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11

   테르사다의 뒤를 따라 걸으며 크라슈는 대신전의 밖을 보았다.

     

   어느새 시간은 9월 중반.

   라헬른 아카데미가 한창 2기생들이 학생단에 들어가고자 바쁜 와중, 대신전 또한 상당히 분주했다.

     

   얼마 안 있으면 신들의 축제가 열리는 날.

   당연히 축제를 준비해야 하는 신관과 사제들도 바쁘기 그지없었다.

     

   “축제 준비 탓에 꽤 소란스럽죠?”

     

   테르사다가 여전히 인자한 미소를 띠며 말을 걸어왔다.

   흰색 바탕 위에 금수가 놓인 대신관 용 복장을 한 채 뒷짐을 짓고 걷는 그의 모습은 무척이나 기품 있었다.

     

   “축제 준비로 바쁜 거야 당연한 이야기죠.”

     

   그리고 그런 그의 말을 크라슈는 어렵지 않게 받았다.

     

   테르사다는 크라슈에게 보이지 않게 의외라는 눈빛을 담았다.

     

   크라슈의 나이는 기껏해야 15살.

   그런 나이에 예법부터 시작해 어른의 여유로움이 묻어 나오는 게 신기했다.

     

   천하십강을 상대로 이야기하면 긴장할 법도 한데 말이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이건가.’

     

   천하십강쯤 되면 세계 각지에 귀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러한 귀를 통해 최근 가장 많이 들리는 것은 다름 아닌 크라슈였다.

     

   젊은 영웅, 차세대의 별, 발하임의 막내.

     

   수많은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 크라슈는 라헬른 아카데미만이 아닌 세계 전체가 놀랄 일을 몇 번이고 해내었다.

     

   그래서일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도 꽤나 심상치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투명한 기운.’

     

   크라슈에게서는 테르사다조차도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의 크기 또한 눈으로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기 그지없었다.

     

   ‘젊은 영웅은 떡잎부터 다르다 이건가.’

     

   과연, 이건 꽤나 여기저기서 탐을 낼 것 같다.

     

   ‘이건 못해도 스무 살이 넘어갈 때쯤에는 천하십강에 들겠는데.’

     

   그때가 된다면 테르사다조차 함부로 부르기 꺼림칙한 인물이 될 터.

   그러니 테르사다는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 변할 프리만에는 새로운 젊은 영웅이 필요하다.

   발하임이나 그런 것을 다 재친 종교적인 영웅이 말이다.

     

   테르사다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가 멈춰 선 곳은 사람이 거의 없는 정원이었다.

     

   정원은 무척이나 정갈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신성력이 가득 차 버린 그러한 공간 같았기 때문이었다.

     

   본래는 현 교황이 휴식을 위해 종종 들르던 정원이었으나.

   현재 교황께서 나이가 들어 제 발로 걷기 힘들게 된 이후, 대신관들이 때때로 밀담을 나누기 위해 오는 장소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딱히 듣는 귀가 없으니 괜찮겠지요.”

     

   테르사다는 싱그러운 꽃잎의 향을 맡으며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크라슈의 눈에는 선명한 패기가 느껴졌다.

     

   “우선 딸에 관한 것은 진심으로 다시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거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모두가 말은 그리할 수 있죠. 하지만 세상에는 그러한 할 일을 해내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그리고 크라슈 님은 할 일을 해내실 수 있는 분이겠죠.”

     

   그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정원 중심에 있던 의자를 빼어 앉았다.

   크라슈도 덩달아 반대편 의자에 앉자 테르사다가 손짓했다.

     

   그러자 정원에서 날아든 빛으로 뭉쳐진 나비가 날아왔다.

   나비는 무척이나 익숙한 듯 테르사다의 찻잔에 찻물을 따랐다.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나비였다.

     

   “제게 무언가 맡길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크라슈가 눈치 빠르게 물은 순간 테르사다가 천천히 눈을 휘었다.

   그 또한 눈치 빠른 이는 좋아했기 때문이다.

     

   “예, 성녀님과 함께 오셨으니 성녀님을 통해서라도 들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현재 신성 왕가 프리만은 내부적으로 꽤나 부패해 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테르사다는 정말 단도직입적으로 나왔다.

     

   “크라슈 님은 성녀란 존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해 아십니까?”

     

   크라슈는 눈을 치켜떴다.

     

   테르사다 이 인간.

   뒤 없이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건 회귀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더 뒤가 없다.

     

   프리만으로서는 절대 비밀에 부쳐야 할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외부인에게 꺼내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그건 발하임인 저에게 해도 될 이야기입니까?”

   “하하.”

     

   테르사다는 크라슈를 보며 짧게 웃었다.

     

   “이건, 성녀께서 직접 신성 왕가와 담판을 벌인 일이잖습니까. 그리고 갑자기 그런 발언을 하게 된 성녀님과 크라슈 님이 이전에 만났음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전부 다 알고 접근했군.

     

   “저도 귀가 다 있는 법입니다.”

     

   테르사다의 휘어진 눈동자를 보며 크라슈는 탐탁지 않은 눈을 했다.

     

   “제가 무슨 제안을 할지 걱정되시나 보군요.”

   “그야, 그런 일을 입 밖에 꺼낼 정도라면 걱정되죠.”

   “하하, 그리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테르사다는 손을 휘저으며 찻잔을 한 모금했다.

     

   “그저 10대 천검 중 하나, 성검을 받아주셨으면 할 뿐입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터무니없는 제안이 들려왔다.

     

   10대 천검 중 하나, 성검.

     

   프리만 왕국에 대대로 내려오던 성검에는 여러 전설이 있다.

     

   성검을 지닌 이는 세계를 구하게 될 이라든가 하는.

   흔하게 붙는 구닥다리 전설들 말이다.

     

   문제는 그런 구닥다리 전설이라는 게.

   사람들에게 보이는 이미지로서는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다는 거다.

     

   ‘실제로 아서가 썼던 검이니까.’

     

   회귀 전, 아서는 성검을 다뤘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첫 이미지로써 가장 강력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였으니까.

     

   크라슈의 눈빛이 미묘해졌다.

   그야, 아서가 사용하던 검을 이번에는 자신이 제안받았으니 말이다.

     

   성검에는 꽤나 다양한 가치가 있다.

     

   성검 자체가 지닌 능력부터 시작해.

   어쩌면 붉은 마녀 아델라를 끌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야, 아델라는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아서가 완벽히 되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

     

   ‘지금 문제는.’

     

   크라슈는 테르사다를 바라보았다.

     

   ‘성검을 내어주는 의도.’

     

   크라슈는 테르사다가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으리란 건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다.

   그야, 지금도 일부러 사계를 통해 세계 침식의 힘을 아우라로 치환시키고 있었으니 말이다.

     

   테르사다에게 비춘 크라슈의 모습이 유달리 독특해 보였던 이유도 그러한 이유였다.

     

   ‘미레이의 일을 묻기 위해 나를 영웅 서사처럼 쓴 것도 이해는 하겠는데.’

     

   프리만은 자신을 엄청난 영웅처럼 포장해 놓았다.

   거기에는 정치적 이유와 더불어 신성으로 떠오르는 자신에게 침을 묻혀 놓기 위함임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성검을 내어줄 만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저에게 바라는 게 있군요.”

     

   성검을 내어준 다른 이유.

   그것이 있음을 크라슈는 눈치채고, 테르사다를 바라보았다.

     

   크라슈와 눈이 마주친 테르사다는 한 번 더 찻잔을 기울였다.

   그 행동은 일부러 바로 답을 알려 주지 않고, 뜸을 들임으로써 상대방을 긴장케 하려는 행동이었다.

     

   ‘능구렁이 같은 짓을 하기는.’

     

   그러나 이런 쪽에는 이골이 난 크라슈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행동이었다.

     

   “크라슈 님은 또래와 다르게 영특하신 분이니 제 말을 곡해해서 듣지 않을 거로 생각합니다.”

     

   찻잔을 내려놓은 테르사다가 다시금 천천히 인자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는 신성 왕가가 만든 성녀라는 존재를 끌어낼 생각입니다.”

     

   크라슈가 감정의 요동 없이 테르사다를 응시했다.

     

   “성녀는 신성 왕가의 치부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직 상징성을 위해 계속해서 세습되어온 존재죠. 물론 성녀님의 마음과 힘은 높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난날, 힘을 다 쓰고 버려져 버린 성녀를 보았습니다.”

     

   한동안 프리만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가짜 성녀.

   그러한 가짜 성녀는 반대파가 일부러 탈출시킨 과거의 성녀였다.

     

   몸에 지닌 신성력 탓에 죽지 않게 된 이후 한참을 성녀로서 활동한 결과.

   정신적으로 망가져 버린 그녀는 신성력을 모두 짜내어진 뒤 그대로 버려졌다.

     

   당연히 그러한 이전 성녀를 테르사다 또한 보았을 것이다.

     

   “밖에서는 겉보기에 이전 성녀님은 뜻을 다하고, 하늘에 부름을 받아 간 것처럼 이야기되었죠.”

     

   하지만 그 실상은 마지막까지 오직 프리만의 상징성을 위해 쓰이다 버려졌을 뿐이다.

     

   “저는 그러한 악습은 사라져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라슈도 거기에는 동의했다.

     

   “그리고 성검의 주인이야말로 그러한 성녀의 악습을 없애기에 딱 알맞죠. 성녀라는 악습을 알아낸 새로운 영웅, 불의를 참지 못하고, 성녀란 악습을 끊어내다.”

     

   테르사다의 웃음은 분명 인자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이제 구렁이 수백 마리가 뒤범벅으로 섞인 웃음이었다.

     

   크라슈가 자기 딸을 구해준 그 순간부터.

   크라슈를 영웅으로서 포장하는 것에는 전부 이러한 계획이 동반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아스트리아를 통해 신들의 축제에 크라슈를 부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어쩌면 아스트리아는 저 스스로 목을 조일 인물을 부른 셈이었다.

     

   “이번에 프리만이 내세운 영웅에게는 가장 걸맞은 모습이지 않겠습니까?”

     

   앞에서 말했듯 크라슈도 성녀의 악습을 없애는 데는 동의했다.

   성녀란 존재는 인간이 만들어낸 신성력의 결합품일 뿐이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아스트리아 성녀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지금의 성녀는 누구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아스트리아였다.

     

   크라슈는 다른 성녀들은 알 바 아니었다.

   그는 세계의 멸망을 막으려는 것이지 모든 이를 지키는 선인이자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크라슈가 원하는 건 제 사람을 지키는 것뿐이다.

     

   그런 지금.

   크라슈에게 아스트리아는 절대로 잃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전 회차의 인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스트리아는 크라슈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성녀를 악습이라 지정하는 순간 아스트리아의 삶은 부서진다.

   그녀가 아무리 성녀라는 새장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한들.

   그녀는 결국 성녀로서 살아왔으니까.

     

   그건 크라슈가 가장 바라지 않는 결과였다.

     

   “크라슈 님은 아스트리아 님과 연이 깊으신 것 같군요.”

   “예, 그야 2기생 동기니까요. 도움을 받은 적도 많으니 당연한 겁니다.”

     

   하지만 크라슈는 그런 것을 조금도 티 내지 않았다.

   이것이 오히려 그가 이용할 약점으로 작용 될 수 있음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스트리아 성녀님은 정말로 선의만으로 많은 이를 구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죠. 이건 테르사다 님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예, 그거야 부정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녀가 악습이라 한들 아스트리아의 선행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 능구렁이들끼리 아주 수 싸움을 하느라 치열하구나. 눈은 안 아프더냐? ]

     

   그 말대로 고작해야 몇 분의 대화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의중을 계속해서 떠보고 있었다.

     

   “그러니 첫 질문으로 돌아가죠.”

     

   크라슈는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않은 찻잔을 옆으로 밀어 두었다.

     

   “아스트리아 성녀님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말을 돌리는 건 그만하라는 단도직입적인 말이었다.

     

   “성녀란 직위를 박탈시킬 겁니다.”

     

   그 뜻을 받아들인 테르사다가 정확히 말을 전했다.

     

   “그리고 그건 성검을 지니게 될 영웅, 크라슈 님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이건 일종의 거래 제안이었다.

     

   테르사다와 반대파는 성녀라는 직위를 어떠한 결과를 무릅쓰더라도 박탈시킬 생각이다.

   그 생각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종교 혁명에 성녀의 직위 박탈만큼 크게 이름을 떨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러니 그는 제안해 온 것이다.

     

   폐위한 성녀의 처우는 크라슈에게 맡길 테니.

   성검을 지닌 영웅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 아스트리아를 지키는 건 크라슈의 몫이 될 테니 말이다.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

     

   크라슈는 자리에서 이만 일어났다.

     

   “예, 오늘 자정까지만 부탁드립니다.”

     

   테르사다는 그런 그를 붙잡지 않았다.

   어차피 그리 머지않은 시간 내에 그가 답변해올 거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의 은근한 웃음 속.

   크라슈가 정원을 빠져나갔다.

     

   테르사다는 그의 속에 청개구리 같은 미약한 반항의 불씨가 일어난 것을 몰랐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