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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

        

       “…….”

        

       말이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나와 앨리스가 한 말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샤를로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니까, 벨부르의 왕녀인 저를 보고 벨부르가 자랑하는 문화유산 중 하나를 파괴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는 건가요?”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파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몰래 들어가는 것을 도와달라는 말입니다.”

        

       “…….”

        

       내 말에, 옆에 있던 앨리스는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

        

       뭐.

        

       왜.

        

       뭐.

        

       이렇게 확실하게 말 안 하면 나중에 거짓말이었냐고 물었을 때 대답할 방법이 없잖아.

        

       그럴 바에 처음부터 죄다 까놓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바로 조금 전에 실비아, 당신이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면…….”

        

       샤를로트는 차근차근 내가 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풀어놓기 시작했다.

        

       “법국이 뭔가 수상한 일을 벌이고 있다.”

        

       “예.”

        

       “그래서 그 법국의 높으신 분을 어떻게든 만나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법국의 높으신 분이 있을 법한 성 라티나 성당에 침입할 방법으로, 온갖 화기들을 준비했다.”

        

       “정확합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하면 안 될 일인 것 같아서, 저한테 도움을 받으러 온 거잖아요?”

        

       “맞습니다.”

        

       “실비아, 맞고 싶어요?”

        

       샤를로트의 마지막 말에 내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샤를로트는 조금 민망했는지 입 앞에 주먹을 가져다 대고 크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비록 지어지던 당시에는 벨부르 왕국과 악연을 가지고 있던 성당이지만, 지금은 명실상부 루테티아의 자랑이기도 한 곳이에요. 게다가 그 안에 있는 그 ‘높으신 분들’은 그저 벨부르 백성이 아니라 법국의 국적도 함께 가지고 계신 분들이 대부분이고요.”

        

       샤를로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벨부르의 유일한 왕녀인 제게 그런 일을 부탁하는 건가요? 벨부르와 법국 사이의 분쟁이 될만한 일인데도요.”

        

       음…….

        

       “그렇다면 역시 제가 혼자서 일을 저지르는 것이 낫겠습니까?”

        

       확실히 샤를로트의 말도 일리가 있다. 사실 그래서 말없이 내가 독단적으로 일을 저지르려고 한 거니까.

        

       샤를로트한테 부탁하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샤를로트는 앨리스와 거의 비슷한 상황에 있는 아이였다.

        

       다만 앨리스보다는 귀족과의 관계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왔고, 아카데미에 가기 직전까지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나 정도밖에 없었던 앨리스와는 다르게 나름대로 귀족 지지층도 있었다.

        

       당연히 혼자 그런 일을 저지르면 정치적으로 큰 타격이 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요?”

        

       뭐, 우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나 혼자 일을 저지르게 두지 않을 성격이기도 했지만.

        

       내 옆에 앉아있는 앨리스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지만, 나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샤를로트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일 만도 한데, 다리를 꼬고 앉아서 팔짱을 낀 채 눈만 감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경거망동하지 않는 왕실의 예의범절이 몸에 배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일단은 폭력적인 방법은 쓰지 말도록 하죠.”

        

       한참 생각한 뒤에야 샤를로트는 눈을 뜨고 말했다. 물론 그 뜬 눈은 눈을 감기 전과 마찬가지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오래된 문화재고 뭐고 이전에, 진짜 그런 사건이 있으면 전쟁으로 받아들일지 몰라요. 왕실이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귀족과 백성들이 원하면 멈출 수 없게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차라리 제가 혼자 뒤집어쓰면—”

        

       “실비아.”

        

       옆에서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앨리스는 여전히 머리를 감싸 쥐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들리는 목소리로 판단하건대 여기서 그 비슷한 소리를 더 하면 진짜로 위험해질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달려들더라도 시간을 돌려가며 움직이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과정이 엄청나게 피곤할 것 같아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방법이 있을까?”

        

       앨리스가 겨우 머리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그 전에, 그 계획 자체를 그만두라고 하고 싶지만…….”

        

       샤를로트는 나를 흘끗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제가 그러지 말라고 해도 실비아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실행하겠죠.”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실제로도 말없이 실행하려다가 샤를로트의 말에 설득당해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잖아. 물론 그 전에 샤를로트한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고, 멋대로 무기를 들여왔고, 사실 샤를로트가 나한테 친구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샤를로트는 내가 성 라티나 성당을 부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말 듣고 나서 이렇게 와서 샤를로트를 설득하는 중이니, 나는 그래도 상대방을 꽤 배려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하지 말라고 해도 하긴 할 생각이지만.

        

       “……사실 법국에 대해서는 저희도 고민하고 있긴 하니까요.”

        

       샤를로트는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조약’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긴 했지만, 제국의 개입으로 무산되고 나서는 저희도 다시 검토하는 과정에서 이런저런 의심스러운 정황을 발견했거든요.”

        

       샤를로트가 직접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조약이라는 것은 양측의 전면적인 군사동맹을 말하는 것이다. 원작에서는 소피아가 벨부르 군인들과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의심스러운 점이라고 하면?”

        

       “……자세한 이야기는 기밀이라 말할 수는 없어요.”

        

       앨리스의 말에 샤를로트는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사실 샤를로트 본인도 정확한 정황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소피아가 벨부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법국은 이미 그 이전부터 벨부르에 사람을 꾸준히 심어두고 있었다. 그것도 ‘법국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벨부르 사람으로서’ 아예 신원 자체를 세탁하는 것이다.

        

       ……내가 작년 회담에서 그런 짓을 한 건 그냥 상대방 약 올리려고 했던 행동이었지만, 덕분에 벨부르가 법국의 수상한 정황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쪽을 잘 구슬리면 아버지…… 국왕 폐하를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를 흘끗 보았다.

        

       뭔가 정보를 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

        

       음.

        

       필요하다면 소피아를 팔아넘길 수도 있으리라. 일단 소피아의 신원은 위장인 것이 확실하니까.

        

       하지만…… 샤를로트만큼 엄청나게 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소피아도 친구는 친구였다. 게다가 솔직히 말하자면, 소피아가 레오랑 엮이는 게 조금 재미있기도 했고. 원작에서도 공략할 수 있는 히로인이긴 했지만, 원작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소피아의 성격은 몹시 달랐다.

        

       그렇다. 팔아넘길 수 있기는 했지만, 팔아넘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그것보다 더 큰 떡밥도 있었잖아.

        

       “성 라티나 성당의 지하에는 거대한 기지가 있습니다.”

        

       “…….”

        

       그래, 뭐.

        

       원작에서야 소피아가 교단 내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아무래도 1년 전인 여기 기준에서는 말단인 모양이니까.

        

       말단 하나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훨씬 큰 정보를 넘기는 쪽이 도움이 될 것이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샤를로트의 표정을 보니 확실히 먹히는 것 같기도 했고.

        

       “성 라티나 성당은 법국의 서부 진출을 위한 교두보 같은 곳입니다. 성당이 지어지던 시절만 하더라도 벨부르 왕국은 아직 여신교를 완벽하게 인정하지 않은 상태였죠. 그리고 그 이전부터 여신교는 벨부르 왕국에 대항하는 중이었고요. 루테티아 지하에는 깊고 복잡한 여신교 지하 묘지가 있습니다. 여신교가 성 라티나 성당을 성지로 삼고 그 건물을 지었던 것은 지하로 가는 입구를 숨기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그 복잡한 지하 묘지—이자 지하 기지—는 원작에서는 중요한 이벤트가 꽤 많은 던전이기도 했다.

        

       루테티아의 모티브는 당연히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였다.

        

       만들어진 역사적 이유는 게임과 현실이 다르긴 하지만, 제작사가 파리 지하의 카타콤이라는 개쩌는 떡밥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지.

        

       게다가 방대하고 역사가 깊은 만큼 뒤지면 나올 정보도 많고, 중요한 인물들도 꽤 많은 던전이었다.

        

       내가 괜히 치려고 한 게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샤를로트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말했다.

        

       “여신교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루테티아에서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는 건가요?”

        

       “그보다는, 아직도 그때의 악연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법국의 사명은 이 세상 모든 것이 여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벨부르를 꾸준히 구슬리고 있는 이유도 최종적으로 벨부르의 국교를 여신교로 만들기 위한 겁니다.”

        

       그리고 내가 제국의 국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게 빈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국왕 폐하를 설득할 수 있을 정보입니까?”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샤를로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말로는 하지 않았지만, 아마 절대로 무시하고 넘어가진 못할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ㅠㅠ

    다음화도 쓸 수 있다면 써오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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