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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경복궁 지하에 땅굴이 있고 북괴 전차가 수백 대 대기 중이다!

       

        ……라는 말을 해봐야 그 말을 믿어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 주장을 진짜로 하는 사람들마저도 믿지 않을지 모른다. 사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진짜로 노리는 것은 돈인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렇다면 나한테 뜬금없이 그런 소리를 들은 샤를로트라면 어떨까?

       

        북한군이 남한을 공격하기 위해 땅굴을 팠다는 이야기야, 보통은 그냥 지도 위에 대충 땅굴 그려두고 그 안에 탱크 크기가 이러이러하다 하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할 뿐이다.

       

        만약 정말로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믿는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있어서 전문 장비라도 들고 달려들었다면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당연히 없는 것을 조사하는 것이니 ‘없다’라는 결론 아니면 내릴 결론이 없긴 하겠지.

       

        하지만 정말 만에 하나, 억에 하나라도, 그 전문가들이 ‘어, 진짜로 있는데요?’라는 말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정말로 땅굴을 파보니 북한군 전차가 무더기로 나오고, 설치된 폭탄들이 나오고 한다면야 뭐, 눈앞에 있는 증거를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절대로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나에게 ‘전문성’은 눈곱만큼도 없다. 내가 알고 있는 벨부르 역사는 설정집으로 배운 것과 이쪽 세계에서 교양수업으로 배운 것이 전부였고, 당연히 그런 ‘외부용’역사에는 자기네 나라가 어느 사람들을 어떻게 핍박했는지 그리 열심히 써두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근대식 역사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시기다. 역사서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해봐야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사건들을 철저하게 자기네 시선으로 바라본 것밖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문성’의 ‘ㅈ’조차 없는 나였으니, 사실 내가 땅굴이 있다고 주장해도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대는 스스로 하는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나는 그날 밤에 곧장 루테티아 궁전으로 가서 벨부르 국왕에게 내 주장을 바탕으로 설득할 기회를 얻었다.

       

        그렇다. 나는 전문가는 아닐지 모르지만, 말을 그럴싸하게 할 줄 아는 ‘좆문가’정도는 되는 인간이었으니까.

       

        원래 좆문가의 비율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보다는 다른 방면의 전문가라서 ‘이 방면에 대해서 아주 어중간하게 아는 사이비’가 많은 법이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그 좆만한 전문성의 권위를 내세우며 진짜로 권위 있는 전문가들의 말에 당당하게 반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완벽한 ‘좆문가’였다.

       

        “그렇습니다. 팬그리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좆문가였다.

       

        권위주의 사회에서 내세울 수 있는 끝판 권위가 있었으니까.

       

        “…….”

       

        내가 가슴을 내밀며 당당하게 주장하자, 벨부르 국왕은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렇지.

       

        아무리 벨부르가 법국과의 군사동맹을 진지하게 계획하고 있다고 해도, 남의 나라에 땅굴을 파두고—물론 굳이 따지자면 이미 있던 것에 가깝지만—그걸 그 위쪽 땅의 주인들도 모르는 방법으로 쓰고자 한다면 기가 찰 것이다.

       

        “그런 중요한 ‘정보’를 우리측에 건네는 이유가 뭔가? 혹시 원하는 것이라도 있는가?”

       

        아니, 처음부터 건넬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내 옆에 서 있는 샤를로트 측을 슬쩍 보았다. 샤를로트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당황해서 떨렸다기보다는, 자기 아버지 앞에서 최대한 들키지 않은 채 나한테 자기 생각을 말하기 위함일 거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국왕 앞에서 대놓고 고개를 저어 보일 수는 없으니까.

       

        어떤 사람이 정보를 전달하고 있는데 옆에서 고개를 저으면, ‘말하지 마라’라는 의사밖에 더 되겠는가.

       

        불과 작년까지 자기를 거의 적대하던 인간과 딸이 자기도 모르게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어마어마한 문제니까.

       

        “이런 정보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제국의 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변명거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소 급조한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말은 되는 변명거리였다.

       

        “제국은 아직도 우리가 법국과 동맹을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인가?”

       

       왕국이 법국과 군사동맹을 맺을 기회가 확실하게 사라지기만 해도, 제국에게는 커다란 이익이다. 군사력을 움직이는 것은 전쟁 이전의 일이니까.

       

       그렇다고 그 말에 직접 그렇다고 대답하는 건 너무 속보이는 일이다.

       

        “왕국 측은 아직 제국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십니까?”

       

        내 되물음에 국왕은 잠시 침묵했다.

       

        적어도 현 황제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세우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적어도 표면으로 드러내지는 않았거나.

       

        하지만 왕국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제국의 태도만 믿고 있을 수는 없겠지.

       

        샤를로트 말대로 이후에 법국의 수상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왕국과 법국은 보이지 않는 동맹을 맺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도록 하지.”

       

        국왕은 그렇게 말하더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마를 손으로 짚었던 자세에서, 일국의 국왕으로서의 권위가 돋보이는, 허리와 어깨를 편 당당한 자세.

       

        “제국은 왕국과 법국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게 되기를 바라는 것인가?”

       

        “…….”

       

        ‘제국 입장에서는’ 그렇겠지.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제국을 조금이나마 견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기왕이면 법국과의 동맹이 아니라 왕국 자체적인 힘으로 견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법국은 영 수상쩍은 곳이 많은 나라니까.

       

        샤를로트가 향후 10년 뒤에 법국의 꼭두각시가 되거나 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이야기를 여기서 다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땅굴이야 일단 파보면 된다. 파보면 거기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법국에 대한 정보들은…… 지금 시점에서 내가 알고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도, 국왕은 내 침묵을 알아서 해석해준 모양이었다.

       

        “이유야 어떻건.”

       

        국왕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 ‘팬그리폰’의 이름을 걸었으니 그대도 아무런 각오 없이 한 말은 아니겠지. 그만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우리 왕국도 모르는 정보를 제국의 황녀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차차 알아가야겠지만.”

       

        나를 계속 내려다보며 어떻게든 권위를 내세우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입꼬리가 미묘하게 씰룩이는 걸로 봐서는 곧장 이마를 감싸 쥐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하긴, 입장이 반대였다면 나도 그랬을 거다.

       

        “우선은 급한 것부터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겠지. 그 지하 시설이…… 어떤 식으로 숨겨져 있는지 알고 있는가?”

       

        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땅굴은 루테티아의 하수구보다 아래에 있다. 당연히 입구인 성 라티나 대성당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만…… 글쎄, 과연 법국에서 그 입구를 숨기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을까.

       

        아, 물론, 입구는 당연히 숨겨져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인지한 뒤에 그 ‘원래의 입구’를 과연 그대로 두었을지에 대한 문제다.

       

        뭐, 성당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바닥을 무작정 폭파하면 입구 정도는 나오겠지만, 그걸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결과 내가 여기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 라티나 성당 말고도,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JRPG답게, 아제르나 전기에도 숨겨진 곳이 꽤 많았다. 특히 던전이 아닌 일반 필드— 도시나 마을 같은 곳에서 이상하게 갈 수 없는 곳에 떡하니 놓여있는 보물상자가 있곤 했다.

       

        그리고 그 ‘갈 수 없는 곳’은 후에 다른 던전을 통해 올라갈 수 있게 설계되어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다른 던전은 마을이나 도시의 지하에 있는 하수구나 유적이었다.

       

        물론 그런 식으로 민가의 물건을 내가 가지고도 처벌받지 않는 것은 게임적 허용일 뿐이겠지만.

       

        루테티아 지하 전역에 퍼져있다는 그 지하 시설도 마찬가지다. 입구가 성 라티나 성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인력이 몰래 들어가거나, 반대로 빠져나갈 길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중요한 시설은 성당 근처에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로 투정 부릴 때는 아니었다.

       

        “짐작 가는 곳이 있긴 합니다.”

       

        “……그런가?”

       

        국왕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나에 대한 의심이 최대치를 찍고 심지어 거기서 더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임으로 치면 특정 수치가 너무 올라가서 숫자가 UI를 벗어나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그렇다면, 그대는 그 모든 장소의 위치를 말해야 할 것이다. ……그 장소를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수색 뒤에 진지하게 면담을 해보는 것으로 하지.”

       

        수색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도망가야겠다.

       

        “황녀씩이나 되는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황제는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테니.”

       

        ……진짜 무조건 도망가야겠다. 사건 마무리 될 때까지만이라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휴재를 하고도 한 화밖에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직 퇴원을 하지 못해서요.

    퇴원은 내일 오전이고, 오후에는 대학병원 외래가 겹쳐 있어서 내일도 늦은 시간에 올리게 되겠지만, 그래도 연재 자체는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내일 모레부터는 다시 정상연재가 가능할듯 합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을 위해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후원감사는 여유가 생기면 몰아서 올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ㅠㅠ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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