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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1

    다음 날 아침, 나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보안실로 가는 길목의 환기구 속에 숨어있었다.

    푸른 사신을 위해 어제부터 준비한 황금 사신을 이용한 장난이 어떻게 될지 정말 기대되었다.

    ‘왔다!’

    그렇게 기다리길 몇 분, 황금 사신으로 변장한 푸른 사신이 뚜방뚜방한 걸음걸이로 보안실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황금 사신의 모습으로 몇 번 찾아와 봐서 그런지, 상당히 익숙해진 걸음걸이였다.

    푸른 사신이 보안실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 보안실의 두꺼운 벽을 천천히 통과해서 얼굴만 살짝 내놓고 방의 내부를 몰래 염탐했다.

    보안실 내부를 살펴보니, 푸른 사신이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황금 사신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신기한 황금 사신!’

    ‘신기한 사신!’

    황금 사신들은 다른 황금 사신들과 다르게 움직이는 푸른 사신을 보고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주변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안뜰만큼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보안실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숫자의 황금 사신이었다.

    원래 보안실은 특히나 황금 사신들에게 인기 없던 장소라서 그런지, 푸른 사신은 굉장히 당황한 눈치였다.

    물론 이렇게나 많은 숫자의 황금 사신이 보안실로 들어온 이유는 나 때문이었다.

    심심한 표정으로 미니 사신 정원을 뚜방거리고 있던 황금 사신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에 있는 보안실. 굉장히 두꺼운 벽으로 지켜지고 있는 곳에 신기한 황금 사신이 있대!’

    이런 식으로 지나가면서 가볍게 넌지시 정보를 던졌다.

    그러자 황금 사신들은 ‘보물찾기!’라고 외치면서 세희 연구소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황금 사신은 보안실이 어딘지 전혀 몰랐지만, 그래서 더욱 수수께끼 같다고 즐거워했다.

    이제 저 황금 사신들이 푸른 사신의 변장을 눈치채면, 푸른 사신은 도망가 버리겠지? 

    히히.

    다른 미니 사신들을 볼 때는 이런 기분이 안 드는데, 이상하게 푸른 사신이가 애착 인간과 친해지려고 하면 괜히 훼방을 놓고 싶어지네.

    하지만 황금 사신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동생!’

    보자기 속에 푸른 사신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황금 사신들은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냈다는 것처럼 만세를 하며 좋아했다.

    이상하네. 

    보통 동생이 저런 변장을 한 걸 알아채면, 인형 옷을 벗겨보고 싶어져야 정상 아닌가?

    황금 사신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보안실에 마련된 과자를 냠냠 먹기 시작했고, 푸른 사신은 다시 다소곳하게 앉아서 보안실 직원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푸른 사신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상당히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내 완벽한 장난이 이렇게 실패로 끝나버리다니.

    나는 괜스레 심통이 나서, 직접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시간 가속!’

    유령화 상태로 시간을 가속하면서 푸른 사신을 향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내 장난에 많이 당했던 황금 사신은 시간의 괴리를 빠르게 느끼고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황금 사신들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시간을 가속하기 시작했지만, 별로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이번 목표는 너희들이 아니거든!

    푸른 사신은 애착 인간에게 정신이 팔려서 내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 손이 점점 푸른 사신의 보자기 위로 이동하자, 황금 사신들이 ‘어떻게 동생에게 그런 짓을!’ 하는 표정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히히, 이번에는 내가 이겼어!’

    푸른 사신의 보자기를 손에 꼭 쥐자마자, 시간 가속을 풀었다.

    그러자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이 원래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황금 사신의 우당탕탕하는 소리. 

    갑자기 보자기가 벗겨져서 당황하는 푸른 사신. 

    갑작스러운 소란에 미니 사신들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는 보안실 직원들.

    황금 사신은 내 주먹에 달라붙어서 보자기를 되찾으려고 했지만, 검은 사신이 아니고서야 체급이 훨씬 큰 나보다 힘이 센 미니 사신이 있을 리가 없지.

    뚜시뚜시.

    황금 사신들은 동생을 괴롭힌 나에게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뚜시를 날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저 푸른 사신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었다.

    보자기가 벗겨진 푸른 사신과 보안실 직원의 눈이 마주치자, 푸른 사신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푸른 사신의 몸이 보글보글 끓는 것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도망치려고 문자열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저를 숨겨주세….>

    하지만 문자열을 끝까지 쓰지 않고, 푸른 사신은 몸을 멈춘 채 가만히 있기 시작했다.

    ‘할 수 있어요.’

    열망을 가득 담은 의지가 푸른 사신에게서 천천히 새어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애착 인간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애착 인간의 눈동자에 푸른 사신의 모습이 비치자, 푸른 사신은 애착 인간을 향해 행복한 것처럼 웃어주었다.

    ***

    저벅저벅.

    이미 사그라들어 가는 모닥불의 옆으로 남자들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이템을 향한 탐욕을 가득 품은 남자들이 점점 소녀를 향해 다가오는 소리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는 품 안에 검을 꼭 끌어안은 채, 행복한 표정으로 자고 있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이런 미궁에선 깔끔하게 죽는 편이 좋은 거니까, 너무 원망하지는 마라.”

    남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있는 힘껏 단검을 소녀의 심장을 향해 내리찍었다.

    턱.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를 향해 내리찍는 것처럼 힘차게 나아가던 단검은 소녀의 피부에 닿기 직전 무언가에 붙잡혀 버렸다.

    흑색 검이 그림자처럼 녹아내리더니, 단검을 붙잡았다.

    그리고 검게 물든 그림자가 방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소녀의 품에 있던 검은 전부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 

    사그라든 모닥불도 그림자에 잠겨버렸다.

    “뭐, 뭐야?”

    “또 이상 현상인가?”

    3명의 남자는 갑작스럽게 벌어진 이상 현상에 서로 등을 맞대고 사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탐욕.’

    그림자가 부피를 가진 것처럼 점점 일어서기 시작하더니, 미궁의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이 솟아올랐다.

    ‘위선.’

    그 속에서 하얗게 물든 짐승의 이빨과 불길한 하얀빛을 뿜어내는 짐승의 눈이 갈라져서 열렸다.

    ‘배신.’

    솟아오른 그림자가 점차 형상을 갖추더니, 길쭉한 팔을 가진 불길한 형상을 갖췄다.

    딱딱.

    날카로운 이빨을 부딪치며, 남자들을 응시하던 그림자의 심장부에서 하얗게 타오르는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그림자를 억지로 찢어서 만든 눈에서 하얀색 불꽃이 핏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치 그 모습이 눈물 같아서 불길해 보였다.

    ‘배신자!’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본 남자들은 공포에 질려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림자는 이미 거미줄처럼 남자들을 엮어버린 지 오래였다.

    남자들은 이미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에 불과했다.

    거대한 그림자는 남자를 하나하나 집어 들어서 커다란 입으로 씹어먹기 시작했다.

    우드득.

    까드득.

    와그작.

    뼈와 살이 부러지고 처참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이 울려 퍼졌지만, 불길한 밤의 장막을 닮은 그림자는 소리도 모두 먹어 치워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남자들을 모두 먹어 치운 그림자는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소녀가 잠들기 직전의 야영지로 돌아온 것이다.

    그저, 야영지를 준비했던 남자들만 지워진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남자들 말고도 달라진 점이 있었다.

    소녀의 품에 안긴 흑색 검의 폼멜 부분이 따뜻한 노란색에서 불길한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

    사방이 모래로 가득 차서, 벽과 바닥 그리고 천장마저 모래로 이루어진 공간. 

    그 공간의 사방을 이루는 모래들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어서, 모래가 흐르는 강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모래로 된 공간의 허공에는 커다란 빛의 고리가 선명한 하얀 선을 그리면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고리가 떠 있는 바닥에는 흐르는 모래들이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모래로 만들어진 수많은 방과 괴물. 

    마치 미궁의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미니어처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의자 위에 한 노인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괴팍하고 강직한 인상의 노인은 수많은 모래 말뚝으로 못 박혀, 의자 위에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그렇게 흐르는 모래로 이루어져, 몇 년이고 고요하게 머물러있던 공간이 갑작스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동적이지만 안정적이었던 공간이 그 형상을 잃고 마구잡이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작은 미니어처부터였다.

    선명하게 미궁의 모습을 재현하던 모래더미가 마구잡이로 흩어지고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허공에 뜬 빛의 고리가 내뿜는 빛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공간을 이루는 모래들이 부스스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렸다.

    마치 공간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눈을 감고 있던 노인이 눈을 뜨고 미니어처를 내려다보기 시작하자, 마구잡이로 흔들리던 공간의 진동이 멈췄다.

    눈알 대신 모래만이 가득한 섬뜩한 눈길이 내려다보자, 미니어처는 미궁의 일부를 다시 표현하기 시작했다.

    거대하게 변한 검은 사신의 모습.

    그리고 잔혹하게 남자들을 씹어먹는 모습이었다.

    마치 못 박힌 것처럼 검은 사신을 바라보던 노인은 검은 사신이 다시 검으로 돌아와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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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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