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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황동경이 가져온 엘프의 서적들을 최대한 살펴 본 결과, 여러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신들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는 가설은 사실이었던 것으로 증명되었다.

       

       당시 같은 문화권을 공유하는 신들이 세력을 이루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전쟁을 벌였다는 부분이 확인되었으니.

       

       올림포스와 엔네아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두 세력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었다는 내용은 인간의 기록에도, 드워프의 기록에도 찾아볼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오직 엘프만이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하여 신들은 전쟁을 벌였던 것일까? 한정된 신앙을 두고 서로 쟁탈전을 벌였던 것일까? 아니면 신들 사이에 얽히고 섥힌 관계가 전쟁으로 이어졌던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확실히 기록되어 있는 것은…. 올림포스와 엔네아드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서로의 이해관계와 신들 사이의 친분으로 인하여 더욱 더 복잡하게 꼬여갔고, 두 세력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더욱 더 덩치를 불려나간 끝에 당시 만신전의 신들 중 6할이 참전하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수십, 수백일에 걸친 전쟁은 끝없이 이어졌고, 수많은 신들이 신앙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쇠퇴하거나 파멸하는 등.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전쟁의 결말은…. 음. 이걸 벌써 말하면 조금 김이 빠지겠군. 그래도 이러한 전쟁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으니까.

       

       상당한 수확이긴 했지만…. 좀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어째서 신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 것인가?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는가? 왜 수많은 신들은 서로의 신앙을 걸고 싸웠어야 했는가?

       

       그러한 이유는 완전히 불명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당시에 가장 강대했던 신들의 세력 넷. 그 중 올림포스와 엔네아드가 전쟁을 벌였다면…. 다른 둘은 어디서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

       

       에시르와 로카팔라. 이 두 세력은 무엇을 하였기에 언급이 없었던 것인가?

       

       지금은 생명교단이라는 이름으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생명신전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구멍 뚫린 부분들이 너무나도, 너무나도 많았다.

       

       신들에게 물어서 대답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러한 사실을 캐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들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가만두지…. 않을…. 음. 으음.

       

       아니, 잠깐. 만신전에게서 자유로운 신이라면 있지 않던가?

       

       드워프의 신. 성스러운 산 사가르마타라면…. 만신전과는 관련이 적을 터….

       

       하지만, 만에 하나. 사가르마타를 통해 만신전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면….

       

       좋지 않으리라. 분명.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단서가 없는 답답한 상황. 이제 와서 포기할수도 없는 노릇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도 막막하게 느껴졌다.

       

       엘프들의 문서도 상당한 도움이 되긴 했지만. 바알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으니.

       

       만약 바알에 대한 단서를 누군가가 모조리 지워버린 것이라면…. 얼마나 꼼꼼히 지운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 어찌해야 좋을까? 드워프에게서도, 엘프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없었다면…. 드래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까?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옆에 놓인 양피지 문서를 집어들었다.

       

       엘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 문서. 시대가 지날수록 양피지를 추가로 덧붙여서 점점 두께를 늘려간 것인지, 뒤로 갈수록 양피지의 두께가 점점 얇아지고 질도 좋아지는 문서였다.

       

       ‘가죽 세공이라면 엘프가 제일’이라고 말해질 정도로, 엘프의 가죽 세공 능력은 정평이 나있었지만…. 먼 옛날에는 이정도로 조약했던 것인가.

       

       하긴, 역사는 하루아침에 쓰여지지 않듯, 기술 역시 점차 나아지고 발전하여서 경지를 이루었을 테니. 이러한 것은 당연할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꺼운 양피지를 매만졌고.

       

       

       두꺼운 양피지에서 무언가 이질감을 느꼈다.

       

       이건…. 그냥 두꺼운 양피지가 아니었다.

       

       미묘하게 미끄러지는 촉감. 마치 한장이 아니라, 두장을 이어붙인….

       

       잠깐.

       

       나는 양피지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확인했다.

       

       한 장의 양피지처럼 되어 있었지만, 아주 작게…. 두겹인 부분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작은 단검을 꺼내어 두겹인 부분에 넣은 후, 천천히 움직였다.

       

       문서를 손상시키는 행동이었지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진 단검은 하나인 것처럼 붙어 있던 양피지의 페이지를 떼어내는데에 성공했고, 나는 하나로 붙어져 있던 양피지의 안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뒷페이지에 기록된 역사들보다 빠른 시기. 엘프의 역사 이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었다.

       

       이건…. 신들의 시대에 대한 기록인건가? 상당히 간략화하여 기록되어 있는 부분이 많긴 했지만….

       

       가장 앞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신들이 태어나던 당시의 기록. 엘프의 신인 이그드라실의 입장에서 보는 신들의 시대에 대한 기록.

       

       수많은 신들이 태어나고, 세상에 멋대로 활개치는 시대에 대한 기록.

       

       그러한 시대에, 신들의 왕…. 바엘? 음? 바알이 아니야?

       

       아니, 의도적으로 다르게 기록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에는 신들의 이름을 똑바로 기록하면 불경죄로 보았을테니까. 의도적으로 살짝 바꿔서 기록했을테니.

       

       아무튼, 신들의 왕에 대한 기록이 약간이나마 적혀 있었다.

       

       신들의 왕으로 등극하여 생명의 여신에게서 관을 받고, 수백년동안 신들을 통치하다가…. 대륙이 떠오르는 것으로 세상이 망가지는 것을 막다가…. 큰 타격을 입고 산산조각….

       

       그 후 흩어진 바알의 조각들을 바알이 만들어낸 신들이 나누어 가지고, 하늘의 신을 자처하였다…?

       

       이건…. 그러니까….

       

       나는 작게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붙여져 있던 페이지를 읽어나갔다.

       

       신들의 왕을 자처하던 신들 중 대부분이, 바알이 만들어낸 바알의 분신이었으며. 그들은 바알이 산산조각난 이후 바알의 조각을 차지하였다라.

       

       이것도 상당한 충격이었지만, 이어지는 내용들은 더욱 더 충격이었다.

       

       바알이 사라진 이후, 폭주하기 시작한 신들의 행동에 실망한 생명의 여신이…. 신들의 시대를 닫기로 결심하였으니.

       

       그런 생명의 여신을 달래기 위하여 바알의 조각을 생명의 여신에게 돌려 주었다…. 음….

       

       그것은 그 조각을 가지고 있던 신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모두가 기피하였고, 결국 신들 사이에 전쟁으로 불거지게 되었다….

       

       생명의 여신이 바알의 조각을 되찾고자 했던 것이 원인인건가? 신들의 전쟁에는?

       

       조금은 충격이었다. 신들 중에서 가장 온화하다고 말해지던 생명의 여신이 신들의 시대를 닫게 된 원인이었다니.

       

       그런데, 그런 생명의 여신이 신들의 시대를 닫았다면, 어찌하여 바알의 존재는 묻혀지게 된 것이지?

       

       신들의 시대가 끝났으니 신들의 왕은 필요치 않다는 말인가?

       

       아니면…. 무언가의 목적을 위해 바알의 존재를 지워놓은 것인가?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내용을 좀 더 정리해보도록 하자.

       

       정리하고 마무리 짓는다면…. 황동경과 상의해서 발표해도 괜찮을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지.

       

       나는 엘프의 역사서를 덮었고.

       

       

       “흐음. 제법이로구만.”

       

       

       누군가가 내가 자료를 정리하는데 사용했던 벽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의 대부분의 정보는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이정도로 자료의 취합을 해내다니.”

       

       

       은발의 소녀. 머리에 뿔이 달려 있는 은발의 소녀.

       

       역사를 공부한 이들 중, 그 모습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용의 무녀…?”

       

       “음. 자네 혼자 정리한 것인가? 인간 치고는 제법이구만. 칭찬해 주도록 하지.”

       

       

       싱긋 웃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용의 무녀라면 생명의 여신의 뜻을 대행하는, 여신의 대리인일 터.

       

       나는 품 속의 단검을 살짝 쥐었다가 놓았다.

       

       싸울 수 있을 리 없다. 애초에 싸워선 안되는 존재이기도 하였으니.

       

       싸운다고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으니까.

       

       

       “음. 잘 생각 했네. 괜히 무모하게 덤벼본들 좋은 꼴은 못볼테니 말이야.”

       

       “어떻게 여기를…?”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움직임이 있어서 말이지. 추적해 온 끝에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 자랑해도 좋네. 나의 관심을 끌 정도였으니 말일세.”

       

       

       태연하게 말하는 용의 무녀. 그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끝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나의 꿈은 이렇게 무산되는 것일까.

       

       

       “그래서, 나를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오?”

       

       “처리? 처리라….”

       

       

       용의 무녀는 짓궂은 표정으로 미소를 지은 후 말했다.

       

       

       “글쎄다. 어떻게 해줄까?”

       

       “후회는 하지 않소. 신들에 의해 묻혀진 역사를 캐낸다는 위험은 잘 알고 있으니.”

       

       “호오. 알고서도 그런 것인가?”

       

       “하지만, 마지막 부탁을 해도 되겠소?”

       

       

       나의 말에 용의 무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 부탁?”

       

       “그렇소.”

       

       “흐음. 마지막 부탁이라….”

       

       

       그녀는 싱긋 웃더니 말했다.

       

       

       “좋아. 무슨 부탁이지?”

       

       “진실을…. 진실을 알고 싶소.”

       

       “진실?”

       

       “그렇소.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진실을 알려주시오. 생명의 여신을 대행하는 그대라면 잘 알고 있을테지.”

       

       

       죽음은 각오한 바였다. 이런 위험한 것을 조사한 시점부터, 죽음은 각오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신들의 전쟁과 바알의 진실.

       

       어찌하여 신들의 왕이라는 바알의 존재가 지워져 있는 것인지.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사실이 알고 싶었다.

       

       

       “흠…. 진실이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거창한 일은 아닐 수 있다만. 그래도 알고 싶은건가?”

       

       “물론이오.”

       

       

       용의 무녀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진실을 알려주도록 하지.”

       

       

       그렇게 용의 무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는해피엔드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표지! 선물 받았어요! 표지로 써야지!!

    오늘도! 내일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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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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