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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211화. 귀환 ( 7 )

       

       

       

       

       

       킁킁-

       

       유니콘이 코를 벌름거렸다. 그간 스스로의 처녀 탐지 능력에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 냄새가 풍겨오는 곳은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다른 곳도 아닌 한스의 가방에서 처녀의 향기가 풍겨오고 있던 까닭이다.

       

       ‘도대체 왜…?’

       

       심지어 모르는 향기도 아니다.

       이슬을 머금은 풋풋한 꽃망울의 향기. 아직 채 무르익지 않은 존재의 풋내.

       

       이 향기는 틀림없이ㅡ

       

       “유니콘! 뭐해, 빨리 오라니까!”

       《아, 알겠네!》

       

       유니콘의 상념은 앞에서 재촉하는 한스의 외침에 끊어졌다. 뭐,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

       

       가방에 숨어든 걸로 봐서는 몰래 따라온 것이 분명하지만… 유니콘은 이를 한스에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

       

       ‘남정네와 단둘이 가는 것보다는, 아리따운 소녀 한 명이라도 있는 편이 좋지 않은가!’

       

       실로 개인적이고, 사심이 가득한 이유였다.

       

       한스와 유니콘은 이후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묵묵히 길을 따라 달렸다.

       

       한스는 고향의 걱정에 정신이 팔려 말할 정신이 없었던 까닭이고, 유니콘은 구태여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걸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지치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주머니에서 육포와 물을 챙겨 먹은 뒤 다시 달린다.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

       

       태양이 산등성이 너머로 고개를 감추기 시작하고, 깊고 끝없는 어둠이 주변 가득 내려앉을 때까지.

       

       앞이 보이지 않아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정도가 됐을 때, 한스는 그제야 멈춰섰다.

       

       “하… 하아… 오늘은, 여기서 쉬자.”

       《푸르륵. 알겠소.》

       

       땀으로 흠뻑 젖은 한스가 등에 멘 짐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루 종일 전력으로 달렸더니 다소 지친 감이 있었기에, 무심코 가방을 쿵-하고 놓쳤다.

       

       “꺄앗!”

       “…어?”

       《히힝-》

       

       가방에서 가녀린 비명이 흘러나왔다.

       순간 한스와 유니콘이 시선을 마주쳤고, 다시 천천히 가방으로 돌아갔다.

       

       아주 익숙한 목소리다. 동시에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목소리였고.

       

       “…설마!”

       

       좋지 못한 미래를 직감한 한스가 후다닥 짐가방을 열었다. 놀랍게도 그 안에 보이는 것은, 작고 여린 한 명의 소녀.

       

       데이지.

       

       “데, 데이지…? 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성도에 있어야 할 아이가 도대체 왜 짐가방에서…? 도대체 언제부터? 아니 어떻게?

       

       수많은 의문이 한스의 눈동자에 차올랐다가 우수수 사라졌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노상 한가운데 데이지가 있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했다.

       

       큼직한 눈을 깜박이며 어색하게 한스와 눈을 맞추던 데이지가 자기 머리를 콩, 하고 때렸다.

       

       “어, 어… 까, 깜빡 잠들었어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ㅡ! 지금! 어, 으악! 가방에서! 네, 네가!”

       

       기가 막힌 심정이 목구멍을 때리며 솟구치다가 턱 막혔다. 차마 단어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탁탁 끊기는 공기 뱉는 소리만이 터져 나온다.

       

       《푸르륵ㅡ》

       

       그 광경을 구경하던 유니콘에게 불똥이 튀었다.

       

       “너, 너! 넌 알고 있었지! 네가 모를 리가 없어! 왜 나한테 말 안 한 거야!”

       《히힝ㅡ? 푸르륵… 이히히힝.》

       “모른 척하지 말고!”

       

       슬쩍 시선을 돌린 유니콘은 태연하게 투레질했다.

       

       “하, 한스 님! 죄송해요! 너무, 너무 걱정돼서 저도 모르게 그만… 저 정말로 짐이 안 될게요! 위험한 곳에는 안 가고, 한스 님이 싸울 때면 유니콘에게 딱 붙어있으면… 그러면 안 될까요?” 

       “이미 여기까지 와서 그런 말을 한들…”

       

       한스가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쓸었다. 도대체 이걸 왜 몰랐을까.

       가방이 너무 가볍다 싶었을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히힝ㅡ! 주인이여, 썩 나쁜 제안은 아니지 않은가?! 이 꽃봉오리 같은 소녀의 걱정은 접어두시게! 신께서 기적으로 빚으신 바로 나, 요정마가 소녀의 안전을 맹세하겠네!》

       “…”

       

       여기까지 왔으면 성도로 돌아갈 수도 없다.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달렸는데, 인제 와서 되돌아간다고?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니, 시간도 결국 자원이다.

       한스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하아…”

       

       데이지를 보니 불안한 기색이 가득하다. 연신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제 잘못이 크다는 것은 아는 모양.

       

       이렇게 큰 잘못인 줄 알면서 도대체 왜 그랬을까.

       충동적으로 저지를 만한 아이도 아닐 텐데.

       

       슥슥슥-.

       

       결국 마음이 약해진 한스가 데이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이제와서 혼내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그렇다면 대책을 논의하는 편이 생산적이다.

       

       “하… 이번만 봐주는 거야.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면 안 돼. 알겠어?”

       “…네에!”

       

       혼날까 불안하던 데이지의 눈에 환한 기색이 밝게 차올랐다.

       

       “어휴. 일단… 밥부터 먹자. 가방 안에 있었으면 하루 종일 굶었겠네.”

       “제, 제가 해드릴게요!”

       

       그날 밤, 한스는 육포로 이렇게나 맛있는 요리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

       

       

       

       “어마어마하네요.”

       “그러게. 이건 상상 이상인데.”

       

       유니콘의 등에 올라탄 데이지가 사방을 둘러봤다. 한스의 고향이라는 마을은 아담하고, 작고, 소박한 곳이었다.

       

       느지막한 초원과 언덕의 능선을 따라 드문드문 모여있는 작은 집들과 적당한 농지.

       마을과 바깥의 경계를 나누는 단단한 목책과 마을 가까이 흐르는 강물까지.

       

       모든 것이 전형적인 시골이었다.

       

       마을 주변을 가득 채운 초록색의 오크들이 아니었다면.

       

       “빱! 먺뉸다! 쩌언쟁! 쌰운댜아!!”

       “쭈언재앵? 한다! 바아압! 먺따!!”

       

       여기저기서 오크 특유의 강세가 가득한 외침이 들려온다.

       그들 사이사이에 보이는 것은 제국의 깃발이 걸린 짐수레들. 그 모든 수레에 음식이며 마실 것이 한가득 실려 있었다.

       

       우걱우걱! 쩝쩝쩝!

       

       쉴 새 없이 처먹는다. 오크들은 수많은 음식을 먹고 먹고 또 먹어 치웠다.

       한스와 데이지가 잠시 구경하는 동안 수레에 가득 쌓여있던 음식이 동나버렸다. 

       

       벅벅.

       

       “빠아압? 바압! 없땨!! 쭈언재애앵!! 우워어어어어!!”

       “빱?! 엄따!! 쩌언쟁!!! 크워어어어어!!!!”

       

       먹을 것이 동난 오크들이 광분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역병처럼 퍼져나가며 금세 주변의 오크들까지 전염시켰고, 일대의 오크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다, 다음 수레! 빨리 다음 수레 가져와!”

       

       빈 수레가 빠져나가고 그 자리에 새로운 수레가 들어왔다. 높게 쌓여있는 음식의 산이 수레에 실려 움직이는 장관이라니.

       어딘가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움직이는 음식의 산을 목격한 오크들이 괴성을 꾹 멈췄다.

       그리고 신나게 음식을 향해 달려든다.

       

       “빠아압!! 먹눈땨!!”

       “바아아압!! 쩌언재애앵!!”

       

       귀가 터질 것 같은 외침이 사방에서 울렸다. 한스가 재빨리 데이지의 귀와 눈을 막았다.

       이미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어린애가 보기에는 영 좋지 못한 장면이네.’

       

       마을 바깥부터 오크가 이렇게나 많다니. 마을 안의 풍경은 보지 않았는데도 훤히 보일 지경이다.

       아마 온 건물을 점령하고 드러누워서 음식을 요구하고 있겠지.

       

       한스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튼튼한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시골에서는 나름 튼튼하다 여겨지는 문을 지나치면 그 안에 보이는 것은 한가득한 초록색 덩어리들.

       

       길가 여기저기에 드러누운 오크들이 배불리 음식을 먹고 한바탕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배가 고픈 오크들은 밖에서 먹고, 실컷 먹은 녀석들은 마을에서 자는 모양이다.

       

       “하아…”

       

       한숨이 나오는 모습이다. 이 오크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이미 마을의 식량이란 식량은 모조리 쓸려 나갔을 텐데.

       

       일단 한스는 익숙한 길을 따라 걸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기억 속 익숙한 모습 그대로다. 울퉁불퉁한 흙길과 살짝 허술해 보이는 울타리, 농사일이 끝나면 쉬곤 했던 커다란 나무까지.

       

       그리고ㅡ

       

       “한스? 한스야?! 너 한스 맞지?! 정말 한스구나!”

       

       익숙한 얼굴까지.

       

       농지에 드러누운 오크를 보며 한숨을 푹푹 쉬던 여인 하나가 한스를 보더니 아는 체하며 후다닥 달려왔다.

       

       허둥지둥 뛰어오다가 낮잠 자는 오크에게 발이 걸려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날렵하게 자세를 고쳐잡고는 와락ㅡ 안겨들었다.

       

       “한스!! 드디어 돌아왔구나!!”

       “우왁!”

       

       이름 모를 시골 처녀의 얼굴에는 재회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 가득했다. 그에 반해 한스의 얼굴에는 황당함과 당혹감이 뚜렷하게 서려 있었다.

       

       “한스, 한스! 네가 말도 없이 도시로 나갔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데!! 살아와서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어, 어어. 그, 그래. 나도 반가워. 그러니까…로라?”

       “내 이름 기억하고 있었구나!”

       

       로라라고 불린 여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며 한스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는다.

       

       꾸욱.

       

       동시에 손을 잡고 있던 데이지의 악력이 강해진다. 무언의 시선도 느껴진다. 한 치의 빛이 들지 않는 심연 같은 저 눈동자.

       

       더 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 것 같다고 느낀 한스가 제 품에 단단히 안긴 로라를 뗐다.

       

       “로라. 나도 네 얼굴 봐서 반가워. 그런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 나는…”

       

       한스가 제 품에서 만신전의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고급스러운 금테가 수놓아진 펜던트는 척 보기에도 상당한 고급품이었다.

       

       “만신전의 사도로서, 우리 마을에 생긴 일을 해결하려고 온 거니까.”

       “사, 사도? 한스 네가 만신전의 사도가 됐다고?!”

       

       로라가 화들짝 놀라며 한스의 펜던트를 살폈다.

       

       무지렁이 시골 처녀가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급스러운 자태의 펜던트와 만신전의 표식이다. 한스가 고향까지 와서 허세를 부릴 인간도 아니었고.

       

       한스가 사도가 돼서 돌아왔다니!

       평소라면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잔치라도 열었겠지만, 지금 마을의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조용히 한스의 옆을 지키던 유니콘이 로라를 향해 눈을 희번덕하게 빛냈다.

       

       《히힝ㅡ 반갑네 처녀여! 이 몸은 순수한 빛으로 빚어지고, 맑은 이슬로 태어난 요정마! 유니콘이라고 하네!》

       “꺄악! 마마마, 말이 말을 하잖아!”

       《푸르르륵ㅡ! 으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처녀의 흙내음이 나를 미치게 하는군!》

       “꺄아아악! 하, 한스! 말하는 변태말이야!!”

       “잠깐 진정해… 유니콘 너도 그만하고… 하아ㅡ”

       

       유니콘이 눈을 빛내며 로라에게 코를 들이밀고, 기겁한 로라는 한스의 품으로 파고들고, 데이지가 붙잡은 손은 이제 찌부러질 듯하다.

       

       벌써부터 쉽지 않은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스의 업보…!! 데이지의 압력…!!! 유니콘의 개판…!! 세 가지가 모여 삼위일체를 만드는 중…!! 실로 혼돈의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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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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