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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나는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드물었다.

   

   그게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루시가 과거에 저질렀던 업보는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곳에 뻗어 있었으니.

   

   초면인 사람이 내게 내뱉을 인사말로 적당한 것은 이 썅년! 정도였다.

   

   어쩌면 여기에 정중함이 가미되고 비꼼이 추가될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 든 의미는 썅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겠지.

   

   그래서 난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가며 고맙단 이야길 전하는 프레이의 동생. 파르나의 모습이 당혹스러웠다.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고맙다니. 내가? 프레이를?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내가 프레이한테 한 일이라고는 이 녀석을 대련에서 때려 눕혀준 거랑 메스가키 스킬로 열 받게 만든 것밖에 없는데?

   

   “저희 언니가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제대로 말을 거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봤어요! 아버님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엑? 말을 걸었다고?! 프레이가?!

   

   파르나의 이야기에 놀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녀가 가족에게 말을 걸고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은 후일 현직 검성을 만나 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배운 후의 일이니까.

   

   아직 검성을 만나지도 않은 그녀가 가족에게 말을 걸었다니. 그게 무슨.

   

   당혹 속에서 떠오른 것은 오늘 한 노점에서 보았던 프레이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어쩐지 실력이 좋아졌더라니! 가문의 검술을 부탁해서 익힌 거였어?!

   

   “거기에다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서 얌전히 있는 것도 처음 봐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짐작 가는 게 있다.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프레이는 대뜸 검을 휘두르고 보는 미친년이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입학식 날 습격 비스무리한 걸 당하지 않았던가.

   

   허나 최근의 프레이는 그런 미친 짓거리를 거의 저지르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목표가 고정되었으니까. 나라는 장난감이 마음에 든 프레이는 이 장난감이 부서지기 전까지 다른 걸 볼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도 프레이는 망가지지 않는 튼튼한 대련 상대였기에 장난감 취급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윈윈이라는 거지.

   

   “뭣보다 언니의 입에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니까요?!”

   

   그건 좀. 아니 많이 놀랍네.

   

   프레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내뱉는 경우는 게임에서도 없다시피 하니까.

   

   이 말이 진짜인가 싶어 프레이 쪽으로 고갤 골려 보았지만 그녀는 고심하여 음식의 탑을 쌓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보통 이런 소리를 하면 부끄러워하는 티 정도는 낼 법도 한데. 프레이답네.

   

   “아버님 어머님이 언니 이야기를 하면서 웃는 것도 처음 봤어요! 이게 다 알른 영애님의 은덕이에요!”

   

   파르나의 이야기는 숨기는 부분 없이 직설적이고 활력이 넘치는지라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허나 그녀의 사정을 아는 나였기에 차마 그만하라는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게임 속의 파르나는 프레이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동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프레이의 모든 기행을 감내해야 했었기에.

   

   검을 휘두를 때마다 프레이와 비교를 당해야 했었기에.

   

   언니가 저지른 잘못을 자신이 수습해야 했었기에.

   

   파르나는 도저히 프레이를 좋아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개를 죽여 버리고는 이럼 날뛸 줄 알았다고 무덤덤하게 답하는 미친년을 어떻게 좋아하겠는가.

   

   화를 내봐도. 빌어봐도. 위협해도. 매달려도. 프레이라는 인간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파르나는. 켄트 가문은 체념했다. 프레이라는 사람이 영원히 저럴 것이라 여겼다.

   

   헌데 그런 그녀가 아카데미에 들어가더니 변화한 것이다. 어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 소문으로 알른 영애께서 무시무시한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다 헛소문이었어요! 이토록 아름답고 귀엽고 당당하고 능력 있으신 분인데 말이에요!”

   

   그거 헛소문 아냐. 루시가 저지른 패악질에는 팩트밖에 담겨 있지 않다고.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하면 큰일 난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시선이 따갑잖아. 내가 옆에 있어도 이 정도인데 혼자 있을 때 그런 이야기를 내뱉으면 어떻게 되겠니.

   

   ‘저기…’

   “야. 내 말을 들…”

   

   “알른 영애님! 저 내년에 아카데미에 입학해요! 아직 시험은 치지 않았지만 분명 합격할 수 있을 거에요!”

   

   내 목소리를 가볍게 흘려들으며 두 주먹을 꼭 쥐는 파르나를 보고 있으려니 얘가 어떤 사람인지 떠올랐다.

   

   그래. 얘도 정상은 아니었지.

   

   프레이가 타인에게 관심이 없기에 마이페이스로 움직인다면, 파르나는 자신의 감정에 붙들리는 순간 주변을 보지 못하기에 마이페이스로 움직인다.

   

   파르나가 들으면 기겁을 할 이야기겠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인간인 것이다.

   

   “그 날이 온다면 전 1학년 전체에 알른 영애의 좋은 점을 퍼트리겠어요!”

   

   아니 파르나야. 그게 무슨 미친 소리니.

   

   ‘…농담이죠?’

   “하. 무슨 헛소리를 하나 했더니. 웃기지도 않은 이야길 하고 있네.”

   

   “헛소리 아니에요! 저 진심이라고요!”

   

   그러니까 왜 진심이냐고! 왜 굳이 다른 사람들의 비난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는 거야?! 프레이가 바뀌며 네 고생이 줄었으니 스스로 고생거리를 만들겠다는 거냐?!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반드시!… 읍! 읍읍!”

   

   어떻게든 말려야한단 생각에 머리를 굴리고 있으려니 저 멀리서 내달려 온 성인 남성이 파르나를 품에 안더니 그 입을 틀어막았다.

   

   파르나는 입이 막히고도 읍읍거리며 무어라 이야길 하려했지만 남성의 손에 빈틈은 없었다.

   

   “미안하네! 알른 영애! 우리 딸이 폐를 끼쳤군!”

   

   켄트 백작은 창백해진 얼굴로 미안하다는 사과를 전한 후에, 우리 딸과 잘 어울려주어서 감사하다며 후일 영지에 찾아오면 성대하게 대접하겠단 말을 남기고는 바람처럼 떠나가 버렸다.

   

   참 고생이 많은 분이네. 나중에 베네딕과 술자리를 가지면 절친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야.

   

   한 바탕의 폭풍이 지나가고 나니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디저트 쪽으로 손을 내밀던 나는 접시가 텅 비어있는 걸 보고 고갤 돌렸다.

   

   자기 앞에서 여러 상황이 펼쳐지는 동안 프레이가 저 모든 걸 흡입한 것이다.

   

   항의의 의미를 담아 짜게 식은 시선을 보내보았지만 프레이는 무덤덤할 뿐이었다.

   

   “저기 바보 검사♡ 하도 멍청해서 방금 전까지 음식을 먹었단 사실도 기억 못 하는 거야?♡ 꿀꿀 댈 게 아니라면 그만 좀 먹지 그래?♡”

   “꿀꿀.”

   

   조금도 예상치 못한 대응에 입을 우물거렸더니 프레이가 이겼다는 듯 어깨를 폈다.

   

   짜증은 났지만 저기에 대꾸해봐야 휘말릴 뿐이다 싶어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근처의 의자에 앉아서는 턱을 괴었다. 아직 파티가 끝난 건 아니니까 기다리고 있으면 디저트가 채워지겠지.

   

   <아마 그럴 리는 없을 거다.>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파티가 끝나가기 직전이거든.>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전조가 있거든.>

   

   넘길 악장이 거의 남지 않은 오케스트라. 흠칫거리며 자꾸만 시계를 바라보는 시종들. 파티장의 중심을 떠나는 고위 귀족들. 줄어든 대화소리.

   

   처음에는 할배가 나를 놀리려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가 지적하는 부분은 하나 같이 파티의 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 디저트는?’

   <안 나오겠지. 파티가 끝나는 데 뭐 하러 보충하겠느냐.>

   ‘프레이이이이이!’

   

   내가 속으로 복수의 불꽃을 태우거나 말거나 파티장 안의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 순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멈추고 단상 위에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그 곳에서 화려한 불꽃과 함께 공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만으로 시선을 집중한 공작은 박수를 보내는 이들에게 목례를 건넴으로써 감사를 표한 후 파티의 종막을 고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귀빈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잠시.”

   

   정정하자. 공작은 종막을 고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말끝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었기에.

   

   그 상대가 어중간한 이였다면 공작은 그 목소리를 무시했을 것이다.

   

   그에겐 그럴 만한 권력이 있었으니까.

   

   허나 이번 상대는 공작이 무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한 가지 잊어버린 게 있는 듯 하다만.”

   

   유력한 차기 왕위 계승자께서 목소리를 내는데 어찌 그를 묵살하겠는가.

   

   “제가 잊어버린 게 있습니까?”

   “그래. 파트란 공작. 그대는 아주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네.”

   “죄송합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력이 좋지 못하군요.”

   “하하. 그럴 수도 있지. 내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겠네. 본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던 알른 영애의 수상 소감은 어디로 간 것인가?”

   

   1왕자는 그리 이야기를 하고는 단 한 번 고개를 움직인 것으로 구석에 앉아 있는 나를 찾아냈다.

   

   저는 아무리 보아도 운이 좋다거나 감이 좋다거나 하는 영역이 아니었다.

   

   계속 나를 시야 안에 두고 있었던 거겠지.

   

   힘과 권력, 그리고 악의를 지닌 스토커라니.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면 성벽이 왜곡되기 쉽다지만 이건 좀 징그럽네.

   

   명색이 1왕자라는 녀석이 저래서야.

   

   왕국의 미래는 어둡구나.

   

   “자. 루시 알른! 어서 이 곳으로 오게! 본인을 이긴 것이니 그만한 축하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1왕자는 티없이 밝은 웃음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저 새끼 갑자기 왜 저래?!

   

   너 그런 웃음 짓는 캐릭터 아니잖아!

   

   왜 갑자기 가식 떨면서 날 단상에 세우려는 건데?!

   

   뭔데! 뭘 노리는 건데!

   

   갑작스러운 1왕자의 외침에 나는 물론이고 파트란 공작마저 굳어 있던 그 때에 1왕자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박수를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맞아. 오늘 그대는 참으로 많은 일을 겪어 힘든 상태였지.”

   

   네?

   

   “내 배려심이 부족했군.”

   

   아니.

   

   야.

   

   잠시만.

   

   “그대를 부를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가야했어.”

   

   앉아. 앉으라고.

   

   자리에 앉아 있으란 말이야!

   

   “패배자답게 말이야.”

   

   속으로 무어라 소리치건 그는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나의 앞에 도달한 1왕자는 손을 살짝 휘젓는 것으로 음성증폭마법을 만들어냈다.

   

   내 입에서 무슨 말이 새어나오더라도 파티장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자 준비가 끝나는 대로 이야기하도록 하게. 얼마든 기다려 줄 테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거든.”

   

   그는 내게 대처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 뿐일까.

   

   다른 누군가가 끼어들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완벽한 타이밍과 완벽한 밀어붙임이었다.

   

   방금 전 그가 이야기했던 대로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단 것처럼.

   

   <…여아야. 마음의 준비를 하거라.>

   

   …하아.

   

   젠장.

   

   젠장!

   

   젠자아아앙!

   

   히키코모리 스토커!

   

   지금 뭘 노리고 이 짓거리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기억해!

   

   지금은 네가 강할지 몰라도 내가 아카데미 졸업할 때엔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을 거다.

   

   내 발을 핥을 각오를 하고 있도록!

   

   알겠어?!

   

   ‘이번 축제는 정말 영광스러운 대결이었습니다. 1왕자님.’

   “이번 축제에서 1왕자님의 배려를 많이 느꼈답니다. 어쩜 그리 허접한 척을 잘하시는 지. 덕분에 영광스러운 대결을 펼칠 수 있었답니다. 아. 혹시 일부러 허접한 척 연기하신 게 아니셨나요? 쿡. 이런. 실수했네요.”

   

   “대체 무슨 망발인가?!”

   “루시 알른! 무엄하다!”

   “알른 영애?!”

   

   그 때까지 내가 살아있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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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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