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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도망치는 적을 쫓는 건 언제나 귀찮은 일이다.

     

     주로 나는 ‘처형’ 이전에는 도망자들을 쫓는 쪽이었고, 처형 이후에는 도망을 다니는 쪽이었다.

     그래서 더 머스킷을 선호한다.

     도망가는 자를 죽이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면, 가까이 다가갈 필요 없이 멀리서도 쏴죽이는 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머스킷을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이제는 제국주의자 그레이로서 머스킷을 항상 들고 다녀도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일단 당장은 머스킷이 없다.

     그러나.

     머스킷을 대신할 물건은 지금 내 손에 분명히 있다.

     휘릭.

     가볍게 지팡이를 들고 그 끝을 앞으로 겨눈다.

     지팡이의 손잡이 위를 가볍게 툭 치자, 끝부분이 아래로 툭 떨어지며 손잡이처럼 고정된다.

     ‘이거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자체적으로 제작한 물건이라 그 누구도 이 지팡이가 가진 모든 기능을 알지 못한다.

     

     대외적으로는 지팡이 손잡이를 비틀어 안에서 칼을 뽑아내고는 했지만, 손잡이 부분의 결합 상태를 조정하는 걸로 나는 얼마든지 지팡이를 조정할 수 있다.

     흡사, 머스킷처럼.

     딸칵.

     지팡이 끝, 땅을 짚는 부분-덮개를 위로 당긴다.

     

     올라오는 것은 지팡이의 끝에 달린 회색의 고리 뿐이고, 아래를 막고 있던 덮개는 부품이 떨어진 것처럼 바닥을 데구르르 구른다.

     “으아아ㅡㅡㅡ”

     말을 타고 도망가는 기사를 향해, 정확히 그 뒤통수를 고리 안에 넣는다.

     “타ㅡ앙.”

     그리고 가볍게, 지팡이 내부에 마나를 밀어넣으며 마나를 방출한다.

     타ㅡ앙.

     총격 소리와 함께, 지팡이 내부에서 발사된 마나가 ‘탄환’이 되어 날아가 기사의 목에 정확하게 꽂힌다.

     

     탄환의 형태는 제국에서 쓰는 머스킷 특유의 납탄 형태가 아닌, 나의 지팡이 내부에 들어있는 칼날의 끝과 같다.

     검기방출.

     제국도법의 일종으로, 마스터급 경지에 이른 이들이 사용하는 원거리 공격.

     주로 칼날 위에 오러 블레이드를 씌웠을 때, 그 오러를 강력한 폭발과 함께 방출하여 적에게 오러 그 자체를 쑤셔박는 무식한 기술이지만, 나는 그걸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끝 부분만 사출하겠다고? 아예 적에게 닿는 부분만 오러를 구축하겠다고 하지 그러느냐. 화살촉과 화살대처럼…. 잠깐, 이거, 가능한가?

     본래는 제국도법에서 기원한 기술이었으나.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한 번 연구해보자꾸나.

     누군가의 도움으로, 나는 기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름을 붙이자면…그래. 뭐? 기술명 같은 건 무의미하다고? 어리석기는. 기술명을 붙이는 게 분명 실효성은 없어보이기는 하지만, 기술명을 붙여야 비로소 ‘그 자의 것’이라는 느낌이 오는 거다.

     제국어로 이야기를 하자면, 기술명을 외치는 건 ‘저작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기술은 지극히 간단하다.

     백은탄(白銀彈).

     화살촉으로는 은빛이 감도는 회색의 오러를.

     화살의 뒤로 뿜어져나오는 마력으로는 솜누스 꽃으로부터 대량 흡수한 마나를.

     그리고 그걸 화살이나 매직 미사일 형태가 아닌, 기나긴 원통 안에서 회전하며 폭발과 함께 날아가 적에게 꽂히는 탄환의 형태로.

     -노스트럼식으로 이름을 붙이자면…그래. ‘실버 불릿’정도로 정할 수 있겠구나.

     기술 이름을 정하는데 진심인 어느 한 옛날 사람은 이 기술을 그렇게 명명했지만, 내게는 아무래도 좋다.

     설령 이 기술이 저기 어딘가에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합스베르크에게 들킨다고 하더라도, 나는 지금 ‘시간’이 중요한 상황이니까.

     타ㅡ앙, 탕, 타ㅡㅡ앙.

     한 번 쏠 때마다 기사들이 쓰러진다.

     도망가는 이들도, 의지를 잃고 쓰러진 이들도 전부 목에 백은탄이 꽂혀 피흘리며 쓰러진다.

     탄환이 칼날의 형태를 하고 있어 세로로 박히지만, 적당히 각도만 비틀어 쏘면 식도나 기도, 심지어 목뼈까지 정확하게 갈라버릴 수 있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도망가면 안 돼. 진짜, 시간 없다고.’

     시간이 아까운 게 아니다.

     제로스 바르셀 후작을 그다지 길게 상대하지 않고 바로 목을 잘라버렸던 건, 전부 다 저들을 ‘배려’하기 위함이다.

     타ㅡ앙.

     “……”

     마지막 황금여명의 기사였던 것까지, 전원 사살.

     나는 내 몸에 남아있는 마나를 한 번 점검한 뒤, 그대로 지팡이를 원래대로 돌렸다.

     “어디, 말을….”

     

     히히힝.

     말들도 도망친다.

     일부러 기수들만 죽여서 낙마시켰는데, 말들은 기수가 떨어지자마자 바로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면서 도망쳤다.

     “…….”

     이럴 줄 알았으면 발자크 자작으로부터 빌린 말을 어디 숨겨놓을 걸 그랬나.

     

     아니다.

     타고갔으면 분명 제로스 바르셀이 말부터 저격을 했을 것이며, 말은 그렇게 죽었을 것이다.

     ‘그래도 마냥 뛰어가라는 법은 없네.’

     그나마 다행이라면, 말 한 마리가 남아있다는 것.

     누가 나무에 고삐를 묶어두고 말뚝을 박아넣은 걸로 보아, 잠시 말에서 내렸다가 말을 탈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친 것 같다.

     푸, 푸르르….

     말이 내게서 거리를 벌린다.

     

     “이봐.”

     나는 천천히 말에게 다가가, 말을 향해 가볍게 그 등을 토닥였다.

     “나 빨리 안 가면 전쟁 일어난다. 잠시, 도와주지 않겠어?”

     푸르르….

     “하여튼.”

     제1 기사단의 군마로서 자란 말이 피를 뒤집어 쓴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으니, 어찌 이런 말을 데리고 전장을 나서고 그러겠는가.

     ‘이러니까 콘키스타도르가 바이크를 선택했지.’

     오랫동안 익힌 승마를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오랜 기간 군마들은 마갑을 착용하고 달리는 연습만 했지, 실제 군사훈련 같은 걸 치르면서 피가 얼굴에 튀거나 피에 젖은 기사를 태워보거나 한 적도 없었으니까.

     인간의 피를 보지는 않았어도 저기 오염지대의 마물을 상대로 피를 봤다면 이런 반응도 없었을텐데.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나는 급하다.

     당장, 지브롤터 영지로 가야하니까.

     * * *

     

     * * *

     “워, 워.”

     

     늦은 밤.

     자정이나 새벽에 가까운 시각이지만, 나는 간신히 지브롤터 영지의 영주성에 도착했다.

     “백작…님?”

     “아니야.”

     머리가 피에 잔뜩 젖어서 제대로 씻을 시간도 없었기에 급하게 달려왔다고는 하지만, 어둠 속에서 나를 본 병사 하나가 나를 아버지로 착각했다.

     “히, 히익…?! 그, 그레이 도련님!! 이게 어떻게 된…!”

     “습격당했다. 아버지는 어디에….”

     쿠ㅡ웅.

     “…오셨습니까.”

     “무슨 일이냐.”

     아버지를 찾기도 전에, 하늘에서 아버지가 떨어졌다.

     정확히는 영주성 창문에서 나를 보자마자 바로 창문을 열고 달려온 것.

     “캐롤라인 성에 계신 줄 알았습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렘버리 캠프가 끝나 카를로스 녀석들이 돌아올 때까지는 공무상 백작성에 있으려고 했다.”

     “어머니는요?”

     “레타르와 동생들을 데리고 저택의 방 안에 그대로 있다. 레타르도 있으니, 동생들이 어디 따로 나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어머니도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있지만, 레타르는 동시에 장녀다.

     아래로 태어난 아이들이 어딘가 엇나가지 않게, 레타르’답게’ 아이들을 휘어잡아 누아르(7세)하지 않게 잘 관리하고 있다고 들었다.

     문제는….

     “아버지.”

     “누구냐.”

     아버지가, 지금 표정이 상당히 안 좋다는 것.

     내가 아버지의 눈치를 봐야할 정도로, 그는 지금 몹시 기분이 좋지 않다.

     “밖에서 나눌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괜히 문제가 될 수있습니다. 잠시, 이쪽으로.”

     “…….”

     나는 말에서 내린 다음, 말을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밀었다.

     

     푸, 푸르르.

     말의 안장과 털에 옮겨 묻은 붉은 피에 병사들이 당황하고, 아버지는 그런 피를 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발자크냐?”

     “그래도 장인어른인데.”

     “그레이 지브롤터.”

     “…제로스 바르셀 후작 이하, 황금여명 기사단이었습니다.”

     나는 순순히 아버지에게 사실을 말했다.

     “그 자들은 어떻게 되었지?”

     “모두 죽었습니다. 정정. 죽였습니다.”

     “그런가.”

     “예.”

     이미, 내가 다 죽였다.

     “아버지.”

     그러니.

     “일단, 진정 좀 하시고….”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 자리에 왔는데, 아무래도 역효과가 난 게 아닐까.

     “이건 국가를 향한 충성과 반역 문제이기 이전의 문제다. 자식이 암살당할 뻔 했는데, 그걸 가만히 있는 아버지가 어디에 있단 말이더냐.”

     “아버지. 그래서 제가 죽이고 왔잖습니까. 제로스 바르셀 후작은 고인이 되었으며, 우리가 가야할 곳은 장례식장입니다.”

     왕국 제1 기사단 단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것이 공식적으로 밝혀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은폐하든 밝히든 제로스 후작은 죽었다.

     “흑마법으로 어떻게 되살려서 시체인형 상태로 데리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목을 날리고 심장을 파괴했습니다. 비록 급하게 달려오느라 시신을 수습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습니다만….”

     “그 자를 죽인 건 잘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망설이지 않고 죽인 건 분명 잘 한 일이다.”

     

     아버지가 나를 향해 다가와, 하얀 셔츠의 소매를 뻗어 내 머리를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불결한 자들의 피가 묻습니다.”

     “소매 좀 더러워지면 어떠냐. 가서 머리라도 먼저 씻거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진행하마.”

     “아버지께서 다 알아서 진행하도록 하지 못하기 위해서 제가 이렇게 달려온 거 아닙니까. 개울에서 머리 씻지도 못하고.”

     “그러니 푹 쉬고, 지브롤터 변경백에게 모든 걸 맡겨라.”

     “…하나, 여쭙겠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하실 겁니까, 전쟁?”

     “물론.”

     “어디까지 들으신 겁니까?”

     “아마도 네가 출발하기 직전까지 있었던 일, 전부.”

     “…….”

     “윈체스터 대공이 내게 직접 연락을 보냈다.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중립의 위치에서 중재는 하겠지만 딱 거기까지만 하시겠다고 했지.”

     “윈체스터 대공이 직접 아버지께…?”

     “물론. 나보고 알아서 하라더구나. 원칙과 법도, 전통에 맞게.”

     새삼, 나는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귀족들의 분쟁을 중재해야 하는 대공이 그렇게 말했다는 겁니까? 진심으로?”

     “그래. 대공이 그러시더구나. 그레이 지브롤터가 자네를 설득하려고 한다면, 이렇게 말하면 분명 이해할 거라고.”

     아버지는 소매에 묻은 검붉은 피를 손으로 문질렀다.

     “불타버린 열차, 그거 대공 조카의 시누이의 양자 몫으로 돌아간 차명 재산이었다고.”

     “…….”

     “직접적으로 다스리는 건 재상이자 대공으로서 재판을 하는 것 정도겠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거든.”

     아버지가 허리에 찬 칼을 움켜쥐었다.

     “그레이.”

     변경백이, 칼을 들었다.

     “바르셀 후작가를 상대로, ‘결투’하겠다.”

     “…….”

     “그 시작은 이미 네가 했잖느냐, 그레이.”

     “예, 뭐. 그런데…후작이 죽었는데, 결투가 성립되는 겁니까?”

     “제로스 바르셀이 죽었어도, 바르셀 후작가는 남아있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에게 충성하는 가문은.”

     결투, 이라는 이름의 전쟁.

     “영지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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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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