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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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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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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물살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아이리스는 겨우 머리를 붙잡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몸을 세웠다. 그녀가 눈을 뜬 곳은 한없이 넓고 새하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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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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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도 땅도 모두 눈부시게 하얀, 끝이 보이지 않는 순백의 세계였다.
    ​
    ​
    주변에는 소리가 없었다. 고요하고 정적만이 가득했다. 공기는 상쾌하고 깨끗했으며, 숨을 쉴 때마다 맑고 신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
    ​
    또각.
    ​
    ​
    “…!”
    ​
    ​
    갑작스럽게 들려온 구둣발 소리에 아이리스의 몸이 휙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공간에 낯선 여성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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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리스는 순간 여성의 미모에 넋을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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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하늘처럼 짙고 윤기 나는 흑발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머리카락은 물결처럼 우아하게 빛났다.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지혜를 품은 검은 눈동자는 고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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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날카로웠지만 부드러운 표정을 머금고 있어 고고하면서도 온화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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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부는 달빛처럼 희고 투명해, 어두운 머리카락과 대조를 이뤄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신이 직접 빚은 듯 그저 감탄만 나오는 얼굴은 없던 신앙심조차 생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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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레이스가 가득 달린 하녀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워낙 분위기가 우아하고 고고하여 기사의 제복처럼 어떠한 제복처럼 느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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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깔끔하게 날아갈 정도로 지고의 미모를 가진 여자는 아이리스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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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 시선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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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 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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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시선 끝에는 바짝 얼어붙어 있는 노아와 제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아이리스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미모에 당황했는지 살짝 넋을 놓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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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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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가 굳어있던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재차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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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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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눈앞에 있던 검은 머리의 여자는 딱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인데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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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지워버리는 게 나으려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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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바짝 굳어있는 노아와 제스의 등 뒤였다. 그녀는 1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 사이를 성큼 파고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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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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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은 무어라 입술을 떼어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틀어막힌 것처럼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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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 당하는 건 싫지만… 질투는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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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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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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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명 눈도 깜빡이지 않고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또다시 기척을 놓쳤다. 이에 세 사람은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론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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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기운에 짓눌린 것도, 정말 몸이 굳어버린 것도 아닌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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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처럼 무력하게 당할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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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의 희생을 눈앞에서 그저 구경만 해야 했던 무력했던 과거가 노아의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녀는 겨우 벙긋거리며 숨을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콱!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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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부가 찢어지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비릿한 혈 향이 코를 찔렀다. 아찔한 통증에도 몸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 하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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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노아는 포기하지 않고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고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아이리스와 제스 또한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자 발버둥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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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그녀들의 노력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건지,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굼벵이가 기어가는 속도나 다름없었지만 적어도 말 정도는 더듬더듬 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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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누구..? 리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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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는 얼어붙은 혀를 몇번이고 깨물어 몇 개의 단어를 겨우 뱉어냈다. 그러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여자가 ‘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노아의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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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노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우주를 품은 듯 인간의 것 같지 않은 눈동자를 노아는 집요하게 직시했다. 발견해선 안 되는 걸 마주한 것처럼 아찔한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그보다 더한 절망을 알기에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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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럽게 시작된 눈싸움은 얼마 가지 않아 그녀가 눈웃음을 치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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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짜증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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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애로운 미소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뜻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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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갑작스럽게 손을 노아를 향해 빠르게 뻗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노아의 심장을 파고들 듯 가슴팍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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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도 한계였기에 훅 다가오는 손을 막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위협적으로 가슴팍을 파고든 순간, 멈칫. 손이 허공에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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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순간, 그녀가 제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어 손을 멈췄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아의 생각을 부정하듯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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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그녀의 손은 노아에게 닿지 못했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어떠한 힘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인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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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지직, 파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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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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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정도 이상 힘을 주자 투명하여 보이지 않던 막이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게 일렁이는 막이 노아의 몸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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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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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가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곤 검지 끝으로 툭툭 막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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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 개그의 신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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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에 안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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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볍게 힘을 줬다고는 하나, 그녀는 아득한 격을 가진 신이었다. 개미에겐 인간의 발걸음이 재앙이 되듯 그녀의 가벼운 공격 또한 인간에겐 거대한 재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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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재앙을 굳건하게 막고 있는 막에선 익숙한 기운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처음 발견했던 아득한 가능성을 가진 ‘권능’, 리안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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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이 이렇게 꼬일 줄 알았으면 영웅의 곁에 두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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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차며 노아에게 뻗은 손을 거둬들였다. 그녀는 다시 한번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아이리스 앞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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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아이리스의 금안을 들여다보며 제 손으로 직접 빚었던 육체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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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머리카락과 피, 눈물을 이용해 만든 ‘리안’이라 불리는 육체는 특별했다. 어떤 영웅보다도 고결하고, 그 어떤 영혼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릇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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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 담긴 영혼이 ‘신의 격’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녀가 빚은 육체라면 금도 가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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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몸을 덜덜 떨며 어떻게든 움직이려는 아이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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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륵, 조각처럼 아름다운 손이 하얀 머리카락을 귀 뒤쪽으로 넘겨주었다. 약간은 서늘한 손이 스치자 아이리스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아찔한 충격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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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듯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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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 비슷한 색을 가진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역시 금안이 아니라 은회안이 나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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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리안과 빼닮은 색을 품은 아이리스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생각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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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냐, 리안에겐 금안이 가장 잘 어울려. 그의 눈 색을 바꿀 게 아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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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파르르 떨리는 아이리스의 속눈썹을 살살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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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녀석의 눈을 뽑아버리면 될 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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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의를 가지기 무섭게 보이지 않는 막이 그녀의 손가락을 밀어낸 탓에 그녀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아이리스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려 제스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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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로 위협하지 않아도 그녀에겐 제스를 감싼 리안의 권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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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을 사랑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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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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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보내지 말 걸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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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마치 학원에서 다쳐온 어린 아들을 보며 속상해하는 부모처럼 후회가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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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리스를 비롯한 세 사람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만약  이곳에 리안이 있었다면 어이가 없어 입을 헤 벌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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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개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개그 세계에서 다크 판타지 세계로 팔려 가듯 넘어가게 된 것도, ‘악역’으로 분류된 리안의 몸에 빙의된 것도 전부 -… 그녀의 계획이란 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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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거대한 물살에 휩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지러웠다. 아이리스는 겨우 머리를 붙잡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던 몸을 세웠다. 그녀가 눈을 뜬 곳은 한없이 넓고 새하얀 공간이었다.

“여긴…”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도 땅도 모두 눈부시게 하얀, 끝이 보이지 않는 순백의 세계였다.

주변에는 소리가 없었다. 고요하고 정적만이 가득했다. 공기는 상쾌하고 깨끗했으며, 숨을 쉴 때마다 맑고 신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또각.

“…!”

갑작스럽게 들려온 구둣발 소리에 아이리스의 몸이 휙 돌아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공간에 낯선 여성이 서 있었다.

아이리스는 순간 여성의 미모에 넋을 놓고 말았다.

밤하늘처럼 짙고 윤기 나는 흑발이 비단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머리카락은 물결처럼 우아하게 빛났다. 인간이 감히 이해할 수 없는 지혜를 품은 검은 눈동자는 고혹적이었다.

그녀의 날카로웠지만 부드러운 표정을 머금고 있어 고고하면서도 온화해 보였다.

피부는 달빛처럼 희고 투명해, 어두운 머리카락과 대조를 이뤄 신비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신이 직접 빚은 듯 그저 감탄만 나오는 얼굴은 없던 신앙심조차 생기게 했다.

그녀는 레이스가 가득 달린 하녀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워낙 분위기가 우아하고 고고하여 기사의 제복처럼 어떠한 제복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수많은 상념이 깔끔하게 날아갈 정도로 지고의 미모를 가진 여자는 아이리스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리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 시선을 돌렸다.

‘…! 노아! 제스!’

그녀의 시선 끝에는 바짝 얼어붙어 있는 노아와 제스가 있었다. 두 사람은 아이리스와 마찬가지로 여자의 미모에 당황했는지 살짝 넋을 놓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또각.

아이리스가 굳어있던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재차 구둣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걸음.

분명 눈앞에 있던 검은 머리의 여자는 딱 한 걸음 나아갔을 뿐인데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역시… 지워버리는 게 나으려나?”

“…!”

“…!”

그녀가 다시 나타난 장소는 바짝 굳어있는 노아와 제스의 등 뒤였다. 그녀는 1m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 사이를 성큼 파고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그녀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말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세 사람은 무어라 입술을 떼어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틀어막힌 것처럼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미움 당하는 건 싫지만… 질투는 나고.”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다시 한 번 더 앞으로 나아갔다.

또각.

분명 눈도 깜빡이지 않고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또다시 기척을 놓쳤다. 이에 세 사람은 섬뜩함에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론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압도적인 기운에 짓눌린 것도, 정말 몸이 굳어버린 것도 아닌데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처럼 무력하게 당할 순 없어!’

리안의 희생을 눈앞에서 그저 구경만 해야 했던 무력했던 과거가 노아의 눈앞을 아른거렸다. 그녀는 겨우 벙긋거리며 숨을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못 하는 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콱! 깨물었다.

피부가 찢어지는 섬뜩한 느낌과 함께 비릿한 혈 향이 코를 찔렀다. 아찔한 통증에도 몸은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려 하자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럼에도 노아는 포기하지 않고 굳어버린 몸을 움직이고자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아이리스와 제스 또한 굳어버린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자 발버둥 쳤다.

그런 그녀들의 노력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건지, 조금이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봤자 굼벵이가 기어가는 속도나 다름없었지만 적어도 말 정도는 더듬더듬 뱉을 수 있었다.

“당신..은 누구..? 리안…은..”

노아는 얼어붙은 혀를 몇번이고 깨물어 몇 개의 단어를 겨우 뱉어냈다. 그러자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여자가 ‘또각’하는 소리와 함께 노아의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노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우주를 품은 듯 인간의 것 같지 않은 눈동자를 노아는 집요하게 직시했다. 발견해선 안 되는 걸 마주한 것처럼 아찔한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그보다 더한 절망을 알기에 식은땀을 뚝뚝 흘리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눈싸움은 얼마 가지 않아 그녀가 눈웃음을 치며 막을 내렸다.

“짜증 나네.”

자애로운 미소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나긋했지만, 뜻은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손을 노아를 향해 빠르게 뻗었다. 길게 뻗은 손가락이 노아의 심장을 파고들 듯 가슴팍을 향했다.

더듬거리며 말하는 것도 한계였기에 훅 다가오는 손을 막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위협적으로 가슴팍을 파고든 순간, 멈칫. 손이 허공에 멈춰버렸다.

노아는 순간, 그녀가 제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어 손을 멈췄다고 생각했다. 그런 노아의 생각을 부정하듯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녀는 팔이 덜덜 떨릴 정도로 힘을 주었지만, 그녀의 손은 노아에게 닿지 못했다. 노아는 보이지 않는 어떠한 힘이 자신을 지켜주고 있음을 인지했다.

치지직, 파지직!

“…!”

그녀가 정도 이상 힘을 주자 투명하여 보이지 않던 막이 일렁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푸르게 일렁이는 막이 노아의 몸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다.

“흐응.”

막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가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곤 검지 끝으로 툭툭 막을 두드렸다.

그녀, 개그의 신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생각했다.

‘마음에 안 들어.’

가볍게 힘을 줬다고는 하나, 그녀는 아득한 격을 가진 신이었다. 개미에겐 인간의 발걸음이 재앙이 되듯 그녀의 가벼운 공격 또한 인간에겐 거대한 재앙이었다.

그런 재앙을 굳건하게 막고 있는 막에선 익숙한 기운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멸망해가는 세계에서 처음 발견했던 아득한 가능성을 가진 ‘권능’, 리안의 힘이었다.

‘일이 이렇게 꼬일 줄 알았으면 영웅의 곁에 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녀는 속으로 혀를 차며 노아에게 뻗은 손을 거둬들였다. 그녀는 다시 한번 느릿하게 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아이리스 앞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아이리스의 금안을 들여다보며 제 손으로 직접 빚었던 육체를 떠올렸다.

그녀의 머리카락과 피, 눈물을 이용해 만든 ‘리안’이라 불리는 육체는 특별했다. 어떤 영웅보다도 고결하고, 그 어떤 영혼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릇이 컸다.

안에 담긴 영혼이 ‘신의 격’을 가지게 되더라도 그녀가 빚은 육체라면 금도 가지 않을 터였다.

그녀는 몸을 덜덜 떨며 어떻게든 움직이려는 아이리스에게 손을 뻗었다.

스륵, 조각처럼 아름다운 손이 하얀 머리카락을 귀 뒤쪽으로 넘겨주었다. 약간은 서늘한 손이 스치자 아이리스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아찔한 충격을 느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듯 숨이 막혔다.

‘흠… 비슷한 색을 가진 인간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 못했는데. 역시 금안이 아니라 은회안이 나았으려나?’

그녀는 리안과 빼닮은 색을 품은 아이리스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생각을 이어갔다.

‘아냐, 리안에겐 금안이 가장 잘 어울려. 그의 눈 색을 바꿀 게 아니라 -…’

그녀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파르르 떨리는 아이리스의 속눈썹을 살살 쓸었다.

‘이 녀석의 눈을 뽑아버리면 될 일이잖아.’

살의를 가지기 무섭게 보이지 않는 막이 그녀의 손가락을 밀어낸 탓에 그녀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아이리스의 눈을 지그시 들여다보다 이내 시선을 돌려 제스 쪽을 바라보았다.

따로 위협하지 않아도 그녀에겐 제스를 감싼 리안의 권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이런 것들을 사랑하게 된 거지?”

그녀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팔짱을 끼었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보내지 말 걸 그랬어.”

그녀는 마치 학원에서 다쳐온 어린 아들을 보며 속상해하는 부모처럼 후회가 담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이리스를 비롯한 세 사람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만약  이곳에 리안이 있었다면 어이가 없어 입을 헤 벌렸을 것이다.

리안이 개그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것도, 개그 세계에서 다크 판타지 세계로 팔려 가듯 넘어가게 된 것도, ‘악역’으로 분류된 리안의 몸에 빙의된 것도 전부 -… 그녀의 계획이란 말이었기 때문이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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