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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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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일부러 멸망해가는 세계의 신(다크 판타지의 신)이 제 세계를 기웃거릴 때, 그의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한 척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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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밀하게 다크 판타지의 신이 리안에게 이끌리도록 미끼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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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으로 신의 자리에 앉은 건 아닌지 다크 판타지 신은 리안이 범상치 않은 영혼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
    ​
    ​
    개그 신이 리안에게 피를 잔뜩 먹여놓은 탓에 정확히 어떤 영혼인지는 완벽히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그는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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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해진 수순처럼 다크 판타지 신은 제 세계로 리안을 빼돌렸다. 뒤이어 리안을 따라 제 세계로 돌아가려는 순간, 개그 신이 도망치려는 다크 판타지 신을 덥석 붙잡아 격을 빼앗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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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신의 격이 아득하게 벌어져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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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판타지 신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고, 개그 신은 다크 판타지 신이 가지고 있는 권능 일부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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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하여 리안은 그녀가 직접 빚은 육체에서 개그 권능을 둘둘 두른 채 영웅의 핏줄이 모여드는 사건의 중심지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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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의 곁에 두면 수월하게 포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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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아쉬움에 속으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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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에게 다크 판타지 세계는 일종의 뷔페였다. ‘신이 되기 위해 격을 높여야 하는 리안을 위한 뷔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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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한 땀 한 땀 빚은 육체와 아득한 격을 가진 권능은 게임으로 치자면 고인 물들의 종결 무기 세트나 다름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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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 비해 리안이 잠시 머무르게 된 ‘다크 판타지 세계’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중급자 사냥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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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모여든 같잖은 격을 가진 외신들이 리안의 몸을 얻고자 벌레처럼 모여들어도 제대로 된 상처 하나 내지 못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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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찬이 준비되었더라도 숟가락조차 들어본 적 없는 아기에겐 벅찰 뿐이었다. 하여, 그녀는 리안에게 ‘식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그의 영혼과 가장 가까운 곳에 ‘폭식’의 권능을 붙여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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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을 집어삼키고자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온 외신들이 하나, 둘 권능에 잡아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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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응’이란 권능을 가진 리안은 본능적으로 폭식의 권능을 깨우쳐 외신에게 삼켜지고 있던 아이리스를 구할 때 처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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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의 몸에 남은 제 권능을 통해, 그가 처음으로 ‘식사’를 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펄쩍 뛸 듯이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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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그랬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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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외신(마신)을 맛있게 소화할 수 있도록 잘게 썰어줄 때만 해도 앞으로 탄생할 제 ‘동족’에 한껏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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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이상 신 미만의 격을 가진 리안이 완벽하게 신의 자리에 앉는 모습을 상상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이미 일은 터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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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차원을 넘느라 다른 곳에 신경이 팔린 사이 다크 판타지의 신이 쥐새끼처럼 제 세계로 돌아가 다 죽어가는 마신을 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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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판타지 신은 그녀의 곁에서 머무르면서 그녀가 제 세계를 그저 먹이통쯤으로 여긴다는 걸 마신에게 알렸고,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리안을 삼켜 더 높은 격에 도달하자 마신을 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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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외신은 힘을 합쳐 단숨에 리안의 정신 깊숙한 곳을 찔렀고, 리안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전생’을 떠올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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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고 말했던 ‘적응’의 권능이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주변 영역을 집어삼켜 세상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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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사람이 보았던 흑백의 어그러진 세계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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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는 전부 그녀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냐? 라고 묻는다면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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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안일한 대처가 잘못되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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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권능을 둘둘 말아서 보낸 게 도리어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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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가진 권능은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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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멜레온이 주변 색에 동화되는 것처럼 그 어떤 상황에도 녹아들 수 있는 권능이었다. 문제는 이 권능이 발동하면 마치 세상에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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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서 친구와 즐겁게 생활하는 교실, 운동장 뒤로 깨끗하게 자리한 파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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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응’의 권능은 리안을 그러한 ‘배경’으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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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사람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리안 또한 타인과 어떠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해도, 혹은 이질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해도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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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훌륭한 ‘신’의 모습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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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 또한 그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는 너무나 ‘신’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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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이질감을 부숴버린 건 우습게도 그녀의 ‘개그 권능’ 때문이었다. 다크 판타지와 대척점에 섰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개그 권능’으로 인해 리안은 세계에 녹아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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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배경으로 지낼 수 없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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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제로 무대 위로 끌려 나온 그는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인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은 그러한 차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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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인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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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과의 차이와 사랑을 인지한 상태에서 개그 권능이 절반만 벗겨져 버리니 리안은 혼란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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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응’의 권능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절반 남은 개그 권능이 억누르는 바람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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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개의 권능이 리안을 빗겨나가자 남은 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나란히 걷기를 원하는 한 명의 인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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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본능적으로 신이 빚은 몸으로 돌아가 개그 권능이 완전해지면,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이 덧없이 흩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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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기에 예정된 평화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능적인 선택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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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뒷사정을 알지 못해 여전히 혼란 속에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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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은 곧 정신 방벽을 무너뜨렸고 전생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정신 상태가 연약한 상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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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와중 정신을 믹서기에 갈아버릴 듯 치고 들어온 두 신의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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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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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이들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그녀에게만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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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쩌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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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서 떨어져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허공을 향했다. 세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인지 그녀들의 숨통을 조이던 압박감이 조금이나마 약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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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오빠!”
    “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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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덕분에 세 사람은 당장이라도 꺠져버릴 것처럼 몸에 무수히 많은 금이 간 리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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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거리는 소리가 재차 울려 퍼지고, 그녀는 어느새 리안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허공에 축 늘어져 있는 리안을 끌어안자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리안이 그녀의 몸에 무겁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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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기 몸이나 챙길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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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재앙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던 세 사람과 달리, 리안에게선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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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장난스럽게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부서져 내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제 남은 힘을 끌어모아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는 모습이 우습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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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는 리안을 품에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제 무릎 위에 리안의 머리를 올려놓은 후 부드러운 손길로 잔뜩 금이 간 볼을 쓸어주었다. 
    ​
    ​
    그녀의 손길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조각상처럼 잔뜩 금이 갔던 몸이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
    ​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쓰다듬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그녀는 리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
    ‘어쩔 수 없네.’
    ​
    ​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 후보였던 리안을 인간으로 끌어내린 세 명을 소멸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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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리안이 소멸을 각오하면서까지 세 사람을 지키는 모습을 보자 그녀들의 목숨을 거둬가고 싶다는 충동이 식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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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들에겐 리안의 고통이 가장 두렵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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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분노까지 식어버리는 건 아니었기에 그녀는 세 사람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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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벌은 인간들의 벌과 달리 자비이자 재앙이며 구원이었다. 세 사람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냐에 따라 신의 자비가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
    ​
    세 사람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전보다 덜 무거워진 발을 질질 끌며 리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
    “허억,헉…리..안..!”
   “제발…흑…”
    “크르릉…!”
    ​
    ​
    숨이 끊어질 듯 뱉어진 숨결들이 하얀 공간에 의미 없이 퍼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
    ​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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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가볍게 손을 튕겼다. 동시에 세 사람은 하얀 공간에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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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윽… 여긴..?”
    ​
    ​
    노아는 속이 뒤집히는 듯한 감각에 배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허…?”
    ​
    ​
    그녀의 시야는 어째서인지 훅 낮아져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평평한 상체와 무릎을 덮을 정도로 커다란 회색 셔츠가 보였다. 꼬질꼬질한 것으로 봐선 원래의 색을 유추할 수 없었다.
    ​
    ​
    “이게 무슨…”
    ​
    ​
    그녀는 두 손을 내밀어 꼬질꼬질하게 더러운 어린아이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
    ​
    어째서인지 그녀는 어린아이가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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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일부러 멸망해가는 세계의 신(다크 판타지의 신)이 제 세계를 기웃거릴 때, 그의 침입을 알아차리지 못한 척 무시했다.

은밀하게 다크 판타지의 신이 리안에게 이끌리도록 미끼를 뿌렸다.

폼으로 신의 자리에 앉은 건 아닌지 다크 판타지 신은 리안이 범상치 않은 영혼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

개그 신이 리안에게 피를 잔뜩 먹여놓은 탓에 정확히 어떤 영혼인지는 완벽히 판별할 수는 없었지만, 당시 그는 더운밥 찬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정해진 수순처럼 다크 판타지 신은 제 세계로 리안을 빼돌렸다. 뒤이어 리안을 따라 제 세계로 돌아가려는 순간, 개그 신이 도망치려는 다크 판타지 신을 덥석 붙잡아 격을 빼앗아 버렸다.

두 신의 격이 아득하게 벌어져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다크 판타지 신은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고, 개그 신은 다크 판타지 신이 가지고 있는 권능 일부를 빌려왔다.

그리하여 리안은 그녀가 직접 빚은 육체에서 개그 권능을 둘둘 두른 채 영웅의 핏줄이 모여드는 사건의 중심지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영웅의 곁에 두면 수월하게 포식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그녀는 아쉬움에 속으로 혀를 찼다.

그녀에게 다크 판타지 세계는 일종의 뷔페였다. ‘신이 되기 위해 격을 높여야 하는 리안을 위한 뷔페.’

그녀가 한 땀 한 땀 빚은 육체와 아득한 격을 가진 권능은 게임으로 치자면 고인 물들의 종결 무기 세트나 다름없었다.

그에 비해 리안이 잠시 머무르게 된 ‘다크 판타지 세계’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중급자 사냥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장소였다.

세계를 집어삼키기 위해 모여든 같잖은 격을 가진 외신들이 리안의 몸을 얻고자 벌레처럼 모여들어도 제대로 된 상처 하나 내지 못할 터였다.

만찬이 준비되었더라도 숟가락조차 들어본 적 없는 아기에겐 벅찰 뿐이었다. 하여, 그녀는 리안에게 ‘식사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그의 영혼과 가장 가까운 곳에 ‘폭식’의 권능을 붙여두었다.

리안을 집어삼키고자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온 외신들이 하나, 둘 권능에 잡아먹혔다.

‘적응’이란 권능을 가진 리안은 본능적으로 폭식의 권능을 깨우쳐 외신에게 삼켜지고 있던 아이리스를 구할 때 처음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리안의 몸에 남은 제 권능을 통해, 그가 처음으로 ‘식사’를 했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펄쩍 뛸 듯이 기뻐했다.

‘분명 그랬는데 -…’

리안이 소화하기 힘들어 보이는 외신(마신)을 맛있게 소화할 수 있도록 잘게 썰어줄 때만 해도 앞으로 탄생할 제 ‘동족’에 한껏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인간 이상 신 미만의 격을 가진 리안이 완벽하게 신의 자리에 앉는 모습을 상상하며 뒤를 돌아본 순간 이미 일은 터진 뒤였다.

그녀가 차원을 넘느라 다른 곳에 신경이 팔린 사이 다크 판타지의 신이 쥐새끼처럼 제 세계로 돌아가 다 죽어가는 마신을 살려버렸다.

다크 판타지 신은 그녀의 곁에서 머무르면서 그녀가 제 세계를 그저 먹이통쯤으로 여긴다는 걸 마신에게 알렸고, 그녀가 애지중지하는 리안을 삼켜 더 높은 격에 도달하자 마신을 꾀었다.

두 외신은 힘을 합쳐 단숨에 리안의 정신 깊숙한 곳을 찔렀고, 리안은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전생’을 떠올리고 말았다.

그녀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고 말했던 ‘적응’의 권능이 제 주인을 지키기 위해 주변 영역을 집어삼켜 세상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세 사람이 보았던 흑백의 어그러진 세계가 그렇게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사태는 전부 그녀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이냐? 라고 묻는다면 애매했다.

그녀의 안일한 대처가 잘못되긴 했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내 권능을 둘둘 말아서 보낸 게 도리어 발목을 잡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리안이 가진 권능은 ‘적응’.

카멜레온이 주변 색에 동화되는 것처럼 그 어떤 상황에도 녹아들 수 있는 권능이었다. 문제는 이 권능이 발동하면 마치 세상에 마땅히 존재해야 하는 무언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와 즐겁게 생활하는 교실, 운동장 뒤로 깨끗하게 자리한 파란 하늘.

‘적응’의 권능은 리안을 그러한 ‘배경’으로 만들어버렸다.

하늘이 사람과 친구가 되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리안 또한 타인과 어떠한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해도, 혹은 이질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해도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훌륭한 ‘신’의 모습과 같았다.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 또한 그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그는 너무나 ‘신’ 같았다.

그런 이질감을 부숴버린 건 우습게도 그녀의 ‘개그 권능’ 때문이었다. 다크 판타지와 대척점에 섰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개그 권능’으로 인해 리안은 세계에 녹아들지 못했다.

더 이상 배경으로 지낼 수 없게 된 것이다.

강제로 무대 위로 끌려 나온 그는 타인과 자신의 ‘차이’를 인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안은 그러한 차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평범한 인간처럼.

타인과의 차이와 사랑을 인지한 상태에서 개그 권능이 절반만 벗겨져 버리니 리안은 혼란에 빠졌다.

‘적응’의 권능이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절반 남은 개그 권능이 억누르는 바람에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두 개의 권능이 리안을 빗겨나가자 남은 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랑스러운 존재들과 나란히 걷기를 원하는 한 명의 인간뿐이었다.

리안은 본능적으로 신이 빚은 몸으로 돌아가 개그 권능이 완전해지면,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인간적인 감정이 덧없이 흩어질 거라는 걸 직감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었기에 예정된 평화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본능적인 선택일 뿐이었다.

리안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뒷사정을 알지 못해 여전히 혼란 속에 잠겨있었다.

혼란은 곧 정신 방벽을 무너뜨렸고 전생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삶을 통틀어 가장 정신 상태가 연약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 와중 정신을 믹서기에 갈아버릴 듯 치고 들어온 두 신의 공격은 치명적이었다.

쩌적.

다른 이들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가 그녀에게만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쩌저적.

그녀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서 떨어져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허공을 향했다. 세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인지 그녀들의 숨통을 조이던 압박감이 조금이나마 약해져 있었다.

“…!”

“오빠!”

“리..안..!”

그 덕분에 세 사람은 당장이라도 꺠져버릴 것처럼 몸에 무수히 많은 금이 간 리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재차 울려 퍼지고, 그녀는 어느새 리안의 곁에 서 있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허공에 축 늘어져 있는 리안을 끌어안자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리안이 그녀의 몸에 무겁게 늘어졌다.

“자기 몸이나 챙길 것이지…”

신의 재앙으로부터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던 세 사람과 달리, 리안에게선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장난스럽게 툭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부서져 내릴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제 남은 힘을 끌어모아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는 모습이 우습고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리안을 품에 안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곤 제 무릎 위에 리안의 머리를 올려놓은 후 부드러운 손길로 잔뜩 금이 간 볼을 쓸어주었다.

그녀의 손길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조각상처럼 잔뜩 금이 갔던 몸이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배 아파 낳은 아이를 쓰다듬는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그녀는 리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어쩔 수 없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 후보였던 리안을 인간으로 끌어내린 세 명을 소멸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리안이 소멸을 각오하면서까지 세 사람을 지키는 모습을 보자 그녀들의 목숨을 거둬가고 싶다는 충동이 식어버렸다.

‘저들에겐 리안의 고통이 가장 두렵겠지.’

그렇다고 분노까지 식어버리는 건 아니었기에 그녀는 세 사람에게 마땅한 ‘벌’을 내리기로 했다.

신의 벌은 인간들의 벌과 달리 자비이자 재앙이며 구원이었다. 세 사람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냐에 따라 신의 자비가 될 수도, 재앙이 될 수도 있었다.

세 사람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전보다 덜 무거워진 발을 질질 끌며 리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허억,헉…리..안..!”

“제발…흑…”

“크르릉…!”

숨이 끊어질 듯 뱉어진 숨결들이 하얀 공간에 의미 없이 퍼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딱.

그녀가 가볍게 손을 튕겼다. 동시에 세 사람은 하얀 공간에서 추방되었다.

***

“윽… 여긴..?”

노아는 속이 뒤집히는 듯한 감각에 배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

그녀의 시야는 어째서인지 훅 낮아져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평평한 상체와 무릎을 덮을 정도로 커다란 회색 셔츠가 보였다. 꼬질꼬질한 것으로 봐선 원래의 색을 유추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그녀는 두 손을 내밀어 꼬질꼬질하게 더러운 어린아이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어린아이가 되어있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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