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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전쟁은 민초의 피로 귀족의 자산을 불리는 행위다.

     나는 전쟁을 겪어본 자로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전쟁만큼은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을 유도하려고 했다.

     애초에 내가 제국 황제를 암살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 최소한의 피만 흘리도록 상황을 만들어 합스베르크 황제만 딱 죽게끔 하려고 한 것이 목적이었다.

     전쟁을 일으켜봐야 결국 죽어나가는 건 백성뿐.

     

     귀족들은 사령관과 간부라는 명목으로 후방에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몸을 사리고 제 안전을 도모하며 다른 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들만이 전쟁 이후에 살아남기 마련.

     그래서 나는 전쟁이 싫다.

     지속된 전쟁의 결과, 영웅은 죽고 그 영웅에게 ‘해줘’를 외치는 이들만 살아남은 것이 현 노스트럼의 실정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게 꼭 영지전이나 국가전과 같이 철혈이 난무하는 투쟁만 말하는 게 아니다.

     오염대지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마족들을 상대하는 것도 전쟁이고, 인류의 10% 가까이가 걸린 병을 상대하는 것도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제 한 몸 불살라 이타적인 희생을 한 이들을 영웅으로 칭송하지만, 전쟁특수를 통해 제 한 몸 살집을 불리는 이들은 그들을 향해 칭찬을 퍼부으며 제 잇속을 챙기는 부패한 매국노들이다.

     그런 매국노들의 대표가 바로 제로스 후작, 발자크 자작과 그 주변에 모여드는 이들.

     미래에는 나였다.

     회귀 전의 내가 바로 전쟁특수, 노스트럼 왕국 멸망전쟁의 혜택을 전부 누린 존재였다.

     그래서 전쟁이 싫다.

     피를 흘리는 것도 있지만, 전쟁으로 인해 미래의 내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왕국에서 지난 수백 년 동안 법적인 판결 대신 결투가 횡행했던 것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 전쟁이라는 게 노스트럼에서는 제법 흔한 일이라고 금방 유추할 수 있으리라.

     인간과 인간의 대결로 끝나는 결투도 있으나, 대부분 대리로 기사를 내세워 싸우지만, 간혹 그 감정의 골이 깊어서 상대를 ‘역사에서 지워버리겠다’라는 상태까지 이르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영지전이 발생한다.

     영지와 영지 사이의 분쟁을 중앙에서 해결해야 하지만, 중앙조차도 ‘너희끼리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해라’라고 두 손을 들어버린 게 영지전이다.

     그 영지전을 위해, 나는 렘버리 캠프가 끝난 지금도 지브롤터 백작령에 머무르고 있다.

     “로버트 경.”

     “예, 도련님.”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로버트 경과 이렇게 백작령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지난 18년 동안 영지전이 총 몇 회 있었는지 알고 있나?”

     “15번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조금 숫자 좀 과장 보태면, 사실상 1년마다 한 번씩 영지전이 일어났지. 그게 남작가와 자작가 사이의 소규모 국지전이든, 아니면 후작가가 다른 백작가를 상대로 펼친 것이든.”

     영지전은 지금까지 자주 있어왔다.

     내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서 그랬지, 노스트럼 왕국 귀족들은 여차하면 결투와 영지전으로 분쟁을 해결하고는 했다.

     “그거 알고 있나? 영지전 중에서도 기사단의 격돌로 승패를 겨루는 경우가 있는데, 살상은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경우.”

     “그건 그냥 결투가 아닙니까.”

     “경의 말대로 생사를 걸고는 있지만 결투가 아니지. 귀족 사이의 분쟁으로 기사들도 그 분쟁에 참가하기는 하지만, 자유계약 기사들이 많은 경우에는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료가 될 수도 있으니까.”

     기사들을 고용한 귀족 입장에서는 서로 죽일듯이 싸우면서도 치명상을 입히지 않는 모습에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것이다.

     그런 게 지금까지 있어왔던 대부분의 영지전.

     나름 건전(?)하고 건강한 의미에서, 무력으로 승패를 가르는 결투에 가까운 전투.

     는, 이번에는 없다.

     “이번처럼 상대 가문을 멸망시키겠다는 각오로 일으키는 영지전은 드물지. 18년만에 처음 있었던 일인가.”

     “예.”

     이번 영지전은 그야말로 멸망전이며, 끝장전.

     상대 가문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그 핏줄에 해당하는 이들을 실제로 죽이거나 그 성씨를 스스로 버리게 만드는 수준까지 칼을 휘두르며 싸울 예정이다.

     누가?

     지브롤터가.

     “지금까지, 지브롤터는 단 한 번도 영지전에 휘말린 적이 없었어.”

     “누가 영지전을 걸까요. 왕국의 수호자에게.”

     로버트 경의 말대로, 지금까지 지브롤터는 단 한 번도 영지전을 치르지 않았다.

     “애초에 영지전 걸 일이 있기는 해도, 진짜로 거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영지전 같은 애들 소꿉장난을 치를 이유가 없었다.

     

     “지브롤터는 최전방인데.”

     당장 지브롤터는 18년 동안 수 차례, 제국이 일으키는 국지도발에 대응하며 진짜 전쟁을 몇 번이고 반복해왔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최전방이 아니죠. 도련님 덕분에.”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뒤에 든든한 아군이 있는 셈이니.”

     “예. 제국.”

     이제는 제국과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

     “어쩌면 황제가 도련님을 위해 제국군을 보내줄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국제전이 되는데?”

     “황제잖습니까. 도련님이 ‘병사 좀 보내주시겠습니까’라고 말하면…혹시 모르죠? 당사자가 가면 쓰고 찾아와서 ‘미스터 테르시안’이라면서 도우러 올지도.”

     “일단 크베르스 자작이 나타나기는 하겠군. 수상할 정도로 푸른색 머리카락에 가면을 쓴 소드 마스터 하나가.”

     오히려 지금와서 제국과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황제에게 우리의 ‘괴리’-타협할 수 없는 지점을 밝혔을 때나 가능한 일이겠지.

     ‘차라리 회귀자라는 걸 밝혀도, 그 문제에 관한 내 생각을 밝힐 수는 없지.’

     내가 그걸 밝히지 않는 한, 황제는 나를 죽이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전쟁을 일으켜 지브롤터를 짓밟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미래에 관한 문제.

     후계자 문제.

     다음 대 황제가 아닌, 그 다음 미래의 문제.

     나의, 아스타시아의 자녀 문제.

     적어도 그에 관한 의견차이가 ‘그레이 지브롤터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라는 걸 황제가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제국과의 전쟁은 무조건 발발한다.

     “황제는 적이 아니야. 내가 그렇게 할 거니까.”

     그렇다면 그걸 비밀로 하면, 황제는 우리를 향해 칼을 겨누지 않는다.

     “황제는, 적이 아니지.” 

     설령 제국의 그림자들이 무수히 많이 우리를 향해 앞뒤로 몰래 칼을 겨눈다고 하더라도.

     “황제는 아니지만, 그 아래에 있는 사생아들은 생각이 좀 다를 거다. 로버트 경. 상대할 수 있겠나?”

     “황제의 사생아라고 해도, 그거 죽이면 황제에게 찍히고 뭐 그럽니까?”

     “아니. 오히려 반길 걸.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쓰레기들이 알아서 제거되었다고.”

     “그러면 그 사생아들 죽였다가 햇볕에 잘 널어두면 백은이 나오는 겁니까?”

     “…아마도? 경우에 따라서는?”

     품에 가지고 있는 백은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땅에 널브러진 시체가 햇빛을 받는 순간 타들어가며 재가 되어 뼛가루만 남을 수도 있다.

     “영지전의 상대는 바르셀 후작가.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기사들은 단순한 황금여명의 기사들이 아니야.”

     “도련님이 황금여명 전체의 1/4 가까이를 제거하고, 심지어 제로스 바르셀 단장까지 죽였는데도요?”

     “전력은 줄었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전력이 모이게 될 거야. 제로스 단장이 죽은 이상, 그 전력을 채우기 위해 바르셀 후작가에서는 모든 재산을 털어서 전력을 모으려고 할 거거든.”

     제로스 단장은 죽었다.

     “어처구니없지. 가짜를 내세우느라 예산 좀 썼을텐데.”

     “가짜….”

     “여론전이지. 시체팔이라는 게 별 거 있겠나. 시체…아니, 소위 ‘영웅팔이’하는 건 노스트럼 왕가의 주특기거든.”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죽지는 않았다.

     “나는 분명 황금여명 기사단 마흔 명 가량을 제로스 후작과 함께 죽여버렸는데, 그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후작가에서는 장례식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지.”

     죽었다는 일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유령이 채우고 있어. 어떻게 생각하나, 경.”

     “…둘 중 하나겠지요. 흑마법으로 시체를 진짜로 부활시켰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자들이 황금여명인 척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그래. 그 덕분에, 지금 지브롤터는 갑작스럽게 황금여명을 상대로 영지전을 펼치게 되어버렸지.”

     여론전에서, 저들은 말도 안 되는 짓으로 우위를 점하고 들어왔다.

     “지브롤터 가문이 ‘의혹’만으로 영지전을 걸었다고 지금 만천하에 주장하고 다니는 거야. 제국편이 된 매국노들이 왕국 제1 기사단을 상대로 무력을 과시하겠다는 명목으로.”

     이런 짓을 할 자.

     “썩어도 노스트럼, 왕가의 핏줄이라는 건가.”

     한 명 뿐이다.

     “로버트 경. 무섭지 않나?”

     “무섭다고요?”

     “그래. 무섭지. 지금의 움직임이 그 자의 머리에서 나온 거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무능한 행동이 다 의도된 연기였다는 건데.”

     “연기가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더 무섭다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필요한 순간에 움직이는 자.

     아무것도 하지는 않은 게 아닌,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무능하다고 생각되는 사치와 향락만 즐기다 지금 이 순간에 본격적으로 제 능력을 발휘하는 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낯설어서.”

     “…아마, 본인이 아닐 겁니다.”

     “본인이 아니다?”

     “예.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원래 하던대로 하던 인간이고, 그 옆에 ‘머리’가 붙은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아아, 그렇지. 그게 상식이고, 그게 정상이지.”

     무능한 자는 계속 무능할 뿐. 

     그 무능을 ‘연기’처럼 보이게 만드는 그림자가 하는 짓을 당사자의 행동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발자크 자작을 비롯한 부패한 자들이 모두 바르셀 후작령에 집결했겠어.”

     현재.

     “안 그러면 이렇게 ‘연대’로 우리 지브롤터를 규탄할 리가 없으니.”

     지브롤터의 무리한 영지전 선언에 대하여, 많은 귀족 가문들이 하나로 힘을 합하여 지브롤터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심지어.

     진짜로 병사들을 데리고 영지를 벗어나 ‘노스트럼’을 향해 진격할 경우, 모든 귀족들이 대의를 위해 칼을 들겠다며 벼르고 있다.

     “왕이 머무르고 있는 영지에 영지전을 건다? 확실히, 위험하기는 해.”

     현재.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노스트럼의 국왕이 바르셀 후작가에 머무르고 있다.

     “왕실 기사단이 총동원된 것으로도 모자라, 정체불명의 그림자들까지 시체의 자리를 대신 채우며 합류했지. 제일 귀찮은 자들이야.”

     “황제에게 말씀하시죠?”

     “이런 걸 가지고 황제에게 해달라고 하면 내가 노스트럼의 여러 귀족과 다를 바 없는 자가 되어버리지 않나. 적어도 이런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지. 아버지를 도와서.”

     “으음….”

     “그리고.”

     나는 창 밖, 훈련장에서 기사들을 직접 상대하는 아버지를 가리켰다.

     “다른 이들의 도움 받을 필요 없이, 지브롤터 혼자서도 영지전 정도는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지.”

     “그야….”

     “아버지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지브롤터 ‘전체’의 힘으로.”

     * * *

     그 시각, 바르셀 후작령 경계.

     “멈춰라!”

     말을 타고 달려온 로브의 누군가를 향해, 후작령 경계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들이 창을 겨누며 길을 막았다.

     “지브롤터 방향에서 오는 이들은 출입을 금지한다! 만일 들어오고자 한다면, 출입증을 제시하라!”

     “출입증?”

     “…여자?”

     사락.

     로브의 여인이 후드를 벗었다.

     “출입증이라.”

     민트색으로 반짝이는 장발을 흩날리며, 여인은 그대로 말의 허리를 발로 찼다.

     “그런 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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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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