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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폭신폭신한 양탄자가 깔린 격리실 바닥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니, 거품에 둘러싸여 하늘을 날아다니는 푸딩이 보였다.

    푸딩을 둥글게 둘러싼 거품에는 격리실의 광경이 화려한 무늬로 비치고 흩어져서 일그러진 모양을 보여주고 있었다.

    침대와 푸딩 공장 그리고 바닥에 누워있는 내가 보였다.

    따뜻한 공기와 포근한 침대.

    그리고 황금 사신이 즐겁게 일하는 푸딩 공장.

    격리실은 언제나처럼 평안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지만, 나는 우울한 표정으로 격리실 바닥에 누워있었다.

    내 인생의 낙 중 하나인, 미니 사신에게 장난치기가 실패해 버리다니!

    내가 슬픈 표정으로 누워있었더니, 하얀 아귀의 전신을 세심하게 골고루 구워서 까만 아귀로 만들어 버린 붉은 사신이 다가와서 까만 아귀를 선물했다.

    “뀨힝힝.”

    하얀 부분이 하나도 안 남도록 꼼꼼하게 구워진 하얀 아귀는 구슬픈 소리로 울었다.

    나에게 아귀를 선물한 붉은 사신은 아귀를 먹고 어서 빨리 기운 차리라는 의지를 뿜어내며 해맑게 웃었다.

    옴뇸뇸.

    한입 크기의 조그마한 까만 아귀를 입에 넣고 냠냠 먹고 있었더니, 노란 달을 처리하고 얻은 능력에 생각이 닿았다. 

    별로 쓸모 있는 능력이 아니라서 아예 신경도 안 쓰고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테스트를 좀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험 삼아서 능력을 사용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붉은 사신이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고 있었다.

    ‘붉은 엄마!’

    그리고 놀란 표정이 서서히 즐거운 표정으로 바뀌더니, 정말 신나는 것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좋아했다.

    이번에 노란 달을 처리하고 새로 얻은 능력은 피부색을 바꾸는 능력이었다.

    노란 사신의 인형 옷처럼 정신 오염도 없고 능력 모방도 없는 순수하게 색만 바꾸는 능력이었다.

    뭐 실용적인 능력은 아니지만, 미니 사신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붉은 사신은 내 예상의 몇 배나 격렬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얼마나 좋은지, 마치 산책하러 가자고 조르는 강아지처럼 누워있는 나의 새끼손가락을 마구 잡아당길 정도였다.

    다른 미니 사신들이 잔뜩 있는 안뜰로 나가서 자랑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나랑 같은 색!’

    나는 붉은 사신이 잡아당기는 새끼손가락에 못 이기는 척 천천히 일어나서, 붉은 사신을 머리에 얹었다. 

    뚜방뚜방.

    그리고 나는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붉은 사신의 인도에 따라서 천천히 안뜰을 향해서 걸어 나갔다.

    ***

    녹색 횃불이 일렁이는 불길한 미궁.

    그런 미궁의 중앙에 한 소녀가 다 타버려서 재만 남은 모닥불 앞에 쭈그려 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들, 도대체 어디 간 걸까?”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고 보니, 야영지가 텅 비어있었다.

    소녀는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야영지에는 아저씨들이 남기고 간 물품들이 가득했었으니까.

    야영지에 있는 수많은 물건을 버리고 갈 리가 없었으니,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소녀는 아직은 온기가 남아있는 잿더미 앞에 앉아서, 흑색 검을 쓰다듬으면서 아저씨들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저씨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흑색 검의 검신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검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눈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처럼 검을 향해 물었다.

    “어쩌지. 아저씨들이 돌아오질 않네. 이대로 야영지를 버려두고 우리끼리라도 먼저 미궁을 나아가야 할까?”

    삐-.

    그러자 소녀의 손아귀에 쥐어진 흑색 검에서 동의한다는 것처럼 높고 활기찬 대답이 돌아왔다.

    소녀는 마치 대답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는 검을 바라보면서,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우리 먼저 가자고? 그래도 될까? 야영지 물건을 누가 훔쳐 갈지도 몰라.”

    삐-.

    이번에도 흑색 검에서 높고 활기찬 대답이 돌아왔다.

    소녀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가 마치 야영지를 버리고 떠나가자는 말로 들렸다.

    “음. 그래도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소녀는 그래도 조금만 더 아저씨들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아저씨들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소녀는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검신을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삐-.

    그러자 검도 기분 좋은 것 같은 느긋한 울음소리를 냈다.

    흑색 검의 검신은 보들보들해서 아무리 쓰다듬어도 질리지 않았다.

    게다가 검도 굉장히 좋아하는 반응을 돌려주기까지 하니, 소녀는 검을 최대한 자주 쓰다듬어 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검신을 쓰다듬으면서 검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마치 아끼는 보물을 살펴보고, 손질하는 것처럼.

    소녀가 이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검의 폼멜 부분이 하얗게 물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노란색이었는데!

    소녀에게 폼멜의 색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하얀색 폼멜을 바라볼 때면 왠지 흑색 검이 슬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걱정이 되었다.

    “이제 거의 노랗게 변했어. 너도 하얀 것보다, 노란색인 편이 좋지?”

    삐!

    그래도 슬퍼 보이는 검을 위로하듯이 열심히 쓰다듬었더니, 폼멜의 색은 상당히 노란색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그렇게 소녀는 계속 흑색 검을 쓰다듬고 있었더니, 녹색으로 타오르던 횃불이 한순간에 변해버렸다.

    “!”

    불길한 녹색으로 타오르던 횃불이 다시 익숙한 붉은 색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설마 하는 생각에 천장을 올려다보자, 익숙한 패턴의 숫자가 보였다.

    소녀는 서둘러서 지도책을 펼쳐서 숫자를 비교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돌아왔어! 이제 돌아갈 수 있어!”

    삐-.

    소녀가 즐거운 표정으로 외치자, 흑색 검도 같이 즐거운 듯한 소리로 울었다.

    ***

    소녀가 부르길 일명 ‘개고기 아저씨’라고 불리는 중년의 남자는 피투성이가 된 손을 헝겊으로 닦아내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1년 365일, 언제나 똑같이 화창한 날씨를 가진 미궁 도시의 하늘이 보였다.

    ‘오늘도 가짜 하늘은 화창하네.’

    그가 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내려서 바닥을 내려다보자, 피투성이가 된 남자 두 명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자갈밭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아. 어떻게 사람이 그런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에게 사기를 칠 수가 있지?”

    그는 자갈밭 위에 쭈그려 앉아서 남자들과 시선을 맞추며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하지만 질문을 받은 두 명의 남자는 그저 고통스러운 소리만 낼뿐,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물론 질문을 던진 그도 딱히 대답을 원했던 건 아닌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손을 탁탁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그놈들을 찾아내서 해결까지 한 거야? 미궁 깊숙한 곳까지 갔던 모험가라 그런가? 역시 빠르네.”

    천천히 일어서는 그의 뒤로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말을 걸며 다가왔다.

    개고기 아저씨에게 소녀가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정보를 전달해 준 노점상 주인이었다.

    그녀는 소녀가 자주 들리는 노점상의 주인이었다.

    평소였다면 해맑은 얼굴로 간식거리를 사서 미궁에 들어갔을 텐데, 노점상을 구경만 하다가 들어간 소녀가 이상해 보여서 수소문을 해본 것이다.

    그렇게 어린애를 대상으로 비싼 값으로 가짜 검과 접착제를 속여서 팔아먹은 일당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 뒤, 개고기 아저씨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나저나 이 돈을 꼬맹이에게 돌려줘야 할 텐데, 방법이 없네.”

    개고기 아저씨는 고민하는 표정으로 묵직한 돈주머니를 허공에 던지고 받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가벼운 고민을 하고 있던 남자의 귀로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변 발생! 이변 발생! 미궁에 이변이 발생! 녹색 횃불 등장!”

    불과 몇 시간 전에 미궁에 들어간 소녀가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이었다.

    ***

    “으음. 이상하네.”

    소녀는 천장 위를 확인하고 지도책을 계속 번갈아 가면서 바라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분명 맞는데. 지도대로 제대로 왔는데.”

    소녀는 매번 천장의 명패와 지도책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마지막 방까지 도착할 수 있었지만, 미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마지막 방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현재 방의 천장 명패는 지도책에 ‘출구’ 앞이라고 쓰인 명패였다.

    하지만 현재 소녀가 도착한 미궁의 방은 지도책과 확연히 다른 점이 존재했다.

    출구 횃불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횃불이 없고, 투박하게 돌을 깎아서 만든 돌문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생긴 돌문은 절대로 열면 안 된다고 개고기 아저씨가 그랬는데….”

    “하지만 개고기 아저씨가 지도책을 믿고 따르라고도 했는데….”

    소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이 문으로 들어가는 게 정답일까?”

    흑색 검을 들어 올리며 물어보자, 흑색 검은 간단한 답을 돌려줬다.

    밝고 가벼운 음색의 ‘삐-.’ 소리.

    “그래, 들어가자!”

    소녀는 그 소리를 듣고는 표정을 굳히고 천천히 돌문을 밀어서 열기 시작했다.

    그그극.

    돌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문을 완전히 밀어서 열어젖히자, 소녀는 이미 반대쪽 방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그리고 소녀가 방안에 들어서는 것과 동시에 돌문은 사라져 버렸다.

    방안에 갇혀버린 셈이라 불안할 법도 했지만, 소녀는 신비로운 방의 분위기에 정신이 팔린 상태였다. 

    미궁의 다른 방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방.

    반들반들한 보라색 보석을 거울처럼 만들어서 벽면과 바닥, 그리고 천장을 채운 것 같은 방이었다.

    그리고 방의 가장 먼 끝에는 보라색으로 반들반들한 인형이 서 있었다.

    “와, 신기해.”

    소녀는 눈을 빛내면서 주변을 돌아보다가 인형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인형이 내 쪽으로 조금 다가온 것 같은데?’

    그리고 반들반들한 인형의 표면에 울퉁불퉁한 실금이 잔뜩 생긴 상태였다.

    소녀는 뭔가 수상함을 느끼면서도, 다시 방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명패가 없어, 이러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데….’

    소녀는 지도책에 이런 방에 대해 적혀 있나 해서 찾아봤지만, 전혀 없었다.

    삐!

    그렇게 지도책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도중, 갑자기 검이 큰 소리로 울었다.

    소녀가 갑작스러운 소리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드니, 보라색 인형이 어느새 방의 절반을 넘어서 소녀를 향해 접근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보라색 인형 표면에 있던 실금들이 조금씩 갈라져서 벌어진 상태였다.

    이번에는 몰라볼 수가 없었다. 

    인형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는 다가오는 인형을 보고 갑자기 불안한 기분이 들어서, 흑색 검을 들어 올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떡하지? 몬스터인 걸까?”

    삐-.

    마치 검도 동의하는 것처럼 밝고 높은 소리로 답했다.

    메아리를 잡아먹는 것처럼 소리가 울리지 않는 적막한 공간. 

    거울처럼 사방이 비치는 불길한 방의 구조.

    천천히 유령처럼 다가오는 인형.

    소녀는 새파랗게 질린 채,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리고 잠깐 눈을 깜빡이는 순간, 보라색 인형은 소녀의 코앞에 갑자기 나타났다.

    인형의 표면의 실금들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징그러운 눈알이 출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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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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