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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네오 헤이븐의 이면, 불법과 폭력의 세계를 주름잡는 암흑가.

         그곳을 세력도로 표현한다고 했을 때, 꽤나 성세를 자랑하는 블랙 마켓이 차지하는 규모는 상당했다.

         

         활성 인구수나 기술적인 측면에서의 인류 부흥은 이미 오래전에 달성했고 이제는 양지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의 ‘선의의 경쟁’ 활동이 주류가 되었으나, 그 부작용으로 기업 외적인 분야의 전문가들과 다양한 무뢰배들이 모인 음지도 무시 못하게 커버린 것이다.

         

         추적 불가능한 불법 임플란트, 업체 로열티(Royalty; 공업적 소유권이나 저작권에 대한 대금)가 과하게 책정된 일부 상품들, 원칙적으론 허가서나 인증없이 구매하는 길이 없는 장비들.

         

         혹은 그 모든 걸 시장 매물이 없더라도 구하게 해주는 중개인이나 설치를 도와주는 기술자들까지 담당.

         

         바라는 물건이나 인력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중개업자 노릇을 하며 수수료를 챙기고, 때로는 적극적인 알선을 통해 판을 주도하며.

         

         용병 및 엔지니어 플랫폼 운영, 사용자에게 전용 계좌 개설과 부여, 고객과 마켓 보호를 위한 폭넓은 재투자도 병행 중인… 의외로 건실한 면모도 뚜렷한 집단이기에 더 확장세가 두드러졌다.

         

         ……일일이 다 때려잡기는 힘든 데다가 순기능도 적당해서 기업들이 박멸할 시기를 놓친 탓이 조금은 있을 지도 모르고!

         

         하지만 음지 시장이 아무리 크더라도 만약 당신이 메가코프와 본격적으로 척을 진, 특색 없는 네오 헤이븐 거주자라면 남는 길은 딱 세 가지밖에 없었다.

         

         첫째, 자수하고 고기 걸이에 걸린 냉동육 마냥 관대한 처분을 기다린다.

         둘째, 이판사판으로 가진 크레딧을 싹싹 끌어 모은 후 최대한 믿을만한 전문 업자를 고용해 수도를 탈출한 다음 시스템 바깥에서의 불편하고 척박한 삶을 시작한다.

         셋째, 그동안 살면서 애써 보고도 무시해왔던 반기업 집단의 은밀한 홍보나 흐릿하게 기억에 남은 뜬소문에 의지해 접선을 시도하고 투신한다.

         

         물론… 정말 일반 시민이라면 애당초 그런 상황에 처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지금 여기서 일하느라 바쁜 남자. 당시만 해도 생물학적 남성 겸 알아주는 엔지니어였던 레오나르는 번외 선택지를 골라버렸으니.

         

         그건 바로 음지에 아예 전공을 살린 일자리를 새로 구하기였다.

         심지어 우수한 능력을 여러 차례 증명한 덕분에, 복잡한 개인 사정과 일천한 뒷세계 경력을 가지고도 빠르게 마켓의 보안 실장 자리를 꿰차게 된 건 그에게도 약간은 기분 좋은 오산이었으리라.

         

       

       

         “…….”

         

         그러나 두뇌를 제외한 머리 전체가 고출력 모니터로 대체되는 대규모 기계화 시술을 받은 레오나르 경의 ‘기분’이란, 본인이 일부러 티를 내지 않으면 상당히 짐작하기 어려운 실시간 변수(Parameter)에 속했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독성 물질에 노출된 상자 속의 고양이 수준이라 해야 하나?

         

         감정을 숨기기 더할 나위없이 쉬워지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길 수 있다는 건 비슷한 개조 인간이 많은 엑사테크에서 재직할 때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이 밑바닥 사회 생활에 있어선 생각보다 불편한 점이 훨씬 많았다.

         

         밖에서는 누구나가 이런 고위험 고비용 수술을 받는 게 아니었고.

         의료용 뇌파 탐지기를 개조해서 체내에 상비하고 다니는 건 더더욱 아니었으니까.

         

         부품 유지비와 연구 자금이 당장 급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그도 개인적으로 가게를 차리면 차렸지 구태여 마켓 관리직에 취직하지는 않았겠지만….

         

         “………C’est nul.”

         

         외톨이 취급인 건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도 딱히 사교적인 성격은커녕, 업무나 연구 외의 교류에 대해 적극적인 성향이라곤 눈곱만큼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그였으니.

         

         “아, 뭐야. 벌써 교대 시간인가.”

         “우리 실장님은 항상 칼 같으셔서 좋단 말이지. ……근데 세뉼이 대체 무슨 뜻이냐?”

         “글쎄… ‘이제 끝’이나, ‘종료’ 같은 거 아니겠냐? 가끔 말하시잖아.”

         

         “…….”

         

         다만 직속 직원들과의 관계가 이렇게까지 배배 꼬인 건 과연 어떨까… 싶었다.

         

         봐라, 방금 ‘좆같군.’ 이라고 중얼거린 혼잣말을 무슨 임무 교대 암구호쯤으로 알아먹고 있지 않나.

         아직 업무 시간이 2분 47초나 남았거늘 은근슬쩍 자신을 핑계로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고 출입문 쪽을 힐끔거리질 않나.

         

         오늘이야말로 퇴근길에 붙잡아서, 머리에 번역용 데이터 칩이라도 박아 넣고 상부에서 제시한 근무 지침을 제대로 교육해줘야 하나 고민하다가도.

         

         다른 부서 떨거지들이 뒤에서 제멋대로 씨부리는 험담을 듣고 있으려면, 역시나 휘하 녀석들의 오해나 착각은 귀여운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넘겨버리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가릴 피부도 안 남은 철덩어리가 옷은 왜 굳이 입는대.’

         ‘솔직히 말하자면… 생리적으로 무리? 가까이만 있어도 오싹하지?’

         ‘엑사테크는 진짜 미친 또라이 새끼들 집합소 아니냐? 부분 기계화는 몰라도 어떻게 뇌만 남길 생각을…….’

         

         …까드득!

         

         맞닿은 손가락 끝마디가 비벼지며 소름 끼치게 긁는 잡음을 자아냈다.

         흐트러진 뇌파로 인해 오페라 가면이 살짝 뭉개지며 격렬한 화질 저하가 일어났지만, 누가 보기도 전에 금세 다시 원상 복구되었고.

         

         결국 차별이란 게 별게 아니다.

         뿌리깊은 거부감이나 이해 범위를 벗어난 경이가 빚어내는 공포인 셈이지.

         

         인간 고유의 신경계통과 기계부를 잇는 인공 혈액, 그 안을 타고 흐르는 나노 봇 군체, 온갖 특수 부품 등등 전공자의 눈에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차별점이 많아도. 저들의 인식은 그저 특이하게 생겨 먹은 드로이드가 꼭 인간처럼 행동하니 껄끄럽다는 수준에서 머문다.

         

         자부심 넘치는 엑사테크 신봉자라면 쉽게 코웃음 쳤을 게 분명하다.

         ‘눈깔은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놈들’, ‘기계화 좀 한다고 자동으로 인격이 말소됐으면 네놈들도 마찬가지다’, ‘뇌만 남은 게 아니라, 뇌를 비롯한 중추신경계가 안에서 맥동하고 있는 것이다’.

         

         대충 집어도 반론할거리는 차고 넘쳤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이라면 레오나르는 그런 기계공학 분야 최고의 메가코프를, 그것도 공작소 중 한 곳을 일신의 사정 때문에 시원하게 폭파시키고 도망친 신세라는 것 정도?

         

         그래서 조용히 짜증만 삼키는 거다.

         

         이 몸이 보유한 수많은 이점을 무시할 생각은 없으나, 애당초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해서 이런 꼴이 되었다는 걸 설명하기도 애매했기에.

         

         “…이만 마무리하지. 다들 근무 시간에 새로 갱신된 위험인물 명단(Blacklist)만 업데이트하고 일괄 퇴근하도록. 회식비는 내일 업무 시작 전에 미리 결제 올려놓고.”

         

         “옙!” “예입~” “어흑마이깟 실장님….”

         

         매일 칼퇴근 보장, 사생활에 일절 간섭 없음, 자율 회식이라는 덕망 넘치는 근태 매커니즘 덕분에 의외로 험담만큼 인망도 넘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레오나르 경은 시스템에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자마자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인 즉슨, 개인적으로 고용한 해커 용병이 지금 막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는 통신이 들어왔기 때문으로.

         

         한시라도 빨리 만나서 상대의 솜씨를 확인한 다음, 탈환 작전의 실현 가능성을 점쳐보고 싶었다.

         아직 연줄이 남아있는 내부 관계자로부터 과연 데드라인(Deadline; 최종 한계, 마감 시한)까지의 여유가 이제는 정말 촉박하다는 대답이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바닥에서 절대적인 가치는 역시 크레딧.

         

         거의 한계 언저리로 보수를 내걸었다 해도 여러모로 지출이 많은 연구자 겸 공학자인 레오나르의 현재 안타까운 지갑 사정으로는.

         블랙마켓 실장 신분을 백분 활용해도 충분한 실력과 무거운 입을 모두 만족하는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으니… 아니나다를까, 보안실 근처 골목에서 어렵사리 구한 용병을 만난 그는 또 좆 같은 개소리를 들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진심으로 한탄했다.

         

         

         

         “씨발 어쩐지. 시스템 무력화나 제어권 탈취 특화 기술자를 원한다더니… 기업의 개새끼셨구만? 아니, 본격적인 탈주자신가?”

         

         “…부정은 하지 않겠네. 그대가 아무리 Salaud avec une sale gueule여도 상호 신뢰는 기본이니까.”

         

         최후의 예의로서 ‘입에 걸레 물은 새끼’라는 표현은 프랑스어로 중얼거린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앞에서 흔들리는 남자의 옷자락엔 말라붙은 음식 국물과 찌든 때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어떤 면모에서는 방구석 폐인 해커의 훈장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위생과 청결에 병적인 기준점을 가진 레오나르에겐 살아있는 쓰레기가 꿈틀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이 부분이 난관이다. 지나치게 눈에 띄는 특징적인 외형.

         누가 보더라도 진짜 이상한 인물이 아니라면 전 엑사테크 소속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서 정체가 순식간에 탄로나는 게 기본이었다.

         

         하기야 정체만 밝혀진다면 큰 말썽거리가 아닐 수도 있겠는데, 보통 이런 식으로 레오나르 경의 ‘존중’을 자기가 주도권을 잡았다고 착각한 이들은 꼭 용서해주기 힘든 선을 거침없이 넘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 바로… 지금처럼.

         

         “허 참…. 그럼 씹 역시 타겟도 엑사테크? 이런 푼돈으로 누굴 엿 먹이려고……. 어이, 양철 인간 형씨. 선수금 내놓고 꺼져.”

         

         “…의뢰를 수락할 태도가 전혀 아닐진대 무슨 논리를 거쳐서 나온 결론인지 모르겠군.”

         

         “존나 답답하긴…! 저쪽 본사에 신고 당하기 싫으면 최소한 입막음비는 쥐어 주는 게 기본 아니야?!”

         

         업계 불문율이 언제부터 공식적인 규칙이 된 걸까? 참으로 같잖은 협박이라고 그는 내심 조소했다.

         기본적인 예의는커녕 위기 의식조차 결여된 이런 인간은 사실상 바퀴벌레만도 못한 게 아닐까… 진지하게 고찰할 가치가 있어 보였다.

         

         “그런 불문율 이전에, 의뢰인에 대한 정보 발설 금지 또한 용병의 기본이거늘. 그 부분은 입맛대로 저버리겠다고 당당하게 떠드는 겐가?”

         

         “와, 진짜 속 터지는 소리만 일부러 골라 쳐하냐? 용병 면허야 정지당해도 새로 뚫고 올리면 그만이지만 왜 댁은 목숨이 여러 개인 것 마냥 구는지…!”

         

         툭, 하고.

         삿대질을 일삼으며 다가오던 남자의 입에서 튄 침이 모니터 한구석에 묻자마자, 미세한 반응을 돌려주던 유압 장치와 디스플레이 패널의 움직임이 일순간 정지했다.

         

         뭐지? 자기가 떠든 내용이 전부 사실이면 어쩌려고. 설마 정말 후환을 남길 거라고 생각하고 깝죽대는 건가? 아니면 마켓 내부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뒤질 일이 절대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나?

         

         연구가 지체된 사이에 여벌 목숨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서비스가 에나마에서 개발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그것도 몸뚱이를 옮겨줄 조력자가 있어야 가능한 거라 알았는데.

         

         잠깐 사고를 거듭하던 레오나르 경은 떨거지의 손가락이 코트를 찌를 것처럼 가까이 접근해오자 이내 마음을 정했다. 이건 도저히 활용 방도가 없는 불량품이라고.

         

         까드드드득—!!

         

         “꺾!?!”

         

         불결함이 도를 넘었다고 여긴 그는 이 얼빠진 용병을 제압하는데 손조차 쓰지 않았다.

         내디딘 무릎을 걷어차서 관절을 부숴버린 직후. 자연스럽게 허리 근처까지 내려온 머리를 그대로 짓밟아서 골목 바닥에 처박는 걸로 종료.

         

         행여나 흘러나온 피나 두피질이 구두에 묻기라도 할라, 으스러지는 진동이 골격을 타고 전해지는 것만 확인하고는 냉큼 치워버렸다.

         

         굳이 뒷처리를 신경 쓸 필요? 전혀 없었다.

         만남이 파투난 걸 직관한 마켓 직원 두 명이 곧장 튀어나와, 알아서 수습에 매진했으니까.

         

         “흥…!!”

         

         “으엑…? 실장님? 설마 바로 죽이셨슴까?”

         “이 멍청아! 가슴팍을 보고 말해야지. 아직 오르락내리락 하잖아? 후딱 지갑부터 찾아서 잘라내! 연결 해지될라.”

         

         퍽! 퍼석!!

         

         뽑혀 나온 손도끼가 내리쳐지는 소리, 찢어지는 파열음.

         추후에 상대가 먼저 블랙마켓 공무원을 겁박했다는 공평한 증인이 되어줄, 미리 포섭해둔 소각장 직원들의 작은 용돈벌이를 못 본 체한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번에도 적임자를 구하는 건 완전히 실패, 또 다시 꽝인 셈이다.

         

         의뢰주인 자신이 쫓기는 신세인 로그 에이전트라는 걸 눈치채더라도 넘어갈 배포.

         목표로 삼은 장소가 엑사테크 사유지라는 걸 알아도 물러서지 않을 배짱.

         이미 공공연하게 내걸린 현상금이나, 추가적으로 엑사테크 쪽에서 제시할 포상금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심지가 굳은. 이 모든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조력자를 찾는 과정은 역시나 험난했다.

         

         ……이렇게 된 이상,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자력으로 공세를 펼쳐야 하나 고민이 깊어 가던 찰나에.

         

         몇 달 전에 소식과 흔적이 완전히 끊겨서 고용하는 걸 포기했던 ‘일순위 후보’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특징이 때마침 그의 귓전을 간질였다.

         

         “캬! 점마는 무슨 주계좌도 아니고 지갑에 몇 십만을 넣고 다니네. 이거면 카지노에서 네 시간은 넘게 버티겠다!”

         

         “…너 요즘 그런 데에 돈 쓰냐? 개미 새끼들은 구조적으로 무조건 지게 되어있는 곳을 왜 가냐 대체?”

         

         “얌마, 그것도 다 옛말이고. 웬 집사 로봇 타고 다니는 새까만 여자애가 구조적 결함인지, 필승법인지를 알아내서 카지노마다 털고 다니다가 기어이 출입금지 당했다는 소식 못 들었냐? 막히기 전에 규칙만 알아낼 수 있으면 우리도 가능하다니까?”

         

         “…….”

         

         집사 로봇에 새까맣다는 외모. 여자가 아닌 여자애라는 표현.

         

         워낙 간략한 묘사라 확신을 가지기는 섣불렀지만… 만약 그간은 기업 의뢰를 수행하느라 바빴고, 성공적으로 끝마친 그녀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면.

         그에게는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으니.

         

         피투성이 상태로.

         쭈그려 앉아서 작업하느라 한창 바쁜 와중에도, 머리 위에 드리워진 보안실장의 그림자를 인지한 둘은 얼른 자세를 바로 하고 그의 용건을 경청했다.

         

         “…그 얘기, 한 번 출처부터 자세히 들어볼 수 있겠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엣.

    효도왕여포 님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후원 메시지 부분이 공란인 게 왠지 더 무섭네요. 네… 무언의 압박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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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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