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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그저 멍하니.

         소파에 늘어진 채로 명상이라는 이름-변명-의 시간 죽이기를 못해도 30분은 이어갔다.

         

         눈앞에 TV에는 24시간 뉴스 채널이 틀어져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당연하게도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었고.

         

         대신에 속에서 휘몰아치는 자기반성, 자책, 아쉬움 등을 요리조리 버무려 입밖으로 토해내는데 집중.

         나름대로 바쁘면서도 한가로운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물론 이걸 생산적인 활동이라 주장할 만큼 내가 양심을 잃어버린 건 아니다.

         

         “으에엑….”

         

         – 이만 기운 차리시지요. 지속성에 애로사항이 많은 수익 모델이라는 건 최초부터 파악하고 들어가셨던 것 아닙니까? 이제 와서 그렇게까지 충격 받으실 이유는 없다고 사료됩니다. –

         

         제대로 된 단어나 문장과는 거리가 먼 신음이 새어 나가자마자, 그제부터 가구와 일체화한 나를 여러모로 걱정된다는 듯이 힐끔거리던 제로가 잔걱정을 표출했다.

         

         그야 은근히 재미 붙이던 일이 좀 허망하게 강제 청산 당했다고 동거인이 하늘이 무너진 것 마냥 청승맞게 뻗어 있으면 기운을 불어넣으려 하든지, 아니면 채찍질을 해서라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황금알을 마구 낳아주던 거위가 갑자기 죽어버렸는데!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으니 납득하라던가, 그까짓 거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대충 넘기라던가 하는 격려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뭐, 이 경우에는 내가 직접 칼을 들고 도축을 한 것도 아닐뿐더러 거위가 수상함을 눈치채고 혼자 자폭 프로토콜을 가동한 것에 가까웠지만. 크흠, 아무튼.

         

         이게 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간략하게나마 설명하자면.

         

         저번 아론의 배려 아닌 배려 덕분에 기력은 기력대로 무진장 낭비하고, 딱히 원하지 않던 눈도장까지 라구스에게 절절하게 찍은 파란만장한 경험을 그저 한여름의 추억으로 묻어두고 가기엔 아까웠다는 소리였다.

         

         정확히는 랑데부 카지노가 무자비한 폐업 절차를 밟게 되며 내가 정정당당하기 그지없는 실력으로 딴 칩들이 모조리 허공으로 증발한 데다가.

         

         차마 잔액을 확인하기 무서운 직불 카드를 얌전히 반납하는 과정을 거치며 급격하게 지갑이 쪼그라드는 기분을 느낀지라…… 아무래도 그 날 얻은 교훈과 인자(Factor)들을 적극 활용.

         생계형 포커 플레이어 아나스타샤 발렌타인의 화려한 데뷔를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반은 농담이라 해도 나머지 반은 꽤 진담이었다.

         

         안 그래도 더럽게 부담되는 메가코프 두 곳과 연달아 엮인 만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뒤가 구린 의뢰를 계속 수주하거나 함부로 위험 인물과 접촉할 가능성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전처럼 양지에 새 직업 비슷한 걸 만들어서 돈을 버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그 날 얻었다 잃어버린 칩 가치를 고려하면 박봉 공무원 생활과는 비교도 안 될 액수를 당길 수 있으니까, 생각보다 쉽게 불규칙한 용병 수입을 대체할 수 있어 보여서.

         

         “……이익! 그 치사한 놈들…!”

         

         그렇지만 꼼수를 쓰는 게 전혀 아니니 태연하게 따고 나오는 걸 반복하면 된다는 아이디어는 지나치게 단순했던 모양이다.

         그런 사업장 굴리는 사람들이 돈 문제 앞에서 얼마나 얼굴에 철판을 깔 수 있는지를 얕봤다고 할 수도 있겠고.

         

         우선 첫번째로, 상업 카지노들간의 유기적인 정보 공유 네트워크와 업계 사람들의 입소문을 너무 무시했다.

         

         이기기만 하는 게 아닌데도 단지 승률이 높고 판돈을 크게 크게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관심이 어마어마했다. 구체적으론 세 번째 카지노 방문부터는 아예 입구에서 따로 안내를 받아서 고액 테이블에 바로 입장하기까지 했으니까.

         

         아, 거기까지는 크게 문제가 된 게 없었다. 오히려 약간 네임드 플레이어 대접을 받으며 수혜를 입은 거에 가까웠지.

         

         그러나 가장 치명적인 두번째 쟁점은 금방 그 정체를 드러냈으니.

         그건 바로 일곱 번째 나들이쯤 되자, 아무도 나와 같은 커뮤니티 테이블에서 카드를 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 되시겠다.

         

         아니, 진짜로. 과장없이 무슨 세기말 패왕을 마주친 것 마냥 내가 앉으면 다들 동시에 질겁하면서 우르르 일어나는 걸로도 모자라.

         거 멀쩡한 사람을 두고 흑사병(the Black Death)이라 뒤에서 쑥덕거리는 건 너무 싸가지가 없는 거 아니냐고요.

         

         도박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으로 따고 잃는 거라고 난 배웠는데!

         

         하여간 다른 사람들이 더는 제대로 상대해주지 않았기에 이쪽도 그에 맞춰 주종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대인전이 아니라, 운영 측과 승부를 갈라 카지노의 돈을 따는 일반 포커, 바카라. …그리고 가끔 기분 전환 겸한 슬롯 머신으로.

         

         사실 그때까지도 약간의 쪽팔림과, 수도 없이 많은 보안 검사와 실시간 모니터링 등 온갖 의심을 감수할 가치는 있었다. 왜? 수수료에 세금도 다 정산하고도 벌이가 썩…이 아니라 존나 괜찮았으니까!

         

         크흠! 공공연하게 밝히기는 좀 뭐한데, 간신히 천만 크레딧 정도 남아있던 생활비 계좌에 0이 하나 더 붙고 앞자리 숫자가 많이 달라졌다고만 해 두겠다.

         

         이제 그 짧고도 달콤한 ‘좋은 시절’은 각 사업장들이 누적되는 손해를 좌시하지 못하고 나에게 입점 거부를 먹이면서 단번에 끝나버렸으니.

         

         막 강압적으로 쫓아내고, 따로 협박당한 건 전혀 없었지만 정말 정중하게 돌려 보내졌다고 해야 맞나?

         몇 번이고 역학 조사를 해도 부정 행위가 있었음을 밝혀내지 못했으면서 기어이 날 대상으로는 영업을 계속할 수가 없다며 무작정 배를 째고 드러누운 셈이다.

         

         그래서 처음에 놈들이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빈정거린 거다.

         

         어? 나도 한 명의 손님이고! 지정된 수수료도 성실하게 납부하기로 유명한 VIP인데, 그렇게 마구잡이로 매니저가 무릎 꿇으면서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면 다야!?

         

         비겁하게 나를 무슨 강도 취급하기는….

         대형 카지노를 갈 수 있었다면 상관없었을 텐데, 그런 곳은 전부 파라다이스 산하 사업체라 우리 지부장님께서 또 귀신같이 마중 나오다 보니 난 결국 도박사의 꿈을 놔주어야만 했다.

         

         – 정 수입원이 끊긴 게 아쉬우셨다면. 그 도박 전문 탐방 기자(Reporter)의 요청대로 인터뷰를 하시거나 간단한 비법 자서전이라도 내실 수 있지 않았습니까? –

         

         “……아니, 그런 부끄러운 짓은 안 한다고!!”

         

         난 어디까지나 편하게 크레딧 버는 게 좋았던 거지, 이 동네 가십거리로 소모되거나 황색 일간지에 영구 박제되길 원한 게 아니라니까?

         

         얘는 지 소원대로 별의별 해괴한 부품들까지 잔뜩 사줬더만 나를 가지고 사업 모델 비스무리한 걸 구상하려 들어서 곤란하다.

         차분히 몸을 낮추고 숨는 것보다 반대로 완전 유명 인사가 되는 게 일신의 안전을 지키는데 더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은 알겠는데, 난 이제 원작 개시 전까지는 그냥 얌전히 지내고 싶은 걸.

         

         “하아아….”

         

         일단 아쉬움을 가슴 한 켠에 정리.

         널브러져 있던 팔다리를 바로 하고 소파에 정자세로 앉았다.

         

         날로 먹는 게 막힌 건 막힌 거고, 바닥을 쳤던 경제적 여건에 또 적당히 여유가 생겼으니까 미래를 대비해야지.

         

         …….오, 그래. 벌써부터 차원 균열 간섭기의 제작 재료를 구매하는 건 너무 많은 자금이 막연하게 특별한 이자도 없이 묶이니까, 가령 예전엔 거점도 돈도 없어서 포기했던 강화외골격 장갑의 견적서를 슬금슬금 산출해본다든가.

         

         아니면 집에 빈공간이 많으니 이 참에 쓸만한 부대 시설 카탈로그를 쭉 훑는 것도 꽤나 흥분되는…!

         

         

         쾅——!!

         

         

         “으꺅!?”

         

         쭉쭉 뻗어 나가던 상상의 나래에 급박한 제동을 걸은 건 난데없는 파열음과 진동.

         

         내충격 및 내진 설계가 된 특대형 플라자 건물 전체가 이렇게 흔들리려면 발 밑에서 지진이 발생했거나 전쟁이라도 터졌어야 말이 되기에, 다급하게 창밖을 확인했지만… 외부 풍경은 늘 그렇듯 스모그로 뿌옇고 삭막했다.

         

         충천하는 화광火光이나 어수선한 사고 현장도 딱히 보이지 않았고.

         …뭐지? 뭐였는데 대체.

         

         – ……근원지가 굉장히 가깝습니다. 오차 범위를 고려하면 저희 층 복도, 혹은 인접한 옆 객실에서 무거운 물체가 떨어졌다고 여겨집니다만. 잠시, 제가 빠르게 확인해보겠습니다. –

         

         “어, 응? 그래 그럼.”

         

         다소 요란해서 놀라긴 했어도.

         만약 방금 그게 여기 살기 시작한 이래 최초로 발생한 층간 소음이라면 일부러 항의할 것도, 시시콜콜하게 따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 ‘확인’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나도 동의했다.

         

         지금 쪼잔하게 집값 걱정을 하려는 건 아니고. 더는 떠돌이 신세가 아닌 만큼 거주지 주변 환경에 대해 알아 놓는 게 나쁜 일이 될 리는 없으니까.

         

         그리고 성질 나쁜 이웃이라도 먼저 까칠하게 나가서 척을 지는 건 바보짓…… 어라?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건너편 방에 사는 사람이 이사 나가지 않았나?

         

         맞다. 잘 생각해보니 내가 한창 -건전한 의미로- 노름판을 전전하느라 나돌 때, 짐을 빼는 광경을 얼핏 봤었다.

         

         따라서 조금 전의 그 소음도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무거운 이삿짐을 옮기다가 떨어트린 실수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지.

         

         아마 현관문을 살짝 열기만 해도 새로운 이웃의 정체가 곧바로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다면… 기왕 마주하는 거, 나도 아예 따라가서 인사나 나눠야겠다 마음먹고 제로를 쳐다봤건만.

         

         씁, 기세등등한 걸 넘어 흉악한 의도가 흘러 넘치는 모양새로 칼을 뽑아 들고 총구를 모조리 개방한 상태로 복도로 향하는 웬 바보가….

         

         “야 뭐해!? 미쳤어!”

         

         – …둔탁한 소음 외에도 문밖에서 둘 이상의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불순한 의도로 저희를 끌어내려는 수작질일 수 있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움직이는 게 기본입니다. –

         

         “겉으로만 보면 진짜 이 건물 안에서 네가 제일 불순하니까! 아닐 경우를 생각해서 제발 조금만 대인 친화적으로 접근하면 안 되냐?!”

         

         – 당연히, 안 됩니다. –

         

         “왜 그건 즉답이냐고!”

         

         진짜 실없는 만담이 따로 없다.

         달라붙어서 강제로 말려보려 해도 행여나 내가 넘어지거나 다칠라, 보폭과 관절 기동만 미세하게 조절할 뿐 제로는 최악의 첫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는데 일절 망설이지 않았다.

         

         그럼 어떡해.

         딸랑 얘만 정찰하라고 보냈다가 싸움판이 벌어지느니 ‘안전을 병적으로 따지는 주인’처럼 보일 내가 옆에서 간을 보다 중재라도 해야지 별 수 있나.

         

         달칵…!

         

         뭐, 대단한 결심을 한 척 말했어도 결국엔 문틈으로 얼굴이나 빼꼼 내밀고 눈치 보겠다는 소리와 동일하다.

         이 집안의 경제 총수권자가 나라면 실질적인 무력 담당은 꾸준히 제로였으니까 판단 자체는 존중해줘야 하는 법이기도 하고.

         

         “…….”

         “……엥?”

         

         그치만 어딘가 낯익은 디자인의 로봇, 후드를 깊게 눌러쓴 거동 수상자, 아직도 갈라진 파편이 후두둑 흘러내리는 벽면이 제일 처음 들어온 살풍경이라면 과연 어떤 반응을 하는 게 맞을까요.

         

         적어도 내 상식 사전에는 등재된 항목이 없는데… 이걸 어쩌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래서 누구세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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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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