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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구속이 풀린 클라라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

       어? 왜? 대체 왜?

       ​

       그런 의문을 되뇌며 입술을 달싹거릴 뿐. 눈앞에 선 마수를 보며 멀뚱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

       “아악!”

       ​

       상황을 정리하려는 찰나, 로즈마리가 클라라의 팔을 붙잡고 휙 끌어당겼다.

       ​

       “왜, 아팠어?”

       “…….”

       ​

       클라라는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몸이 많이 약해진 탓에 조금 아프기는 했다. 하지만 막 비명을 내질러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놀라서 그랬다.

       ​

       이제 클라라에게 남은 굴욕의 상징은 목걸이밖에 없었다. 로즈마리는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처럼 클라라의 목줄을 쥔 채로 머리를 슬슬 쓰다듬었다.

       ​

       “워워, 진정하고.”

       “나, 난 인간이야…!손 저리 치워!”

       “가만히 있겠다고 약속하면 치워주지.”

       “뭐?”

       “약속할 거야 말 거야?”

       “약속할게. 됐지? 이제 치워.”

       ​

       로즈마리는 손을 치우며 속으로 10초를 셌다. 그동안 클라라가 공격하거나 도망치려는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

       “좋아, 이제 가자.”

       “어딜?”

       ​

       클라라가 물어봤지만 로즈마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

       사실, 쫄아서 대답 못 한 거였다.

       ​

       비록 약해졌다고는 하더라도 일단은 정령마도사. 심지어 상급을 두 체나 사역하고 있었으니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

       로즈마리는 매 순간 집중하며 클라라의 움직임을 살폈다.

       ​

       “대체 어딜 가는 건데?”

       ​

       한편, 클라라는 뜬금없이 나타난 마수의 의중을 헤아리고자 노력했다.

       ​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길라흐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하던 몸이었다.

       ​

       길라흐는 앞으로 자신을 전속 장난감으로 부릴 것이라고 말하며 좋아했다. 아직도 그 선연한 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

       덧붙여 길라흐는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클라라를 데려갈 수 없다고 엄포 아닌 엄포를 늘어놓은 뒤였다.

       ​

       그런데 그런 말을 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다른 마수가 나타나 ‘니 노예 쩔더라’를 시전해버렸으니….

       

       이 광경을 어디 들키기라도 한다면 이 블루베리처럼 생긴 마수는 길라흐에게 오체분시되고 말 것이다.

       ​

       “이봐, 당신.”

       “편하게 로즈마리라고 불러. 아니면 ‘너’라고 하던가.”

       “……너는 그 팔이 갈고리처럼 된 엘프 금안족보다 서열이 높은 건가?”

       “글쎄. 강함으로 따지자면 아닌데.”

       “그런데 나를 멋대로 데려와도 되는 거야?”

       ​

       로즈마리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

       물론 안 된다.

       ​

       길라흐의 성깔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며칠 보니까 길라흐는 자기 걸 빌리거나 빼앗아 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

       “왜, 그러면 거기 계속 있고 싶었어?”

       “그럴 리가.”

       “알겠으면 얌전히 새 주인님을 맞이하라고.”

       ​

       새 주인님이라니. 이 로즈마리라는 마수가 자신을 노예처럼 부리려는 건가?

       ​

       아무리 봐도 그런 듯했다. 클라라는 적당한 틈을 봐서 경고했다.

       ​

       “미리 말해두는데, 이상한 짓 시키면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다.”

       ​

       클라라가 본 마수란 하나같이 잔학무도한 녀석뿐이었기에 로즈마리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

       틀림없이 고문과 괴롭힘을 즐기는 개체일 터.

       ​

       심지어 사천이나 되는 거물에게서 장난감을 빼앗을 정도이니 심성이 나쁜 건 거의 확실하다.

       ​

       포로를 함부로 대할 것이라는 것쯤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랬기에 으름장을 놓으며 기선제압을 할 필요가 있었다.

       ​

       만에 하나 망가뜨리는 게 목적이라면, 그 전에 스스로 망가져 버리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내비치는 클라라.

       ​

       그러나 로즈마리는 심드렁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

       “뭐, 그러든지 말든지.”

       “…뭐라고?”

       ​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

       보통 이러면 재갈을 물리거나 아예 혀를 뽑아버리던데.

       ​

       클라라가 당황하던 사이 로즈마리의 말이 이어졌다.

       ​

       “근데 그렇게 되면 여기 있는 네 동생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될 거야. 가족 앞에서 시체가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면 그래도 돼.”

       “너…….”

       ​

       그렇다.

       ​

       로즈마리는 클라라가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대강 파악을 마친 뒤였다.

       ​

       “동생, 보고 싶지 않아?”

       ​

       속이 탄산수처럼 부글거리지만 참는다.

       ​

       잘하면 동생을 볼 수 있다. 그런 기대가 있었기에 죽을 수 없었다.

       ​

       “자, 도착했어. 들어가.”

       ​

       로즈마리는 쇠사슬을 살살 당기며 클라라를 방으로 들여왔다.

       ​

       방에 들어온 클라라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

       “여긴 대체…….”

       ​

       뾰족한 별 무늬가 그려진 담청색 커튼. 그리고 그 곁에 자연스레 놓인 퀸사이즈 침대.

       ​

       진열장에는 귀여운 거북이와 돌고래 인형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세로줄 무늬가 나 있는 벽지는 엔틱한 느낌을 주고 있다.

       ​

       거기에 탁자 위에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자기 따위의 예술작품들이 실내 분위기의 화룡점정을 찍는다.

       ​

       마수가 지낸다기에는 무척이나 풋풋하고 소녀다운 곳이었다.

       ​

       “여기, 당신 방 맞아?”

       “그므는.”

       ​

       로즈마리는 입을 삐쭉 내밀며 대꾸했다.

       ​

       “그므는 여기가 내 방이지 느그 방이냐?”

       “마왕군 간부 정도 되면 해골바가지로 만든 침대에서 생활할 줄 알았는데.”

       “어떤 새끼가 그래?”

       “그냥, 동화책에서 그리 묘사되어 있길래.”

       “이런 썅.”

       ​

       아무리 적이라지만 이건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

       “멍청한 인간놈들 프로파간다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었구만. 이럴 줄 알았으면 잠입하자마자 출판계 탄압부터 하는 거였는데.”

       ​

       로즈마리는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 환기를 시도했다.

       ​

       그러나 악수였다. 클라라는 피식 웃기는커녕 모욕적인 언사라도 들은 것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

       “잘도 그런 말을….”

       “앗, 미안해.”

       ​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낀 로즈마리는 곧바로 고개를 숙였다.

       ​

       옛날부터 두 언니에게 있는 욕 없는 욕을 들으며 마왕군에 적응한 로즈마리. 수도 없이 혼나다 보니 자연스레 조금이라도 덜 혼나는 방법을 몸소 익혔다. 바로 사전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었다.

       ​

       특히 에테르.

       ​

       에테르 언니는 어떤 짓을 저질러도 울면서 싹싹 빌면 전부 용서해 주었다.

       ​

       이 행동이 코스트가 싸게 먹히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이에게도 사과하고 잘못을 비는 데 거리낌이 없게 되었다.

       ​

       “…….”

       ​

       고개를 숙이자 추욱, 하고 내려오는 기다란 군청색 머리카락.

       ​

       얼굴은 안 보이고 둥그스레한 정수리만 보이니까 진짜 블루베리처럼 생겼다.

       ​

       그 점이 조금 웃기기도 해서, 클라라는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

       화낼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분노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도 없었고.

       ​

       “됐어. 됐으니까 끌고 온 이유나 설명….”

       “좀 기다려. 왜 이리 성질이 급해?”

       ​

       말은 그렇게 했지만, 두 사람은 대화 주제를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다.

       ​

       아무래도 클라라는 이런 방에 들어온 이유가 궁금했고, 로즈마리는 슬슬 대화 진도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

       “일단 그 침대에 누워 봐.”

       “뭐?”

       “몸 상태부터 점검하게.”

       ​

       티케이크처럼 보드라운 이불에 클라라를 눕힌 로즈마리는 곧바로 맥을 짚기 시작했다.

       ​

       빈맥인 건 그렇다 쳐도, 사람이 정말로 힘들어 보였다.

       ​

       팔은 뼈마디가 보일 정도로 앙상했고, 눈은 조금 충혈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작전’에 써먹으려면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았다.

       ​

       겸사겸사 회복시켜 주면서 신뢰도 쌓고 말이다.

       ​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일단 쉬어.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어 줄 테니까.”

       “그게 무슨….”

       “딱히 걱정할 필욘 없어. 이상한 거 안 시키고, 네 동생과도 만나게 해줄 거야. 뭐, 믿거나 말거나.”

       ​

       로즈마리는 실실 웃으며 티포트를 들었다.그러더니 매화꽃이 그려진 찻잔에 홍차를 주르륵 따랐다.

       ​

       원래라면 여기에 베릴륨을 넣겠지만, 인간은 먹으면 안 되니까 각설탕으로 대체.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당분을 섭취할 수 있도록 하나 정도만 퐁당 넣어준다.

       ​

       “야, 마셔.”

       ​

       클라라의 눈매가 구릉처럼 뒤틀렸다.

       ​

       이게 대체 뭐 하자는 건지.

       ​

       설마 자신을 두고 소꿉놀이라도 하려는 걸까? 싶었지만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

       “독 같은 거 안 탔으니까 빨리 받아서 마시기나 해. 이러다가 팔 떨어지겠어.”

       ​

       찻잔을 든 로즈마리의 손이 미미하게 떨렸다. 기계면서 왜 팔을 떨지? 클라라는 얼른 잔을 받아 제 앞에 내려놓았다.

       ​

       그동안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했던 클라라였다. 달큰한 향을 내는 홍차를 참을수 있을 리가 없다.

       ​

       먼저 호호 불면서 한 모금을 꼴깍하자 식도 아래로 뭉근한 감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위장이 탁 풀리며 고문으로 상처입었던 몸이 노곤하게 풀어진다. 돌아가신 어머니 품에 안기기라도 한 것처럼 안온하고 포근했다.

       ​

       로즈마리도 어느새 찻잔을 들었다. 그녀는 다른 티포트에서 히비스커스를 우린 물을 따랐다.

       ​

       홀짝, 홀짝, 하고 몇 모금 차를 마신 뒤.

       ​

       머리가 개운해진 클라라가 넌지시 물었다.

       ​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 주는 거지?”

       “아직 뭐 한 것도 없는데.”

       “내가 여태까지 봤던 마수들은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어.”

       ​

       그 말인즉 무언가 꿍꿍이가 있단 소리이다.

       ​

       “뭐, 왜. 알고 싶어?”

       ​

       클라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

       언제 어떻게 본색을 드러낼지 모르는 것이 바로 인간형 마수이다.

       ​

       특히 로즈마리처럼 잠입에 능통한 존재는 제 의중을 숨기고 인간 사회 속에서 타인을 농락하는 데 도가 튼 존재.

       ​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

       어떤 무리한 요구가 나올까. 만반의 준비를 한 클라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요구했다.

       ​

       “지금 얘기하면 신빙성이 없을 수도 있겠는데. 아, 그 전에 일단 먹을 것부터 가져와야겠다.”

       ​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로즈마리가 쌩, 하고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

       “어…?”

       ​

       이렇게 나간다고?

       ​

       아무런 예고도 없이?

       ​

       로즈마리가 나간 문을 멍하니 쳐다보던 클라라는 곧 초점을 되돌리고 앞뒤를 재었다.

       ​

       지금이 기회일까?

       ​

       “…지금 아니면 못 나갈지도 몰라.”

       ​

       마왕성을 탈출한다고 해도 영하 30도에 이르는 바깥을 이런 차림으로 나가면 금방 얼어 죽고 말겠지.

       ​

       하지만 클라라는 화계마도사. 근처 동굴을 찾고 몸을 녹이면서 이동하면 생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

       “그래, 해 보는 거야.”

       ​

       모든 계산을 뇌내 시뮬레이션으로 마친다.

       ​

       맨발 차림으로 침대에서 내려온 클라라는 탈출 기회를 엿보며 문 앞까지 다가갔다.

       ​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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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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