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1

       <다섯 곡예사>의 공연 시각은 12일째 오후로 결정되었다.

       곡예사들은 전날 저녁 늦게까지 연습을 계속했다.

         

       마지막 장면의 합동 곡예를 끝냈을 때, 연기자 6명은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다.

       오늘만 리허설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연기, 노래, 곡예 모든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체력 소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보통 극은 상대와 호흡을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기 마련이었다. 거기서 어느 정도 관성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건 중간중간 자꾸 그림자나 인형을 대상으로 1인극을 펼쳐야 하기에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훈련 일정이 빡빡한 것이 문제였다.

       원래 연습은 본 공연을 위해 적당히 체력을 안배하는 게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해야 할 연극은 단 1회차로 끝이었다. 즉, 안배고 자시고 할 것 없었다. 마지막 한 번 분량의 체력만 남기고 최상의 폼을 끌어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했다.

         

       “여력을 남기는 것은 크리스티앙에 대한 모욕이다.”

         

       그것이 로드 판타스틱의 생각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와 자주 의견을 부딪치던 엘라도 동의했다.

         

       그나마 공작이 맹인이라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무대, 효과, 소품, 의상, 연출까지 모두 완벽하게 맞추려고 했다면 한 달은커녕 두 달도 모자랐을 것이다.

         

       지몬이 연습 종료를 선언하자마자 엘라와 루엘로가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클라라와 카렌은 아예 무대 위에 대자로 뻗고 누웠다. 마야와 레이나는 벽에 살짝 기대는 정도에 그쳤다.

         

       단장들의 얼굴에도 피로감이 가득했다.

       로드 판타스틱은 ‘거울 속의 마임’을 너무 많이 써서 그런지, 종료 선언을 하자마자 소파에 몸을 파묻었다. 종일 대사 없는 엑스트라들을 연기해야 한다고 투덜거렸던 홉스는 정작 연습이 끝나자 말할 기운이 없는지 고개만 푹 숙였다.

         

       아르노 역시 피곤한 건 마찬가지였다.

       혼자서 모든 환상을 일일이 구현하고 수정해가면서 목소리 연기까지 해야 했으니, 그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미노바도 드럼 치던 막대기를 내던지고 거친 숨을 토했다.

       그는 본 공연에서 고수(鼓手)를 담당했다.

         

       1인극은 배우 한 명과 고수 한 명이 페어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 <다섯 곡예사>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구성적으로는 1인극과 유사했다.

       드럼 세트 하나가 극의 모든 음악을 담당했다. 그걸 하루 내내 쉴 틈도 없이 쳐댔으니 아무리 튼튼한 미노바라도 진이 빠졌다.

         

       다들 지쳐서 가만히 있는데, 유난히 신나 보이는 표정을 한 남자가 무대 위에 올라왔다.

         

       “하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원더스타인은 그들이 리허설을 하는 동안 객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직접 공작의 입장이 되어 귀로 공연을 들어보는 것이다.

       혹시나 눈으로 본 것이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는 지금까지 연습을 보는 것을 최대한 피해왔다.

         

       처음에 엘라는 로드 판타스틱이 의도적으로 그를 따돌린다고 생각했다. 곡예 연습을 할 때마다 자꾸 그에게 억지로 일을 줘서 연습실에서 내보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그의 괴롭힘에 성을 내려던 그녀를 옆에서 원더스타인이 제지했다.

       그는 그녀에게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둘이 나누었던 대화를 들려주었다. 리허설에서 자신이 관객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을 말이다.

         

       “그,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할 것이지…….”

       “후후, 그러면 배우가 연습 단계에서 청자를 의식해서 연기가 무너진다고 하더군요. 특히나 이번처럼 1인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은 그런 쏠림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고 하던데요?”

         

       엘라는 그의 설명을 듣고 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으나 그의 말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알고 있는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쿠키 상인 효과.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공연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에 맞춰 유치한 연기를 해버린다는 속설에서 나온 말로, 청자의 편향성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연기의 초점이 엇나가버리는 것을 의미했다.

         

       연기의 조정이 필요하다면, 감독의 판단에서 이루어지면 그만이었다. 배우 개개인이 그걸 의식해서 자신의 연기를 조절하는 건 혼란만 초래할 뿐이었다.

         

       “오늘은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완벽했어요.”

         

       며칠 전부터 원더스타인은 리허설에서 공작의 입장이 되어 공연을 관람했다.

       어떤 부분이 알아듣기 어려웠는지, 어떤 부분이 장면 연상이 힘들었는지.

         

       그럼 그 부분에 미세한 조정이 들어갔다. 원작을 그대로 관람하길 원하는 공작이었기에 대본은 건드릴 수 없었지만, 연출자의 재량이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무대를 수정할 순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공작이 좀 더 즐기기 쉬운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오늘은 다들 씻고 일찍 자도록 하지.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리허설을 해야 하니까 말이야.”

         

       지몬의 말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주연 배우 6명은 같은 방향으로 향했다.

       그들은 극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가장 큰 방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작중 등장인물들처럼 말이다.

         

       방은 여섯 명이 자기에 충분한 크기였다. 그러나 욕실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씻을 때는 두 팀으로 나뉘었다.

         

       엘라, 루엘로, 레이나가 방에 있는 욕실을, 마야, 카렌, 클라라가 건너편 방의 욕실을 사용했다.

         

       “루리! 언니가 씻겨줄까?”

         

       엘라가 손에 샤워타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나 루엘로는 고개를 슬며시 흔들더니 레이나에게 다가가 붙었다.

         

       “레이나 언니가 씻겨주는 게 좋아요.”

       “윽!”

         

       엘라가 상처받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처음에는 자신하고만 친하게 지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자신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을 찾고 있었다.

         

       10일 넘게 한솥밥을 먹었으니 충분히 친해질 만도 했다. 그래도 눈앞에서 다른 언니에게 찰싹 달라붙는 꼴을 보니 자존심이 팍 상했다.

         

       “소, 솔직히 귀찮지만, 루리가 원한다면…….”

         

       레이나의 얼음 같던 표정에 금이 갔다. 성가시다는 제스처를 취했지만, 입술은 씰룩거리는 것이 웃음을 꾹 참고 있는 눈치였다.

         

       엘라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소리쳤다.

         

       “루리는 내가 붙인 별명이야!”

         

       그녀의 말에 레이나가 눈가를 찌푸리며 대꾸했다.

         

       “별명에 저작권이라도 붙였어?”

       “언니들, 싸우지 마요.”

         

       루엘로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 모습이 엘라를 더 화나게 했다. 싸움을 말리는 척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젓는 것이 자신보고 좀 가만히 있으라는 투 아닌가.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비장의 수를 꺼냈다.

         

       “정말 레이나랑 씻을 거야? 여기 구돌이랑 찍순이도 너랑 놀고 싶어 하는데? 아쉽네. 네가 싫다니까 내보내야겠다.”

         

       탈의 바구니에 던져 놓은 엘라의 모자 속에서 비둘기와 쥐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둘은 주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날개와 귀를 축 늘어뜨리면서 실망한 동작을 취했다.

         

       “아.”

         

       루엘로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둘과 노는 건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함께 목욕하는 건 재밌을 게 분명했다.

         

       두 동물은 안타까움과 원망을 가득 담아 루엘로를 바라봤다. 둘도 그녀와 노는 걸 원했는데 그녀가 거절해서 서운하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루엘로는 레이나가 씻겨주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그녀와 몸을 공유하는 다른 존재가 강력하게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거리다가 입을 뗐다.

         

       “미, 미안해……얘들아.”

         

       그녀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모습을 보니 엘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6살짜리를 두고 뭐 하는 거야?

       결국 그녀는 백기를 들었다.

         

       “우, 울지마! 하하! 장난이야! 얘네들이랑 놀아도 돼!”

       “저, 정말요? 우, 우와! 고마워요, 언니!”

         

       루엘로는 자신의 품에 안겨드는 새와 쥐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의 천진한 모습에 엘라와 레이나는 서로를 바라보고 피식 웃더니 욕탕 안에 몸을 담갔다.

         

       레이나는 루엘로 앞에서 자유형을 하며 왔다 갔다 하는 찍순이를 보며 말했다.

         

       “괜찮겠어? 쥐는 귀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던데…….”

       “귓구멍 근육을 단련시켰어. 물이 못 들어오게 막아.”

       “대단한데…….”

       “쳇, 나는 네가 더 놀라운데? 루리를 어떻게 구워삶은 거야?”

         

       그녀의 질문은 구돌이가 그녀의 목덜미를 쿡쿡 찌르는 것에 꺄르르 웃던 루엘로가 답했다.

         

       “레이나 언니가 머리를 더 잘 감겨줘요.”

         

       그녀의 말에 엘라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머리? 엑? 고작 그거 때문에 날 배신한 거야?”

       “배, 배신 아니에요……. 제, 제가 아니라 머리카락이 그렇게 느끼는걸요……. 레이나 언니가 씻겨주면……푹신해요.”

       “푹신?”

         

       그녀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지 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엘로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중얼거렸다.

         

       “가슴이…….”

       “으익!”

       

       엘라는 레이나의 품에 안겨 그녀의 몸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루엘로를 바라보며 신음을 삼켰다.

       하필 2주 전에 들었던 원더스타인의 말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그게 찐 거라면 찐 것도 좋군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애도 가슴 큰 언니가 좋다니.

       사람의 호감을 사는 데는 길들이기의 재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그 순간,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린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건너편 욕실에 있던 마야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카렌, 자자, 씻으러 들어가자!”

       “어으, 크, 클라라 서, 선배…….”

         

       안 그래도 여자애들과 같이 자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혼이 빠지려고 했던 카렌이었다. 그런데 함께 씻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그녀는 거의 기절하려고 했다.

         

       그녀는 마야와 클라라의 벗은 몸을 봤을 때, 얼굴이 폭발할 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차마 도저히 같이는 못 씻겠다고 방구석에 머리를 감싸고 쪼그려 앉아 있던 그녀를 끌고 들어온 게 클라라였다.

         

       그녀는 자신보다 어린 후배들을 잘 다독여 달라는 원더스타인의 부탁을 받았다. 그런 사명감은 <다섯 곡예사>의 주인공 배역에 몰입하면서 더욱 짙어졌다.

         

       땅재주의 기본은 버티기였다.

       원래 클라라의 실력으로는 그녀를 끌고 들어온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녀는 카렌의 약점을 알고 있었다. 알몸으로 그녀를 끌어안으면 그녀의 몸에서 힘을 뺄 수 있었다.

         

       “어으으아, 서, 선배!”

         

       매번 목욕을 거부하는 그녀를 클라라가 알몸으로 끌고 들어오는 게 정해진 패턴이었다.

       오늘의 카렌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니 마야는 짜증이 났다.

         

       -그게 찐 거라면 찐 것도 좋군요.

         

       단장님의 그 말 이후로 만나는 여자마다 몸을 의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자신보다 가슴이 크면 왠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엘라의 경우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클라라의 알몸을 봤을 때는 그 자신감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레이나의 몸은 아예 상상하는 순간 스스로 좌절할까 봐 비교하지도 않았다.

         

       환상으로 가슴을 크게 키우면 단장님이 어떻게 반응할까 같은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카렌이 옷을 벗고 욕탕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지금은 거품 욕조 안에 클라라와 마야 두 사람 다 몸을 담그고 있어서인지 아까처럼 정신을 못 차리지는 않았다.

         

       마야는 친구의 몸을 보자 갑자기 안도감이 들었다. 미소가 피식 지어질 정도였다.

       카렌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엥? 왜 그래?”

       “아냐. 아무것도.”

         

       목욕을 마친 그들은 베개를 들고 방 중앙에 모였다.

         

       보통의 여자애들이라면 수다를 떨었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곡예사였다. 말로 떠드는 것보다 몸 쓰는 걸 좋아했다.

         

       “제10회 슬라그보르트 공작 배 베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엘라의 선언과 함께 6명이 함성을 내지르며 베개를 들고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엘라가 제안한 놀이는 그녀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친구들과 자주하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놀이에 소극적이었던 레이나와 마야도 몇 번 날아든 베개에 얼굴을 얻어맞고는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주 동안의 합숙 훈련은 그들 사이에 유대를 형성했다. 그들이 연기하는 극의 내용도 그것에 영향을 끼쳤다.

         

       원래는 내일 공연을 대비해 일찍 자야 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이런 생활도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단장들도 그걸 알았기에 그녀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축제와 파티를 자제한다는 발상은 키르쿠스의 신도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시끌벅적하던 건물이 조용해진 것은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한참 지나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몽디 님, 134 코인 후원! 금융치료보다 응원으로 인한 심리 치료의 효과가 더 큽니다! 감사합니다!

    -자살엔딩 님, 20코인 후원! 너무 안 팔리지 않는다면, 당연히 2탄도 낼 생각 있습니다!

    괴물서커스 콘이 출시되었습니다!
    지난 전 팬아트를 그려주신 XONE님께서 다시 수고해주셨습니다!
    메뉴의 노벨피아 스토어에서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