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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2

    <212 – 믿고 싶은 마음>

     

    페이퍼콤파니는 경악했다.

     

    ‘오크노디가 어째서 여기에!?’

     

    기겁하며 모퉁이에 숨어서 엿보니 돌아가는 꼴이 아주 가관이다.

    헤스티아가 하필 저 애의 친구였다니!

    덩치도 크고 실력도 좋아보이는데 직업 때문에 인망이 없어서 혼자 다니는 1학년을 보고 저런 시간이 남아도는 애라면 써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페이퍼 던전에서 2학년들이 던전과 모험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을 얻는 동아리를 만들고 그곳에 좋은 동료감을 하나 추가했다고 여겼을 뿐이건만.

    노린 것도 아니었는데 2학년 남자들만 있는 위험한 곳에 1학년을 데려온 불량선배가 되어버린 상황.

    여기에 오크노디가 쳐들어온 이유라면 역시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다.

     

    -제 친구를 건드리다니 배짱이 두둑하시네요.

     

    협박이구나!

    공포감에 손등에 닭살이 돋았다.

    한 번 심기를 거슬렀다고 과제를 대신 풀어버려서 자신을 조교로 만들어버릴 정도의 공포스러운 보복을 해버린 아이다.

    두 번 심기를 거스르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쩌면 조교를 넘어서 교수의 랩실에 들어가는 수제자, 큰 배움을 받는 학생이라 하여 대학원생이라 불리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쟤들도 페이퍼 던전을 하네?’

     

    당황한 탓인지 오크노디를 자리에 앉히고 책 하나를 가져온 헤스티아.

    당사자는 동료가 되고 싶었던 눈치인데 어째서인지 오크노디를 책 속에 집어넣고 자기가 사서가 되어 전개를 하는 입장이 되었다.

    1학년이 함부로 조종을 했다간 꽤나 거친 이야기가 되어서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저거 괜찮을까?

    괜히 오크노디의 심기라도 거슬렀다가 엄한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건 아닐까?

     

    “헤스티아, 도와줄까?”

    “괜찮아요, 페이퍼콤파니 부장. 저 의외로 재능이 있나봐요.”

     

    오크노디가 만족하고 있는 걸까?

    대체 어떤 서사를 풀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진 그가 슬쩍 페이퍼 던전을 엿보았다.

     

    ━━━

    현재 난이도 – 극악무도

    특징 – 현실성, 가혹한, 최악의

    진행상황 – 제국3대역적가문 크롤링 민트초코가 마석채굴을 위해 관리하던 던전을 습격, 그의 토벌의뢰를 받고 던전의 위험루트로 침입하는 중.

    ━━━

     

    “이럼 애가 죽잖아!!”

     

    페이퍼콤파니는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페이퍼 던전이 경험을 얻기 위한 공간이라고 해도 아무 짓이나 다 해도 좋은 곳은 아니다.

    위험한 짓을 하면 당연히 위험이 닥친다.

    파티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은 작게는 부상부터 크게는 죽음까지 감당 못할 경험을 선사한다.

    책에서 죽는다고 진짜 죽는 건 아니지만 죽음을 겪는 일이 어디 달가운 일이겠는가.

     

    “괜찮습니다, 부장님. 오크노디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고른 거니까요.”

     

    위험루트. 어려운 도전.

    오크노디는 자발적으로 그런 도전에 나섰다.

    우연에 의지해서.

    사서의 도움을 받아서.

    쾌적하고 편리한 방식으로.

    솔로플레이로 나선 주제에 우연이나 비현실적인 도움을 그녀는 하나도 바라지 않았다.

    혼자 힘으로 다 헤쳐나갈 작정인 것이다.

     

    “보세요. 잘하고 있잖아요.”

    “…진짜네?”

     

    쑥쑥 늘어가는 던전진행도에 어이가 없었다.

     

    “이게 왜 되네?”

     

    같은 이야기도 하급파티와 상급파티에 따라 난이도가 달라지는데 오크노디는 어려운 길을 혼자서 거침없이 풀어나가고 있다.

    난이도로 치면 숙련된 페이퍼 던전 탐사자 4인이 모인 파티에 필적하는 수준이다.

    의외로 플레이를 잘한다.

    밥 먹고 페이퍼 던전만 플레이해온 사람처럼.

    그것도 상당히 하드코어한 기교까지 선보이면서.

     

    “마침내 도착한 현장에서 인질이 말했어. 도와주세요! 민트초코는 아직 널 눈치 채지 못했어. 어떻게 할… 응? 그건 이상하다고?”

     

    책에 떠오른 오크노디의 탐사자 의견을 본 헤스티아가 난처해하였다.

     

    “뭔데?”

    “난이도가 너무 낮대요. 명색이 제국3대역적가문이라면 인질들은 이미 민트초코에 목이 막혀 얼굴이 시퍼렇게 죽어있고, 제물의식에 쓰일 거라고…”

    “와. 난이도 좀 낮춰달라고 징징거리는 애들은 봤어도 이걸 자발적으로 올리는 애는 처음이네.”

     

    ━━━

    현재 난이도 – 전설적인

    특징 – 현실성, 가혹한, 최악의, 무자비한

    진행상황 – 크롤링 민트초코는 악마를 자신의 몸에 강림시켰다. 나아가 던전을 범람시켜 인근 수해를 마기가 깃든 민트초코로 오염시킬 작정이다. 그를 막을 용사는 이제 당신밖에 없다.

    ━━━

     

    평범한 토벌의뢰를 용사의뢰 급 난이도로 올려버리는 오크노디.

     

    ‘이 녀석들, 페이퍼 던전력 높지 않아? 1학년 주제에 3학년보다 빡세게 게임하고 있네.’

     

    문득 떠올랐다.

    이 아이, <은퇴한 전직용사의 모험기담> 강의를 듣고 있다는 사실을.

    용사 이슈타르를 적대하고 있기는 하지만 용사나 다름없는 모험을 하고 있는 이 아이.

    대체 뭐가 되고 싶고, 뭐가 하고 싶은 걸까.

    심란한 와중에 크롤링 민트초코를 암흑마나에 절여 다크카카오초코로 만들어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광경이 펼쳐졌다.

     

    “!!”

     

    페이퍼콤파니는 입을 틀어막았다.

    용사의 대적이 될만한 존재를 만들고, 그걸 자신의 부하로 삼는다.

    그런 예행연습을 할 이유는 역시 하나밖에 없지.

    이 아이, 현실에서도 저지를 작정이다.

    용사에 맞서 자신의 부하를 만드는 짓거리를.

    신세대 마왕후보로 불리는 미지의 클래스 <다크프린세스 오크노디>에 대한 소문은 마냥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르는 것이다.

     

    “재밌었당!”

    “즐겼다니 다행이네.”

    “헤스티아도 재밌었어요?”

    “응.”

    “다음엔 제가 사서 봐드릴까요?”

     

    손에 들린 터무니없는 플레이데이터가 새겨진 책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헤스티아.

     

    “오늘은 됐어. 시간도 많이 지났고.”

     

    슬그머니 눈을 피하며 거절의사를 내비친다.

    용병의 현실과 마왕의 현실 사이의 괴리감과 난이도차이를 견디기엔 그녀의 실력이 부족했다.

     

    ‘햐. 그래도 친구는 친구 맞나보네.’

     

    페이퍼콤파니는 표정변화가 풍부한 헤스티아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도 저렇게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낼 때가 있기는 하구나, 라고.

    든든한 전사이자 베테랑 용병으로서의 모습만 보였던 무뚝뚝한 1학년이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그는 처음으로 알았다.

     

    “페이퍼콤파니씨, 잘 놀다 가요!”

    “그, 그래.”

     

    페이퍼콤파니는 다짐했다.

    다음에는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탐험자들의 진솔한 마음을 꺼낼 수 있는 모험을 만들어보자고.

    …부원 5명이 동아리에서 탈주한 뒤에야 포기할 계획을 야심차게 품는 그였다.

     

     

    * *

     

     

    “수고했어, 헤스티아.”

    “고마… 어?”

     

    동아리 시간이 끝난 뒤.

    나란히 돌아가는 길.

    들려오는 인사에 대답하던 헤스티아가 흠칫 멈췄다.

     

    “방금 그건, 방 안에서만 주고받는 말투 아니었어?”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나야. 내가 한 말이야.”

     

    멀쩡하게 눈을 깜빡거리는 오크노디와 그녀가 쓴 큼지막한 모자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헤스티아는 자신이 페이퍼 던전에 들어가서 깜빡 졸기라도 했는지 의심했다.

     

    “망치 세웠다가 실수로 무너뜨린 벽은 아직도 벌점 안 날아왔어?”

    “…헛것을 들은 게 아니었구나.”

     

    정말로 방에서 주고받던 대화를 모자가 해버리자 헤스티아는 심히 당황했다.

    오크노디와 다른 목소리도 방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라 조금 다르게 들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 밖에서도 들리는 똑같은 목소리.

    대화를 주고받은 그녀들만이 기억하는 이야기까지.

     

    “설마… 내가 지금껏 대화했던 상대는 오크노디가 아니라 모자였던 거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저것’과 대화를 해왔다고.

    ‘저것’을 친구로 삼았다고.

     

    “헤스티아. 놀라지 말아요. 이 모자는 평범한 모자가 아니에요.”

    “그럼 뭔데.”

     

    날 가지고 놀기 위한 장난감?

    비참하게 만들기 위한 놀림거리?

    마음속에 차가운 비수가 콕콕 박히려던 그녀에게 오크노디가 말했다.

     

    “제 소중한 비밀을 알고 있는 모자에요!”

    “오크노디의… 소중한 비밀?”

    “모자씨는 누구에게도 알려주고 싶지 않은 저만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제 비밀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이죠!”

     

    장난감이나 놀림거리가 아닌 비밀친구.

    특별한 관계.

    헤스티아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내가 지금껏 내 비밀이나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나눴던 건 모자가 아니라 오크노디 너가 상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미안해요. 그치만 저는 자주 자리를 비우기도 하고 방에 돌아오면 금방 잠들기도 하는걸요. 헤스티아도 대화상대가 필요했잖아요?”

    “그래서 모자랑 대화를 하게 놔둔 거야?”

    “…그럼요!”

     

    섣불리 긍정하지 못했던 건 미안한 마음 때문일까.

    참 순수한 아이다.

    자신이 친구가 되어줄 수 없는 시간에 외로울까봐 에고아이템을 가져다 놓다니.

     

    “그리고 모자씨는 진짜 사람이에요!”

    “…에고아이템은 물건에 싹튼 것이지, 진짜 사람은 아니잖아.”

    “그런 의미라면 더욱 사람이에요! 모자 안에 깃든 것은 자아가 싹튼 물건이 아니라 진짜 사람의 정신이니까요.”

    “뭐…? 너 지금 무슨 말을…”

     

    영혼을 뽑아 구슬에 가두는 아이.

    사람의 영혼을 심심풀이 사탕처럼 집어삼키는 악마.

    인간의 마음을 흉내내는 괴물.

    오크노디를 향한 몇몇 악소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

     

    헛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가슴이 차가워진다.

    손발이 차갑게 식는다.

     

    “헤스티아. 우리가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나요?”

    “…어떤 이야기?”

    “사람들이 멋대로 떠드는 이야기 따위, 저는 개의치 않는다고. 제가 아는 헤스티아는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판단한 헤스티아라고.”

    “그랬었지.”

     

    모자의 이야기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서서히 가라앉았다.

    저 상냥한 마음씨는 틀림없는 사람의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가지고 노는 잔혹한 존재에게 놀아났다면 더더욱 품을 수 없는 상냥함이다.

    그러니 오크노디가 나쁜 아이일 리가 없다.

     

    “그랬었지…”

     

    그렇게 믿고 싶은 헤스티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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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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