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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13

       드디어 합숙 훈련의 마지막 날이 왔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원칙적으로 이 건물 안은 우리를 제외한 인원은 출입 금지였기에 내가 요리를 전담해야 했다.

         

       기술에 관한 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스킬북의 힘을 빌리면 나는 일류 요리사 부럽지 않은 실력을 뽐낼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레시피였다.

       스킬북은 손재주만 더해줄 뿐이지, 지식을 늘려주지는 않았다.

         

       나는 태어나서 스팸 한 장 구워본 적 없는 몸이었다. 그런 내가 아무리 신들린 칼질이나 웍질을 보인다고 한들 제대로 된 요리가 나올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음향실을 통해 유라크네의 도움을 받았다.

         

       -소스가 뭉근하게 갈색빛이 도나요?

       -그러면 불을 끄고 아까 철판 가장자리에 둔 고기들을 잘라주세요.

       -남은 기름에 아스파라거스와 양파를 굽고…….

         

       그녀가 원격으로 지시를 내리면, 내가 그에 따르는 식이었다.

         

       재료는 주문만 하면 뭐든 가져다주었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바깥에서 먹는 것과 비교해도 한 치 부족함이 없는 식사를 매끼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모든 일에 트집 잡고 까다롭게 구는 로드 판타스틱도 나의 요리에 대해서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아침은 어제 요청을 받은 대로 그들이 각자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어주었다. 한때 제과점이 있던 건물이라 그런지 주방은 상당히 컸다. 동시에 몇 개나 되는 요리를 만들어도 자리가 넉넉했다.

         

       오래 끓여야 하는 음식들을 불 위에 올리고 잠시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을 때, 유라크네는 부끄러움을 잔뜩 머금은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다, 단장님……?

       -네?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거 있잖아요. 이, 임시 치료요……. 몇 번 더……가능하세요?

         

       나는 별빛의 남은 양을 속으로 헤아려보고 답했다.

         

       -남은 양으로 추측해보면 15시간 정도요.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아, 아하하……. 15시간이면 충분하네요. 단장님이 떠난 지 2주 가까이 되어가는데……그러니까, 단장님은 저 안 보고 싶었어요?

         

       나는 그제야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다. 나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많이 보고 싶었죠.

       -그, 그렇죠? 후후, 그럼 돌아오시면……좋아하는 야식이라도 준비해드릴까요?

         

       부끄럼 많은 여자애 같던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고혹적인 여인의 것으로 변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혀를 날름거렸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이런 변신은 몇 번이나 봐도 놀라울 정도였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번에 붉은색으로 변하는 실험을 끝내고 나면 이제 딱히 할 만한 실험이 없었다. 남은 양은 그녀와 육체적 즐거움을 나누는 데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앞으로 10일 뒤에는 우리 시험이 있잖아요.

       -아…….

       -이제 체력을 보존해둬야죠.

       -그, 그렇죠? 후움…….

         

       그녀가 볼을 잔뜩 부풀렸다가 한숨을 토하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귀여워 작게 웃었다.

         

       -유라 씨, 광장에 나갈 때마다 그거 봤었죠. 엄청 높은 건물.

       -그거요? 그게 뭐였더라……아!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전기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을 기억해낸 그녀가 탄성을 내뱉었다.

         

       -이번 시험 끝나고 거기 가는 것 어때요?

       -그 호텔 말하는 거죠? 저, 저는 괜찮아요! 꼭 가는 거예요!

         

       그렇게 나는 시간에 맞춰 식사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얼굴에 흡족한 빛이 돌았다.

         

       오전에 치러진 마지막 리허설도 아무런 문제 없이 마무리되었다.

         

       점심 때는 키예프식 제사상을 차려 무대에 오르는 연기자들 모두가 그 앞에서 참배했다.

       유작을 초연할 때 치르는 의식 같은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해서 넋을 위로해야 공연에 액이 닥치지 않는다고 했다.

         

       공작은 오후 늦게 우리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학자들을 대동하고 있었다.

         

       “이들은 제국 대학의 고서, 유물 전문가들일세. 내가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밖에서 원본의 진위를 검토할 걸세. 그동안 대본의 내용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기 위해 미뤄왔거든.”

       “설마 기껏 연습을 다 했는데 가짜라고 판명되진 않겠지?”

         

       엘라가 나를 향해 소곤거렸다.

       공작은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소리에는 민감했다. 그는 그녀를 향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진짜라고 확신하네, 엘라 양. 자네 정도 되는 곡예사면 연습하면서 느끼지 않았나? 크리스티앙의 짙은 그림자를.”

       “아, 물론이죠. 그의 특징적인 면이 군데군데서 드러났는데, 대표적으로 도입부의…….”

       “그거 말인가?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했네. 그리고 곡예와 노래를 동시에 진행할 때의 그 부분이…….”

       “맞죠! 저는 특히 저는 이 대목에서…….”

         

       두 크리스티앙 마니아들은 신나서 극본을 본 감상에 대해 떠들어댔다.

         

       클라라는 환상의 13번 원본을 들고 나가는 학자들을 바라보며 불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 단장님, 저게 가짜로 밝혀지면……어떻게 되는 거죠?”

         

       그녀의 말에 대답한 것은 홉스였다.

         

       “어떻게 되긴. 공작님은 물론이고, 여기 있는 11명은 모두 개망신당하는 거지. ‘아니, 2주나 연습을 했는데 그게 가짜라고 못 느꼈나 봐?’ 이런 식으로 말이야. 길만 지나가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겠지. 어쩌면 업계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우으으.”

         

       클라라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더니, 이를 딱딱 부딪쳐가며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낄낄대는 홉스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클라라는 그 어리숙한 행동 덕에 이곳에서도 자주 놀림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사정을 알고 있는 터라 마냥 함께 웃기 힘들었다.

         

       그녀는 주기적으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살 수 없는 몸이었다. 그 병 때문에 자살 또한 생각했던 친구였다.

         

       그랬던 그녀가 지금은 칭찬 한 번 해주면 우쭐해서 거만한 표정을 지었고, 장난 한번 치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바보 같이 행동하는 것도 모두 자신의 불안함을 치유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그래서 다른 장난은 그렇다고 쳐도 그녀를 불안하게 만드는 농담은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재빨리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홉스 단장님이 과장한 겁니다.”

       “저, 정말요?”

       “네. 물론이죠. 좀 화제가 되긴 하겠지만, 우리 일에는 아무 지장 없을 거예요.”

         

       내 말에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인사가 끝나고 본격적인 공연 준비에 들어갔다.

       연기자들은 각자의 복장으로 갈아입었고, 단장들 역시 각자의 자리로 향했다.

       공작이 비서의 부축을 받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나는 객석 아래에 장치해둔 별빛 가루가 담긴 병을 확인하고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비서가 홀의 문을 닫고 나갔다.

       로드 판타스틱이 연기자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다들 준비됐나?”

         

       그의 질문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시작하지.”

         

       여섯 명은 차례차례 무대 위로 향했다.

         

       <다섯 곡예사>는 주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거기서 주인공이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나는 무대 뒤편으로 가서 조명 장치를 조작해 홀 전체의 불을 껐다.

         

       홀이 완전한 암흑으로 잠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수가 북을 두드렸다. 낮고 작은 소리에서 천천히 그 속도와 크기를 키워나갔다.

         

       나는 그에 맞춰 무대 위의 등을 서서히 밝혀 나갔다.

       광대 역할을 맡은 클라라의 목청 빼는 소리와 함께 <다섯 곡예사>의 막이 올랐다.

         

       서장이 지나고 주인공이 고향을 떠나던 날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인 시골 영주는 고작 2층짜리 오두막을 관저로 삼아 거주하고 있었다. 소탈한 성격의 귀족이라고 하면 좋겠지만, 사실 도박에 집문서를 걸었다가 날려버린 것이었다.

         

       주인공은 그러한 집안의 막내딸이었다. 위로 언니 셋과 오빠 하나가 있는.

         

       폭풍이 몰아치는 날, 영주네 가족들이 모두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미노바가 드럼을 쳐서 폭풍으로 흔들리는 오두막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쿵.

       무대가 흔들렸다.

       어째 연습 때보다 더 세게 치는 것 같았다.

         

       “에구머니나, 폭풍에 집이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요, 오라버니?”

         

       클라라의 호들갑 떠는 목소리가 들렸다.

       물론 상대 역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이건 1인극이었으니까.

       그녀는 정말로 겁먹은 것 같았다.

       연습에서는 이 정도로 심하게 무대가 흔들리지는 않았는데.

         

       “엉뚱한 상상하지 마라고요? 하지만 이것 보세요, 지이인짜……드드.”

         

       쿵쿵.

       다시 무대가 흔들렸다.

       내 앞에 있는 기자재들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대기실에서 루엘로의 칭얼거리는 소리와 엘라와 레이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도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장비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꽉 잡았다.

         

       이거 너무 세게 치는 것 아닌가?

       나는 무대 옆으로 고개를 빼 바깥 상황을 살피려 했다.

         

       그때, 어둠이 시야를 덮쳤다. 무대 위에 드리운 빛도 일순간 전부 사라져버렸다.

         

       쿠구궁.

       세상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메아리쳤다.

         

       “우와앗!”

       “뭐야, 이거!”

         

       눈앞으로 순간 붉은빛이 번쩍였다.

       아찔한 추락감이 전신을 감쌌다.

       나의 의식은 몸을 따라 저 아래로 떨어졌다.

         

         

       ***

         

         

       원더스타인은 자신이 얼마 만에 눈을 뜬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가 바로 뜬 것 같기도 했고, 며칠은 지난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괜찮습니까?”

         

       그러나 누구 하나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크게 다쳤을지도 몰랐다.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금방 무산되었다.

       손바닥이 미끄러지더니 바닥에 쾅 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의 팔과 다리가 뻣뻣해서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원더스타인은 덜컥 겁이 났다.

       튼튼한 자신도 이만큼 다쳤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쩌면……죽었을지도 몰랐다.

         

       지진, 건물의 붕괴, 가스 폭발 사고.

       온갖 끔찍한 일이 상상되었다.

         

       그는 팔을 뻗어 주변에 있는 물건을 아무거나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주변의 모습이 아까보다 자세히 들어왔다.

       저 멀리 문틈 사이로 들어오는 미약한 빛이 시야를 밝혀준 덕분이었다.

         

       “저기요?”

         

       그는 자신의 목소리도 이상하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그의 것이지만 그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아직 몸이 덜 회복된 탓일까?

         

       그는 빛을 향해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다리가 굽혀지지 않았지만, 조심조심 뻗은 탓에 간신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문 앞.

       그는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색이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의 빛이 어지럽게 뒤섞여서 반복되었다.

         

       그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팔을 뻗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그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소음이 안으로 확 밀어닥쳤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정경에 입을 떡 벌렸다.

         

       어두운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온갖 빛깔의 불꽃들이 허공에서 불타올랐다.

       수백 개의 폭죽이 동시에 쏘아 올려지고 있었다. 그것도 연속해서.

         

       그 불꽃 아래에는 거대한 성이 있었다. 높이가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 크기보다 놀라운 것은 그 형태였다. 그것은 돌과 목재로 만들어진 평범한 성이 아니었다.

         

       “하하…….”

         

       그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것은 하나의 커다란 서커스 천막이었다. 정확히 말해 수천, 수만 개의 건물이 쌓여 서커스 천막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 맞았다.

         

       “말도 안 돼…….”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초현실적인 그곳의 분위기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그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성녀 발렌티나를 죽인 원더스타인이 키르쿠스의 눈을 사용하여 차원문을 열고 괴물군단을 이끌고 침공하는 곳.

       TT3의 마지막 스테이지.

         

       이곳은 마신 키르쿠스의 영역인 ‘원더랜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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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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