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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모임의 시작은 제법 화기애애했다. 어찌되었든 초대되어 온 손님이었으니.

       

       그 손님이 얼마 전까지 집 앞에서 농성을 주도하던 사람이라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그 모임이 정말로 시위였는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던 고로.

        

       게다가 사장, J. Dox는 얼마 전의 집회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다. 지사장이 멋대로 고소 검토 의뢰를 넣은 건, 아직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저 의욕만 앞서, 아시아권 지사 순회를 위한 비행기표를 발권하기도 전에 이예나에게 초대장부터 날린 상태였더랬다.

        

       애초에 그는 로그라이트 인디게임만 만들던 시절부터 개발만 생각하던 사람이었고- 이는 나이트 오브 나이츠가 폭발적인 성장을 한 후에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며 명칭이 ‘개발자’에서 ‘테크 리드’로, 그리고 ‘최고기술임원’으로 변했고- 이어서 여론이 안 좋아졌을 때 반쯤은 탱킹용으로 ‘사장’ 직함까지 달게 되었을 뿐. 그 개인이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

        

       그러니, 자신이 인생을 갈아 만든 게임을 최대치로 즐겨주는 사람을 만나는 자리가 기쁘지 않을 리가 있나.

        

       반면 그 옆의 지사장은 이보다 안 기쁠 수 없었으나- 필사적으로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며칠 전. 코리안 의전을 보여주겠노라는 의지로 새벽 2시까지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기다린 끝에 마주한 사장은 양복이 아닌 체크무니 남방에 츄리닝을 입고, 비즈니스가 아닌 이코노미 승객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 정도야, 숙련된 의전생활 경험에 힘입어 당황한 티조차 내지 않고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 사장이 ‘선물로 주려고 직접 주문제작한 쌍수단검을 짐으로 부쳤는데, 반입 금지 품목이라고 조금 전 압수당했다’며 울상을 짓는 모습까지 버티는 건, 정말로 쉽지 않았더랬다.

        

       그럼에도 그간 쌓아온 경륜에 힘입어, 그 쌍수단검에 얼마나 많은 디테일이 반영되어 있었는지에 관한, 정말이지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는 설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경청하기를 한참.

        

       지사장은 이야기가 소강상태에 들어가는 타이밍을 절묘하게 노려 치고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직장인에게는 직장인의 전투가 있는 법이고, 어느 전투에서나 그렇듯 승패는 첫 수의 타이밍과 질로 갈리는 법.

        

       그가 고른 첫 수는, 최근 빈발하는 버그에 대하여 한국에서도 고객 문의가 많아, 역량을 총동원하여 대응하고 있으나 쉽지는 않다는 보고였다. 

       

       다행히 사장은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상상도 못한 영역들에서 버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고 있는 탓에, 밤에도 악몽을 꿀 지경이라는 하소연과 함께.

        

       사장의 최대 관심사에 대한 예측에 성공했다.

       

       그러니, 이제는 저 극악무도한 ‘아따먹’의 버그 유포를 중단시키기 위한 제반 조치들을 이미 검토해 두었음을 슬쩍 알릴 차례였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 자신의 유능함을 어필할 기회.

        

       지사장은 최대한 평정을 가장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양 입을 열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서두의 ‘A-tta-meok’이라는 한 단어뿐이었다.

        

       그 순간,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장이 숫제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로,

        

       ‘바로 그 사람을 위해 선물하려던 단검을 압수당했던 거다, 돌려받을 방법 정말로 없냐’부터 시작해서,

        

       ‘프로게이머는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 혹시 신상이 알려진 바가 있냐’,

        

       ‘너무 궁금해서 A-tta-meok이 회원가입한 이메일로 만날 수 있냐고 초대 메일은 보내 뒀는데 답장을 안 한다’,

        

       ‘우리 게임을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상상도 안 간다’,

        

       ‘나오나의 모든 메커니즘을 통달한 것만 같은 플레이였다’,

        

       ‘그냥 플레이가 미쳤다, 지사장님도 봤냐, 안 봤으면 시즌1 마지막 게임은 정말 무조건 봐야 된다’,

        

       ‘기획실에서 도적 너프 결정한 게 아쉬워질 정도다’,

        

       ‘패치 후엔 그 플레이 다시 못 본다 생각하면……아니, 너프 되어도 또 해내면 그게 더 멋있을 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너무 아쉽다’,

        

       ‘그런 사람이 세 명만 있으면 우리 QA팀은 다 실직할 거 같다’,

        

       ‘그런데 진짜 만나볼 방법 없냐’까지.

        

       그 모든 말을 약 1분만에 휘몰아치듯 쏟아내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운전석의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에.

        

       마침 호텔에 도착한 덕분에, 지사장은 ‘확인 후 보고드리겠습니다’라는 상투적인 인사와 함께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나-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할 수 있는 건, 보안유지를 당부받은 변호사가 연기도 잘 하기를 비는 것뿐이었다.

       

       

       * * * *

        

       그리하여 만나게 된 자리에서, 이예나와 사장이 서로 반가이 첫인사를 나누는 과정에는 생각보다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옆, 지사장과 이예리는 서로를 애써 모른척하며 사무적으로 인사했지만.

        

       그리고 미묘한 분위기의 인사로부터 불과 몇 초 후.

        

       한국서버 1등을 달성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각 서버의 시즌1등 결정전은 모두 봤지만, 당신이 두말할 것 없이 최고였습니다. 도적의 특성을 뛰어넘은 멋진 활약이, 와. 모두가 뛰어다니고 기어다니도록 설계된 전장에서 당신 혼자 비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정말로, 개발자인 저도 생각 못했던 플레이의 연속이어서, 개발자가 아닌 팬의 시선으로 보게 됐습니다.”

        

       미국 서부권 특유의 과장된 친절함이 가미된 칭찬임을 잘 알면서도, 가운데에서 지켜보는 이예리가 새삼 뿌듯해질 정도의 반응이었더랬다.

        

       무엇보다……나오나에 생각 이상으로 진심이었던 동생 아닌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게임을 직접 개발한 사람의 극찬이니- 얼마나 기뻐할지.

        

       그러나 안타깝게도, 동생은 평소의 무미건조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감사합니다. 기뻐요. 제가 가장……사랑하는 게임을 만들어주신 것도 그렇고. 도적의 비행에 관한 표현도 멋졌어요. 감사합니다.”

        

       이어서 입꼬리 한번 움직여주지도 않고 하는 말이, 이 꼴이었다.

        

       그런데 패치가 날개를 잘랐잖아요. 피가 철철 흘러요. 바닥에 흥건해. 제 눈에 조각조각 부서진 날개가 보이는 것만 같아요.”

        

       어떻게 봐도, 초면인 사장을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었다.

        

       “아, 예나야? 언니가 통역해줄 테니까. 편하게 얘기해. 사장님, 지사장님, 괜찮으시다면 제가 통역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여동생이 영어가 아주 편하지는 않아서, 표현상 오해가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맞은편에 앉은 사장과 지사장의 표정이 눈에 띄게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아……고마워. 그러면, 응. 패러데이에서 그런 파멸적인 패치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제 나름대로 고민해봤는데, 역시 나오나를 통째로 시체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유저들에게 미리 이별할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기 위한 패치였던 건가요? 라고 물어봐 줄 수 있을까?”

        

       “……언니 잠깐 화장실 갈 건데, 같이 가자. 두분, 정말 죄송하지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잠깐 화장실 좀 사용해도 될까요?

        

       “아, 물론입니다! 천천히 다녀오세요.”

        

       편한 표정이 유지된 건,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사장뿐이었지만.

       

       .

       .

       .

        

       그리하여, 잠시 후 도착한 화장실.

        

       “예나야. 언니가 진짜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패러데이 게임스에 관해서 뭔가, 알게 된 게 있어?”

        

       “……미안. 언니한테 말해주기는 힘들어.”

        

       모든 것을 의심하고, 리스크를 확인하는 절차가 직업병인 언니의 질문과, 숨겨야 하는 것이 많은 동생의 답변이 엇갈렸고-

        

       ‘지금 한국지사 상태가, 보안까지 철저히 할 정도는 아닌 것 같긴 한데……. 설마, 지사장이 고소 검토를 의뢰했다는 게 어디서 정보가 샜나? 어쩐지. 갑자기 전화와서 관련 검토 사실 보안유지 각별히 신경써달라고 하더라니. 뭔지는 몰라도, 뭔가 이슈 있었나 본데. 그래서 이렇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거면……어, 혹시 예나는 내가, 나도, 오해하고……?’

        

       추론을 마친 이예리의 머릿속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패러데이도 무모한 짓은 절대 안 할 거야. 언니가 책임지고 설득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는 예나 편이야.”

        

       “……언……니가? 아니, 음. 마음은 정말 고마운데……이미 무모한 짓은 하고 있고. 괜찮아.”

        

       “아니야. 아직 실행한 건 없으니까. 막을 수 있어. 일단 가서 대화로 해결하자. 전부. 통역한다는 명목으로 언니가 한번 필터링하고 얘기할 수 있게 해주고.”

        

       “……실행한 건 없는……그렇긴 한데……. 응. 그래. 알겠어. 일단 그렇게 해볼게.”

        

       그 결과는, 서로 다른 이유로 결의에 찬 두 명이었다.

        

       * * * *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패러데이 게임스의 원래 사장은 조금 더……음. 사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카락은 풍부했던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부족해보이는 머리카락을 저리 쥐어뜯는 사람이어서야.

        

       아무리 어떤 인터뷰 영상에서 보았던 희미한 기억뿐이라고 해도……동일인으로는 착각하기도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좋은 일 아닐까. 어쩌면 여기서 나오나가 더 흥한 이유가 이 사람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니. 정말 오랜만에 반가운 괴리감이다.

        

       그런 생각으로, 패치 방향의 중요성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주는 중이었는데.

        

       “……괜찮아. 굳이 다시 나갈 건……. 어차피 내가 안 해도 누군가 발견할 버그들이고.”

        

       “……네가 할 생각이라는 뉘앙스를 일단 멈춰주고……아니, 잠시, 잠시만 얘기 정리하고 오자. 두분, 정말 죄송합니다. 예나가 나오나를 위하는 마음이 큰 것에 비하여 아직 생각 정리가 정확하게 되지 않은 탓에, 시간이 조금 필요해요.

        

       ……생각 정리는 이 이상 명확하게 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고 하면, 안 되겠지.

        

       변호사를 선임하고 따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구나. 입이 근질근질해.

        

       그래도…….

        

       이예리니까.

        

       찡그려지려는 미간을 애써 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순간.

        

       “두분,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사장이 두 손을 들어 우리를 제지하며 말을 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고, 여쭙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아요. 시간이 부족합니다. 비밀로 이야기 하기를 원하시는 거라면, 차라리 우리 지사장님이 잠깐 나가계시면 어떨까요. 그러면 전 한국말은 전혀 못 알아들으니, 여기서 정리하시고 바로바로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가요?”

        

       저흰 어느 쪽도 좋습니다.”

        

       변호인의 즉답이었다.

       

       아니, 안 나가는 건 좋긴 한데.

       

       변호사가 원래 이런 건가. 내 발언권이 소멸한 느낌인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영어 병기가 자수를 너무 잡아먹고 흐름을 늦춰서, 이탤릭체로 처리하였습니다. 이탤릭체 대사는 영어로 이해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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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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