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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여름님, 계시나요?]

       

       채주연은 곧장 한여름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전화로 연락하지 않은 건 곁에 모모아가 있어서였다.

       위로해 줘야 할 상황에 다른이와 전화를 하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경기를 준비하느라 답장이 늦을 줄 알았는데.

       상당히 빠르게 왔다.

       

       채주연은 모모아가 시선을 떨군 틈을 타, 소리 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겨울이의 과거 이야기를 다른 사람한테 해도 되나 여쭤보고 싶어서요.]

       

       [겨울이를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제 친구가 겨울이랑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거든요. 그 친구는 겨울이처럼 일어서질 못했죠.]

       

       [아… 말 그대로 겨울이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거군요.]

       

       [네. 혹시 가능할까요?]

       

       채주연이 가슴을 졸이며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만약 안 된다고 하면 깔끔하게 포기할 예정이었다.

       

       [그런 이유라면 당연히 가능하죠. 마스터께서 도와주신 게 얼만데.]

       

       허락 받았다.

       채주연은 빠르게 감사인사를 전한 뒤, 아직도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모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모아야, 그거 알아?”

       

       “······?”

       

       “사실 겨울이가 그렇게까지 사랑만 받아온 아이는 아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겨울이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힘들게 살아온 아이야.”

       

       힘들게 살아오다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모모아의 눈에 비친 겨울은 괴로움을 모르는 아이였다.

       

       “그 아이가 어떻게 힘들었다는 거예요?”

       

       “음··· 겨울이가 어른들한테 좀··· 심하게 학대를 받았거든.”

       

       “심하게요···?”

       

       “응. 맞는 게 일상이었고, 그러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어. 한 두 번이 아니었지.”

       

       그럴 리가.

       모모아는 믿고 싶지 않았으나, 채주연은 함부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 하지만, 어른을 무서워하는 기색은 없었는걸요? 트라우마에 빠진 모습도 없었고···”

       

       “잘 살펴본 거야?”

       

       “···아뇨.”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질투 때문에 눈이 멀어 버린 걸지도 몰랐다.

       

       “잘 살펴보면 겨울이가 어른을 엄청 무서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화를 내는 어른은 더 무서워 하겠네요.”

       

       “화냈니?”

       

       “···조금 투덜거렸어요.”

       

       조금이지만, 아이한텐 굉장히 무서운 상황이었으려나.

       모모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고, 겨울이가 많이 무서웠겠다.”

       

       “그게···”

       

       모모아는 사람이 주는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음 깊은 곳까지 공허해지는 그 끔찍한 감정을.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 아이한테 화풀이한 건가.

       자신보다 괴로운 과거를 지닐지 모르는 아이한테?

       모모아는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저 가 봐야겠어요.”

       

       “응. 언니도 같이 갈까?”

       

       “아뇨, 저 혼자 갈게요.”

       

       모모아는 급히 겨울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오랜 방구석 생활에 숨이 가빠왔으나 달리는 걸 멈추지는 않았다.

       

       ‘언니 말이라면 진짜겠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겨울이 얼마나 괴로운 과거를 지니고 있는지를.

       

       “하아···”

       

       부스까지 달려간 모모아가 숨을 헐떡거리며 겨울을 살폈다.

       겨울은 떠나기 전에 건넸던 닭꼬치를 아직도 손에 쥐고 있었다.

       단 한 입도 먹지 못한 채로.

       

       닭꼬치 소스가 흘러내려 겨울의 손을 더럽혔다.

       순수하고 커다랬던 눈망울엔 공허함만이 남아 있다.

       모모아도 익히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거울을 통해 자주 보았으니까.

       

       ‘이게 뭐야···’

       

       모모아는 겨울의 눈빛을 보며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을 엿본 탓이었다.

       

       ‘여덟 살···?’

       

       이 아이는 대체 무슨 지옥을 겪은 거지?

       모모아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옥이라도 겪은 거야?’

       

       자신이 겪은 모든 괴로움들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겨울은 희망을 찾아 움직였고, 자신은 썩은 나뭇가지처럼 꺾여버렸다.

       

       비참하다.

       부끄러움을 느낀 모모아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깜짝 놀란 겨울이 몸을 움츠렸다.

       

       모모아는 그게 무슨 행동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어른이 말아쥔 주먹이 무서워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린 것이었다.

       

       “저, 저기···”

       

       겨울이 겁에 질린 눈으로 모모아를 올려다보았다.

       나 때문에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랐으려나?

       할 말을 잃은 모모아가 입술만 움직이고 있으니, 겨울이 모모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죄송해요···”

       

       겁에 질린 아이가 필사적으로 잘못을 빈다.

       모모아는 그게 어른에게 맞지 않기 위한 애처로운 발버둥으로 보였다.

       즐거워야 할 아이의 축제를 자신이 망쳐버린 것이었다.

       아이의 트라우마를 꺼내는 가장 끔찍한 방식으로.

       

       “아뇨, 사과해야 할 건 저예요.”

       

       “네···?”

       

       “이러면 안 됐는데, 정말 죄송해요.”

       

       “어··· 네에···”

       

       겨울이 모모아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말도 안 되게 힘들어, 충분히 화를 낼 법한 상황인데도 역으로 사과를 해온다.

       역시 모모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오늘을 평생 속죄하면서 살 거예요.”

       

       “아, 아뇨. 평생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아뇨, 평생 할게요. 정말 죄송해요.”

       

       지옥을 맛본 아이에게 감히 절망을 논했다.

       가장 깊은 어둠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아이에게 다시금 두려움을 선사했고.

       

       그럼에도 아이는 일어섰다.

       절망이 무슨 문제라도 되냐는 듯이.

       

       모모아는 그런 아이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

       

       

       하루가 지나고 축제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모모아와 함께 일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그녀는 툴툴거리면서도 사람을 잘 챙겨주는 타입이었다.

       

       “잠깐, 뭐하는 거예요?”

       

       “저, 붕어빵 믹스···”

       

       “제가 할 테니까 가서 놀라니까요?”

       

       모모아가 내가 들고 있는 붕어빵 반죽을 가져갔다.

       포장이나 할까 싶었는데, 거기에 또 모모아가 있었다.

       

       진짜 뭐지?

       분명 붕어빵 반죽 만들고 있지 않았나?

       모모아는 분신술을 한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일도 말도 안 되게 완벽하고 깔끔하게 처리했다.

       

       “모모아님!”

       

       유상아가 눈을 반짝거리며 모모아의 손을 붙잡았다.

       간절하게 두 손으로 붙잡았다.

       

       “네, 네?”

       

       “여명에서 같이 일하실래요?!”

       

       “제, 제가요···? 전 고등학교도 못 나왔는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일을 이렇게 잘하는데!”

       

       “자, 잘하진 않는데···”

       

       “그럴리가요! 모모아님은 업무의 천재예요!”

       

       모모아가 얼굴을 붉혔다.

       칭찬에 약한 타입인 걸지도 몰랐다.

       나는 그런 모모아의 허리를 콕콕 찔렀다.

       

       “맞아요. 모모아는 굉장해요.”

       

       “···겨울이는 빨리 나가서 노세요. 축제 마지막 날이잖아요.”

       

       찌릿-

       나를 바라보는 모모아의 눈빛이 매섭다.

       일부러 노려보는 건 아니었다.

       모모아의 원래 눈매가 사나울 뿐이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아는데에도 뭔가 무섭단 말이지.

       나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그러면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길게 나갔다 오세요.”

       

       “네에.”

       

       이틀 동안 다 둘러봐서 이제 볼 것도 없는데 뭐하지?

       아이들과 할 일 없이 주위를 돌아다니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반가운 존재들이 보였다.

       

       권아린과 엔시아, 그리고 아르고였다.

       

       “우아아!”

       

       레비나스와 새벽이가 아르고를 향해 달려갔다.

       아르고를 만나면 위에 올라타는 게 아이들의 규칙이었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권아린과 엔시아를 향해 다가섰다.

       헌데 어째선지 권아린의 상태가 이상했다.

       그녀의 얼굴 여기저기에 피멍이 들어 있었다.

       

       “누가 때렸어요···?”

       

       “응. 나 두드려 맞았어···”

       

       “왜, 왜요? 누가 때렸어요?”

       

       “나보다 힘센 사람이 때렸어···”

       

       권아린이 피멍 든 볼살을 문질렀다.

       멍의 범위가 넓은 게 굉장히 아파 보였다.

       

       “진짜 나쁜 사람이네요. 힘세다고 막 때리기나 하고.”

       

       내가 불만을 표하자, 옆에 있던 엔시아의 귀가 흠칫 떨렸다.

       그러더니 힘없이 축 가라앉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뭐, 뭐가요?”

       

       “제가 힘 조절을 못 했습니다.”

       

       “···엔시아가 때렸어요?”

       

       “네. 대회 참가 전에 연습 상대를 해 준다는 게 그만···”

       

       그렇구나.

       훈련 중에 다친 거라면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축 처져 있는 엔시아의 꼬리를 붙잡고는 좌우로 흔들어주었다.

       

       “두 분 다 대회 참가한 거예요?”

       

       “아뇨, 수인족은 대회 참가가 불가능하거든요. 마나가 없어도 기본 신체능력이 되는지라.”

       

       아하.

       그럼 권아린만 참가했겠구나.

       자연스레 권아린을 올려다보았다.

       

       “몇 승 했어요?”

       

       “일 승밖에 못 했어. 이 승까진 될 줄 알았는데 몸 상태가 안 좋아서···”

       

       권아린이 엔시아를 힐끔거렸다.

       엔시아의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대회 중엔 포션과 도핑이 금지었으니, 엔시아의 잘못이 크긴 했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아, 엔시아랑 대련하는 게 더 좋으니까.”

       

       “···그렇습니까?”

       

       “응. 얻어가는 것도 많고, 더 재미있고.”

       

       권아린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딱히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우승은 누가 하려나요? 우리길드에서 했으면 좋겠는데.”

       

       “우승은 아마 진혁 오빠가 할걸?”

       

       “어? 진짜요?”

       

       “응. 다음 경기가 결승인데, 여름언니랑 진혁오빠랑 둘이 결승 올라갔거든.”

       

       세상에.

       여성의 몸으로 마나 없이 결승까지 가다니.

       항상 상냥하게 웃어주기만 해서 몰랐는데, 한여름은 진짜배기 괴물이었다.

       

       “헤헤.”

       

       기쁜 마음에 꼬리가 흔들렸다.

       이제 좋은 일만 남은 탓이었다.

       

       “겨울님.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축하도 하고, 대회 끝나서 제가 좋아하는 일도 하고 좋네요.”

       

       “좋아하는 일이요?”

       

       “같이 좀비 서바이벌 열기로 했거든요.”

       

       진짜 좀비는 무섭지만, 가짜는 즐거웠다.

       잔뜩 기대하던 일인데 이리할 수 있게 되다니.

       

       기쁜 마음에 모두를 둘러보았다.

       

       “아··· 음···”

       

       아르고의 목위에 올라탔던 새벽이가 내 시선을 피했다.

       

       우연이려나.

       딱히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그거 아시나요…!
    사실 먼데용은 좀비 아포칼립스랑 호러 장르를 좋아한답니다…
    전작부터 좀비랑 호러 분위기는 파트는 빠지지 않고 넣어 왔답니다…!

    ───
    마이번냥님 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푸딩좋아님 겨울이 팬아트 감사합니다!
    금방 정리해서 팬아트 공지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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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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