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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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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 파악을 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어린 리안이 학대를 당하던 고아원의 고아 중 한명이 되어버린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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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공원에 갔다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누군가처럼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지금은 꽤 진정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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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아 -.”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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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치를 보며 작게 입을 벌리는 아기 새 아니, 빼빼 마른 리안을 지켜줘야 했기에 혼란에 빠질 틈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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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깨닫게 된 사실이 세 가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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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는 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리안을 끌어안으며 보호하는 노아를 발로 차려던 원장이 돌을 발로 찬 것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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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가락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니 당분간은 안전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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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빽빽 소리를 지르는 원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에 실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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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급차가 외진 곳에 자리한 고아원에 도착하자 진한 화장을 한 여성과 목소리가 뾰족한 빼빼 마른 여성이 아이들을 거칠게 방에 밀어 넣어 가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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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걸 들키면 일이 커질 수 있기에 가둬둔 것이지만 거기까진 노아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세계는 인권이랄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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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가 깨달은 두 번째 사실은 이 세계가 그녀가 살던 세계와 전혀 다른 곳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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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흘러가는 영상을 감상하듯 무력하게 리안이 학대당하는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을 때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긴 했지만, 창살이 박혀있는 창문 틈으로 보인 하얀 철마차를 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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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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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는 생각을 정리하며 오물오물 귀엽게 음식을 씹는 리안에게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그러자 리안이 흠칫 몸을 떨다가 이내 고개를 작게 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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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내가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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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런 리안의 옆으로 거친 손이 튀어나와 물컵을 낚아채려 했다. 노아는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어린아이의 손등을 거칠게 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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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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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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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컵을 빼앗으려던 아이는 기겁하는 소리를 내며 후다닥 뒤로 물러나 버렸다. 아이의 눈동자에 두려움과 분노, 오기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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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아이 또한 리안이나 노아처럼 똑같이 학대받는 아이였지만, 성격이 거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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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 자란 어른이 폭력으로 고아원 아이들을 지배하는 원장뿐이니 이는 어찌 보면 정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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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보고 배운 대로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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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때려!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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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억울함을 폭력으로 해소하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리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이는 영악하게도 더 약하고 만만한 존재를 리안을 통해 제힘을 내보이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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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힘 조절하지 않은 우악스러운 손이 리안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려 하자 리안이 익숙하게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고통을 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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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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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대신 들려온 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깨끗한 소리였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노아가 굳은 표정으로 리안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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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조심조심 그녀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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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악,아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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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지근한 물이 담겨있던 컵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아이는 이마를 붙잡은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노아가 던진 컵이 이마에 명중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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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씹어 삼킬 듯 바라보며 슬그머니 젓가락을 쥐는 노아의 모습에 리안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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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벌하게 번뜩이던 눈이 귀엽게 동그랗게 떠지더니 이내 부드럽게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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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제 앞에서만 부드럽게 풀리는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은데 혀가 천장에 달라붙은 듯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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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목말라서 그래? 미안, 금방 다시 떠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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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새로운 컵에 물을 담아오기 위해 어린아이를 위한 작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종종 찾아오는 후원자들에게 돈을 뜯기 위해 가구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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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노아가 제 곁을 떠나려 하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솜털 같은 주먹이 안절부절못하며 제 옷을 잡고 죽죽 늘어졌다. 다른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노아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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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고아 중 한명에게 빙의된 게 아니라, 나이가 어려진 상태로 고아들과 겉모습만 비슷해졌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키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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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덕분에 노아는 정수리를 훤히 내보이며 우물쭈물거리는 아기 천사 아니, 리안을 시선 가득 담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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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짝 마른 몸이나 몸 여기저기에 남은 상처가 그녀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지만, 그렇다고 귀여움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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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망졸망한 눈으로 애처롭게 자신을 몰래 올려다보며 어미 쫓는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는 리안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더러워졌던 기분이 빠르게 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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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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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무룩하던 표정이 만개한 꽃처럼 피어났다. 노아는 그런 리안과 손을 꼭 잡은 채 물을 뜨고자 움직였다. 그런 두사람의 뒤로 불쾌한 시선이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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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는 불쾌한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리안에게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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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깨달은 세 번째 사실은, 리안은 어째서인지 고아원 아이들에게까지 미움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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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제 손에 들어온 앙증맞은 손을 힘주어 잡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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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자신이 어려진 건지, 이상한 세계로 넘어오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눈앞에 어린아이에게 리안의 영혼이 느껴지는 이상 그녀는 끝까지 그를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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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맹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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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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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딸,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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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고릴라나 다름없는 체형을 가진 남자가 느끼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모습에 고기 한 점을 입에 밀어 넣으며 미간을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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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말을 무시하고 식사를 이어가자 제스를 딸이라고 칭한 남자가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울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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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헝… 이젠 아빠랑 대화도 안 해주고… 여보오…! 우리 딸이!”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다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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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한 붉은 머리의 여자가 맨손으로 팔팔 끓는 냄비를 들고 왔다. 귀여운 고양이상에 얼굴은 딱 봐도 제스를 빼닮아 있었다. 누구의 유전자가 승리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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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우리 딸도 사춘기가 올 때가 됐지.”
    “사,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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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제스의 모습이나, “아빠 빨래랑 내 빨래 같이 돌리지 말라고 했잖아! 정말 싫어! 냄새나!”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상상했다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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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뭘 그런 거로 충격을 받고 그래? 슬슬 남자친구도 사귈 때인데.”
    “나, 나, 남자친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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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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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정말 고릴라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저 상을 가볍게 두드렸을 뿐인데, 테이블이 붕 떠올랐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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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사랑하는 딸… 나, 남자친구 같은 거 없..지? 그치? 에이 벌써 그런 죽여버릴… 망할… 존재가 생길 리 없잖아. 하핫! 아빠가 농담 한번 해본 -…”
    “있어.”
    “어..?”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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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어느새 비어버린 밥그릇 옆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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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 있어!”
    “나, 나..나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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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바보는 그대로 고장 나 버렸고, 감탄을 터뜨린 엄마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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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 누군데? 잘생겼어? 응?”
    “응! 그럼 남편 보러 가야 하니까 이만 갈게!”
    “자,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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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가 힘없이 손을 들었을 땐 순식간에 가방을 챙겨 든 제스가 집 밖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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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 띠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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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닫히는 소리가 천둥같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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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따알! 설명!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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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쫓아왔지만 제스에겐 제 반려를 한 시라도 빨리 두 눈에 담는 게 더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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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같아선 종일 붙어있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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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스는 자전거보다 빠르게 달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친구와 함께 경주하듯 달려 나가던 남학생 둘이 빠르게 멀어지는 제스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넘어져 병원 신세를 지는 일까지 생겼지만, 제스가 알아야 하는 사실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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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머릿속에 리안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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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가까워지자 학생들의 모습이 점차 늘어갔다. 학생들 사이사이를 달려가자 거친 바람에 넘어지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 제스는 혀를 차며 가볍게 뛰어올라 주택 담벼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담벼락이 없을 땐 층이 낮은 천장을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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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길고양이보다 더 빠른 움직임에 학생들 대다수는 헛것을 봤다고 착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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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몇 학생은 휴대폰을 들어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보려 했지만 그들의 휴대폰엔 잔상조차 남지 못했다. 누군가는 귀신이 분명하다며 소리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처럼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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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굣길이 그녀로 인해 시끌시끌하든 말든 그녀는 빠르게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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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초록색 철창을 넘어 학교 내부에 들어선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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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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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건 이층에 자리한 악기들을 보관하는 교실 앞이었다. 교실이  복도 끝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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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말해 보라고.”
    “입이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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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창문 밖으로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애초 목적지는 소리가 들린 학교 뒤쪽이었기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드드륵 연 후 아래로 뛰어내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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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새끼익?!”
    “뭐,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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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에게 시비를 걸던 양아치의 머리 위로 정의가 쏟아.. 아니, 제스가 떨어졌다. 양아치를 쿠션 삼아 가뿐하게 착지한 제스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리안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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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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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파악을 하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어린 리안이 학대를 당하던 고아원의 고아 중 한명이 되어버린 듯했다.

놀이공원에 갔다가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누군가처럼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지만, 지금은 꽤 진정한 상태였다.

“자, 아 -.”

“아아..”

눈치를 보며 작게 입을 벌리는 아기 새 아니, 빼빼 마른 리안을 지켜줘야 했기에 혼란에 빠질 틈이 없었다.

이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지내게 된 이후로 깨닫게 된 사실이 세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신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던 보이지 않는 힘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덕에 리안을 끌어안으며 보호하는 노아를 발로 차려던 원장이 돌을 발로 찬 것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며 쓰러졌다.

발가락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니 당분간은 안전할 터였다.

빽빽 소리를 지르는 원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에 실려 사라졌다.

구급차가 외진 곳에 자리한 고아원에 도착하자 진한 화장을 한 여성과 목소리가 뾰족한 빼빼 마른 여성이 아이들을 거칠게 방에 밀어 넣어 가둬버렸다.

아이들이 학대당하는 걸 들키면 일이 커질 수 있기에 가둬둔 것이지만 거기까진 노아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의 세계는 인권이랄게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깨달은 두 번째 사실은 이 세계가 그녀가 살던 세계와 전혀 다른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저 흘러가는 영상을 감상하듯 무력하게 리안이 학대당하는 장면을 바라보기만 했을 때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긴 했지만, 창살이 박혀있는 창문 틈으로 보인 하얀 철마차를 보고 나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물도 마시고.”

노아는 생각을 정리하며 오물오물 귀엽게 음식을 씹는 리안에게 미지근한 물이 담긴 컵을 건넸다. 그러자 리안이 흠칫 몸을 떨다가 이내 고개를 작게 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내가 먹는다?”

그런 리안의 옆으로 거친 손이 튀어나와 물컵을 낚아채려 했다. 노아는 반사적으로 다가오는 어린아이의 손등을 거칠게 쳐버렸다.

짝!

“아악!”

물컵을 빼앗으려던 아이는 기겁하는 소리를 내며 후다닥 뒤로 물러나 버렸다. 아이의 눈동자에 두려움과 분노, 오기가 차올랐다.

그 아이 또한 리안이나 노아처럼 똑같이 학대받는 아이였지만, 성격이 거칠었다.

보고 자란 어른이 폭력으로 고아원 아이들을 지배하는 원장뿐이니 이는 어찌 보면 정해진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는 보고 배운 대로 주먹을 치켜들며 말했다.

“왜 때려!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제 억울함을 폭력으로 해소하기 위해 가까이에 있는 리안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아이는 영악하게도 더 약하고 만만한 존재를 리안을 통해 제힘을 내보이려 했다.

힘 조절하지 않은 우악스러운 손이 리안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움켜쥐려 하자 리안이 익숙하게 눈을 질끈 감으며 다가올 고통을 대비했다.

따악!

고통 대신 들려온 건 시원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깨끗한 소리였다. 꾹 감고 있던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노아가 굳은 표정으로 리안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리안은 조심조심 그녀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악,아으윽!”

미지근한 물이 담겨있던 컵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아이는 이마를 붙잡은 채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노아가 던진 컵이 이마에 명중한 것 같았다.

아이를 씹어 삼킬 듯 바라보며 슬그머니 젓가락을 쥐는 노아의 모습에 리안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살벌하게 번뜩이던 눈이 귀엽게 동그랗게 떠지더니 이내 부드럽게 휘었다.

리안은 제 앞에서만 부드럽게 풀리는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이 좋으면서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은데 혀가 천장에 달라붙은 듯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 목말라서 그래? 미안, 금방 다시 떠줄게.”

그녀는 새로운 컵에 물을 담아오기 위해 어린아이를 위한 작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종종 찾아오는 후원자들에게 돈을 뜯기 위해 가구들은 대체로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리안은 노아가 제 곁을 떠나려 하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솜털 같은 주먹이 안절부절못하며 제 옷을 잡고 죽죽 늘어졌다. 다른 손으로는 필사적으로 노아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노아는 고아 중 한명에게 빙의된 게 아니라, 나이가 어려진 상태로 고아들과 겉모습만 비슷해졌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키가 컸다.

그 덕분에 노아는 정수리를 훤히 내보이며 우물쭈물거리는 아기 천사 아니, 리안을 시선 가득 담을 수 있었다.

바짝 마른 몸이나 몸 여기저기에 남은 상처가 그녀의 가슴을 찢어지게 했지만, 그렇다고 귀여움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올망졸망한 눈으로 애처롭게 자신을 몰래 올려다보며 어미 쫓는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는 리안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더러워졌던 기분이 빠르게 정화되었다.

“같이 갈까?”

“…!”

시무룩하던 표정이 만개한 꽃처럼 피어났다. 노아는 그런 리안과 손을 꼭 잡은 채 물을 뜨고자 움직였다. 그런 두사람의 뒤로 불쾌한 시선이 따라왔다.

정확히는 불쾌한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리안에게 쏟아졌다.

…그녀가 깨달은 세 번째 사실은, 리안은 어째서인지 고아원 아이들에게까지 미움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노아는 제 손에 들어온 앙증맞은 손을 힘주어 잡으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어째서 자신이 어려진 건지, 이상한 세계로 넘어오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눈앞에 어린아이에게 리안의 영혼이 느껴지는 이상 그녀는 끝까지 그를 지킬 것이다.

그녀의 맹세였다.

***

“우리 딸, 오늘따라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제스는 고릴라나 다름없는 체형을 가진 남자가 느끼한 표정으로 말을 거는 모습에 고기 한 점을 입에 밀어 넣으며 미간을 구겼다.

그의 말을 무시하고 식사를 이어가자 제스를 딸이라고 칭한 남자가 잔뜩 충격받은 얼굴로 울먹거렸다.

“허허헝… 이젠 아빠랑 대화도 안 해주고… 여보오…! 우리 딸이!”

“그렇게 크게 말 안 해도 다 들려.”

분홍색 레이스가 달린 앞치마를 한 붉은 머리의 여자가 맨손으로 팔팔 끓는 냄비를 들고 왔다. 귀여운 고양이상에 얼굴은 딱 봐도 제스를 빼닮아 있었다. 누구의 유전자가 승리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슬슬 우리 딸도 사춘기가 올 때가 됐지.”

“사, 사춘기..?”

남자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제스의 모습이나, “아빠 빨래랑 내 빨래 같이 돌리지 말라고 했잖아! 정말 싫어! 냄새나!”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상상했다가 하얗게 질려버렸다.

“뭘 그런 거로 충격을 받고 그래? 슬슬 남자친구도 사귈 때인데.”

“나, 나, 남자친구 후?!”

쾅!

남자는 정말 고릴라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저 상을 가볍게 두드렸을 뿐인데, 테이블이 붕 떠올랐다가 제자리를 찾았다.

“사, 사랑하는 딸… 나, 남자친구 같은 거 없..지? 그치? 에이 벌써 그런 죽여버릴… 망할… 존재가 생길 리 없잖아. 하핫! 아빠가 농담 한번 해본 -…”

“있어.”

“어..?”

“어머.”

제스는 어느새 비어버린 밥그릇 옆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 있어!”

“나, 나..나암..?”

딸바보는 그대로 고장 나 버렸고, 감탄을 터뜨린 엄마는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다.

“누구? 누군데? 잘생겼어? 응?”

“응! 그럼 남편 보러 가야 하니까 이만 갈게!”

“자, 잠깐…”

남자가 힘없이 손을 들었을 땐 순식간에 가방을 챙겨 든 제스가 집 밖으로 빠져나간 뒤였다.

탁, 띠리릭.

문이 닫히는 소리가 천둥같이 울려 퍼졌다.

“딸,따알! 설명! 설명을!”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쫓아왔지만 제스에겐 제 반려를 한 시라도 빨리 두 눈에 담는 게 더 급했다.

‘마음 같아선 종일 붙어있고 싶은데…’

제스는 자전거보다 빠르게 달리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친구와 함께 경주하듯 달려 나가던 남학생 둘이 빠르게 멀어지는 제스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넘어져 병원 신세를 지는 일까지 생겼지만, 제스가 알아야 하는 사실은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리안으로 가득했다.

학교에 가까워지자 학생들의 모습이 점차 늘어갔다. 학생들 사이사이를 달려가자 거친 바람에 넘어지는 아이들까지 생겨났다. 제스는 혀를 차며 가볍게 뛰어올라 주택 담벼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담벼락이 없을 땐 층이 낮은 천장을 뛰어다녔다.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길고양이보다 더 빠른 움직임에 학생들 대다수는 헛것을 봤다고 착각했다.

몇몇 학생은 휴대폰을 들어 영상이나 사진을 찍어보려 했지만 그들의 휴대폰엔 잔상조차 남지 못했다. 누군가는 귀신이 분명하다며 소리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다른 사람처럼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등굣길이 그녀로 인해 시끌시끌하든 말든 그녀는 빠르게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순식간에 초록색 철창을 넘어 학교 내부에 들어선 그녀는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그녀의 발걸음이 멈춘 건 이층에 자리한 악기들을 보관하는 교실 앞이었다. 교실이  복도 끝에 자리하고 있어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장소였다.

“야, 말해 보라고.”

“입이 없냐?”

그때, 창문 밖으로 살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애초 목적지는 소리가 들린 학교 뒤쪽이었기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창문을 드드륵 연 후 아래로 뛰어내려 버렸다.

“이 새끼익?!”

“뭐,뭐야?!”

리안에게 시비를 걸던 양아치의 머리 위로 정의가 쏟아.. 아니, 제스가 떨어졌다. 양아치를 쿠션 삼아 가뿐하게 착지한 제스는 당황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리안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좋은 아침!”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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