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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삐이이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이명.

       화산이 폭발하듯 올라오는 핏물들.

       열수분출공(熱水噴出孔)에서 튀어나오듯 폐에서부터 시작해 튀어나오는 참을 수 없는 기침.

       소용돌이에라도 빨려 들어간 것처럼 요동치는 시선과 점차 아래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어지럼증.

       심해에라도 잠긴 것처럼 축축 늘어지는 몸.

         

       “박, 진성.”

         

       미치시게는 심해 밑바닥에 가라앉는 사람처럼 팔을 허우적대었다.

       무겁디무거운 물을 헤엄쳐 위로 다시 올라가기라도 하려는 듯이, 폐에 들어차는 물기와 줄어드는 산소를 견디며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처럼. 그는 그렇게 바닥에 쓰러진 채 손을 뻗었고, 입을 열어 기침과 울컥거리며 솟구치는 핏물에 뭉개지는 소리를 간신히 내뱉었으며, 천근의 짐이라도 짊어진 듯 끔찍하게 아래로 처박으려는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이끌어 고개를 치켜들어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박진, 성…. 지나(支那)놈이, 냐? 아니면, 춍(チョン)? 그래, 춍들이 그런 이름을 쓰지….”

         

       쿨럭.

         

       그는 기침하면서도 멸시의 발언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했고, 부르르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이끌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근육은 경련이라도 일어난 듯 바르르 떨리기만 했으며, 내장도 비비 꼬이고 요동치는 것처럼 흔들리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시야가 어지러워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흐릿하게 변했으며, 코의 점막이 모두 헐어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비릿한 냄새와 함께 피가 밖으로 줄줄 흘렀다.

       그것이 어찌나 심한지 코로 숨을 쉬는 것은 꿈도 못 꿀 수준이었다.

         

       “흐, 멍청한 음양, 크흑, 사. 새끼들. 주술사, 주술, 사가 여기에 있는데….”

         

       미치시게는 제대로 나오지 않는 소리와 뿌옇게 변해버린 시야 속에서 무언으로 물었다.

         

       이 모든 것이 너의 짓이냐고.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고.

         

       “이르기를, 축제의 마무리로 조가네스를 끌어내어 바닥에 내동댕이치도록 하라.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을 벗기고 발가벗겨 흠씬 두들겨 제대로 거동할 수 없게 만들라. 다만 그 숨만은 분명히 붙어있어야 할 것이며, 숨이 끊어지기 전 목에 밧줄을 걸고 그 목을 매어 모두의 구경거리가 되어 벨 마르두크께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과시토록 하라.”

         

       하지만 진성은 그의 언어가 되지 못한 의문을 무시해버렸다.

         

       그것이 닿지 않아서 무시한 것인가.

       혹은 닿았지만 말할 필요가 없기에 무시했을 뿐인가.

         

       “왜, 왜….”

         

       미치시게는 의문을 담아서, 이제는 제대로 생각조차 떠올릴 수 없이 마비되어가는 뇌에서 간신히 의문을 쥐어짜 형태로 만들어 짤막한 단어를 만들어 필사적으로 질문을 행했다.

         

       하지만 진성은 이번에도 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도축 당하는 동물의 질문에 답해주는 백정은 없고, 숨통을 끊기 전 사냥감에 필요 이상의 배려를 해주는 사냥꾼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

         

       진성에게 있어서 미치시게는 먹이에 불과하였으며, 제물로 바쳐져야만 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진성은 방긋 웃는 얼굴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고생 한 번 해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고운 손으로 돌칼을 붙잡아 허공에 휘휘 저었고, 궤적을 따라 피어나는 불티를 물감처럼 움직이며 문양 하나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 문양이 완성되기 무섭게 빈손을 움직여 그 문양의 사이에 꽂았고, 손끝에 삼매진화를 피우고 그것을 미치시게에게 날렸다.

         

       화르륵!

         

       진성의 손에서 출발한 자그마한 불꽃은 유성처럼 꼬리를 그리며 쏜살같이 날아가 그의 옷에 붙었다. 그리곤 기름이라도 먹은 것처럼 순식간에 세를 불리며 그가 입고 있는 모든 옷을 태워 발가벗겼고, 태울 것이 없어지자 마치 신기루라도 된 것처럼 허공 속에 녹아들며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안, 돼.”

         

       미치시게는 자신에게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옷을 벗기는 행위가 동물을 죽이기 전에 안대를 씌우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이제 곧 자신의 목숨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그는 온 힘을 다해서 저항하고자 했다.

         

       고통 속에서 제대로 말을 듣지 않은 마나를 어떻게든 끌어모아 신체를 강화하려고 했으며, 몸 전체를 엄습하고 있는 ‘무언가’를 몰아내기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발버둥 치려고 했다.

         

       하지만 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약해빠진 놈의 명령은 듣지 않겠다는 듯 요지부동이었다.

       그가 평생 쌓아온 마나는 그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으며, 그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그렇게 ‘존재하기만’ 할 뿐이었다.

         

       “조가네스 히라모토 미치시게를 끌어내어 옷을 벗겼으며, 고기와 뼈로 두들겨 제대로 거동을 못 하게 하였으니 모든 절차가 끝이 났다. 하니 제자리를 되찾은 왕, 박진성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벨 마르두크의 풍요 아래 수확한 곡식에서 나온 짚을 모아 새끼줄을 만들고, 가축에서 나온 털을 꼬아 실을 만들라. 그리고 실과 새끼줄을 꼬아 절대 끊어지지 않을 밧줄을 만들고, 그 밧줄을 먹이를 감싼 뱀처럼 목에 감싸 풀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도록 하여라. 그리고 그렇게 목에 죽음의 고리가 씌워지면 높은 곳에 매달아 그대로 끝을 맞이토록 하라.”

         

       딱.

         

       진성은 당연히 해야 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것처럼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곤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몸을 덮는 기다란 숄 아래에서 무언가가 스르르 흘러나왔다.

         

       스르륵.

         

       숄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볼품없어 보이는 밧줄이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광택이 드러나 있는 것이, 강화 섬유를 넣은 듯 보였다.

         

       스르르.

         

       밧줄은 뱀처럼 움직여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미치시게를 향해 기어갔다. 그리곤 그의 목에 칭칭 감겼고, 스스로 매듭을 꼬아 그의 목에 걸렸다.

         

       “끅, 크흑.”

         

       단단히 목을 감싼 밧줄 때문에 미치시게는 질식을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목을 향해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간신히 움직이던 손은 근육이 툭 끊겨버리기라도 한 듯 중간에 힘을 잃고 바닥에 툭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미치시게의 최후의 저항이 끝을 맺음과 동시에 밧줄은 높이 하늘로 치솟아 지하 공간의 천장을 향해 솟아났고, 마치 두부에 꽂히는 것처럼 안으로 파고들며 미치시게를 허공으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오, 왕이었던 사형수가 지금 당신께 가나이다. 벨 마르두크시여, 벨 마르두크시여! 여기 조가네스가 올라갑니다!”

         

       진성은 천천히 허공에 올라가는 미치시게를 보며 외쳤다.

         

       “벨 마르두크, 벨 마르두크. 폭풍과 운명의 주관자! 가장 위대한 신! 가장 위대한 주신! 여기 마땅한 제물을 바치노니, 그 풍요와 권세를! 힘을 주소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힘을, 폭풍 속에서 내리꽂히는 벼락과도 같은 강렬함을, 만물을 밝히는 빛과 그 빛에서 주어지는 그 권위를 저에게 주소서!”

         

       그리고 그 광기 어린 외침 속에서 미치시게는 눈을 까뒤집으며 발버둥을 쳤다.

         

       “끅, 끄윽.”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 그는 파고드는 밧줄의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숨을 쉬고 싶다는 갈망으로 이리저리 몸을 흔들흔들 움직였다.

         

       “끅.”

         

       발을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였고.

         

       “끅.”

         

       밧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허공을 박차는 동작을 하기도 하였고.

         

       “크, 헉.”

         

       충분히 단련된 목 근육에 힘을 주어서 파고드는 밧줄을 막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덫에 붙잡힌 동물이 얼마나 발버둥 친다 한들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죽음밖에 없는 법.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났다.

         

       광기가 들어찬 어두컴컴한 공간.

       진성의 시체폭발 주술에 의해 다발성 장기 부전(多發性臟器不全)이 일어나고 있는 신체.

       온몸에 엄습한 병마로 인해 실시간으로 갉아 먹히고 있는 생명.

       그리고, 그렇게 약해진 그를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목을 파고드는 밧줄까지.

         

       그는 결국 죽음을 이기지 못했다.

         

       그는 눈을 까뒤집으며 혀를 길게 빼어내었고, 발버둥을 치던 아까와는 달리 허공에 그저 대롱대롱 매달린 채 자그마한 움직임으로 살짝살짝 흔들릴 뿐인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사크에아 축제가 끝을 맺었다.”

         

       진성은 잠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벨 마르두크의 형태로 조각된 목상을 향해 발을 옮기고, 신상을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소중히 들어 미치시게의 앞까지 가져갔다. 그리고 미치시게의 앞에 무릎을 꿇고 신상을 두 손으로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벨 마르두크시여! 벨 마르두크시여! 이 신상을 매개로 당신을 모시는 왕에게 위대한 힘을 내려주소서! 전승되는 그 힘을 이곳에 담아 주소서!”

         

       진성이 그렇게 외치자 미치시게의 몸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푸르스름한 빛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빛을 뿜으며 밖으로 나와 신상을 향해 흘러들었고, 이윽고 그 빛줄기는 가느다란 실에서 굵은 밧줄로, 굵은 밧줄에서 물줄기처럼 변해 신상의 가장 안쪽에 끊임없이 들어갔다.

       게다가 마나뿐만이 아니라 미치시게의 몸에 가득 차 있던 생명력 역시 물줄기에 합류해 신상에 흘러들었다.

         

       미치시게가 쌓아온 마나.

       미치시게가 가진 생명력.

         

       그 모든 것들이 주술 의식이 만든 법칙 아래 자연스럽게 신상으로 흘러갔다.

         

       시체의 형태를 유지할 최소한의 생명력만을 제외한 전부가 말이다.

         

       “끝났군.”

         

       진성은 기쁘다는 듯 미소를 지었고, 마나와 생명력의 정수가 담긴 신상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삼매진화를 피웠다.

         

       그리고는 시체를 폭발시켜 끔찍한 독과 병마에 감염되게 만드는 주술, ‘시체 입자 폭발’의 영향을 받아 병균 덩어리나 다름없게 된 미치시게의 몸에 불을 붙였다.

         

       화르륵.

         

       성인식 이후 더 강해진 진성의 삼매진화는 고열을 동반하며 껍데기만 남은 것이나 다름없는 미치시게의 몸을 장작을 태우듯 순식간에 한 줌의 재로 바꿔버렸다.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 올바르게 쓰였도다.”

         

       그는 염불을 외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씨앗에서 싹이 피어나듯 그 스승 역시 살아있을 이유가 없었고, 살아서 그 쓸모를 다할 수 없는 종자였으니. 가느다란 인연의 실 끝에 눈에 닿았다 한들 그 이유가 있었으면 죽지 않았을 것이나.”

         

       그 중얼거림은 끝까지 의문을 품고 죽은 미치시게를 향한 애도였으며.

         

       “다만 살아생전 이룩한 모든 것을 남기지 못하고 덧없이 져버릴 꽃이 향기와 꽃잎의 색이라도 남길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경사가 아니라 할 수 있으랴.”

         

       회귀 전의 미래에 역사는커녕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존재를 각인시키지 못한 채 사라져버린 무인의 미래를 바꿨음을 알리는 말이었으며.

         

       “물건은 쓰여야 가치를 가지고,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남겨야 가치가 있는바. 허무한 미래를 바꾸어 마침내 가치를 가졌으니 좋구나 좋아. 하니 안도 속에서 편히 귀천(歸天)하도록 주문을 외워 기원하노라.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가치를 증명해낸 미치시게와 마나와 생명력을 얻은 진성 모두가 윈-윈(win-win)했음을 알리는 기쁨이 담긴 언어였다.

         

       “옴 마니 파드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진성은 마지막 세 번째의 주언과 함께 손에 쥐었던 재에 불씨를 담아 사방에 퍼뜨렸고, 그렇게 퍼진 불씨는 불꽃이 되어 지하 공간 곳곳에 피어났다. 그리고 이윽고 그렇게 피어난 불꽃은 뱀처럼 사방을 휩쓰는 화마가 되었고, 넘실거리는 혓바닥을 내밀며 지하 공간을 환하게 밝히는 태양이 되었다.

         

       진성은 냉기를 몸에 감싸 공간 자체를 태울 듯 넘실거리는 불꽃을 막아내며 걸어갔다.

         

       벌이 모아놓은 꿀을 담아놓은 단지를 전리품으로 들고 가듯이.

         

       그렇게 진성은 신상을 들고 지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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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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