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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비난을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샜다.

   

   소감이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상대가 허접이란 이야기를 한 거니까.

   

   1왕자 역시 놀란 기색…

   

   아니 얘 표정이 왜 이래. 뭔가 짐작을 하고 음모를 꾸민 게 아니었어?

   

   그냥 나한테 음침 외톨이라 그러는 미친년이니 소감을 말하라 그러면 문제를 일으키겠거니 생각하고 냅다 지른 거였단 말야?!

   

   그런데 처음부터 지랄을 하니 놀란 거고?!

   

   억울해. 차라리 노리고 한 거였으면 1왕자 개새끼. 하고 넘어가면 그만인데 대충 던진 거에 물려줬단 걸 알게 되니까 복잡적으로 열이 받는다고!

   

   <…여아야.>

   ‘왜요. 할아버지.’

   <방금 전에 그대의 입으로 1왕자라 하지 않았느냐?>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 메스가키 스킬의 번역이 얼마나 철저한데. 1왕자라고 불러줬을 리가 없잖아요.

   

   아무리 늙고 낡았다지만 이것도 잘못 들으면 어떡해요 할배.

   

   봐요. 로그 보면 음침 외톨이 왕자라고.

   

   …어.

   

   어?!

   

   했네?!

   

   1왕자라고 그랬잖아 방금!

   

   뭐지?! 뭐야?! 내 입에서 1왕자라는 말이 왜 튀어 나온 거야?!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거의 1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메스가키 스킬에 고통 받아온 나다.

   

   이 스킬이 타인의 명칭을 바꾸는 경우는 있어도 누군가를 평범하게 부르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슨 변수가 생긴 거지? 무엇 때문에 메스가키 스킬이 평범한 호칭을 허락한 거지?

   

   이를 고민하는 동안에서 주변에서 비난이 쏟아졌지만 난 그를 흘려들었다.

   

   그보다 이 쪽이 중요해. 왜 1왕자를 평범하게 불렀는지 알 수 있다면 메스가키 스킬의 주박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단 말이야!

   

   나도 내 친구들을 이름으로 좀 불러 보자! 어?!

   

   “푸흐하하!”

   

   모든 것을 무시하던 나였지만 내 앞에서 들려온 웃음소리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1왕자가 웃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경악하던 그가 말이다.

   

   “재능 있는 자의 거만함인가? 좋아. 승자에게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그대가 언제까지 승자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까지 사람들이 날 비난하던 이유는 1왕자에 대한 무례 때문.

   

   그가 이 무례를 자격 있는 거만함이라 인정해버린 이상 더 이상 비난을 해봐야 1왕자의 심기를 거스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빠르게 잡아챈 이들은 날 비난하기보다 1왕자의 자비로움을 칭송하는 쪽을 택했다.

   

   <빚이다. 루시 알른.>

   

   그 때에 머릿속에 사람의 음성이 울렸다.

   

   할배의 것이 아닌 타인의 목소리가.

   

   깜짝 놀라 고갤 들었더니 1왕자가 그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시선으로 날 흘겨보고 있었다.

   

   <후일 청구하도록 하지.>

   

   …네? 청구요? 저한테요?

   

   아니 그냥 같이 비난 하시죠?!

   

   저 빚지기 싫은데요?!

   

   당신한테 무언갈 청구 당하고 싶지 않다니까요?!

   

   걍 이 썅년이! 라고 외쳐주시면 안 될까요?!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 말은 1왕자에게 등에 닿지 못했다.

   

   *

   

   파트란 가문의 파티가 있던 날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까지도 내가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알겠지만 그 날 파티의 마지막은 1왕자가 내가 벌인 일을 수습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빚이라는 단어가 살벌하게 다가오긴 했지만 파티가 끝나고서 따로 찾아오지 않고 돌아간 걸 보면 당장에 날 조질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바로 억까해주는 편이 나은데. 그럼 시킨 일만 처리한 후에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테니까.

   

   나중의 일로 남겨두면 마음 한 구석이 계속해서 불편하단 말이야!

   

   허접 주신처럼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야. 살다 보니 허접 주신이 재평가 받는 날이 오네.

   

   빚을 안 갚으면 되지 않냐고?

   

   되겠냐?

   

   그랬다가 1왕자가 날 어떻게 조지려 들 줄 알고!

   

   나중에 내가 1왕자를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고 난 후의 이야기라면 모를까 그 전에 1왕자가 맘 먹고 날 조지면 난 조져져야 하는 입장이야!

   

   그건 베네딕도 어떻게 못 해줘!

   

   걔가 아무리 괴물이라지만 나라를 상대로 이길 순 없으니까!

   

   …어. 음. 못 이기겠지?

   

   상대가 베네딕이라 뭐라 확언을 못 하겠네.

   

   어쨌든 1왕자에 관한 건 당장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넘기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메스가키 스킬에 대한 부분을 먼저 말해야 하려나.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호칭이 정상화 된 것은 그 때 한 번 뿐이었다.

   

   파티가 끝나고 나서 무수히 많은 실험을 해보았지만 호칭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지.

   

   몇 번이나 1왕자의 이름을 부르려 해봐도 음침 외톨이 왕자라는 호칭을 거듭하게 될 뿐이었지.

   

   다른 호칭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없었다.

   

   할배와 같이 여러모로 연구를 해보았지만 영문을 모르겠단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어떻게든 이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면 허접 주신이 평판을 올려주겠단 보상을 지키기 위해 개입했다고 봐야 하겠지.

   

   근데 있잖아. 허접 주신이 저런 걸 해줄 것 같지가 않단 말야.

   

   무능 주신이 저런 걸 신경 써 줄 작자였다면 진즉에 메스가키 스킬 패널티를 줄여주지 않았겠어?

   

   생각해봐. 그 쓰레기는 내가 매도하면 좋아하고, 곤란해하는 것도 사랑하는 녀석이라고.

   

   내가 곤란해 한다고 해서 날 도와줄 리가…

   

   아니. 아닙니다. 주신님. 제가 잠시 흥분해서 헛소리를 했네요.

   

   더 이상 뒷담화를 까면 다음 퀘스트로 괴악한 게 나올 것 같으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자.

   

   그래. 공작이 주었던 보상에 대한 거면 적당하겠다.

   

   파티가 끝나고서 다시 마주하게 된 공작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이야기하라고 했다.

   

   자신의 능력이 있다면 아무리 허무맹랑한 것이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면서.

   

   그의 말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파트란 공작 가문의 위세가 있다면 귀족 영애 하나가 상상하는 것쯤이야 얼마든 이룰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공작이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내가 평범한 영애가 아니라는 거겠지.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내가 바라는 것은 공작이 구해다 줄 수 없는 것들뿐이다.

   

   종결급의 갑옷이나 방패, 스킬. 이런 물건들은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움직여서 손에 넣어야 하는 거니까.

   

   내가 마법 계열로 육성트리를 타는 중이었다면 파트란 공작에게 부탁할 것이 차고 넘쳤겠지만 안타깝게도 난 신성계열의 탱커인 걸.

   

   이외에 다른 것들을 공작에게 부탁할 수도 있겠지만 파트란 공작이라는 거물이 직접 원하는 걸 말해보라고 했는데 평범한 건 좀 아쉽잖아.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그 때에 난 한 가지 부탁을 떠올릴 수 있었다.

   

   게임에서는 불가능했던 것.

   

   현실이기에 가능한 것.

   

   NPC의 직접적인 개입.

   

   ‘공작님…’

   “허술 공작님께 부탁을 드릴 권리를 얻어도 괜찮을까요?”

   

   지금의 보상을 나중으로 미루겠다. 대신 그 때 어떤 일을 부탁하더라도 들어 달라.

   

   다소 무리하고, 어쩌면 무례한 이야기였지만 공작은 조금의 불쾌감도 드러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후로는 평범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이라거나. 조이가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냐는 거나. 나이든 사람이 으레 할 법한 조언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아. 그러고 보면 그대가 조이에게 조언을 해주었다고 했었지. 그 내용에 대해 나도 들어볼 수 있겠나?”

   

   비밀로 할만한 내용도 아니었던지라 바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법계 캐릭터를 키울 때 기초를 닦는 방법에 대해서.

   

   파트란 공작은 내가 조이에게 가르쳐 준 것을 듣더니 갑자기 눈썹을 내리고는 혼자서 무어라무어라 중얼대기 시작했다.

   

   마피아 보스가 상대 조직을 궤멸시킬 방법을 구상하는 듯한 모습에 절로 정자세를 취하게 되었다만 그는 사악한 계획을 짜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꺼내 놓은 발상을 해체하고 있을 뿐.

   

   “놀랍군.”

   

   그 끝에 나온 것은 감탄이었다.

   

   “반복. 숙달. 그리고 부하인가. 근육을 단련하듯 마법을 수련하다니. 마탑의 늙은이가 들었다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이야기지만.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겠어. 알른 영애. 누가 이를 가르쳐 주었지?”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는데요.’

   “허술 공작님. 다른 허접 멍청이들이 이런 발상을 할 수 있을 리 없잖아요?”

   

   이건 진짜다. 이 빌드는 내가 만들어내고 창안한 녀석이니까! 갓겜이 망겜이 될 때까지 이것보다 좋은 빌드는 없었다고!

   

   “그대 혼자만의 발상이라고?! 과연. 마법사가 아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인가.”

   

   공작은 천재라는 단어가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라며 날 치켜세워주다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대에게 보답을 하고자 부른 자리인데 오히려 무언가를 받아버렸군. 정말 당장은 내게 바라는 게 없는가? 자잘한 거라도 좋네. 빚을 늘리기 싫어서 말이야.”

   

   ‘그렇다면 한 가지…’

   “그럼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파트란 축제가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영지를 떠나 있었는가. 그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다.

   

   공작이 다급하게 행차해야 할 정도의 큰 일이 무엇인지 궁금했기에.

   

   공작은 내 물음에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선선히 대답을 해주었다.

   

   “버로우 공작에게 도움을 요청받았었네. 그 녀석이 다급히 이야기할 정도라면 심각한 것이겠다 싶어 직접 가보았다만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게 해결된 뒤더군.”

   

   괜히 축제 전에 시간만 낭비했다며 공작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 시기에 버로우 가문 쪽에 문제가 생길 일이 있나? 그 쪽엔 뭐 생길 게 없을 텐데.

   

   의문이 들었지만 공작이 이상 없음을 확인했다면 별 문제는 없겠다 싶어 넘겨버렸다.

   

   그 외에는 별 다른 일이 없었다.

   

   아서한테 제발 적당히 좀 해달라는 부탁을 받거나. 프레이가 매달리기에 그녀와 대련을 해주었다거나. 하는 정도?

   

   그러고서 파트란 영지를 떠나 다시금 알른 가문으로 돌아온 나는 포셀에게 몸 상태가 회복되었음을 알리고 다른 기사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지금의 아가씨는 무척이나 강하시니 과거처럼 배려드리진 않겠습니다.”

   

   ‘바라던 바에요!’

   “풋. 누가 누굴 배려한다고? 허세 부리긴. 다른 허접 기사들보다 내가 못할 것 같아?”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아가씨!”

   

   그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차라리 죽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은 수준이었다.

   

   아카데미에서 혼자 수련을 할 때는 아무리 빡세게 굴러도 죽을 것 같다에서 끝이었다.

   

   허나 알른 가문에서 훈련을 하는 건 차원이 달랐다. 사람이 진짜 죽기 직전까지 몰리면 머릿 속이 하얘져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더라.

   

   근데 구르는 거에 비해서 성장이 더디더라고.

   

   처음에는 내 스텟이 높아져서 성장이 더딘가보다 싶었거든?

   

   근데 생각을 하다 보니까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어.

   

   허접 주신이 메네스테일에서 준 보상. 자동으로 스텟이 올라가는 대신 훈련을 하더라도 성장하지 못한다는 그 내용이.

   

   간단하게 말해서 알른 가문의 기사들과 함께 죽어라 구르는 동안 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단 거지.

   

   이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허무했던지.

   

   현실을 부정하다가 허접주신을 욕하다가 멍청한 나를 욕하고.

   

   숙련도나 스텟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들도 있으니만큼 마냥 헛고생은 아니지만 그래도 허무하긴 허무하더라.

   

   대충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샌가 아카데미의 2학기가 시작될 날이 바로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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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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