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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사라는 잠이 들면 쉽게 깨지 않는다. 이건 여기 있는 세 사람이 모두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는 사라의 위로 올라타도, 사라는 조금 불편한 듯 신음만 할 뿐 잠에서 깨지는 않았고, 옆에서 조금 부스럭거리거나, 뭔가가 딱 달라붙는다고 해도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세 사람은 바닥에서 자는 사라를 그대로 두고 몰래 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어쩌지?”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유하늘이였다.

        

       “아무리 그래도 사라가 바닥에서 자도록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엄청나게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자,

        

       “그래, 결국 잘못한 건 우리인데 사라가 저렇게 바닥에 있으면 안 되지.”

        

       신소희 또한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사라를 다시 침대에 올려놓아야 할까?”

        

       “하지만, 사라가 일어나면 분명 다시 화낼 텐데…….”

        

       신소희의 말에, 이수아가 불안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침묵.

        

       세 사람 모두, 깊은 침묵에 빠졌다.

        

       사실, 언제나처럼 사라의 곁에서 자고 싶었다. 그 팔에 딱 달라붙거나, 허리를 꼭 끌어안거나…… 본인들 나름대로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선이라는 것은 스스로 그어둔 선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사라에게 들키면, 사라는 정말로 실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걱정하는 시점에서 그 ‘선’이라는 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는 방증이었지만, 그녀들은 미처 거기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이렇게 된 이상, 방법은 하나밖에 없잖아?”

        

       결국 깊은 침묵 끝에, 입을 연 것은 하늘이였다.

        

       “……사라를 소희 침대 위에 올려두고, 나머지 우리 셋이 사라 침대에서 자는 수밖에.”

        

       “…….”

        

       “…….”

        

       사실, 세 사람이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사라가 침대에서 자도록 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만약 사라를 다시 침대 위에 올려두고 평소와 같이 잠이 들면, 분명히 아침에 눈을 뜬 사라가 세 사람에게 엄청나게 실망할 테니까.

        

        그리고 세 사람은 그게 너무 싫었다.

        

       “괜찮겠어?”

        

       다시 한번 찾아온 긴 침묵 끝에, 신소희가 물었다.

        

       “…….”

        

       그래.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사라’에게 그녀들이 가진 감정을 폭로 당하기 전에도, 세 사람은 서로가 사라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으니까. 사라 본인에게만 들키고 싶지 않았을 뿐.

        

       다만 그녀들은 어찌 되었건 친구이기도 했다. 서로의 관계를 박살 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라가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쭉 숨겨왔다.

        

       이번에 고백하면서 사라의 대답을 강요하지 않은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참을 수는 없었지만, 우정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기에.

        

       그리고 이게 그 결과였다.

        

       지금까지 사라와 쌓아온 신뢰가…… 전부,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무너졌다.

        

       ……역시 그 부분도 그녀들이 나름대로 이득을 챙기기 위해 어느 정도 거짓말을 하고 연기를 해서 쌓아둔 신뢰였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정도로 세 사람이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튼, 지금 상황에서는 사라와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으니까.

        

       괜히 고백하고 고백 전보다 못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실, 그녀들이 같은 침대에서 잤던 이유는 결국 사라 때문이었다. 만약 그 큰 침대에 사라가 없었다면, 굳이 같은 침대로 올라가 자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유하늘과 이수아는 양성애자다. 그것도 다른 여자를 좋아해 본 적 없는 양성애자.

        

       그전까지는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잘생긴 남자 연예인 같은 사람을 TV에서 볼 때마다 호감을 느끼곤 했다. 사라가 여자라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사라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부득이하게 사라의 성별이 여자였을 뿐이니까.

        

       그렇기에, 아무래도 다른 여자애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등, 필요 이상의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은 몹시 껄끄러웠다. 물론 이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애정행각’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뭐랄까 조금 그렇다는 기분을 받은 것이다.

        

       두 사람도, 어쩌다가 동성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제외하면 결국 같은 나이대의 소녀와 다를 것이 없었다.

        

       신소희는 레즈비언이다. 사실 예쁜 여자애가 주변에 많으면 기분이 좋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라 이외의 여자와 단둘이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만약 사라가 소희를 싫어하고 배척한다고 하면 멀리 떨어지긴 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저런 일들은 오로지 사라랑만 하고 싶었다.

        

       소희는 그야말로 순애파였던 것이다. 아직 사라와 사귀는 관계는 아니었지만, 다른 여자애와 함께 자는 것은 이상하게 하면 안 될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이제 와서’라고 표현할만한 상황이긴 했지만, 세 사람 다, 세 사람끼리 한 침대에서 자는 것에 대해서 묘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서로 깨지기 싫은 친구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연적이기도 했기 때문에.

        

       “……어쩌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유하늘은 신소희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사라를 바닥에서 재울 수 없어. 이건 내 방침에 어긋나. 나는 사라와 결혼하면 손에 물 한 방울 못 묻히게 할 거니까.”

        

       “사라와 결혼하는 게 너라는 가정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나는 찬성이야. 사라를 더 고생시키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

        

       “……사라가 누구랑 결혼하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애초에 본인이 직접 설거지를 할 이유가…….”

        

       이수아가 유하늘과 신소희의 말에 지당한 태클을 걸기는 했지만, 결국 세 사람의 의견은 그렇게 모였다.

        

       사라를 침낭째로 옮겨서 신소희의 침대에 올려두고, 나머지 세 사람은 사라의 침대에서 잔다.

        

       ……적어도 사라가 이 결정을 이해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

        

       으으.

        

       너무 오랜만에 딱딱한 바닥에서 자서 그런가? 허리가 몹시 아팠다.

        

       ……아니, 아니다. 허리만 아픈 게 아니었다.

        

       다리는 아프지는 않았지만, 뭔가에 단단히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 아, 그래 맞다. 나 침낭에 들어가서 잠들었었지.

        

       어제저녁에는 너무 피곤하고 생각하는 게 귀찮았던 나머지, 양혜인에게 이불을 따로 준비해달라는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소희 침낭에 들어가서 잠이 들어버렸다. 바닥에 이불조차 깔지 않았으므로 나는 침낭 속에 애벌레마냥 들어간 상태였다.

        

       그러니까…… 앞에 있는 지퍼를 내리기 전까지는 당연히 다리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수밖에.

        

       어제는 이것보다는 훨씬 여유가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쩌면 내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침낭은 군대 다니던 시절에 쓰던 것 외에는 써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 이상하게도, 내 팔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침낭 만드는 회사들은 당연히 바보가 아니었으므로, 침낭 지퍼를 올렸을 때 팔다리조차 전혀 움직이지 못할 지경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적어도 스스로 지퍼를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두고 만들지.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내 눈앞도 깜깜했다. 그냥 깜깜한 것이 아니라, 뭔가 부드러운 것이 얼굴 앞을 꽉 막고 있었다. 숨을 못 쉴 정도는 아니었지만, 얼굴에 그대로 느껴지는 열기 때문에 조금 불편했다.

        

       무엇보다, 분명 나는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있었을 뿐인데 내 몸이 바닥 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들어간 부분이 푹신푹신하고 따뜻하기까지 했다.

        

       “…….”

        

       대충, 상황이 어떤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버둥거렸다. 내 다리를 감싸고 있던 무언가가 살짝 풀렸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몸을 감싸고 있는 것들은 풀리지 않았다.

        

       “우웁!”

        

       내가 입을 열고 말을 하자, 내 앞에 말랑한 것에 가로막혀서 말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결국 내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사방에서 끌어안고 자던 내 친구들이 잠에서 깬 뒤였다.

        

       *

        

       “…….”

        

       “…….”

        

       침대 위.

        

       내 앞에 세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당연히 하늘이, 수아, 소희였다. 세 사람은 평소에 잘 때 입던 옷을 미처 갈아입지도 못한 상태였다.

        

       ……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의 상황을 설명하자면,

        

       나는 소희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다. 내가 바닥에서 자는 것을 보다 못한 친구들이 나를 옮겨둔 모양이었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남은 한 침대에서 세 사람이 같이 자기로 한 것도, 무척 기특했다.

        

       문제는, 결국 잠을 자던 와중 한 사람씩 소희의 침대 위로 올라와서, 결국 네 사람이 무슨 번데기라도 된 것처럼 서로 딱 달라붙어서 자게 된 것이다.

        

       옆으로 돌아누운 나의 정면을 소희가 가로막고 있었다. 내 얼굴을 막고 있던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은 소희의 가슴이었다.

        

       내 뒤에선 하늘이가 나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으로 옮겨온 수아가, 잔뜩 웅크린 채 내 다리 쪽에 매달려있었다.

        

       “……잘못했어, 안 했어.”

        

       “““죄송합니다…….”””

        

       세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합창한다.

        

       “……첫날부터 룰이 깨져버렸네.”

        

       “…….”

        

       뭐, 하긴, 내 친구들이다. 내가 함부로 막 벌을 내리거나 할 수는 없겠지.

        

       ……꿈속에서 사라한테 한창 당하고 있기도 했었고.

        

       이건 비밀로 해야겠지만.

        

       죽어도 지킬게.

        

       ……아니, 그렇게 진지하게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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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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