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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육체를 온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한 줌밖에 남아 있지 않던 마기가 신성력에 의해 산화되어 흩어졌다. 

       

       헤카르테 때와 마찬가지로 이제 하무트의 영혼은 다시 마계로 돌아갔을 것이고, 부활한 육체를 잃은 반동으로 봉인을 당했으니 최소 천 년 이상 대륙에는 코빼기도 내비치지 못할 것이다. 

       

       타앗.

       

       공중으로 도약해 하무트를 마무리한 레키온은 곧 땅에 가볍게 착지했다. 

       

       모든 게 마무리되자 레키온의 발치에 그려져 있던 푸른 날개 문양이 스르륵 사라졌다. 

       

       레키온은 공중 도약을 걸어 주었던, 그리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브레스로 한 방에 전세를 역전시키고 하무트를 무력화시켜 주었던 아르에게 곧바로 달려갔다. 

       

       “아르야아아아아!!!”

       

       이번엔 마지막이 ‘악’ 소리로 끝나는 게 아닌, 기쁨에 찬 외침이었다. 

       

       “삼쵸오오오온!”

       

       두 팔 벌려 달려오는 레키온을 맞이하기 위해 아르는 얼른 몸을 웅크리고 얼굴을 땅 가까이로 가져왔다. 

       

       와락.

       

       “아유, 우리 아르! 진짜 너무 예뻐 죽겠어. 응? 진짜 아르가 브레스 쏘기 전까지만 해도 큰일나는 줄 알았는데, 역시 우리 아르라니까!”

       “대단하긴 했지. 나도 놀랐어.”

       

       옆에 있던 데보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레키온이나 데보라나 둘 다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천 년의 힘을 사용해 이렇게 거대한 성체 드래곤이 된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고, 브레스를 쏘는 모습도 당연히 처음 보는 거였다. 

       

       “헤헤헤헤…. 아르 잘해써?”

       “그럼! 아르가 없었으면 정말 위험했을 거야. 아니, 솔직히 말하면 졌을 가능성이 더 높았겠지.”

       

       마글라론 지부, 콘테트 지부.

       두 개의 대형 지부에 있는 마력석을 비롯한 대량의 자원과, 추종자들 전부를 제물로 삼아 부활한 하무트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단일 전투력만 놓고 보면 거의 바할라크에 버금갈 정도가 아닐까.’

       

       바할라크는 본체도 강하지만 그의 진짜 주특기는 마물 군단을 조종하는 능력이었다.

       만약 하무트가 정말 완전한 부활에 성공했다면, 바할라크보다도 더 강했을지도 몰랐다. 

       

       정말로 아르의 브레스가 아니었다면 황실 기사단은 물론 레키온조차도 치명상을 입었을 수 있었다. 

       

       “레온, 아르 삼쵼한테 칭찬 바다써! 헤헤.”

       “그래. 잘했어, 아르야. 내가 봐도 완벽한 타이밍이었어.”

       “아르 멋져써?”

       “응. 엄청 멋있었어.”

       “히히히. 레온한테두 칭찬 받아따!”

       

       아르는 기분이 좋은지 눈을 접으며 입을 헤에 벌리고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내 뺨을, 아니 얼굴을 장난스레 핥았다. 

       

       “레온 핥쨕!”

       “푸흡. 워터!”

       

       나는 한 번의 핥음에 침 범벅이 된 얼굴을 워터로 씻고, 아르의 얼굴에 가볍게 물대포를 쏴 복수했다. 

       

       “크앙!”

       

       눈을 꼬옥 감으며 외마디 감탄사를 내뱉는 아르를 보며 나와 실비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흐흣. 정말 아르는 커서도 귀엽네요.”

       “그러게 말이에요. 나중에 천 년 뒤에도 이러련지.”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저쪽에서 조심스레 걸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황실 기사단원들이었다. 

       

       “저…. 레온 님? 이게 지금 어떻게 된 건지….”

       

       정황 상 눈앞에서 눈을 초승달 모양으로 접으며 헤헤 웃고 있는 순한 드래곤이 아르라는 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아직 그들의 머리에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오직 유추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하하. 뭐, 지금은 다들 짐작하고 계시긴 하겠지만…. 이제 확실히 말할 때가 되었으니 밝히도록 할게요.”

       

       나는 들썩이는 아르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희 아르는 와이번이 아니라 드래곤입니다. 마왕이 말했던 것처럼, 최후의 은룡의 후손…. 아니 이제는 정말 최후의 은룡 그 자체가 된 드래곤이죠.”

       

       나는 지금까지 아르와 대륙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힘을 기르고 이미 마왕 하나를 다른 드래곤, 그러니까 이드밀라의 도움을 받아 봉인시켰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용사인 레키온 단장님과 어떻게 우연찮게 만나게 되어서 하무트를 봉인시키기 위해 이렇게 같이 찾아온 겁니다.”

       

       황실 기사단은 내 설명을 들으면서도 종종 ‘아직 내가 꿈 속에 있나’라는 표정으로 거대한 아르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곤 했다. 

       

       “지금까지 속인 건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체가 정체인지라 결정적인 순간까지는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황실 기사단까지는 몰라도 황실 수뇌부에서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길 게 분명하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궁금한 게 한 가지 있습니다. 아르 앞에서 이런 말하긴 뭣하지만, 드래곤은 굉장히 자기중심적이고 고고한 종족으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다른 이들에게 밝히지도 않고 마왕을 봉인하고 다니셨던 겁니까?”

       

       그들이 아는 드래곤의 이미지는 아마 대륙 곳곳에 잠든 채로 개인 플레이를 하면서 제멋대로 사는 까다로운 종족 정도일 터.

       그런 종족이 이렇게 익명의 영웅이 되어 목숨 걸고 마왕을 잡으러 다닐 이유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나는 차분히 설명을 이었다.

       

       “여러분께서 그렇게 알고 계신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저희가 조용히 마왕 세력을 정리해 온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아주 오래전부터 드래곤은 대륙의 수호자로서 마왕을 물리쳐 왔기 때문이죠. 천 년 전, 마신을 봉인하고 대륙에 평화를 가져온 것도 여기 있는 아르의 어머니인 진짜 ‘최후의 은룡’이었고요.”

       

       내 이야기를 들은 황실 기사단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단장인 커트 브륀만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 하지만 천 년 전에 마왕을 봉인하고 제국에 평화를 가져온 건 영웅 카란트라라고….”

       “당연히 날조죠. 방금 마왕 센 거 보셨죠? 천 년에 한 번 나타날까말까 하는 용사 레키온 님도 일대일로는 고전하셨잖아요. 근데 천 년 전에는 그보다 센 마신이 있었다니까요. 최후의 은룡 카르사유 님이 봉인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죄다 멸망했을걸요.”

       “…….”

       “뭐, 믿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요. 애초에 곧이곧대로 믿을 걸 기대하고 한 얘기도 아니고요. 여러분은 그냥 여러분이 본 사실 그대로만 황실에 보고해 주시면 돼요. 저희 아르의 활약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전세를 역전하고 용사와 함께 마왕을 무찔렀다고 말이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황실 기사단에게 기대하는 건 처음부터 이쪽이었다. 

       

       황실 기사단원들의 성향 상 거짓 보고는 하지 않을 테니까.

       

       황실에서 그 소식을 듣고 아르의 공을 어떻게든 축소하고 싶어하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왜냐고?

       

       “아유우우, 우리 귀여운 아르. 이제 왕 크고 왕 귀여운 드래곤 아르 상태로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말도 할 수 있겠네?”

       

       우리 조카 바보인 용사 레키온 님이 직접 아르의 공을 떠들고 다녀 줄 테니까.

       

       ***

       

       용사 레키온이 황실 기사단과 함께 마왕 하무트를 쓰러뜨렸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제국 전역에 퍼졌다. 

       

       “지난번에 하무트교인가 뭔가 하는 곳이 악마랑 관련이 있다더니, 정말이었나 봐!”

       “마물들이 마을을 습격한 것도 그 악마의 짓이었다던데?”

       “용사님이 빠르게 대응해 주셔서 망정이지, 그놈들이 우리 가족을 습격했다고 생각하면…. 으으….”

       “역시 용사님이라니까. 얼굴도 잘생겨, 정의감도 투철해, 제국도 구해, 레키온 님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근데 그거 들었어? 이번에 마왕을 잡을 때 가장 활약한 게 용사님 자신이 아니었대.”

       “엉?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황실 기사단이 활약했나?”

       “그게 아니라….”

       

       그리고, 용사 레키온이 직접 밝힌 마왕과의 전투에서의 일등 공신.

       

       “아르라는 드래곤이 있는데, 그 드래곤이 브레스로 중요한 순간에 마왕을 무력화시켰다는 거야!”

       

       아르에 대한 이야기도 일파만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뭐? 드래곤…? 브레스…? 갑자기 그건 또 뭔 소리야?”

       “후우, 얘기하자면 복잡한데…. 레온이라고 드래곤을 사역마로 키우는 용병이 한 명 있어.”

       “아니, 그것부터 이해가 안 되는데?”

       “가만히 들어 봐! 그러니까….”

       

       물론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그간 사람들에게 완전히 전설 속의 종족 수준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그 소문을 처음부터 그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레키온은 그게 답답한 나머지 아르를 직접 데리고 사람들 앞에 나와 아르의 활약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다.

       

       “그때 마왕이 펼친 마기가 하늘에서 촤악, 펼쳐지는데 저희 아르가 커다란 드래곤으로 변신을 하더니 브레스를 촤아아악! 요 귀여운 녀석이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으신다고요? 아르야, 성체 모습 한 번 맛보기로 보여 줄래?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레키온이 그렇게 말하면, 아르는 옆에 서 있는 레온을 돌아보며 변신해도 되냐는 눈빛을 보냈고.

       레온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 잠깐 성체 모습으로 변신했다. 

       

       “쿠왕! 저 드래곤 마자여!”

       

       아르는 사람들이 겁에 질릴 틈도 없이 변신을 풀었고, 금세 원래의 말랑뚠뚠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러케 변신두 자유롭게 할 수 이써여! 헤헤.”

       

       아르는 폴리모프로 인간 모습도 보여 주었고.

       

       “우와, 귀여워…!”

       “저렇게 예쁜 아이가 드래곤이라니.”

       “어? 잠깐. 나 저 아이 예전에 본 적 있어!”

       “그러고 보니 저 옆에 있는 사람도…! 전에 뒷골목 세력 정리하고 다녔던 맛집 탐방 가족 아니야?”

       “맙소사, 어쩐지 매번 상처 하나 없이 무시무시한 놈들을 다 쫓아낸다 싶었어.”

       

       아르를 목격한 적이 있는 사람들의 증언이 하나둘씩 더해지자, 아르의 활약에 대한 신빙성도 자연스레 올라갔다. 

       

       무엇보다….

       

       “그냥 드래곤 모습일 때가 난 더 귀여운 거 같은데?”

       “몰라, 둘 다 귀여워.”

       “쀼 소리 내는 것 좀 봐….”

       “꼬리 움직이는 것도 귀엽네.”

       “뺨이 말랑해 보이는 게 한 번만 만져 보고 싶다….”

       

       여러 사람에게 귀엽다는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진 아르는 의외로 무대 체질인지 사람들 앞에서 각종 재롱을 부렸고, 사람들은 그런 아르의 매력에 금세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뭣? 드래곤이 활약했다는 소문이 벌써 퍼져 나갔다고?”

       “예, 폐하.”

       “내가 분명 그 부분은 입단속을 시켰을 텐데!”

       “하지만 용사 레키온 본인이 나서서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후우…. 그렇단 말이지….”

       

       한편 황실에서는 그 소식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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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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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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