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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폭풍전야.

     바르셀 후작령과 지브롤터 백작령 사이의 관계는 그야말로 폭풍전야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영지전이 열린 건 아니다.

     이게 이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신성한 귀족의 결투인 만큼, 전통과 예법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하는 것이 순리.

     갑자기 어느 날 병사들을 끌고 들어가서 영지전을 펼친다?

     

     안 된다.

     

     ‘모 월 모 일, 당신의 영지에 처들어가겠습니다. 그런 문구를 써서 보내야 그 때부터 영지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거지.’

     

     이른바, ‘선전포고’를 해야 한다.

     선전포고를 하기에 앞서 미리 왕국에 ‘이러이러한 이유로 영지전을 선포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왕국에서는 최대한 중재를 서려고 한다.

     하지만 일단 그 중재는 없고, 중재를 나설 재상-윈체스터 대공은 중립적인 위치에 서는 걸로 누군가의 편을 확실하게 들었다.

     지브롤터 백작령으로.

     그래도 왕국 내부의 전투는 좋지 않으니 어떻게 생각을 바꾸지 않겠느냐,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대공은 지브롤터의 편을 들었다.

     생각해보라.

     

     아무리 병사들에게 실전 장비를 지급하고 병사 운용이 심각해지며, 병사들에게 ‘유서’를 준비하라고 한다고 한들.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이 있는데, 누가 영지전을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건 하나 뿐이다.

     ‘백작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크림슨 지브롤터는 본진을 지킬 것이다.

     정확히는 샤를로트 백작부인의 곁을 지킬 것이다.

     그렇다면 적-바르셀 후작령까지 가서 후작성의 성벽 정문을 부수고 내성으로 들어가 후작성의 깃발을 꺾어버리고 거기다가 지브롤터 백작령의 깃발을 꽂을 사람이 필요하다.

     누가 할 것인가?

     거기에서 병사들이 긴장하는 것.

     아무리 지브롤터에 나름 뛰어난 기사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무래도 ‘왕국 제1 기사단’을 직접 상대하는 건 꺼려하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보니, 모르면 모를수록 영지전을 꺼리게 된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영지전이라는 전쟁 자체를 꺼리는 게 맞는 말이지만, 여론이라는 게 참으로 무섭다.

     “우리 그레이 도련님이 글쎄, 암살을 당할 뻔 했다는군.”

     “뭐? 도련님이? 아니, 어쩌다가?”

     거리에 몰래 나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백작령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변장을 하고 거리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귀를 쫑긋 세운다.

     “모르지. 그 뭐냐. 경룡대회에서 국왕 전하 넘기고 우승한 것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 건가…. 역시, 그렇게 된 건가.”

     “샤를로트 부인의 아들이었던 것보다, 크림슨 지브롤터 변경백의 아들이라는 게 이제는 눈에 더 들어오게 된 거지.”

     “쯧쯧. 아직도 그 양반은 자기가 부인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치졸하게 그 자식에게 화를 내는 걸로도 모자라, 암살까지 하려고 한다니.”

     여론 하나.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랬지만, 8년 전에 주먹을 꽂을 게 아니라 모가지를 잘라버렸어야 했어.”

     백작령 내부에는 무능왕에 대한 여론이 생각보다 더 심하다.

     제국정치공학에서 주로 활용되는 지지율이라는 걸 조사한다면, 통계적으로 약 4% 정도의 지지율을 보일 것이다.

     “이보게. 그런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왜? 자네도 왕을 지지하는 자인가?”

     “아니. 국왕이 죽으면 재앙이 찾아온다고. 황금룡의 재앙이.”

     “쓰읍….”

     여기가 백작령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들은 8년 전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아버지에게 얼굴에 주먹을 얻어맞고 부리나케 도망갔던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드디어 내전이 일어나는 건가….”

     “그나마 다행이지. 바르셀 후작령을 상대로 하는 거라면, 일단은 그냥 영지전 선에서 끝나는 거잖나.”

     이미, 백작령 사람들 대부분 전쟁을 기정사실로 생각하고 있다.

     “오래 참으셨지. 음.”

     

     제국의 ‘시민’들이라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반대 시위도 하고 성명을 펼치기도 하겠지만, 제국의 문화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이곳의 사람들은 지브롤터 백작령의 ‘영지민’이다.

     “예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농담을 한 적이 있으셨는데. 만일 노스트럼이 잘못되는 날이 온다면, 그 때 노스트럼을 단죄하고 그 끝을 맺는 건 지브롤터가 될 거라고.”

     “허허, 그러면 그 때부터는 지브롤터 왕국인가?”

     “왕국? 글쎄. 백작님이 그거 귀찮아서 하실까?”

     “자식에게 왕권을 물려줘서 짬때리면….”

     씁.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에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지만, 나는 평정을 유지했다.

     지금 대화를 나눈 이들은 영지에서 태어나 영지에서 나이를 먹은 상대적 노인의 이야기.

     

     전쟁이 일어나도 끌려가지 않을 이들이며,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는 상황이 있다면 바르셀 후작령에서 별동대를 보내서 이곳 백작령의 심장부를 타격할 때.

     상대적으로 젊은 층은 어떠한가?

     “젠장, 나 진짜 끌려가는 거야?”

     “끌려간다니. 영지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 의무가 왜 내 대에, 그것도 왕국을 상대로 하는 거냐고, 젠장.”

     “백작께서 영지전을 생각하고 계시니, 당연히 영지민으로서 해야 할 일 아니겠냐.”

     당연히 걱정한다.

     지금까지 훈련을 해온 병사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직접 칼 들고 적과 싸우러 간다는 것 자체가 걱정되고 두렵다.

     까짓 거 한 번 해보지, 뭐.

     그런 생각을 하는 건 극히 일부.

     ‘선전을 안 해서 그래.’

     제국처럼 영지의 사람들이 나와서 광장에 사람들을 불러모아 ‘우리가 바르셀 후작가를 처리해야 하는 50가지 이유’를 장황하게 설파한다면.

     ‘내가 나선다면?’

     합스베르크 황제의 연설문에서 적당한 문구를 가져온 다음, 보육원의 고아들을 이용하여 바람잡이를 심어넣고 전쟁의 열기를 일으킨다면.

     -협곡! 단결! 타도 노스트럼! 타도 구시대! 우리는 제국의 일원이 되어, 낡고 병든 것을 없애고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것이다!

     

     낫과 망치를 들게 할 정도로 군중의 심리를 끌어올리면 다들 협곡에 목숨을 바치는 최정예병이 탄생할 것이다.

     뭐, 다른 말 할 필요 없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은 더 이상 우리의 국왕이 아니다!!

     -와아아ㅡㅡㅡㅡ!!

     “…….”

     과거 노스트럼을 향해 진군했을 때 선봉에서 했던 말을 그대로 읊기만 하더라도, 영지민 모두가 승전을 바라는 이들이 될 것이다.

     “하 씨. 싸운다고 하면 나서기야 하겠는데, 진짜 가기 싫다….”

     “죽는 건, 싫은데. 아직 먹어보지 못한 제국 과자도 그렇고….”

     “과자 때문에 그런 이야기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뭐래. 나중에 내가 과자점 차리면 너한테는 절대로 안 팔거다, 인간아.”

     그래도, 역시 싸우다가 죽는 건 싫다.

     대의명분과 의무감을 이야기하기에는, 지브롤터 백작령의 사람들도 어느덧 ‘제국화’되었다.

     이제는 사실상 지브롤터 자치주, 혹은 지브롤터 ‘시’라는 도시의 시민이 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만큼.

     “야. 그런데, 그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이번에 영지전 일어나면 말이야….”

     나는 이번 영지전을 이끄는 ‘책임자’로서,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따로 징집하거나 그러지 않고, 지브롤터 백작령 안에 있는 기사단만 동원해서 영지전을 펼친다고 하던데?”

     “……?”

     “소문이야. 소문. 캐롤라인 성 안에서 근무하는 내 여동생이 들었대. 그레이 도련님이 동생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나봐.”

     “쉿. 조용.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큰일 난다고!”

     “무능왕 뒤지라는 소리 할 때보다 더 조심하라는 것 같은 건 뭐냐.”

     “여기는 지브롤터고, 그건 무능왕이잖아!”

     “그건 그렇지.”

     소문을 퍼뜨리라고 적당히 떠들고 다녔더니, 생각보다 퍼지지 않은 건 아무래도 지브롤터가 가진 이미지 때문이리라.

     “그래도 이 정도는 이야기해도 괜찮지 않겠어? 만일 그렇게 된다면….”

     “…기사단만으로 이길 수 있는 건가? 아무리 숫자를 늘렸다고는 하지만….”

     “모르지. 기사단 내부에 또다른 강자가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을 지도.”

     “…이번을 위해서?”

     “어쩌면, 저기 노스트럼을 향하는 날을 위해서라도.”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는 해둬야겠어.’

     가장 좋은 건 전쟁을 겪게 하지 않는 거지만, 노스트럼이 이 지경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실전훈련의 부족.

     아무리 영지민에서 시민으로 의식이 전환되었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생각이 있다면 그에 맞게 대응해야 한다.

     ‘전장에 끌고는 가되, 죽게 하지는 않게 해주마.’

     언젠가.

     진짜 전쟁이 일어났을 때,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야. 그래도.”

     결코.

     “마스터가 있는데, 우리가 이기겠지?”

     지브롤터의 안에 있는 노스트럼의 흔적이 꼬와서 그런 건 결코 아니다.

     저건, 우리 안에 있는 없애야 할 폐단이자 악습이니까.

     * * *

     그 시각. 바르셀 후작령, 후작성 [골든 캐슬].

     “바르셀 후작. 명심하시오. 그대는 바르셀 후작이라는 것을.”

     “아, 크흠. 예.”

     제로스 바르셀을 똑 닮은 남자 하나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반듯하게 선다.

     “그대가 선대의 사생아이기는 하지만, 바르셀 후작과 닮은 것도 사실.”

     새로운 바르셀 후작의 앞, 어딘가 머리칼에 군청색 기운이 느껴지는 안경 낀 청년이 음험한 얼굴로 바르셀 후작의 의복을 정돈하며 밖을 가리켰다. 

     “이전에 살아가던 이는 존재하지 않소. 그대는 왕국 제1 기사단의 단장이며, 죽었던 적은 없소. 그레이 지브롤터를 습격한 건 제국의 그림자들….”

     “다, 당신 같은?”

     “…….”

     “히, 히익….”

     바르셀 후작은 자신의 넥타이를 꽉 조이는 군청색 청년의 행동에 사색이 되었으나, 청년은 넥타이를 가볍게 토닥이며 뒤로 물러났다.

     “제국의 그림자가 이번 내전을 돕는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암, 그렇고 말고.”

     끼이익.

     “왕국의 일에 제국이 끼어드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렇지? 흐흐.”

     집무실 문이 열리며, 화려한 가운 하나만 입은 금발적안의 남자-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제국산 와인을 병째로 들이키며 들어왔다.

     “이야, 선대 후작이 아주 그냥 새끼는 여기저기 펼쳐놨군.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전하.”

     “왜? 아, 이건 저기 대ㅡ단하신 테르시안 황제를 비꼬는 말이었나? 흐흐.”

     “그러는 전하야말로 왜 여기저기 씨를 뿌리지 않았던 겁니까?”

     “허, 허억…!”

     군청색 청년의 말에 바르셀 후작이 사색이 되었으나, 세인트 지오는 키득거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드래곤의 뜻을 어찌 범부가 알리오.”

     “…….”

     “살살 긁어내서 어떻게 알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왜? 바로 네 아빠한테 가서 쫄래쫄래 이르게?”

     “…….”

     “그러시든지. 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세인트 지오는 와인병을 빙글빙글 돌리며 이죽거렸다.

     “나는 그냥 장소만 마련해줄 뿐이다.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해라. 그래야 너희도 남의 자식한테 자리 안 빼앗길 거 아니냐. 응?”

     “…왕국 내전을 외부의 힘을 이용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거, 왕의 자질 맞소?”

     “그런 왕에게 빌붙어서 어떻게 아빠한테 인정받고 싶어하는 꼬꼬마놈들이. 흐흐. 알아서 해봐라. 국왕이 여기에 있는데 선전포고를 하러 오는 자가 있다면….”

     스슥.

     

     “반역으로 몰아버려서, 그걸로 여기 모여있는 귀족들을 전부 데리고 전쟁이랍시고-”

     “저, 전하!!”

     문이 벌컥 열리며, 안경을 낀 대신 하나가 다급한 얼굴로 방 안에 들어왔다.

     “전령입니다!”

     “전령? 드디어 왔군. 선전포고를 하러 온 거라면, 목을 잘라서 돌려보낼….” 

     “마스터!!”

     “…….”

     “멘테 리프트 자작이 선전포고문을 들고 왔…전하!!”

     세인트 지오는 술병을 챙겨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아….”

     “…바르셀 후작.”

     군청색 머리칼의 청년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며, 부서진 성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민트색 머리칼 여인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선전포고, 받을 준비 하시오.”

     “하, 하지만….”

     “실무는 우리가 다 처리할테니, 그대는 그저 입만 뻥긋거리면 되오. 어차피….”

     청년은 자신의 쇄골 근처를 만지작거리며 씩 웃었다.

     “피 튀기는 싸움은, 우리가 전문이거든.”

     쇄골의 안 쪽.

     “증명도, 우리의 몫이고. 누가 진짜 아들인지.”

     불에 지져진 것 같은 상처의 아래에는 희미하게 ’03’이라는 숫자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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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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