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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나는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성장했다.

        

       예전 같았으면 분명 나는 이쯤 되어서 ‘다시!’를 외쳤을 거다. 그리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계획을 다시 세웠겠지.

        

       뭐, 내 머리에서 황제가 세운 것처럼 대단한 스케일의 ‘계획’이 줄줄 흘러나오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불과 1년 전의 나와 비교하자면, 나는 정말로 되는대로 행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

        

       샤를로트의 시선이 조금 거북하다. 그럴만도 했다. 샤를로트가 나를 진짜 친구라고 말해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친구’가 한다는 짓이 자기네 나라에서 깽판 치겠다는 행동이었으니까.

        

       다만, 샤를로트가 나를 보는 표정에 내가 거북함을 느끼는 것은, 나도 샤를로트와 그만큼 친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와 이렇게 친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샤를로트는 나에게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이지도 않았을 거다. 분명 학기 초처럼 진심을 숨기고 꾸며진 미소를 지어 보였겠지.

        

       지금처럼 이렇게—

        

       ‘정말로 믿어도 되는 걸까’, ‘계획이라는 건 있는 거겠지?’, ‘사실 내가 실비아를 보고 느낀 것들은 죄다 잘못된 생각은 아닐까?’

        

       —하는 것 같은 생각을, 저렇게 표정으로 당당하게 내비쳤을 리가 없다.

        

       …….

        

       괜찮아. 나를 보는 눈이 조금 차가워졌다고 해도, 그래도 친구니까 저런 표정으로 볼 수 있는 거잖아? 응?

        

       그렇게 생각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 앞에서 태도를 바꾼 것은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다.

        

       지금이라면 미아 앞에서 ‘내가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그 아버지라는 인간은 죽을 만했다.’같은 말을 당당하게 면전에 대고 하지는 못했을 거다. ……그런 말을 던졌을 때 미아가 나한테 보였을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테니까.

        

       시간을 돌려서 관계를 다시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쌓아온 관계를 파탄 내는 것과 같다. 단순히 싸워서 멀어진다거나, 어떤 사람에게서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을 보게 되어 그 사람을 대하는 게 조금 어렵게 된다거나…… 그 모든 부정적인 부분들도 전부 ‘관계’였고, 사실은 노력해서 극복해나가야 할 부분들이다. 화해의 말을 건네고,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알아가고…….

        

       시간을 돌린다는 것은, 그 사람들과 쌓아온 그 추억의 무게를 무시한다는 것.

        

       어째 나보다는 미아 쪽이 먼저 생각해서 나한테 이런저런 좋은 말을 해줬던 것 같기는 하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그러니까.”

        

       한동안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레오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루테티아의 거의 중심부에 있는 성당을 치려는데, 거기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루테티아의 병사들을 믿을 수는 없었던 거야?”

        

       “믿을 수 없습니다.”

        

       샤를로트 쪽에서 내 쪽으로 보내는 시선의 온도가 약간 더 차가워진 것 같지만, 일단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럼 제국 쪽에서 온 사람들은—”

        

       “—그쪽은 제가 사양하고 싶은걸요.”

        

       샤를로트의 말에 레오는 입을 잠깐 다물었다가 내 쪽을 올려다보았다.

        

       “…….”

        

       “…….”

        

       잠깐 장내에 불안한 침묵이 감돌았다.

        

       “잠깐만요.”

        

       그 침묵의 끝에, 미아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여기 있는 분들은…… 샤를로트 씨를 제외하면 모두 제국 사람들인데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두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이미 여러 번 합을 맞춰보았고,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소피아는 빠졌다. 지금쯤 방에서 자고 있겠지. 아니면 기도라도 하고 있거나.

        

       레나도 제외했다. 많이 친해진 친구이기도 했고, 나를 엄청나게 따르기는 했지만, 일단은 외국인이니까.

        

       제이크랑 로티는…… 어디로 갔는지 못 찾겠더라.

        

       어디서 뭐라도 하고 있겠지. 그래도 학생들이니까 너무…… 앞서나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네 사람이 빠지긴 했지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시간을 돌리고, 지난 시간 동안 검성에게 검술 수련을 받은 레오나 클레어가 전위를 맡고, 무엇보다 나한테는 화력도 충분했으니까.

        

       가면녀와 루카스라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글쎄, 만약 그 두 사람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오히려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내 능력이 제한되기는 하더라도 완전히 봉인되는 것은 아니고, 가면녀가 루카스와 손을 잡을 일도 없을 테니까.

        

       그렇게 나름대로 변수에 관한 생각까지 다 해 둔 나였는데—

        

       “…….”

        

       이상하다.

        

       평소라면 내 말에는 언제나 ‘예스!’를 외치는 클레어마저도 엄청나게 불편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양손으로 팔짱을 낀 채 나를 살짝 노려보는 것이, 나에게 뭔가 엄청나게 큰 불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언니, 여기서 빠진 사람들은?”

        

       클레어가 건넨 말은 그런 것이었다.

        

       “……빠진 사람들 말씀이십니까?”

        

       “소피아나, 레나, 제이크랑 로티.”

        

       “제이크와 로티는 단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제가 찾아간다면 두 분의 소중한 추억을 건드리는 것이 될 겁니다.”

        

       “그래? 그럼 그 둘은 그렇다 치고. 레나랑 소피아는?”

        

       팔짱 낀 손가락을 까딱이며 물어보는 클레어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차가웠다.

        

       “그 두 사람은 아무래도 외국에서—”

        

       “저, 저기!”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피고 있던 미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희도 외국인인데요! 벨부르의 기준으로는…….”

        

       아무래도 국경지대의 영지에서 살던 아이라 그런지 그런 쪽으로는 상황 파악이 아주 빠른 모양이었다. 만약 이 일행에 자기가 포함되어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만으로 어마어마하게 곤란한 처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게요.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두 ‘외국 친구들’인데요. 그것도 제가 일부러 여기까지 초대한. 게다가 소피아는 심지어 저와 ‘동향’ 사람이고요.”

        

       아, 맞다.

        

       샤를로트는 아직 소피아가 법국 사람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만약 샤를로트가 소피아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면, 상황이 여러모로 어마어마하게 불편하게 굴러가리라.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친구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친구가 해외의 스파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그 친구를 ‘친구’로 취급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언니도 알잖아? 소피아는…… 분명 언니가 주도해서 빼버렸다고 하면 나중에 사실을 알았을 때 엄청나게 상처받을 거야. 게다가 레나는 언니를 엄청나게 따르잖아? 평소에 레나가 언니 이야기할 때 어떤 모습인지 알고 있어?”

        

       “…….”

        

       참고로 앨리스는 아까 국왕을 알현할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를 흘겨보고 있었다. 얼굴에 불만이 가득가득 차 있었다.

        

       까놓고 말하자면 ‘네가 어디까지 하는지 한 번 보겠다’ 하는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

        

       …….

        

       그, 원래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래야 서로에게 기억도 남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게 되고, 공유하는 추억도 생기는—

        

       ——.

        

       아, 알게 뭐람.

        

       다시!

        

       *

        

       역시 개판으로 흘러간 상황에서는 시간을 되감는 것 말고 더 좋은 것이 없다.

        

       내가 전생에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진짜 엄청나게 잘 써먹었을 텐데.

        

       의외로 사과하는 것은 타이밍이 중요한 법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상황이 늦어지게 된다면 상대방에게 용서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전생에도 그런 눈치 없는 행동을 해서 얼마나 많은 곤란함을 느꼈던가.

        

       그래, 내가 직접 번역한 것을 올리던 커뮤니티에서도, 서로의 오해가 쌓이고 쌓여서 서로에게 부모님 안부를 물어보고, 한번 이겨보자고 여론조작을 시도했을 때도 그렇다.

        

       만약 내가 먼저 내 잘못을 인지하고 사과부터 했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도—

        

       아니지, 그런데 그건 그 새끼가 먼저 잘못한 게 맞는 거 같다. 무엇보다 평생 얼굴 한 번 안 보고 살 놈의 기분까지 왜 내가 생각해줘야 하는가?

        

       전생이었다면 그냥 코인이나 잔뜩 사서 ‘남들이 알아서 내 기분에 맞추도록’ 했을 것이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장점이니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쪽 세상에 오고 나서야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제일 처음으로 능력을 써서 했던 행동이 ‘사람을 구하는’ 행동이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이 능력을 그렇게 미친 듯이 쓰면서도, 남들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죄송합니다.”

        

       “어, 네?”

        

       국왕과의 면담이 끝난 직후, 하지만 아직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전. 우리 세 사람이 잠깐 샤를로트의 방에 모였던 그때, 나는 곧장 샤를로트에게 허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

        

       잠깐 굳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샤를로트는, 이내 어이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게 무슨 행동인지 알고 있어요? 제국의 황녀가 왕국의 왕녀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어떤 일인지—”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

        

       내 말에, 샤를로트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제가 드리고 싶은 사과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는 ‘팬그리폰’이 아니라, ‘실비아’로서 사과드리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들으면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었다. 팬그리폰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린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지금까지 그런 계획을 숨기고 있어서 죄송합니다. 단순히 군사적, 정치적인 이유로 드리는 사과가 아닙니다. 그저…… 친구인 당신의 고향을 부술 생각이면서도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숨기고 있던 제 잘못을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걸 시간을 한 번 돌리고 나서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만큼 멍청하기 때문이리라.

        

       성장했다, 성장했다. 나 혼자 그렇게 중얼거려서 어쩌겠는가. 주변 사람들이 인정을 해줘야지.

        

       나의 그 말에 방 안이 한동안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다면, 저도 왕녀가 아니라 당신의 친구인 샤를로트로서 말하도록 하죠. 고개를 드세요.”

        

       그 말에 마음속이 확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간신히 표정을 조절하며 고개를 들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샤를로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다만, 어째서인지 자기 얼굴 옆에, 꽉 쥔 주먹을 쥐어 올리고 있었다.

        

       만약 여기가 이런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이었다면, 그 주먹 위에 데포르메 된 귀여운 힘줄이 솟아있었으리라.

        

       그리고 내가 장담하건대, 저 주먹은 굳이 그런 힘줄이 없어도 엄청나게 매울 것이다.

        

       샤를로트는 미소의 광채를 전혀 줄이지 않은 채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용서해줄 테니까, 딱 한 대만 때리게 해주겠어요?”

        

       엑.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퇴원하는 날이니까 두 화를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한 화밖에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서 있었던 자세한 이야기는 공지로 다시 한 번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주신 분들, 오늘도 이렇게 읽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후원감사인사는 다시 내일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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