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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

         

         

         북방의 군부독재 상시계엄 공안정국 포병만능주의 전쟁광 국가가 북방의 군부독재 상시계엄 공안정국 포병만능주의 전쟁광 민족과 은밀하게 손을 잡을 그 시기.

         

         이반은 마침내 레오노르의 수도, 에브론에 도착했다.

         

         드넓은 평원 한 가운데에 치솟아 있는 왕궁과 깊은 해자. 열차선을 따라 늘어진 민가 따위가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크라실로프나 틸레스의 대도시와는 달리, 남부육국의 국가들은 이처럼 봉건시대 수도에 가까운 도시 경관을 지니고 있었다.

         

         이쪽이 보다 더 전근대적이군. 이반은 다각, 다각 말을 몰며 생각했다. 일행은 말 위에 반쯤 엎어져 졸고 있었다.

         

         

         

         “어쩐지 시선이 좀 노골적인데요….”

         

         

         이자벨이 멍한 얼굴로 주위를 훑었다. 에브론 권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철기를 몸에 두른 병사들이 노골적으로 그들을 훑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 성녀가 포함된 일행을 감히 백주대낮에 공격할 수는 없다. 이반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루 정도 여유가 있긴 하지.”

         “네?”

         “해가 떠 있을 때까지 쉬고, 저녁에 출발하자.”

         “아싸아아아!!”

         

         

         일행은 너나 할 것 없이 환성을 터트렸다. (성녀도 가세했다.)

         

         무려 이틀하고도 반나절이다. 거의 사흘에 가까운 시간동안 ‘무휴식, 무취침, 오직 질주’는 초인조차도 애벌레로 만들기 충분한 혹사였다.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쓰다가 탈진해 쓰러지고, 조금 회복되면 다시 한계까지 혹사당한 탓에, 예상 외로 최대 마력량이 폭증하는 선순환을 가져왔다지만.

         

         그건 솔직히 고난에 비해선 대수로울 것도 없는 이득이라 하겠다. 당장 먹지도(영양바는 식사가 아니다. 연료보충이다.) 씻지도(억지로 발을 씻겨 주는 것은 정신고문이다.) 못한 채 사흘을 견뎠다.

         

         이 정도의 고난이라면 마력량이 세 배로 늘어도 손해라고 봐야 했다. 이자벨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몰았다.

         

         

         “정지! 용무는?”

         

         

         성벽 아래에서 입성하는 긴 줄을 기다려 간신히 성문에 진입했을 시점, 딱딱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문지기가 그들을 멈춰 세웠다.

         

         

         “여행.”

         “신원을 밝히시오!”

         “파트리시아.”

         “네, 형제님. 잠시만요.”

         

         

         이반의 등 뒤에서 쉬고 있던 성녀가 비척거리며 고개를 내밀었다. 용사 파티가 으레 그렇듯, 그녀의 얼굴은 연합 왕국 전역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특히 교세가 강한 남부육국의 가맹국이라면 더욱이.

         

         성녀를 확인한 경비들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꼿꼿이 세웠다.

         

         

         “성녀님!!”

         “교황청으로 가는 길입니다. 통과해도 좋을까요?”

         “예, 성녀님. 방문을 환영합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경비들이 일제히 몸을 비켰다. 거대한 관문이 크게 열렸다. 주위의 상인과 여행객들이 일제히 그들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반이 말을 몰아 성하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저 멀리에서 한 무리의 기마가 접근했다.

         

         

         “성녀님!!”

         

         

         기마의 선두에 선 기수가 굴러 떨어질 것처럼 내려와서는 과장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왕께서 접견을 청하십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면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 함께하심이 어떠신지요?”

         “어머나, 레오노르 왕께서?”

         “예, 국경에서 열차가 전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대왕께오서 어찌나 근심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리 무탈하시니 다행입니다!”

         

         

         기사의 말을 들으며 공손하게 눈웃음 짓던 성녀는 웃는 얼굴로 이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할까요? 함정일 텐데.

         

         이반은 그녀의 시선에서 뜻을 읽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이거나, 협상이다. 그리고 그 둘은 큰 차이가 없다. 무릇 함정이란 언제나 적의 의도와 위력이 밀집된 종심이며, 협상이라면 공의회 이전에 들을 가치가 있으니.

         

         이반은 일행을 훑으며 짐짓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는 아무 여관에 가서 쉬고 있어라. 좀 씻고.”

         “에엑?!”

         “이게 누구 때문인데!!”

         

         

         일행이 소리치자 기사가 다급하게 말했다.

         

         

         “함께 내방하신 기사분들 전원을 극진히 모시라는 명입니다. 함께 가시지요. 좋은 식사와 거처를 제공하겠습니다.”

         “궁성에 입장하기엔 내 수하들의 꼴이 퍽 수치스럽군. 저 시정잡배들을 입성 시키는 것은 내 명예에 어긋나오. 그럴 가치가 있는 자들도 아니고.”

         “하, 하오나….”

         

         

         기사가 황급히 성녀를 바라보았지만 성녀는 여전히 눈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반은 품에서 금화를 꺼내 이자벨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저녁까지 챙겨먹고 쉬어라. 동이 틀 때 남문에서 보는 걸로 하지.”

         “아니 나도 왕실 만찬—.”

         “쉿, 쉿쉿 에시. 예, 대장님. ‘내일 아침 동이 틀 때’ ‘남문’으로 나가 있겠습니다.”

         “음.”

         

         

         루시아가 눈을 빛내며 에시디스를 질질 끌고 사라졌다. 이반은 당황한 기사에게 짧게 턱짓했다.

         

         

         “언제까지 서 있어야 하지?”

         “…모시겠습니다.”

         

         

         기사는 깊게 허리를 굽히고 왕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

         

         

         예법에 맞는 정갈한 의관과 극진한 대접 끝에, 완전히 뽀송뽀송해진 성녀가 기분 좋게 걸어왔다. 최대한 신속하게 준비를 마친 이반이 궁정의 홀에서 기다리고 있을 시점이었다.

         

         

         “죽다 살아난 기분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겠군요. 주께서도 이런 심정이셨을까요.”

         “이젠 신성 모독을 밥 먹듯이 하는군.”

         “인간이 모독한다고 신성이 모욕당할 수 있는 것이던가요.”

         

         

         성녀는 쿡쿡 웃으며 자연스럽게 이반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귀부인을 호위하는 기사의 모습으로, 이반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걸었다.

         

         시종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거대한 연회장이었다. 열댓 명 정도의 귀족들이 둘러 앉은 긴 테이블의 끝엔, 호피와 낡은 용가죽으로 이루어진 복식의 거한이 앉아 있었다.

         

         레오노르의 군주, ‘용맹왕’ 라미로. 멧돼지 같은 덩치와 짐짓 우둔해 보이는 외모 아래에서 작은 눈이 날카롭게 빛나는 중년의 사내였다.

         

         이반 대왕이 살아있을 시절, 근위사병으로서 두어 차례 만난 적 있는 인물이다. 강직하고 우둔한 외모를 이용해 수싸움을 시도하는, 곰의 탈을 쓴 승냥이.

         

         여전히 그 품성이 바뀌진 않은 것인지, 왕은 크게 웃는 얼굴 아래에서 비릿한 눈으로 성녀와 이반을 훑고 있었다.

         

         성녀는 자연스럽게 가슴에 손을 얹으며 인사했다.

         

         

         “레오노르의 사자여, 세월이 흘러도 대왕의 위엄은 쇠하지 않으니 참으로 주의 축복이 따르신다 하겠습니다.”

         “파트리시아 성녀님. 아국을 찾아주시어 감사드리오. 어서 앉으시오. 열차가 탈선하여 경황이 없으셨을 텐데, 잠시라도 아국에서 편히 쉬시었으면 하오.”

         

         

         두 사람은 그 뒤로 덕담을 교환한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이반은 성녀의 곁에 자리하고 자연스럽게 식기를 쥐었다.

         

         왕은 껄껄 웃으며 시종들이 가져오는 음식을 귀족들에게 권하고 있었다. 좋게 말하자면 허례허식이 없는 것이겠고, 다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궁정이라기보다는 병영 같은 분위기였다.

         

         이건 모두 왕 스스로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는 일종의 퍼포먼스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과시가 필요하단 말은 곧 안정적인 치세가 아니라는 뜻과 같다.

         

         식사 도중, 문득 왕이 이반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귀관을 어디에선가 본 것만 같은데, 크라실로프의 사람이오?”

         “용병업을 하고 있으니, 저를 보셨다면 전장이었겠지요.”

         “전장이라. 대전쟁의?”

         “지금 시대에 칼을 쥔 무부 중 누가 그 시절을 거치지 아니했겠습니까.”

         

         

         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와인이 찰랑이는 은잔을 들어 올렸다.

         

         

         “아, 그 시절이야말로 진정 영웅들의 시대였다 할 수 있겠지. 크라실로프의 사내들이라면 더욱이. 이반 대제께서 전장을 호령하시던 것이 어제와 같군.”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대도 대제의 곁에서 군역을 지냈나?”

         “부족하지만 두어 차례 같은 전역에 있던 시절이 있습니다.”

         “호오. 오늘 아국에 영웅들이 찾았구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전우가.”

         

         

         이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은잔을 들었다. 물론 라미로는 그 시절에도 왕위에 앉아 있었으나, 저 자는 최전방에 선 적이 없던 사내였다.

         

         이반은 와인을 입 안에서 굴리며 만찬을 훑었다. 모든 요리를 한 조각씩 먹었음에도 독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하독으로 암살을 시도하지는 않는다는 의미겠다.

         

         이건 많은 것을 시사했다. 왕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궁정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면, 궁정에 진입한 이상 성녀를 직접 암살하려 시도하더라도 막을 수 있는 자가 없겠으나.

         

         지금 이렇게 변죽만 올리며 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것 자체가, 타인의 시선 아래에서 직접적으로 성녀를 공격하진 못한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이 자리에 있는 귀족 중에,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는 유력자가 있다는 뜻인데.

         

         

         “그래, 어느 전선에 있었나?”

         “북부전선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아, 북부라. 알마그로 백작이 그 전선에 출정했었지. 그렇지 않나, 백작?”

         “예, 폐하.”

         

         

         연회장의 먼 방향에서 입가를 닦던 노인이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왕은 크게 웃으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본 적 있나?”

         “필리페 데 라 알마그로 백작 각하라면, 예. 전선에서는 유명하신 분이셨지요.”

         “오, 백작. 그대의 전우일세. 그래, 인사들 나누게!”

         

         

         이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백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기억 속 필리페는 전선 중앙을 향해 미치광이처럼 달려들던 기사였다. 그 용맹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절 이반은 왕실근위대의 일개 기병에 불과했다. 백작이 그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백작은 차가운 눈으로 이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토록 강한 자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건만, 노쇠하여 기억력이 전과 같지 않으니 한스럽군. 귀관의 이름은?”

         “이반 페트로비치입니다.”

         

         

         실명을 밝힌다고? 성녀는 움찔 놀라며 테이블 밑으로 이반의 허벅지를 툭, 쳤다.

         

         그러나 백작은 여전히 눈가를 좁힌 채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족이 아닌가?”

         “아니었습니다.”

         “훌륭하군. 하긴, 크라실로프의 선왕께서는 인재를 보는 눈이 탁월하셨지. 근위대 소속이었나.”

         “예.”

         “기마술에 능하겠군.”

         “부족하진 않습니다.”

         “그래 보이더군.”

         

         

         백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왕에게 묵례했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왕은, 짐짓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원 참, 카발레로(Caballero : 기사단) 출신이 아니랄까봐 전우와 해후를 하여도 저토록 퍽퍽하다니. 미안하군, 페트로비치 경. 자자, 다들 들게. 식으면 맛이 없어.”

         

         

         왕의 웃음소리 아래에서 식사가 이어졌다. 이반은 성녀가 먹으려는 음식을 먼저 한 조각씩 맛보고는 살을 발라 건네곤, 볶은 견과와 마른 과일로 배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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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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