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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시에서 지정한 마지막 심야 가로등이 방금 막 꺼졌다.

       밤하늘이 지상을 향해 한 발자국 성큼 다가왔고, 사물이 각자 가진 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모두가 잠들었지만, 그렇기에 결코 고요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새벽이었다. 제과 공장 안에 있는 낡은 건물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있어서는 그랬다.

         

       취객들의 고성방가도, 야간에 돌아가는 공장의 기계음도 이 부지의 안쪽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은 명백히 현재 예테린푸르크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었다.

         

       크르렁. 크그극.

       곡예사들이 머무르는 건물의 지하에서 끊임없이 굉음이 울려왔다. 이곳 지하실은 제과점의 주방이 있던 곳이라 여러 개의 덕트가 파이프 오르간처럼 외부를 향해 나 있었다. 그것이 소음을 밖으로 퍼 날랐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지하실에서 밤마다 들려오는 괴성.

       괴담으로 써먹기 딱 좋은 이야기였지만, 진실은 좀 더 우스꽝스러웠다.

         

       첫날 이 소리를 접한 병사들은 놀라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 건물은 수십 년 전, 한 번 지반까지 들어내어 옮긴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청소만 간간이 했을 뿐, 사람이 거주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10여 명의 사람이 들어가서 곡예를 연습한답시고 하루 내내 뛰어다녔으니 어딘가 이상이 생겨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실제로 병사들이 들어갔을 때, 곡예사들도 놀라 모두 1층 현관으로 달려 나와 있었다.

       오직 1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루엘로는 엘라에게 그대로 안겨 나왔다.

       그녀는 곧 사람들이 자다가 왜 뛰어나왔는지 알아차리고는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빠가……코고는 소리예요…….”

         

       수탉 미노바.

       가수이자 차력사인 그는 세계 제일의 목청을 지니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이 건물을 뒤흔드는 굉음은 그가 낸 것이었다.

         

       그날로 미노바의 침실은 지하실로 옮겨졌다.

         

       같은 건물 안에 자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들의 침실은 3, 4층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간 경비를 서는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다. 어쩌면 공연이 내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가장 반긴 것은 그들일지도 몰랐다.

         

       아르노는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커지는 코 고는 소리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샛별 서커스 단원들도 고생이었겠군.’

         

       그녀는 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공작의 사병들이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 너머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중 누구도 그녀가 건물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코앞을 지나가는데도 말이다.

         

       그녀는 투명화 마법을 쓰고 있었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옷을 벗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백색 장포가 바람에 하늘하늘 날았다. 그것은 얼마 안 가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은 그녀가 만든 환상이었다.

         

       장포 안에는 키가 작고 통통한 마녀가 있었다.

       은막 서커스의 부단장, 루미온이었다. 아르노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도 자신의 몸을 둘러싼 천을 벗어 던졌다. 그것 역시 소리 없이 허공을 날다가 어둠 속에 녹아버렸다.

         

       그렇게 겹겹의 환상을 걷어내고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그것이 환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신비로웠다.

       마치 유광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피부는 몽환적이기 그지없었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녀의 생김새였다.

       분명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그 형태가 인간과 조금 달랐다.

         

       1m도 안 되는 키나 가는 팔다리는 그렇다 쳐도, 여성으로서도 남성으로서도 특징이 드러나지 않은 매끈한 몸매는 이질적이었다. 보통 사람의 2배는 되는 길이의 뾰족한 귀와 은빛 머리카락 사이에 솟은 더듬이는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루미온은 이렇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버릇처럼 등을 만지작거렸다. 그곳에는 인간의 몸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달려있었다.

         

       4개의 돌출부와 그 끝에 붙어 있는 반투명한 막이었다.

       한때 날개가 있던 자리에는 이제 그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달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만질 때마다 아쉬움을 느꼈다. 날개를 잃은 일 자체보다 그것을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 그랬다.

         

       그 두 사람의 자식과 매일 마주하고 있어서일까.

       날개가 떨어져 나간 부위가 평소보다 더 욱신거렸다.

         

       그녀는 나신으로 달빛 아래에 섰다.

       구름이 끼지 않아 춤을 추기에 좋은 날이었다.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골고루 달빛을 쬐었다.

       한동안 달빛을 받지 못한 것을 오늘 다 보충할 셈이었다.

         

       ‘동심’을 잃은 요정은 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달 아래에서 춤추고 있으면 그래도 순수했던 옛날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도, 질투라는 것도, 실연의 아픔도 모르던 시절로.

         

       그렇게 월광욕(月光浴)을 충분히 마친 그녀가 환상을 두르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누군가가 현관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간단한 인사말을 던지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원더스타인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무슨……일이지?”

         

       간신히 침착함을 회복한 그녀가 아르노의 목소리로 말했다.

       원더스타인은 늘 그렇듯 싱글벙글 웃어가며 고개를 저었다.

         

       “중간에 잠이 깨서요. 산책할 겸 나왔죠.”

         

       루미온은 그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아까 그녀가 알몸으로 뛰놀던 정원이 보였다.

         

       “방금……내 모습을 본 거야?”

         

       그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보지는 못합니다. 다만 거기 누군가 있는 거는 알아차렸죠.”

       “정말이야?”

       “네. 물론입니다. 아르노 단장님이라는 건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 알았어요.”

         

       그의 말에 루미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못 봤으면 됐어. 별로……봐서 좋은 거 없는 모습이야.”

       “당신의 본 모습이었나요?”

         

       그의 질문에 루미온은 말문이 딱 막혔다.

       그녀는 이걸 솔직하게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맞아.”

       “왜 감추고 다니는 거죠?”

       “내 모습이 싫으니까.”

       “그런가요? 제가 괜한 걸 물었군요.”

       “됐어. 신경 쓰지 마.”

         

       그녀는 자신이 너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안. 괜히 날카롭게 반응했군.”

       “괜찮아요. 어떤 마음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원더스타인은 그녀에게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루미온은 문뜩 20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마야의 아빠도 저랬다. 자신을 다 받아주는 척, 이해하는 척 행동했다.

       자신은 거기에 껌뻑 넘어가고 말았다. 그의 작은 행동 하나, 미소 하나에 모든 마음을 빼앗겼다. 그녀가 줄 수 있는 모든 건 그에게 주었다.

         

       하지만 그는 마야의 엄마를 택했다.

       목석같고 무감정한 여자가 뭐가 좋다고 그녀에게 고백했다.

         

       루미온은 자신에게 다정하게 구는 원더스타인의 모습에서 그가 떠올랐다.

         

       이리저리 홀리고 다니기는. 너희 같은 남자들은 그게 문제라고.

       화가 울컥 치밀었다.

         

       “위로는 집어치워. 내 모습을 본 적도 없으면서, 네가 뭘 알아?”

         

       그녀는 매몰찬 목소리로 쏘아붙이고는 계단을 쾅쾅 밟고 올라갔다.

       괜한 희망 따위 독일 뿐이었다.

       날개를 잃는 아픔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원더스타인은 아르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의 자신이라면 몰라도 이 모습으로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다고 말하면 설득력이 없었다.

         

       그나저나 얼마나 이상한 모습이길래 저러지?

         

       원작의 아르노도 병적으로 자신을 숨기고 다녔다.

       제자인 마야조차 스승의 얼굴을 본 적 없다고 말할 정도이니.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털고 이만 아르노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그는 오늘 밤 몰래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산책할 겸 내려와 봤다는 것은 사실 거짓말이었다.

         

       그는 품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담긴 병을 꺼냈다.

       별빛을 이용한 마지막 실험.

       내일은 그것을 할 좋은 기회였다.

         

       보석 트릴에 ‘키르쿠스의 눈’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사람들이 마신 키르쿠스가 그것을 통해 공연을 지켜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것은 재밌는 공연을 보면 붉은색의 빛을 발했다.

         

       메인 퀘스트는 그것이 완전한 붉은색이 된 다음 삼키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 보상으로 고유 특성을 조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별빛의 경우는 어떨까?

       과연 내일의 공연에 어떻게 반응할까?

         

       길거리의 하찮은 재주나 싸구려 극장의 연극을 볼 때는 이것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조금 붉은 기가 도나 싶어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바닥의 혈색이 비친 것이었다.

         

       그러나 내일 할 공연은 그가 그동안 봤던 것들과 달랐다.

         

       무려 최고의 극작가가 쓴,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을 바탕으로, 최고의 곡예사들이 펼치는 공연이었다.

       뭔가 반응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가 향하는 곳은 아까까지 그들이 연습하던 무대였다.

       공작이 앉을 자리에 미리 별빛이 담긴 병을 두고 그것이 붉은색으로 변하는지 관찰할 것이다.

         

       무대는 미노바의 침실 바로 위에 있었다.

       그곳으로 다가갈수록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러나 그 사이사이에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그건 저 무식한 소음공해와 다르게 운율을 가진 음악 소리였다. 누군가가 홀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원더스타인은 조심스럽게 홀의 문을 열었다.

       동시에 노랫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소리의 주인은 레이나였다.

       그녀가 잠옷을 입고 무대 위에 걸터앉아 현악기를 뜯고 있었다.

         

       그것은 기타와 비슷해 보였으나 달랐다. 기타의 몸체가 호리병 모양을 그린다면, 그것의 몸체는 완전한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연주를 방해하기 싫었던 그는 객석에 앉아 조용히 그녀가 노래 부르는 것을 감상했다.

       가사를 들어보니 그것은 일종의 자장가였다.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불러주는 것 같은.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그는 크게 박수를 쳤다.

         

       “단장님?”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어, 어떻게?”

       “새벽 산책을 나왔다가 소리가 들려서 와 봤습니니다.”

       “마, 많이 컸나요? 일부러 여기 와서 친 건데…….”

       “아뇨. 이쪽으로 걷다 보니 우연히 들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무대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간간이 그가 요청한 곡을 연주하거나 불렀다.

         

       “이건 벤조라고 어머니가 다루시던 악기예요. 이걸로 자장가를 불러주시곤 했죠.”

         

       원더스타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답답한 일이 생기면 혼자 길거리에 나가 공연을 한다고 했었죠. 오늘도 그래서였나요?”

         

       그녀는 그녀답지 않게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현을 가볍게 뜯었다.

         

       “아뇨. 좀 달라요. 오늘은 좀 두근거려서요.”

       “내일 공연 때문에요?”

       “네. 원래 저는 공연은 그냥 시키니까 한다는 식이었는데, 내일은 정말 너무 기대되어서요.”

       “극본이 마음에 들었나 보군요.”

       “그것도 있지만…….”

         

       그녀는 그의 눈치를 보면서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오늘 오전 연습 들어가기 전에요……. 그……아버지가 저를 불러서 잘했다고 해줬어요. 제가 딸이라서 자랑스럽다고.”

         

       레이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듯 또 웃음을 흘렸다.

         

       “다행이군요.”

         

       원더스타인은 그녀의 기쁨에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동시에 어젯밤에 로드 판타스틱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에게 관객으로서의 감상을 듣고 정리하면서도, 뭔가 떠오르면 갑자기 혼자 중얼거리곤 했다.

       그때, 그는 어느 장면에서 레이나의 연기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다 좋은데, 흠, 다 좋은데……. 뭔가 인정받으려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거슬려. 스승에게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을 텐데……애정결핍 같은…….

         

       그는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딱 다물었다.

         

       원더스타인은 그가 그녀에게 갑자기 다정하게 나간 이유는 짐작이 갔다. 모든 것은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서였다.

         

       실제로 오늘 레이나의 연기는 그가 지적했던 장면에서 확연히 달라졌었다. 그런데 설마 그 뒤에 이런 사정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 이대로, 계속 잘하면 괜찮겠죠? 아버지도 저를……”

         

       그는 차마 그녀에게 부질없는 희망을 품지 말라고 말해줄 수 없었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해줄 게 없었다.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단장님. 예전처럼 그, 그렇게……어리광은 못 피워도……종종 이렇게 찾아봬도 되겠죠?”

       “물론이죠, 언제든지.”

         

       얼마 안 있어 그녀는 다시 잠을 자기 위해 위로 올라갔다.

       그는 산책을 좀 더 하겠다는 핑계로 남았다가, 공작의 자리 아래에 별빛이 담긴 병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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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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