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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그러니까, 내가 벌을 내려도 뭐라고 할 말은 없을 거야. 안 그래?”

        

       “…….”

        

       내 말에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래, 할 말이 없겠지. 내가 한 말이나 본인들이 한 말 중에서 지켜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아니지, 일단 날 침대에서 재워야 한다는 이 애들의 말 자체는 지켜졌다.

        

       그 이후가 안 지켜졌을 뿐이지.

        

       내가 소희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일단 나를 거기 눕혀두고 본인들은 원래 자던 침대에서 자려고 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런데 결국 한 사람도 충동을 참아낸 사람이 없었다. 그 좁은 침대에서 한 사람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하긴, 그렇게 달라붙어 있었으니 떨어졌다면 그건 그거대로 신기하기도 했겠지만.

        

       …….

        

       덤으로, 자는 내내 의식 안에서 내 뒤를 따라오며 나를 열심히 끌어안고…… 이것저것 했던 사라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그만큼 화났다는 걸 느끼기라도 한 걸까?

        

       아니, 뭐, 그래.

        

       나도 이런 애들이 좋아한다면 기분 좋다. 미성년자라서 건드리지 않는다, 아직 사귀기에는 너무 어려 보이는 애들이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 떠나서, 길 가다가 고등학생한테 고백받은 회사원이 기고만장해지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러지 말라고 부탁했으면 좀 들어주면 안 되는 걸까?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나랑 신체접촉 금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세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팍 올라왔다.

        

       다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눈을 슬쩍 피했다.

        

       “…….”

        

       조금 불쌍하긴 했다.

        

       말했듯, 얘네들은 기본적으로 미소녀다. 그것도 미연시 안에서 각각 히로인을 맡을 정도의 미소녀. 하늘이야 히로인이라기보단 주인공이긴 했지만, 원래 이런 게임에서 여주인공은 웬만한 히로인들만큼 예쁘게 디자인되는 법이다. 원작은 그림판으로 그린 그림이긴 했지만.

        

       뭐, 작중에서 등장하는 온갖 남성과 여성들이 꼬이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미소녀라는 설정이겠지.

        

       하여간에, 그렇게 예쁜 애들이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면, 예전에 봤던 덩치 큰 초록 괴물 나오는 만화영화의 장화 신은 고양이가 생각난다. 죄책감 때문에 나쁜 말을 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소리다.

        

       “…….”

        

       아니다.

        

       그래도 이번엔 확실하게 말해야 했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도, 그리고 얘네들 미래에도 좋다. 적어도 ‘미성년자’라는 선을 제시해두면 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시간이 생기니까.

        

       “만약에, 내 말을 어기면…….”

        

       어기면?

        

       내 앞에 있는 하늘이, 소희, 수아가 눈빛으로 그렇게 물어보는 것 같았다. 조금은 겁먹은 것 같은 그 아련한 눈빛들을 보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 만약에 어기면?

        

       내가 이 애들한테 어떤 벌을 줄 수 있지?

        

       ‘앞으로는 싫어할 거야?’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 아직 연인으로서 사랑하는 감정까지 싹튼 것은 아니다. 만약 내 마음과 이 아이들의 마음을 그대로 꺼내 비교하면 무게나 질에서 차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아이들이 좋았다.

        

       그야 친구니까.

        

       내 상황이 어떤지, 나와 친해지면 무슨 일을 겪을지 알면서도 용기를 내 나에게 말을 걸어줬던 아이도 있고, ‘사라’라는 존재가 어떻든 그저 친해질 때까지 말을 걸어준 애도 있었고, 강렬한 첫만남을 가졌지만 투닥거리면서 조금씩 친해진 아이도 있다.

        

       그리고 그 우정의 무게는, 절대로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좋다. 나와 함께 있는 사라도 좋다.

        

       그렇기에 나는 이 애들을 싫어할 수 없었다.

        

       “…….”

        

       결국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한쪽 손을 뻗어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다음에는, 일주일 동안 이 방은 출입 금지야.”

        

       쿵!

        

       실제로 그런 소리가 들린 것은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이 아이들의 머리에 떨어진, 보이지 않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보였다. 상상만 해도 싫다는 듯, 하늘이가 몸서리쳤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하늘이는 집에 마지막으로 돌아갔던 게 언제였지?

        

       수아는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날도 많다고 하고, 소희는 아예 여기 직원이라는 개념인 데다가 아예 아버지께 허락까지 받았는데.

        

       여기서 계속 지내도 별문제가 없는 걸까?

        

       “그, 어…….”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하늘이를 지긋이 바라봤더니, 뭔가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하늘이는 잠깐 그렇게 할 말을 찾는 듯하다가, 갑자기 한쪽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나, 나는 찬성이야!”

        

       이번에는 하늘이 쪽으로 시선이 모일 차례였다. 계속 보고 있던 나, 그리고 옆에 차례대로 앉아있던 소희와 수아마저 입이 딱 벌어진 상태로 하늘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그런 말에 동의할 수 있어! 라는 표정이라고 할까.

        

       “…….”

        

       그래서, 나는 소희와 수아도 차례대로 쳐다보았다.

        

       “어, 아…….”

        

       “으으…….”

        

       두 사람도 조금 고민하는 소리를 내다가, 이내 하늘이처럼 한쪽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나도 찬성!”

        

       “차, 찬성!”

        

       음, 그래.

        

       말 잘 들어서 좋네.

        

       “만약 그런 상태에서도 잘못하면, 아예 내가 밖에 나가서 잘게. 어차피 이 집에는 방도 많으니까.”

        

       “어, 하지만!”

        

       나의 그 말에 결국 참지 못했는지 소희가 소리를 질렀다. 순간 터져 나온 소리가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소희는 그걸 보더니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항의했다.

        

       “그러면 한 사람이 잘못해도 나머지 두 명이 너를 보지 못하게 되잖아…….”

        

       “정확히 알아들었네. 그 이상 선을 넘으면 연대책임이야. 너희들 다 한동안은 나 못 볼 줄 알아.”

        

       그래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옆자리일거고, 점심도 같이 먹을 테지만, 일단은 이렇게 말했다.

        

       “…….”

        

       한동안 방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각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제대로 알아들은 거 맞겠지?

        

       “크흠.”

        

       그래도, 만약 너무 억누르기만 하면 또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 같아 나는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이기로 했다.

        

       “만약에 잘 지키면, 하루에 한 번씩……”

        

       키스, 는 조금 그렇다.

        

       무엇보다 내 입으로 ‘하루에 한 번씩 키스해주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으므로, 나는 그보다는 조금 다른 조건을 걸기로 했다.

        

       “……포옹해줄게. 세 명 한테 모두 한 번씩.”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합의를 보기로 했다.

        

       그래,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사실 얘네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따지자면 ‘건드려주지 않는다’라고 해석해야 한다.

        

       내 체력이 훨씬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애 중 한 사람도 이길 수 없다. 그게 설령 셋 중에선 완력이 가장 떨어질 것으로 보이는 수아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아이들이 나를 덮쳐왔을 때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상호 간의 합의를 보는 것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까 좀 무섭긴 하네.

        

       당장 이 셋이 달려들면 나는 그대로…… 이것저것 당하는 게 아닌가. 따지고 보면 수아를 제외한 둘은 나를 힘으로 제압하고 키스했다. 거기서 더 나간다고 해도 내가 뭐 어떻게 반항하지 못할 게 뻔하다.

        

       “…….”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셋을 바라보는데, 이번에도 하늘이가 제일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정도는 양보해줄 수 있어.”

        

       소희가 그다음으로 말하고,

        

       “그 말대로 할게.”

        

       수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합의했다.

        

       *

        

       “…….”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화영고등학교 학생 중에서, 예사라를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물론 대부분은 멋대로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자신이 한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상대가 반격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예전처럼 예사라를 다시 고립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예사라는 공공연하게 학교 내에 자신의 그룹을 만들었다. 그것도 이 학교 안에서 무시당하던 아이들만 모아서.

        

       만약 그 그룹의 리더가 ‘예사라’만 아니었다면, 모두가 그 그룹을 무시했을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 그룹의 리더는 예사라였다.

        

       심지어 당장 회장 자리가 불미스러운 일로 비어버린 예사라.

        

       평소라면 주가가 급격하게 내려가고도 남을 사건이었지만, 그 ‘예사라’가 자신의 이름으로 대량으로 주식을 사다 모으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주가에 큰 타격은 없었다.

        

       사실 예사라뿐만이 아니다. 예사라가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로는 유진그룹의 이사들이 모두 주식을 사 모으고 있었다. 거기에 따라서 유진그룹의 각 회사마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 모든 것이 고등학생 아이 한 명만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짜인 것처럼 예사라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혹시, 최나경 회장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도 사실은 예사라가 꾸민 일은 아닐까?

        

       소문은 돌고 돌며 살을 찌워나간다. 이미 학교 내에 돌고 있는 소문에서, 예사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자기 앞길을 깔고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오늘은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엔 무슨 일이 터지는 걸까, 하고 학생들은 긴장했다.

        

       *

        

       왜 이렇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걸까.

        

       설마, 고작 몇 시간 정도 하늘이나 소희, 수아가 내 옆에서 떨어져 있었다고 느끼는 걸까?

        

       …….

        

       에이, 아니겠지.

        

       이제는 여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날씨인데도 왠지 엄청 허전한 옆구리를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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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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