의 방송 다시보기를 노동요로 틀어 놓고 쓴 덕분일 수도……있으려나. 일단 분노는 계속 리필됐으니까.’

         

       “아……아니에요! 무슨,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 타임 차지라니 가당치도 않…….”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런 칭찬을 당당히 받아들일 정도로 뻔뻔하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말꼬리를 흐리던 중, 떠오르는 것이.

        

       ‘아따먹, 요즘 방송 좀 많이 하지 않았나?’

        

       아따먹은 꾸준함을 미덕으로 삼는 스트리머들과는 정반대로, 시즌제 방송에 가까운 패턴을 보여왔더랬다. 며칠간 수십시간을 방송하다가, 일주일씩 사라지곤 하는, 그런 패턴이 반복된 게 몇 번이었던가.

        

       그렇다면-

       

        “……기는 하지만요, 변호사님. 혹시 방송시간으로 치환해서 지불 요청 가능할까요? 마침 방송 시간이 폭증한 타이밍이 일을 해야 하는 게 불만이어서 하는 얘기는 아닌데요, 그래도, 이거 고소 작업 끝날 때쯤이면 다시 휴방 시즌 올 것 같고……저만 좋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요…….”

         

        “……얘기해 볼게요.”

         

        * * * *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벽을 향해 물을 틀어놓고, 이렇게 잠시 가만히 기다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화장실이 따스한 증기로 가득 찬다.

        

       포근하고, 따스하면서도……무게도 없는 이불에 온몸이 감긴 느낌.

        

       작은 집의 몇 가지 장점 중 하나이자, 새로이 발견한 소중한 사치다. 다음달 난방비가 제법 볼만하겠지만……괜찮겠지. 작년 이맘때는 매일 찬물로만 샤워했으니까. 평균을 내면 합리적인 수준일 거야.

        

       이 작은 습식 사우나에서 쉬다 보면, 그런 건 그리 중요치 않게 느껴지기도 하고.

       

       시간의 감각도 잠시 놓아준 채, 멍하니 정신을 풀게 되는 것이……할 수만 있다면, 계속 있고 싶을 정도다.

        

       그래도, 그럴 순 없으니까.

        

       수건을 몸에 두른 채, 굳게 닫혀있던 화장실 문을 열어젖히니- 서늘한 공기로 가득한 방과의 온도차에, 온몸이 가벼이 떨렸다.

       

       솔직히 말하면, 이 낙차도 제법 취향이었더랬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는 걸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고로.

        

       그리고 여기까지 나왔으면, 이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예를 들어…….

        

       이예리에게 연락하는 일이라든가.

        

       그냥 말 안 하고 다녀오면 난리날 것 같은데.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뭔가, 패러데이와 엮인 게 있어 보였고.

        

       바빠 보여서 연락을 안 했다는 핑계로는 넘어가는 건……어렵겠지.

        

       ……진짜 바빠 보이긴 하는데.

        

       [작성자: 관리자01(🗡)]

       [제목: 현황판 안내 공지입니다^^]

       [안녕하세요,

        

       관리자01입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제보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이전 공지에서 안내드린 현황판이 신속하게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링크)를 클릭하셔서 현황판을 확인하실 수 있으니, 언제든 참고 부탁드립니다.

        

       10위까지는 확정적으로 법정 조치를 취할 예정이며, 11위부터 20위까지는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아직 미정입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의 법률 자문가로서, 저는 50위까지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현황판에 적힌 내용에서 드러나듯이, 이것도 상당히 너그러운 커트라인입니다.

        

       물론,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께서 보다 더 많은 분들을 훈방조치하고 싶으실 경우, 그와 같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다만, 여러분께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하 FAQ입니다.

        

       Q: 중간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 있어요.

       A: 의도된 마스킹입니다. 내용과 커뮤니티, 아이디, 순위가 모두 보이면 신상이 쉽게 유출될 위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Q: 투표기능이 있으면 좋겠어요.

       A: 죄송합니다. 팬 여러분께서 제보를 하실 정도로 악질적인 이들을 추리는 과정이므로, 비교적 의견 표현이 쉬운 투표 시스템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매크로 등 악용을 방지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Q: 10위 안에 든 사람들한텐 어떤 조치를 할 건지 알고 싶어요.

       A: 공포는 무지에서 오는 법입니다. 호기심을 느끼시는 만큼 저들은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잠시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모든 조치가 완료된 후에는 팬 여러분께도 그 과정 및 결과를 상세히 공유드리겠습니다.

        

       .

       .

       .

        

       Q: 선임한다는 변호사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걱정돼요.

       A: 내 가족이다 생각하고 일하고 있으며, 여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방송에 흉흉한 분위기가 번지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관련 공지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예정입니다.

        

       의견은 이 공지에 댓글로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기타 글이나 방송 채팅으로 고소 혹은 그와 연관된 내용을 과하게 언급하시는 경우, 삭제 및 임시차단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게……공지?

       –     ㄴ 어라……? 공지에……내용이 있어……?

       –     이게 무슨 공지임; 쓸데 있는 내용만 있고 오늘 마신 와인에 대한 맛 평가도 없고 남의 방송 재밌으니 보러 가란 얘기도 없네 ㅉㅉ

       –     ㄴ 공지역전세계

       –     ㄴ ㄹㅇ 공지면 당연히

       ‘현황판을 만들어 보았어요. 예쁘네요. 여러분께도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여러가지 질문들을 많이 주셨는데, 다음엔 질문들로도 현황판을 만들어볼까 싶어요. 그러면 이만 저는 레반 방송 보러 갈 예정입니다.’

       이래야 되는 거 아님?

       –     ㄴㄴ 아 겨우 참았다

       –     ㄴㄴ 이새끼이런흉흉한분위기에욕설유도를

       –     ㄴㄴ 최소 10개월 구독자

       –     나 적응 안 돼 무서워

       –     근데 랭킹 상위권은 진짜 개 씹 극혐이네

       –     ㄴ ㄹㅇ 혐짤급임

       –     ㄴㄴ 글만으로 역겨운 거 오랜만이다 진짜

       –     ㄴㄴ 다짜고짜 선 존나 넘은 성희롱이랑 욕설 박으면 유쾌하다고 생각하는 악질 호소인 병신들이 왜케 많을까

       –     ㄴㄴ 진짜 싸그리 고소하길 제발

       –     근데 공지가 너무 무서워요……

       –     ㄴ 그건 네가 ‘랭커’여서 그런 거 아닐까?

       –     ㄴㄴ 아니 난 아무것도 안 썼는데 그래도 무서워

       –     앞으로 관련 글 안 쓴다는 거 다행이네 ㅇㅇ 분위기 이상해질까봐 걱정됐음……

        

       [작성자: ㅇㅇ]

       [제목: 다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지보고 당황해서 잊어버린 거 같은데]

       [아따먹 이 텐련 패러데이에 언제 가서 뭐하는 건지 아직도 얘기 안 했음

        

       가서 방송 켜줄 건지도 얘기 안 했음

        

       사실 다음 방송이 언젠지도 공지 안 했음

        

       아니 애초에 공지를 안 썼음 시1발

        

       그냥 관리자01이 방송하면 안 될까?]

       –     ㄹㅇ이에오……

       –     설마 감 있으면 가서 방송 키겠지

        

       ……뭔가, 음.

        

       일……잘 하는구나. 새삼스럽지만. 어떻게 저리 빠르게 무언가를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건지.

        

       반성할 일이다.

        

       그런데……내가 반성하는 건 둘째치고.

        

       여기, 내 팬 카페 아니었나. 잠시 스크롤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감상하고 있자니- 여론이, 조금……조금, 이상한데.

        

       내가 언제 공지를 저렇게, 저렇게까지 이상하게 썼다고. 음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갤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따아먹이 꿈틀거렸으나- 지금은 반박글을 쓸 시간은 아니겠지.

        

       일단……할 일을 해야할 테니.

        

       ……전화부터 할까.

        

       * * * *

        

       4명의 남녀가 모여 앉은 패러데이 한국 지사 사무실.

        

       설립된지 불과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지사다. 아직 인원수도 몇 되지 않는. 그런 공간에서 지사장실이 유독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다행히도, 그 크기 덕분에 당장 회의를 위해 사용하기엔 적합했다.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나이에 이미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쥐어뜯듯 감싸 쥐며 중얼거리고 있는 패러데이 사의 사장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지만.

        

       “Hold on. So, let me, let me try to get this straight. You’re saying, that all those- strategies and exploits, were each made and developed by someone else, but you cannot name who they are, and cannot tell us how to fix or prevent such exploitation, but therefore the Rogue-nerf-patch needs to be cancelled?”

         

       “그러니까, 그 많은 전략이랑 취약점이 각자 다른 사람에 의해 개발된 건데, 그게 누군지는 말 못하고, 어떻게 막는지도 말 못하는데, 그러므로 로그? 너프? 패치가 취소되어야 한다는 뜻이냐고 물으시는데?”

        

       “음. Yes.”

        

       “Are you sure this is getting translated properly? Something seems seriously off.”

        

       “……제대로 번역되고 있는 거냐고 물으시는데, 음. 그, 예나야? 솔직히 말하면, 언니도 논리가 잘 이해가 안 되긴 하는데…….”

        

       “번역 잘 해주고 있어. 고마워.”

        

       “……그래. 번역은 제대로 되고 있다고 말씀드릴게. Um, Mr. Dox? The translation is apparently on point.”

        

       공손한 자세로 두 손을 모으고 선 채, 땀만 뻘뻘 흘리는 한국 지사장을 포함하여 모두가 혼란에 빠진 사이-

        

       “아. 이유가 궁금하신 거면……그래야 나오나가 갓겜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정도로 설명해야 할 것 같은데. 밸런스에 앞서 방향성의 문제여서……. 응. 절대로, 안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일주일에 하나씩 이상한 빌드를 공개하기 때문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야.”

        

       한 사람만,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 잠깐 나가서 얘기하고 올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Raskol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메인 배너에 아따먹이 등장했네요. 노벨피아에서 제공해주신 신규 타이포그라피는 저도 배너가 떴을 때 처음봐서, 신기했습니다.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분량에 욕심이 났습니다…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