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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허무하리만치 쉬웠다.

         

       노인은 정신을 잃은 여인의 몸 위에 손을 가져간 것만으로 체내에 있던 마기를 모두 빨아들였다.

         

       백우진은 눈가를 좁히며 노인을 돌려서 깠다.

         

       “사람 살리기 참 쉽네요. 그죠?”

         

       그러자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보기에만 쉬운 것이니라. 그 증거로 네놈은 할 수 없는 일이잖느냐.”

       “…….”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졌다.

         

       백우진은 어느새 새근거리며 잠이 든 여인의 맥문을 짚어보았다.

         

       체내에는 털끝 만큼의 마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근데 이거 이대로 놔두면 다시 마기가 쌓이는 거 아닙니까?”

       “그럴 테지.”

       “…그럼 어떡하죠?”

         

       노인은 부글부글 화가 끓어올랐다.

         

       “그래서 살리지 말자고 했던 것 아니냐! 네놈처럼 마기에 저항하는 능력이 없으면 이곳은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란 말이다!”

       “어우…, 기운도 좋으셔라.”

         

       소리를 빽빽 잘도 질러대는 걸 보면 정신에만 문제가 있을 뿐, 수명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 게 확실해 보인다.

         

       백우진은 먹먹한 귀를 새끼 손가락으로 후벼파며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어쨌든 저희는 거래를 했잖습니까? 그러니 영감님께서 쭉 살려주셔야죠.”

       “이, 이이…!”

         

       노인은 확신했다.

         

       조금 전에 자신에게 뭔가가 씌었던 게 틀림없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술 한 병에 하루가 멀다고 쌓일 마기를 치워야만 하는 거래에 자신이 응했을 리가 없을 테니.

         

       노인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내밀며 소리쳤다.

         

       “닥치고 술이나 내놓거라!”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지만, 이미 거래는 성사되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무를 수도 없는 상황.

         

       어쨌거나 손에 넣게 된 술이니, 그것이라도 먹고 기분을 좀 풀어볼 요령이었다.

         

       백우진은 허리춤에 있던 호리병을 풀어 노인에게 건네주었다.

         

       호리병을 손에 쥔 노인은 날 선 음성으로 그에게 경고했다.

         

       “만약 술맛이 네놈이 말했던 것보다 조금이라도 모자랐다간 각오하는 게 좋을 게다.”

         

       죄가 없는 사람이라도 찔끔 놀랄 것 같은 서슬퍼런 경고에도, 백우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음대로 하십쇼.”

         

       사실 아무리 신선이 빚은 술이라고 해도, 과장을 심하게 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이 넘쳤다.

         

       ‘맛이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법이니까.’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게 맛이기에.

         

       “크흠!”

         

       점잖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 노인은 곧장 떨리는 손으로 호리병의 마개를 열었다.

         

       뽕!

         

       마개가 열리기가 무섭게 올라오는 향기에, 노인은 순간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다.

         

       ‘놈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구나!’

         

       그야말로 극상의 명주가 아니면 절대 날 수 없는 향이었다.

         

       투박하게 호리병을 쥐고 있던 손도 변화했다.

         

       아주 소중한 것을 들고 있는 것처럼,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듯한 섬세함이 돋보인다.

         

       ‘대체 얼마 만에 마시는 술인지.’

         

       그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호리병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목울대가 출렁인다.

         

       꿀꺽! 꿀꺽!

         

       호리병에서 쏟아진 술이 노인의 목구멍 안으로 콸콸 쏟아져 넘어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려온다.

         

       오랜만에 얻은 술을, 노인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기왕 생긴 것, 확실하게 맛보고 즐기자는 생각뿐.

         

       “엄청 좋으신가 보네.”

         

       얼굴을 뒤로 젖힌 채 술을 들이붓는 노인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다.

         

       어느 순간엔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엔 절정에 다다른 사내 같기도 하고.

         

       그러나 하나만큼은 변치 않았다.

         

       행복.

         

       그 하나의 감정만큼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노인의 모든 표정을 관통하고 있었다.

         

       “푸하!”

         

       노인이 입을 뗐다.

         

       “자, 받거라.”

         

       그리고선 백우진에게 호리병을 돌려주었다.

         

       “응?”

         

       안전하게 호리병을 받아 든 백우진은 안이 여전히 찰랑거리는 걸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호리병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꺼번에 다 마신 줄 알았더니, 절반 가량의 술이 여전히 남아 있다.

         

       “아직 남아 있는데요?”

       “안다.”

         

       백우진은 비로소 노인의 표정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꼭 온갖 번뇌를 억지로 잘라내며 고행을 거듭하는 수도승과도 비슷해 보였다.

         

       “다 마셔도 되는데, 왜 참으십니까.”

         

       재차 묻자, 노인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내쉬며 대답했다.

         

       “자칫 정신을 잃을 뻔했기 때문이니라.”

         

       수십 년 만에 마시는 술의 맛은 각별했다.

         

       아니, 각별하다는 맛으로도 표현이 불가능했다.

         

       그저 행복했다.

         

       동시에 아찔해졌다.

         

       “말했다시피 현재 본좌의 정신은 온전치 못하다.”

         

       노인의 몸은 두 개의 정신이 하나의 몸을 놓고 싸우는 중이다.

         

       처음에는 노인이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할 정도로 우세했으나, 천마신공에 대한 연구를 거듭할수록 다른 한쪽의 정신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거의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태다.

         

       비율로 따지면 8:2 정도.

         

       치매에 걸린 듯한 노인이 여드레를 사용하면, 노인은 고작 이틀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몸을 되찾는 주기가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술이 내 정신을 아득하게 멀어지게 하더구나.”

         

       몸의 주도권을 다시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그것이 노인이 술을 입에서 떼어낸 이유였다.

         

       “이대로 몸이 다시 바뀌면 본좌는 언제 또 돌아올지 기약할 수 없다.”

         

       노인에게는 정신이 뒤바뀌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네가 생각하기에 뒤바뀐 본좌의 정신이 네게 천마신공을 잘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으냐.”

         

       백우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노인의 두 번째 정신은 겉만 노인으로 보일 뿐, 하는 짓은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천마신공의 구결은 정확하게 암기하고 있는 듯하나, 정신이 불안정해 보이는 이에게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련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니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몸을 빼앗기기 전까지 네놈은 스스로 천마신공을 운기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올라서야만 해.”

       “그럼 바로 수련 시작하죠.”

         

       백우진이 열의를 불태우자, 노인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노인의 시선이 푸석푸석한 땅 위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여인에게로 향했다.

         

       “저 여인을 안고 본좌를 따라오거라.”

         

       노인이 먼저 등을 돌려 걸어가자, 백우진은 황급히 여인을 품에 안고 따라나섰다.

         

       괴이하게 우거진 숲을 헤치고 나아간 끝에 보이는 것은 제법 커다란 동굴이었다.

         

       매끈한 벽면으로 보아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동굴은 아닌 듯했다.

         

       노인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의 흔적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벽면에 쓰인 수백의 바를 정자, 더 깊숙한 곳에 자리한 조악한 침상까지.

         

       노인은 그 침상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곳에 그 여인을 눕히거라. 이곳이라면 마기가 쉽게 쌓이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백우진은 여인을 침상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확실히 여기는 기운이 다르네요.”

         

       이곳에는 밖에 가득하게 쌓인 혼탁한 마기 대신 다른 기운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것은 노인이 전에 보여주었던 진짜 마기였다.

         

       “이제 밖으로 나오거라. 수련을 시작할 터이니.”

         

       돌아서서 밖으로 나가던 노인이 우뚝 멈춰 서서 스산한 말을 남겼다.

         

       “천마신공은 어중간한 노력으로는 배울 수 없는 무공이다. 더군다나 우리에겐 시간 또한 부족하지. 죽기 살기로 배워야 할 테니, 각오 단단히 하고 나오거라.”

         

       미약한 살기가 어린 말을 남기고 떠나는 노인.

         

       백우진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쓰게 웃었다.

         

       노인은 간절해 보였다.

         

       천마신공의 완성이 그리도 간절한 건지, 하나의 몸을 두고 정신이 두 개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태를 되돌리고 싶어 간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기 살기로 배울 수 있는 정도면 양반이지, 뭐.”

         

       백우진 또한 간절했다.

         

       더 이상 무엇도 잃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제게는 과분한 여인들은 물론이고, 헤어졌다가 적으로 다시 만난 그녀마저도 잃고 싶지 않았다.

         

       칼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잃지 않을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강자에게만 주어진다.

         

       그러니 별 수 있나.

         

       강해지는 수밖에.

         

       백우진은 엉덩이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차분한 걸음으로 노인이 지나갔던 길을 따라 동굴 밖으로 나섰다.

         

         

       * * *

         

         

       “으응….”

         

       온몸이 뻐근하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다.

         

       살아 있음을 직감하게 하는 온갖 생체 신호들이 죽은 듯이 잠들어 있던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 깨웠다.

         

       파르르 떨리다 서서히 말려 올라가는 눈꺼풀.

         

       마침내 눈을 뜬 여인이 처음으로 본 것은 어두운 동굴의 천장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아!”

         

       의아함을 입밖으로 표출하던 그녀의 머릿속에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때….”

         

       사람을 만났다.

         

       죽음의 땅이라 일컬어지는 마경에서.

         

       그것도 몹시도 준미한 사내를.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에 혼미한 정신은 그를 자신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온 저승사자라고 생각했건만.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눈을 뜬 곳이 지극히 현실적인 곳이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응…?”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왁자지껄한 느낌이라는 것만은 알겠다.

         

       이에 그녀는 묘한 희망에 사로잡혔다.

         

       ‘혹시 마경에서 빠져나온 걸까?’

         

       그녀는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가며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윽…!”

         

       넘어지지 않도록 동굴 벽을 짚어가며 천천히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출구를 향해 걸어 나갔다.

         

       마침내 다다른 출구.

         

       그곳에서 그녀가 본 것은.

         

       “화산파~ 매화가~ 피.었.습.니…다!”

         

       괴이하게 자라난 나무에 얼굴을 묻고 있는 노인과 그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고 있는 준미한 사내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근 연재가 자꾸만 불안정해서 죄송합니다. (_ _)

    요즘 들어 써야 할 내용은 명확하게 각인되어 있는데, 이걸 끄집어내는 게 쉽지가 않네요.

    더군다나 자꾸 낮이나 밤에는 집중도 잘 안 되다가 새벽에만 글이 써지다 보니 피로도가 쌓인 날에는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고요…

    결국 제 문제인데 독자님들께 불편을 드려선 안 되겠지요.

    최대한 정신 집중 잘해서 정시 연재도 하고, 모자란 부분 벌충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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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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