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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212화. 공주와 오크 ( 1 )

       

       

       

       

       

       로라는 한스의 옆에 딱 붙어서 조잘조잘 신나게 떠들었다. 주된 이야기는 한스가 떠난 이후 마을에 어떤 시시콜콜한 사건이 있었는지, 자신이 한스를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따위였다. 

       

       “네가 갑자기 편지 한 통만 남기고 도시로 떠났었잖아? 그래서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특히 노란 지붕에 사는 레일리 기억해? 걔는 울고불고 난리였다니까?”

       “…레일리? 그 머리 짧은 레일리가 나 없어졌다고 울었다고? 설마.”

       

       한스가 로라의 말에 쓰게 웃으며 반박했다. 한스의 기억에서 레일리는 썩 좋은 성격이 아니었다.

       

       “툭하면 나 농사일하는 곳까지 와서 방해하고, 내 옷에 벌레까지 풀던 애가? 설마. 잘못 알았겠지.”

       “어, 음… 벌레? 그, 그래?”

       

       로라가 데굴데굴 눈동자를 굴리며 할 말을 고르다가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그제야 한스의 손을 꼭 붙들고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여태껏 한스에 시선이 팔려서 통 몰랐다.

       

       “어머. 한스, 얘는 누구야? 서… 설마! 따, 따따딸이야?!”

       “뭐? 뭔 소리야, 그건. 얘는 데이지야. 같이 만신ㅡ”

       “안녕하세요. 데이지라고 합니다. 한스 님이랑 같은 집에서 먹고 자는 사이예요.”

       “어?”

       

       한스의 말을 뚝 끊고 들어간 데이지의 인사말. 언뜻 들었을 때 온화한 말투 속에는 싸늘한 칼날을 품은 단검이 숨어 있었다.

       

       “…”

       “…”

       

       여자들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신호가 오간다.

       미세한 눈짓, 옅은 손 떨림, 눈썹의 미묘한 움직임, 그리고 눈빛.

       

       ‘이 꼬마애…’

       ‘기분 나쁜 여자.’

       

       서로 얼마간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서로를 확신했다.

       로라와 데이지의 사이에서 북부의 눈보라보다 차가운 시선이 부딪혔다.

       

       그 사이에 낀 한스가 둘의 표정을 살피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하아…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얼른 가자…”

       “…그래! 내가 다른 사람들도 전부 불러올게! 아마 다들 엄청 반가워하실 거야!”

       “흥…”

       《주, 주인! 같이, 같이 가세나!》

       

       한스가 걸음을 바삐 옮기며 앞서갔고, 두 여인 사이에서 흐르는 숨 막히는 공기에 질색한 유니콘이 부랴부랴 한스의 뒤를 따라갔다.

       

       로라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오겠다고 떠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수십의 사람들이 작은 회관 앞에 모였다.

       한스에게는 익숙한 얼굴이 가득했다.

       

       술을 자주 마시던 길레이 아저씨, 마을에서 제일가는 노처녀 케르시 아줌마, 똑똑한 로버트와 친절한 헤시 누님…

       모두 같은 추억을 공유하는 이들이다.

       

       “한스…? 너, 한스냐?! 이야, 녀석! 살아있었구나! 농부에서 사도가 되다니! 이게 출세가 아니면 뭐냐! 으하하!”

       “세상에! 한스! 이게 얼마 만이야? 편지라도 한 통 쓰지 그랬어. 사도가 됐다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하, 하하. 이게 밖에서 이런저런 일이 좀 많았어요.”

       

       방긋 웃으며 한껏 한스를 환영한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한스에게 반가움을 드러냈다.

       

       활짝 웃는 얼굴들 사이에서 한스가 애타게 찾던 이가 보였다.

       

       “…아버지.”

       

       뙤약볕에 고되게 타들어 간 구릿빛의 얼굴, 깊게 파인 두 눈에는 세월이 한 움큼 흔적을 남겼고, 꾹 다문 입은 마치 돌처럼 굳게 닫혀있다.

       

       그 사내에게는 늙었다, 라는 말보다 세월이 그의 얼굴에 몇 개의 조각을 더했다는 말이 어울렸다. 갖은 역경과 노동의 고됨은 그의 얼굴에 중후한 흔적을 더해주었을 뿐.

       

       한스가 온갖 역경과 고난을 거치며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스의 아버지는 한스의 얼굴과 기묘하리만치 판박이였다.

       

       “한스.”

       

       네 개의 시선이 허공에 얽혔다.

       먼저 눈을 피한 쪽은 한스였다. 인제 와서 무슨 말을 할까. 편지 한 통 남기고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선 것은 자신이지 않았나.

       

       거기에 아버지가 오랜 세월 모아온 돈까지 검을 사는 데 몽땅 써버렸으니, 당장 크게 혼을 내도 이상하지 않다.

       

       아버지가 성큼성큼 한스에게 다가오며 팔을 양옆으로 크게 뻗었다. 이제 농부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해졌건만,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는 까닭은 죄책감이었다.

       

       오랜 세월 땅을 파며 살아온 사내는 아무 말 없이 한스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밥은 먹고 다녔냐?”

       “…네, 네…”

       “다친 곳은 없고?”

       “네…”

       “그래. 그럼 됐다. 해 떨어지기 전에 들어와라. 춥다.”

       

       한스의 등을 몇 번인가 툭툭 두들긴 아버지는 이내 무심하게 뒤돌아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옆에 뿔 달린 말은 무엇이고, 어떻게 만신전의 사도가 된 것인지… 아버지는 무엇 하나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해지기 전에 들어오라고 말했다.

       

       평상시의 아버지다.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고, 투박하기 그지없는 사내.

       

       “역시… 멋있어…”

       “이, 이따가 저희 같이 강가에 바람이라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몇몇 여인들이 우르르 달려갔다.

       이것도 평상시와 같은 풍경이다.

       

       우르르ㅡ

       

       “하ㅡ 한스! 한스가 왔다면서! 어디, 어디야!”

       “우에엥ㅡ! 한스!! 내가, 내가 잘못해써어ㅡ! 우아앙!”

       “한스?! 한스, 한스! 정말 돌아왔구나! 내가, 내가 미안해!! 지금까지 괴롭혀서 미안해!!”

       “후으으… 얘, 얘들이랑 그런 바보 같은 조약을 맺는 게 아니었는데!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우르르 한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평소 그를 자주 괴롭히던 여자 무리다.

       

       이건… 평상시와 크게 달랐다.

       

       조약이라니. 자신을 두고 여자애들끼리 무슨 바보같은 조약이라도 나눴단 말인가?

       

       “다들 떨어져요!”

       

       잔뜩 날 선 데이지의 반응은 마치 바짝 약이 오른 고양이의 그것이었다.

       

       한스는 그제야 고향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조용하고, 평온하고, 매일매일이 똑같이 돌아가는 지루한 시골.

       

       “하하하…”

       

       지금은 오크들에게 점령당했지만, 그의 고향은 변함없이 고향이었다.

       

       

       

       *****

       

       

       

       “다들 먹을 거는 괜찮으세요?”

       “우리는 그럭저럭 먹고 다니고 있지. 병사들이 우리한테도 식량을 배급하고 있거든. 고마우신 분들이야.”

       “다행이네요.”

       

       오크가 마을을 빼곡하게 둘러싼 것치고 마을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한파가 다가오는 것에 대비하여 농작물의 수확을 마친 까닭도 있을 것이고, 제국에서 마을 사람들이 굶지 않도록 신경을 써준 탓도 있었다. 여러모로 제국에게 신세를 졌다. 

       

       마을은 멀쩡하고, 아버지도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신다.

       

       이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한스는 굉장히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누르던 무거운 돌이 사라진 기분.

       

       그렇다면 이제 한스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푸르륵. 주인이여, 정말로… 정말로 저 냄새 나는 덩어리들에게 갈 셈이요? 진심으로?》

       “가야지. 그것 때문에 온 건데.”

       

       대륙의 골칫덩어리, 두 발로 걷는 근육 메뚜기 떼.

       그들을 어떻게든 이 마을에서 몰아내야 할 시간이다.

       

       《히힝…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요? 이 구역질 나는 덩어리들은… 맙소사. 이들은 커다란 불꽃이나 다름없네, 주인이여.》

       “그건 차차 생각해 봐야지. 그런데 불꽃이라니?”

       

       주변에 드러누운 오크들을 바라보는 유니콘의 눈동자에 은은한 별의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끝없는 현기의 편린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유니콘이 은밀한 장막을 들추고 본질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보이는 것은 오크들의 안에서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

       무엇을 위해 타오르고, 또 무엇을 불사르는지 아마 본인들도 알 수 없을 거대한 충동과 본능적인 욕망이다.

       

       《이들의 영혼에는 거대한 불이 타오르고 있네. 본능적인 충동이라고 불러도 좋을 테지. 불이라는 것이 늘상 그렇지만 다루기 나름인 것처럼, 이들은 타오르는 본능을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모르는 거야.》

       “충동과 본능…”

       《가엾은 자들이로고.》

       

       남자에게는 매우 엄격한 유니콘이 오크들을 향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닌바 불의 크기가 작지 않거늘, 어찌하여 먹고 자는 들짐승이 되었을꼬. 주인이여, 내가 이들의 약탈을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덩어리들도 매우 괴로웠을 거라네.》

       

       유니콘의 측은한 눈길이 오크들을 향한다.

       

       《끊임없이 전쟁과 싸움을 부르짖고 음식을 먹는 이유는 아마 이들이 찾아낸 나름의 배출구였겠지. 아마 저들은 자신이 왜 싸우는지도 모를 거야. 삶의 방향을 잃은 자들이지.》

       “네가 말하는 불꽃이라는 게 솔직히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걸 올바르게 분출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거지?”

       《바로 그렇다네.》

       

       옅은 빛무리가 흐르던 유니콘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원래의 눈빛으로 돌아왔다.

       

       《쯧쯧. 딱한 자들.》

       

       유니콘이 오크들을 향해 혀를 끌끌 찼다. 평소의 처녀만 밝히던 모습과는 다른 현기 가득한 유니콘의 모습.

       

       한스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불꽃. 불꽃이라.

       본능적인 충동과 타오르는 본능.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손등을 살살 간지럽히는 듯하다. 마치 개미가 손바닥을 기어다니는 것 같은 간질거림이…

       

       “진짜 개미였네.”

       

       손등을 기어다니는 개미를 툭 쳐서 떨군 한스가 기지개를 쭉 켰다.

       

       여기서 고민만 해 봤자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멍하니 시간만 보내기에는 흐르는 시간이 아깝다.

       

       “뭐라도 해봐야지.”

       

       데이지는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집에다 맡겨뒀으니 거리낄 것도 없겠다. 한스는 발 닿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ㅡ

       

       “…그런데 뭘 어떻게 하지.”

       

       자는 오크를 깨워서 상담이라도 해봐야 하나?

       

       

       

       

       

       *****

       

       

       

       

       

       균일한 패턴으로 가공된 흑요석은 마치 레이저로 다듬은 다이아몬드의 모양이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동일한 모양의 반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 “히, 히에□엑… 내 보, 보¤서억… 흐에엥.”

       

       보석을 빼앗긴 춘식이가 신전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었지만 사뿐히 무시해 준다. 이제 이걸로 장신구를 만들 차례다.

       

       장신구 리스트에서 해금이 가능한 물건은 아쉽게도 딱 하나뿐, 그것도 티아라 종류였다.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해금하고 마저 장신구를 제작한다.

       

       띠링ㅡ!

       

       《’가공된 흑요석’을 사용하여 티아라를 제작합니다.》

       

       화면에서 가공된 흑요성을 중심으로 빛이 뭉치더니, 이내 포켓몬이 진화하는 것마냥 환한 빛을 내뿜었다.

       

       빠밤ㅡ!

       

       《’가공된 흑요석’을 사용하여 ‘이름 없는 공주의 티아라’를 제작하였습니다!》

       

       완성된 티아라는 전체적으로 하얀빛이었다. 까만 흑요석은 티아라의 가운데 장식되어 이질적인 존재감을 뽐냈고, 이름에 들어가는 공주처럼 소녀다운 면모의 꽃과 새 따위가 세밀하게 양각되어 있었다.

       

       솔직히 티아라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티아라를 차고 싸우는 모습은 애니메이션에나 나오는 공주기사처럼 이질적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싸우는데 티아라 차고 싸우는 건 아무리 판타지여도 좀…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럴 거면 아예 드레스도 입고 싸우지.

       

       기왕이면 팔찌나 반지, 목걸이처럼 무난한 게 제일 좋았을텐데.

       

       “일단 옵션이…”

       

       조금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옵션만 좋으면 전부 용서된다.

       

       《이름 없는 공주의 티아라 : 착용자의 품위가 상승합니다.》

       

       “이런 씨.”

       

       보자마자 쌍욕 나오게 만드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치형 무기 만들기의 두 번째 임티가 나왔습니다!! 이모티콘 상점에서 귀욤뽀짝한 임티들을 만나보세요!!!☆☆☆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스…!! 그의 끝은 어디인가…!! 두렵기만 하군요…!!! 무섭다 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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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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